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8]
시카고에 있는 동안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친구 최경락으로부터 전화가 여러 번 걸려왔다. 토론토로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는 캐나다 동부관광을 시켜 주겠다고 하였다. 여러 번 전화가 오고 정을 주기에, 거리도 가깝고 해서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토론토는 시카고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토론토 공항에서 그는 나를 픽업하여 집으로 데려 갔다. 집에 가니 부인은 한국에 가고 없었다. C는 나를 데리고 미국 최 동북부 도시 버팔로우와 인접한 국경지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 주면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해가는 코스로 차를 진행했다.
그런데 갑자기 전방에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앞에 가던 차 여러 대가 심한 폭설로 미끄러져 나뒹구는 장면이 보였다. 내 생전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광경은 보지 못했다. C와 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조심조심 차를 몰아 국경지대에서 코스를 바꾸어 아래로 내려와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눈이 많이 내린 지역은 스노우 벨트(Snow belt)지대라 불리며 항상 폭설이 내리는 위험한 곳이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경관이 좋은 캐나다 쪽에서 구경했다. 폭포에 인접한 동굴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장관을 보았고 굉음을 들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 한인식당에서 우리는 갈비구이와 맥주를 먹으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C는 나를 위해서 캐나다 동부 패키지 여행을 준비했다. 몬트리올, 오타와, 퀘벡을 돌아보는 코스였다.
첫 번째 방문지인 몬트리올에는 한인식당이 딱 한군데만 있었다. 몬트리올에는 또 오래되고 굉장히 규모가 큰 성요셉 대성당이 있었다. 거기에는 캐나다에서 전설적인 인물인 앙드레 신부의 흉상과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다.
두 번째 여행지인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의 정부청사 광장에는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이 타고 있었다. 오타와에 있는 한 가톨릭 성당은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결혼식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해졌다.
세 번째 여행지인 퀘벡은 프랑스인들이 90%이상 사는 곳이었다. 시내 중심가에는 약 3백년된 프랑스식의 고색창연한 호텔이 서 있고, 그 왼쪽광장 옆으로 유명한 로렌스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둡고 쓸쓸하게 보였다. 저녁 무렵 겨울의 로렌스 강은 내 눈에는 다소 창백하게 보였고, 슬픔의 강물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외로움이란 외로움은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예부터 이열치열(以熱治熱), 이한치한(以寒治寒)이라고 했던가! 오히려 창백하고 스산한 겨울의 로렌스 강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을 느꼈다. 짙은 고독을 통해서, 오히려 나의 내면의 고독이 씻겨 나가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나올 것 만 같은데도,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예전에 황량한 겨울 해운대 백사장을 혼자서 쓸쓸하게 걷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갑자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이 여행을 준비하신 것을 느꼈다. 돌이켜보니 내가 아내의 주식투자 실패로 인해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했을 때, 주님은 K선배를 통해 위기를 막아주셨고, 또 나의 한없이 허전하고 적막한 마음을 위로하시기 위해 이 여행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언젠가 본 여행가이드북에 바로 이곳 겨울 로렌스 강이 세계 50대 겨울 여행지에 선정되어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다정한 프랑스인 부부가 팔짱을 끼고 지나가기에 불란서어로 인사를 하고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불란서인 중년신사는 나의 불란서 인사에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해가 넘어가면서 강 건너편 대안으로 따사로운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는데, 그 광경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그 모습은 험악한 세상에 비춰지는 주님의 따뜻한 사랑의 빛처럼 느껴졌다. 호텔 바로 옆에 오래된 불란서 풍의 카페에 들어갔다. 실내는 전구대신 백 개가 넘는 양초가 타고 있는 시적인 풍경이었다. 벽에는 온갖 종류의 와인과 위스키 병이 놓여있었다. 도수 높은 위스키 한잔을 마셨더니 속이 찌르르 했다. 문득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시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라는 서러운 시가 생각났다.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한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돌아오는 길에 불란서식 뷔페 식당에, 들렀다. 크랩(Crab)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실컷 먹었다. 크랩을 너무 많이 먹다보니 불란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크랩이 귀한 음식인데 캐나다에서는 어획량이 풍부해 싸고 흔한 것 같았다. 저녁도 불란서식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웰던(Well-Done)의 개념이 미국과 달랐다. 불란서식 웰던은 검게 타서 나왔다.
