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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9일(주일) 주일설교 레위기 22:10~33 ‘거룩함을 유지하라' 새찬송가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오늘은 레위기 22:10~33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거룩함 삶을 유지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레위기의 중심주제는 ‘거룩’입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순종하는 자식의 삶, 곧 ‘거룩한 삶’으로 초대합니다. 벧전 1장 15~16절을 보시면,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거룩’은 당시 유대인들이 목숨처럼 지키던 어떤 종교적, 의식적인 정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 반드시 요구되는 ‘영적이고도 도덕적인 성결’에 대한 것입니다(사 1:16-17).
우리의 거듭남의 변화는 내면적인 거룩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곧 실제적인 삶 속에서의 거룩도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세상은 한마디로 ‘삶의 거룩이 상실된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신 때처럼 종교적인 거룩을 지키는 사람은 몇몇 있으나 삶의 거룩을 지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행실의 거룩’까지도 회복하는 이 일에 앞장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두 번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 후로 더 중요한 일은 이 거룩함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이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거룩의 능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성령충만이요, 은혜 충만의 삶인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 레위기 22:10~33 을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거룩함을 유지하려면? 첫째, 이중삼중으로 보호막을 쳐야 합니다(10~16절).
10~16절은 성물에 대한 규례입니다. 하나님은 성물을 먹을 수 있는 사람과 먹을 수 없는 사람을 정해주십니다. 10절에 일반인은 성물을 먹을 수 없고, 제사장의 객, 즉 손님이나 품꾼도 다 성물을 먹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구별되게 드려진 성물은 제사장과 한 가족이 된 자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11절 “그러나 제사장이 그의 돈으로 어떤 사람을 샀으면 그는 그것을 먹을 것이며 그의 집에서 출생한 자도 그렇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의 음식을 먹을 것이며”
12,13절에도 제사장의 딸이 일반인에게 출가하였으면 거제의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지만, 만일 그가 과부가 되든지, 이혼을 당하든지 자식이 없이 그의 친정에 돌아와서 젊었을 때와 같으면 그는 그의 아버지 몫의 음식을 먹을 것이지만, 일반인은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성물을 함께 나누어 먹으려면 제사장의 공동체 안에서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14절에 어떤 사람이 부지중에 성물을 먹었다면 그는 그 성물에 5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갚아야 했습니다. 왜 이렇게 까지 하셨을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무나 먹게 하면 안되나? 뭐 이렇게 까지 까다롭게 굴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드린 성물을 그들 스스로 더럽히지 않도록 이중 삼중으로 보호하시며 거룩을 이어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유명한 인사를 경호할 때도 이중 삼중으로 경호의 보호막을 칩니다. 또한 책을 출판하기 위하여 교정전문으로 하시는 분들도 한글 맞춤법이나 오자 탈자를 점검하기 위해 이중삼중 보호막을 칩니다. 우리의 경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중삼중으로 보호막을 치고 우리의 거룩을 이어가야 합니다. 행동하기 전에 더 한 번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렇게 해야 우리의 거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시편 141편 3절에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했습니다. 거룩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말처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말을 생명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말한 마디로 인해 난처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한 말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반대로 누군가의 말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말은 한번 뱉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밤 말은 쥐가 듣고 낮 말은 새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그리고 말은 그 특성상 돌고 돌아 부메랑처럼 내게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약3:2). 각박한 세상 가운데 점점 더 상처되지 않는 말, 오히려 생명이 되는 말이 절실히 필요한 세상입니다.
적용) 나는 삶에서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이중삼중 보호막을 치고 살고 있습니까?
거룩함을 유지하려면? 둘째,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도록 나의 말과 행실을 구별해야 합니다(17~31절).
