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신사역 출발에 맞추기 위해 이른 새벽상을 차려주던 마누라가
“오후부터 영동지방에 눈이 많이 온다는데?”하며 걱정하는 투로 말하니
“아빠! 괜찮아?”하며 딸애도 걱정이 되는지 한마디 거든다
“눈이 많이 와도 산에서는 괜찮아, 사람이 많이 가기 때문에 눈은 앞에서
다 밟아 놓고 또 눈 자국만 딸라 가면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오히려 안전해……걱정할 것 없어, 괜찮아.! 오히려 서울 올 때
버스가 제대로 올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야!”하면서
서둘러 밥을 먹고 완전 무장을 하고 집을 나서니 바깥 바람이 겨울답지
않게 훈훈하다
둔촌역에 들어서니 권순양 동문이 알록달록한 목도리 겸 보온 마스크를
목에 두르고 머리에는 챙이 조그마하고 앙증맞은 연분홍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전철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산에 가면서 왠 보따리는?”하며 받아 드니
“포항 과메기야!”하면서 “MB시대라고 과메기가 뜬다면서? DJ때와 노무현
때는 홍어가 떴다면서?”하며 건네준다
“그럼! YS때는 또 도다리가 떴다더군” 하는 등 웃고 떠들면서 신사역에
도착하니 군성 산악회 장재경회장이 버스 앞에서 오는 사람마다 일일이
악수를 하며 반긴다
지정된 2호 버스에 오르니 조금 앞자리에 앉아 있던 김정연 동문이
“어! 윤시씨, 순양이!”하면서 반기고 뒤쪽으로 들어가니 동천거사 김만곤사장과
오재 민천식사장이 손을 내 밀면서 “어, 윤시! 여기 앞자리에 앉아” 하면서
맡아둔 듯한 빈자리를 가리킨다. 반갑다.
“梧齋가 왠 일이야! 출발직전에 안 오고?”하며 손을 내밀며 반기니
“6시 20분에 왔어! 30분이나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하며 얼굴에 주름을
지도록 껄껄 웃는다. 뒤이어 장범 HK사장이 “범! 범!”하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을 번쩍 들어 아는 체를 한다 우리 15회는 백산 장재경 회장을 포함 7명이다.
권순양 동문의 과메기와 묵직한 도시락은 묏돼지 힘을 자랑하는 오재 민천식의
배낭으로 옮겨 넣었다
출발시간이 한참 넘어 숨을 헐떡이며 연방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맨 뒷 좌석으로 가는 후배 덕에 지연 출발한다. 뒤이어
장재경회장이 트레이드 마크인 신선같은 백발머리를 귀 옆으로 쓰다
밀면서 인사 겸 산행 코스안내를 하고 이어서 산행 대장들을 소개하는
동안 버스는 오른편으로 꺾어 올림픽로를 서서히 달린다.
강 건너 뚝섬에는 아직도 불빛이 휘황찬란하고, 불빛을 받은 한강이 희끗희끗
은빛을 발하며 조용히 흐른다. 중부 톨게이트를 지나니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관광버스들이 듬성듬성 신나게 달리고 그 사이를 조그마한 차들이 빨간 깜박이를
깜박거리며 빠르게 앞서 간다. 희뿌연 동쪽 하늘에 구름에 젖은 하얀 해가 둥그런
보름달같이 떠 있고 서쪽 창가로 거뭇거뭇한 산들이 줄을 이어 서서히 지나 간다
영동고속도로를 벗어나 대관령 길로 들어서니 양편으로 끝없이 펼쳐진 덕장에
눈을 하얗게 덮어쓴 황태가 수도 없이 걸려있다. 오곡이 풍성한 가을의 황금
벌판을 보는 듯 기분이 흐뭇하다. 대관령 옛길 따라 굽이굽이 오를수록 산도
깊어지고 하얀 눈도 더 두터워 진다
대관령에 도착하니 거대한 풍력 발전소가 희뿌연 하늘 속에 그 위용을 과시하듯
서있고 영동고속도로 기념비가 눈보라 속에도 늠름하게 서있다. 주차장을 벗어나
산 입구로 들어서니 둥그렇게 쳐놓은 바람막이 나무 울타리 속에 수십 그루의 어린
주목이 엄동 설한 눈보라 속 간밤의 칠흑 같은 긴긴밤이 그렇게 무서웠던지 조그만
바람에도 파르르 떨고 있고 능경봉 입구에 등산 안내판이 “HAPPY 700 평창! 2014년
동계올림픽은 강원도 평창에서”를 읊조리며 기도하듯 서있다. 10시 반이다.
조금 오르니 온 산이 새하얗고 온천지가 새하얗다. 키 큰 떡갈나무도 하얗고
키 작은 싸리나무도 하얗고 이름 모를 잡목도 하얗다. 여기도 비경이요 저기도
비경이다. 1시간여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르다 보니 벌써 능경봉(1,123m)이다
살을 애는 듯한 칼 바람도 없고 날려갈 듯한 강풍도 없고 동해바다도 보이지 않고
대관령도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하얀 눈뿐이다. 그래도 좋다.