여행을 잘 마치고 C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C는 토론토 시내 구경을 시켜 주었다. 부유한 개인이 살던 왕궁과 같은 집도 구경했고, 차이나타운 및 시내 명소를 관람했다. 이민 온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출신이 영업하는 생선가게에 가서 굉장히 큰 캐나다산 광어 한 마리를 샀다. 그날이 마침 12월 31일이었다. C의 부인이 한국으로부터 돌아와서, C부부와 같이 제야의 밤을 토론토에서 조용하게 보냈다. 광어회를 안주로, 험하게 보냈던 한해를 마감하는 술잔을 기울였다. 이번 여행이야말로 세상 풍파에 좌절하여 의기소침해 있는 부족한 나를 위해서 친구를 통해 하나님께서 친히 제공해 주신 귀한 위로여행이었다.
(강광우 자서전 다음 계속)
첫댓글 좋은 분과 참 좋은 여행을 하신 기록 잘 읽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미국엘 두 번 갔는데,
2022년 1월엔 딸과 시카고 여행을 했고,
2023년 봄에는 교회에서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이라는 소도시로 기도 선교를 갔다가,
일정 마치고 저희는 일행들과 귀국하지 않고 뉴욕으로 가서 딸과 합류해서 뉴욕 투어 및 나이아가라 관광을 했습니다.
뉴욕에서 버팔로까지 비행기로 가서, 다리 건너 캐나다 땅으로 걸어가서 나이아가라를 봤지요.
폭포 가까이로 가는 유람선을 타고 가서 올려다 봤던 폭포의 위용은 진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저스님 늘 좋은 글 속에 신앙인의 본을 보여주심 감사합니다. ^^
달님 댓글 없으면 노 댓글이 될 수도 있는데
언제나 제 글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에구 노댓글 될 수 있다니요, 아니예요 ㅎㅎ 팝힐방 벗님들이 댓글을 빨리 써주시진 않아도 천천히들 써주시잖아요.
다저스님 건필하시어요. ^^
달님 편안하고 포근한 밤되세요~~
시카고는 저의 가장 절친이었던 친구가
정착했던 곳이라
늘 그리운 이름인데
그 친구랑 편지로 소식을 왕래하다가 끊어진지 40년이나 넘었네요..
다저스님은 좌절감으로 괴로운 시기였는데
좋은 친구들 덕분에
(물론 그동안에 쌓아오신 인덕들이니)
위기를 잘 이겨내신것 같습니다..
더구나 남들이 못가는
미국.캐나다. 나이아가라 등에서.
암흑기를 넘 화려하게 보내셨네요.ㅎㅎ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은혜라고 믿습니다..⛪️⛪️⛪️
팝힐의 운영위원이신 샤론님께서 격려의 글을 주시니 감사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시카고 절친하고도 연락이 되어서 재회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ㅡ
멀리서도 불러주는 절친이있다는것은 축복임과
동시에 후덕한 다져스님의
좋은 캐릭터로 맺어진 깊은
우정이 있었음이 였다고 생각합니다~
팝힐방에서 함께할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다저스님께 잘어울릴것 같아서 작년에 귀국시 사온 사용하지 않은 중절모를 정모에 갖다 드리겠습니다~
수지맨님 언제나 선한 마음, 따뜻한 마음으로 격려해 주시니 재삼 재사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ㅡ
저도 2년전 미국동부와 캐나다 여행 다녀왔는데
다저스선배님 여행 하신 코스와
거의 같아서 눈앞에 선하네요..
가장 힘드셨을 시기에 하나님께서 친구분을
통해 치유해주신거
같고 지금까지
깊은 신앙으로
건강하신 삶의 축복을 주신거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 보라님도 저의 북미 여행코스를 갔다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자연경관은 벤프국립공원을 비롯해서 캐나다가 미국보다 훨씬 수려한 경관이지요ㅡ보라님의 아름다운 북미 여행길에도 주님의 손길이 같이하셨다고 생각합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