오늘 본문 17~31절은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제물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7절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제물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17~31절에 보니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심이 되도록”이란 문구가 7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18절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 중에 거류하는 자가 서원제물이나 자원제물로 번제와 더불어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려면, 19절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없는 수컷으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면서 20절에 흠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자원하는 마음으로 흠없는 예물을 드릴 때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자원이나 서원이나 감사의 뜻으로 화목제물을 드릴 때에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물론 최선보다 최고의 것을 드리는 것이 좋지만, 내게 있는 것 중에서 최선의 것을 드리면 그것이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값비싼 것이 아니라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드릴 때 기뻐하십니다. 마음이 중요하다며 형식을 무시하는 태도도 옳지 않습니다. 뜻이 중요하다면서 형식을 무시하여 흠이 있고 버려도 되는 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다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십일조와 주일성수가 참으로 중요한 세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데요. 믿음의 선조들이 지켰던 신앙의 두 기둥이 바로 온전한 십일조와 주일성수였습니다. 십일조는 물질에 관한 것이고, 주일성수는 시간에 관한 문제입니다. 물질을 세상에만 쌓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믿음으로 하늘에 쌓아두는 사람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19~20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에도 세금 뗀다는 마음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동안 어떤 형편으로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다면 물질이 생길 때 이전 것도 계산해서 하나님 앞에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나에게 들어온 물질을 분배할 떼 제일 먼저 구별하여 놓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최선을 다하여 기쁨으로 드리는 삶의 자세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이제 다니엘 기도회가 몇 일앞으로 다가왔는데, 몇 년 전 다니엘 기도회 간증에서 학원을 운영하다 잘 나가던 분이 학원운영이 어려워져서 십일조 드릴 돈 조차 없을 때, 그는 믿음으로 대출을 해서라고 십일조를 드렸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그렇게 했더니 하나님께서 학원을 다시 번성시켜주셨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십일조는 믿음으로 드려야 하고,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또한 시간에 관한 예물인 주일성수의 문제를 놓고 이사야 58:13~14에 보니 “주일을 거룩하고 존귀하게 잘 지키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고 땅의 높은 곳에 올려주고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고 했습니다. 생명이 죽고 사는 문제, 국가의 생사가 달린 군인들의 전략문제를 제외하고는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독일과 일본이 이 주일을 없애 버렸더니 결국 2차세계대전으로 결국 망했었고, 미국은 그 선조들부터 이 주일을 잘 지켰더니 복을 받았습니다. 물질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하나님께 많이 저축해 두어야 내 시간이 유익하게 쓰여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은 반드시 알맞은 형식, 예를 들어 온전한 십일조와 주일성수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입으로만 거룩을 외치고 거룩한 행실을 소홀히 하거나 반대로 거룩한 행실만 강조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과 무관한 경건주의나 율법주의로 치우치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거룩을 유지하고자 마음뿐 아니라 외적인 행실도 함께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19편 14절에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우리 찬양에도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 되기를 원하네 생명이 되신 주 반석이 되신 주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적용)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도록 내가 구별해야 할 말과 행실은 무엇입니까?
거룩함을 유지하려면? 셋째, 나를 구원해주신 주님을 날마다 찬양해야 합니다(32~33절)
32~33절은 여호와의 성호를 욕되게 하지 말고 오히려 찬양하라는 내용입니다. 왜 여호와의 이름을 속되게 하지 말고 오히려 찬양해야 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내신 것은 이스라엘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도록 구체적인 규례를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여러 계명을 주신 목적은 무거운 짐을 지우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 안에 거하려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악의 땅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해야 합니다. 이 언약 안에 들어온 나로 주님이 내 하나님이 되셔서 나를 거룩하게 하심을 믿으며 내 거룩을 지키며 그 분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시편 98편에서 시편기자는 구원과 공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비파와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에 대해서 찬양해야 합니다. 시편 98편 1~3절 “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행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사무엘하 22:2~3절에서도 다윗은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쉬운성경번역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구세주이시다.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바위이시며,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이시며 주님은 나의 망대이시며, 나의 피난처이시다. 주님께서 나를 해치려는 자에게서 구해주셨다” 할렐루야~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성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 중요한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여호와 닛시'가 있습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란 의미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냅니다(참조; 출17:15). 그리고 '여호와 살롬'이 있습니다. 그 뜻은 ’여호와는 나의 평강‘이며 ’늘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뜻합니다(참조; 삿6:24). '여호와 삼마'란 단어는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늘 우리 곁에 계셔서 함께 하시며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입니다(참조; 겔48:35). 마지막으로 '여호와 이레'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대신에 제물을 대신 준비하시고 이삭을 살려 주신 하나님, 곧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참조; 창22:14). 즉 우리와 함께 하시고 축복을 주시고 승리를 주시며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CCM] “그는 여호와 창조의 하나님”
적용)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의 성호를 찬양할 제목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거룩함을 유지하라’는 제목으로 거룩함을 유지하려면, 첫째, 이중삼중으로 보호막을 쳐야 하고 둘째,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도록 나의 말과 행실을 구별해야 하며, 셋째로, 나를 구원해주신 주님을 날마다 찬양해야 함을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교훈을 받았습니다. )
세상에서도 일상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좋은 습관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습관은 형성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일관성이 핵심입니다. 잘 정립된 루틴을 통해 습관을 하루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고 개인 개발 및 자기 개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됩니다. 거창하게 말고 작게 시작하고, 달성가능하게 만들고, 일관성을 유지하며, 우선순위로 지정하는 단계를 통해서 우리는 거룩함의 루틴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제 내년도 큐티인 신청을 받는데, 내년에는 큐티교재를 신청하여 매일 매일 큐티하는 그런 삶의 루틴을 만들어보심은 어떠신가요? 아니면 새벽기도회를 일주일에 몇 번 이상은 꼭 참석한다는 루틴도 괜찮은 습관입니다. 매일 한 곡씩 찬양을 정하여 하루에 시간 날때마다 듣고 부르고 암송하는 루틴도 괜찮구요. 하루를 살면서 감사한 일들을 감사노트를 통해 기록하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삶의 작은 실천이 거룩을 유지하는 좋은 습관이 되어 나를 거룩하신 주님께로 가까이 가게하는 오솔길이 되게 할 줄 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