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바르트가 말하는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
롤랑 바르트는 그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서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라는 라틴어를 언급하고 있는데 스투디움과 푼크툼은 사진 이미지를 해석할 때 이론적 기준선 같은 것이다.
스투디움: 사물이나 혹은 사람에 대해 열성적이면서 호의적인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특별한 강렬함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감정을 의미한다.
다르게 얘기하면 사진이 담고 있는 전체적 범주로 작가의 원래 의도인 문화, 관습, 총체적 정보 등을 가진 지극히 넓은 영역을 포함하는데 일반적으로 사진에서 스투디움을 발견하는 일이란 그리 어렵지는 않다. 대개의 경우 사진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촬영 의도가 곧바로 스투디움에 속한다.
푼크툼: ** 라틴어로 점(點)이라는 뜻이며 화살처럼 찔려오는 어떤 강렬함을 뜻한다.
** 사진 안에서 아주 부분적인 대상이나 사소한 특징들로서 이를테면 평범한 것이지만 세부적일 때 혹은 특별히 분석을 요구하지 않지만 취향적일 때 또는 순간적이지만 확대된 잠재력을 지닌 어떤 부분을 말한다. 예컨대 전체적인 사진에서 옷감의결, 끈 달린 구두, 목걸이, 손톱 같은 부분적인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이 사진을 바라보는 자의 마음을 찌르고 진실을 알려주는 존재적 기호들로 작용한다. 이것은 스투디움처럼 우리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세부로부터 사진을 보는 사람의 가슴을 찌르고 상처 입히는 우연성이다.
이 말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남산의 불상 사진을 앞에 두고 이 사진은 불상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사진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요소 등을 스투디움이라한다. 하지만 롤랑 바르트는 똑같은 남산의 불상 사진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진이미지의 어떤 작은 요소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의 가슴을 찌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현상을 가리켜 푼크툼이라고 한다.>
아래의 옥룡암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이 저 사진은 부처바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장면을 찍었다고 모두 말할 수 있다. 옥룡암 절터에 앉아 점심을 먹는 무리들과 중년 남성의 고개 숙인 부처바위 앞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 바로 이 시각적 화면 분석이 스투디움이다. 그러나 폭 좁은 돗자리에 고개 숙여 홀로 앉아 있는 왼쪽의 여학생은 다른 학생들의 움직임 묘사와 달리 정지된 모습의 포착에서 즐거워야할 소풍이 외롭기만 해 보이는 그 외톨이 소녀가 우리들의 어떤 과거 기억의 묘한 잔상(殘像)을 이끌어내는 ‘푼크툼’이다.
사진 속의 남산 불상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일상적인 정보에 관한 것은 스투디움이라 하였고, 푼크툼이란, 코드화될 수 없는 사진의 어떤 작은 요소가 자기의 마음을 찌르는 것, 즉 주사, 화살, 창, 칼, 작은 구멍, 작은 반점, 작은 흠, 그리고 ‘주사위 던지기처럼 우연성까지도 내포한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타인에게는 특별한 감정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진이지만, 자신에게는 필(feel)이 꽂히고, 가슴을 찌르고, 오랫동안 응어리가 지는 그런 요소를 ‘푼크툼’이라고 한다.
롤랑 바르트는 푼크툼이 없는 사진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사진이라고 말한다.
전시장에 전시된 사진과 마주했을 때 사진을 찍은 작가와 공감대가 형성되어 그 어떤 감동을 했다면 가슴 깊이 푼트쿰은 작용하고, 그 찰나 자신의 일탈(逸脫)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스튜디움, 푼크툼, 아우라를 아우르는 사진적 지식이 없다면 그 사진 앞에 서 있는 자신이 초라해지기만 할 것이다.
-- 김종욱( 경주대 사진예술학 석사) 의 글에 다른 내용을 일부 첨가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