먼저 올라와 고루포기 이정표 앞에서 폼을 잡던 민천식사장이
“어이! 봐라, ‘고루포기’가 우리나라 말이가?”하니
장범사장이 “아까 안내판에서 얼른 봤는데 높을 高자와 다락 樓자가 보이더라”
하면서 “옛날에 높은 다락같이 생긴 전망대가 있던 터 터基라는 순 우리말 아이가?”한다
김만곤사장이 능경봉 비석 옆에 배낭을 벗더니 “좀 쉬었다 갈까” 하면서 감귤을 꺼내 준다.
출출한 차에 한입에 넣어 깨무니 그 새큼하고 차가운 맛이 전신으로 퍼지고 김정연사장이
슬며시 건네준 몰랑몰랑한 곶감은 짠득짠득 달작지근 혀끝을 감친다
고루포기산을 향해 다시 출발이다
급경사 내리막이다 김만곤이와 권순양여사가 물찬 제비같이 나르듯 내려가고 김정연사장과
장범사장이 엉거주춤 넘어질 듯 내려간다. 급경사를 막 내려오니 오른편에 행운의 돌탑이
조그맣게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미리 준비한 돌 하나를 행운의 표시로 돌탑 위에 얹고
다시 내려와 또 능선을 따라 오르니 오른편으로 살찐 황소 엉덩이 같이 생긴 펑퍼짐한
능선이 온통 눈꽃으로 만발하다
다시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황경치에 이르니 장범사장이 먼저 내려와 이마에 팟죽 같은
땀을 흘리며 눈 위에 퍼지려 앉아 있고 그 옆에서 모자를 벗고 땀을 닦으며 서 있는
김만곤 사장의 헝크러진 머리에서는 하얀 김이 무럭무럭 피어 올라온다.
힘들게 따라오던 김정연사장이 올라오자 마자 두 다리를 뻗고 앉으며 “좀 쉬었다 가자”
하니 민천식사장이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두 발로 이리저리 쓸어내면서 점심 먹을 채비를 한다.
권순양 동문이 과메기와 밥통을 꺼내니 김만곤사장이 가래떡과 컵라면을 꺼내고
민천식사장이 오가피주와 떡을 꺼내니 장범사장이 막걸리와 도시락을 꺼낸다
저마다 하나 둘씩 꺼내니 금방 진수성찬이다 그 중 가장 최고의 인기는 역시
과메기다. 차거운 막걸리 한잔을 단숨에 꿀꺽꿀꺽 들이킨 후 두꺼운 생김에
미역을 얹고 듬성듬성 썰은 대파와 마늘을 얹고 고추장 양념을 듬뿍 찍은
과메기를 마지막으로 얹어 둘둘 말아 한입 넣으니 비릿한 냄새가 고추장
파 마늘 미역 김 맛과 범벅이 되어 매콤씨큼비릿한 것이 천하의 일미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도 수북하던 과메기가 금방 없어진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후다닥 점심을 먹어 치우고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장범 사장과 김정연 사장이 점점 힘들게 올라간다 눈발도 점점 커지고
바람도 점점 강해진다. 대관령 전망대에 이르니 휘날리는 눈바람에
대관령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비스듬히 쓰러진 안내판만이 여기가
전망대임을 알리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삼거리 쉼터를 거쳐 오르니 고루포기산(1,238m)
정상이다. 먼저 올라온 장범 사장이 손을 높이 들고 힘차게 흔들고 손바닥
만한 공간이 인파로 붐빈다. 어느새 올라왔는지 김만곤 사장이 숨을 헐떡이며
두리번 거리고 민천식 사장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다 동서남북을 휘 돌아보니
희뿌연 안개구름밖에 보이지 않는다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니 찬바람이 목구멍을
타고 시원하게 내려 간다.. 재빠르게 증명사진을 찍고 내려오니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내려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추신: 장재경회장 고마웠고요, 그리고 세분 너무 너무 고생시켜서 너무 너무
미안했읍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첫댓글 난생 처음 하는 深雪山行. 무척 힘들었지만 좋았습니다. 눈으로 뒤덥힌 山의 은밀한 속삭임에 홯홀한 기분이었고, 친구들의 우정어린 보살핌에 마음도 뭉클,느낌이 큰 하루였습니다.
제대로된 심설산행,자주 경험하기 힘든 멋진 산행이었지요.. 바람도 없고 날씨마져 푸근해서 정말 다행이었고... 마지막까지 우리 동기를 챙기는 윤시의 자상한 배려가 큰힘이 되엇다오. 감솨.
나는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단 말을 동시에 해야 될것 같군요.눈이 귀한 대구출신에겐 참 환상적이었다오!
태백산설경 하고는 또다른 맛이네 구경잘하고 갑니다.
힘들었지만 좋았겠네 그려,윤시 고마워...
고루포기 산행기중 주목을 구상나무로 표현함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