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한사람이라도 형제로 대하기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감히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이웃 형제들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이처럼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으니, 성서가 말해주듯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1요한 4,8)” (팔십주년 Octogesima Adveniens, 17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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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국제신문 박수현기자 |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불안한 얼굴을 한 부시홍(38)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칠월 말이었습니다. 산업연수생으로 5년 전 한국에 온 그는 경기도, 전라남도, 김해에서 용접공과 막노동꾼으로 일하며 코리안 드림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고단한 노동으로 받은 100만원 남짓한 월급에서 60만원을 고향인 베트남 응에안 성에 살고 있는 가족에게 꼬박꼬박 부쳤습니다.
그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지난 해 11월에 김해시 한림면에 있는 M 산업사에서 순천으로 파견근무를 갔을 때였습니다. 용접공으로 파견 일을 하다가 돈을 더 벌기 위해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공장 부근 단독주택 공사현장에서 일하다가 5미터의 높이에서 그만 떨어지면서 그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고향에서 사귀던 애인과 결혼도 하고 부모 형제와 잘 살아보려던 꿈이 박살난 것이죠.
그는 추락하면서 12번째 흉추가 심하게 부러져 척수손상을 입었습니다. 머리도 심하게 다쳐 두개골절과 뇌출혈도 생겼습니다. 척추수술을 받았고, 뇌출혈과 여러 군데 생긴 골절들도 순천의 한 병원에서 9개월을 입원하면서 아물었습니다. 그러나 척수손상의 후유증으로 온 양쪽 하지의 완전마비는 회복될 수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을 간호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동생 부시환(34)씨가 와서 간병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알로이시오 기념병원(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무료병원)으로 왔던 날도 휠체어에 탄 채였습니다. 내가 그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된 것은 그의 사건을 맡고 있던 노무사를 통해서였습니다. 산재신청을 했는데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고, 그는 밀린 병원비 1200만원 내지 못하여 쫓겨나듯이 순천의 병원에서 짐을 싸야만 했습니다. 현재 재심 중이며, 이마저도 기각이 된다면 행정소송을 할 예정입니다. 법률적 소송기간 동안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알로이시오 기념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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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에서 온 형제, 수술실 앞에서(사진/최충헌) |
척수손상 환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대변과 소변을 가리는 것입니다. 평생 다른 사람에 의지해서 볼 일을 해결해야하는 것입니다. 지금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볼 일을 보도록 조절해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회진시간에 참았던 대변을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도 그가 무안해 할까봐 눈인사만 하고 돌아서기도 합니다. 오죽 답답하겠습니까. 형을 간호하는 동생을 보면서 진한 형제간의 사랑을 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믿고, 바라고, 견디어내나 봅니다.
산재적용을 받으려면 공사장의 총면적이 100㎡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그가 일하다 사고를 당한 건축공사장은 총면적이 99.85㎡로 산재보험 기준에 미치지 못해 산재적용을 받을 수가 없다고 근로복지공단은 말합니다. 건축주가 산재보험에 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서류상으로 공사면적을 작게 신청한 것입니다.
그를 돕고 있는 노무사는 순천까지 오가면서 공사현장을 실측한 결과, 총면적이 121㎡로 나와 노동부에 이의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전형적인 서류만 보고 일하는 탁상행정의 전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의신청이 또 기각되면 행정소송을 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약 8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의 딱한 처지를 지역신문에도 기사화하고 법률적 절차를 밟고 있지만,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그가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은 돈이라도 빨리 보상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가 서류상에 15c㎡가 모자란다고 일하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를 외면해야만 하는가. 평생 휠체어에 의지하고 두 발로 걸을 수 없게 된 그에게 좋은 결과가 나와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희망합니다. 그의 눈물을 누군가는 닦아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이 오른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길 고대합니다.
최충언 / 플라치도, 알로이시오기념병원 외과의사
이번 주일부터 매 달 한 번씩 최충언 씨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써주십니다. 최충언(플라치도) 씨는 알로이시오기념병원 의사이며, 부산교구 노동사목에서 운영하는 <도로시의 집>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무료진료를 해주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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