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고려인 동포사회가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의미 있는 광복절 기념행사를 열었다. 모스크바에서는 광복 77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애국지사 후손들과 고려인 동포 원로들, 러시아 한반도 전문가및 민족문제 담당 책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고, 극동 하바로프스크에서는 남북한과 러시아가 함께 손잡고 '국제한국문화페스티벌'를 개최, 현지인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지난 14일 하바로프스크에서는 제18회 국제한국문화페스티벌(18-й Международный фестиваль корейской культуры)이 열렸다. 광복 77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야외 행사다. 극동-시베리아지역 고려인연합회 주최, 하바로프스크 주정부 후원.
시베리아 고려인연합회의 백규성 회장은 "한반도 해방(광복)를 기념해 러시아 사회에 한국문화를 알리고, 하바로프스크에 거주하는 여러 민족들간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행사"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벌써 18회째다.
국제한국문화페스티벌의 야외무대서 펼쳐진 민속공연
한국음식 만들기 체험 행사
한복 입고 사진찍기
극동 러시아에서 이 축제가 주목을 받는 것은 남북한 인사들과 현지 주정부 고위 인사들이 이날만큼은 스스럼없이 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 특히 고려인 단체가 한반도 해방을 주도적으로 기념하며 한국 문화를 현지에 널리 알린다는 측면에서도 뜻깊은 행사라는 평가다. 이 축제를 주관하는 백 회장은 하바로프스크에서 '아리랑 민족간 문화센터'를 운영하는 고려인 2세. 사할린 출신으로, 한국어도 꽤 잘 구사하는 그는 한-러 민간 교류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과 러시아 양국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표창을 받았다.
이날 행사에도 한국 측에서 고문희 주블라디보스토크 부총영사와 이해전 교육원장 등이, 북한 측에서는 김재종 부총영사 등이, 러시아 측에서는 알렉산드르 이와기트 하바로프스크주 부지사와 세르게이 크라프추크 하바로프스크 시장 등이 참석했다. 행사장 방문자가 5천명에 이를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남북한, 러시아 인사들이 함께 김밥을 마는 모습
행사장에 참석한 북한 여성들
축제에 참석한 남북한-러시아의 주요 인사들의 기념사진
현지인들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남북한과 러시아 대표들이 함께 만든 약 4.5m 길이의 '평화와 통일 김밥'이다. 현지 인플루언스들은 이 장면을 두고 "국제한국문화축제는 지난 18년간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곳"이라라고 평가했다.
축제는 한국 문화·예술 공연을 중심으로 극동지역의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즐기는 문화경연장으로 진행됐다. 그중에서도 한국 민속 공연과 태권도, 한국음식 만들기, (함께 손을 잡고 즐기는) 강강수월래, 한복 체험, 윷놀이, 붓글씨 배우기 등은 큰 인기를 끌었다. 행사장 한 켠의 대형스크린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얼굴과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고려인의 역사'가 상영됐다.
모스크바서 열린 광복 77주년 기념 학술 대회 모습
앞서 지난 12일 모스크바의 러시아민족회관 대회의실에서는 '광복 77주년 기념학술회의'가 열렸다. 고려인 동포사회가 광복의 숭고한 뜻을 늘 기억하고 되새기기 위한 학술대회다. 이날 학술회의 발표자로는 알렉산드르 보론초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한국몽골과장과 김 모이세이 고려인연합회 고문단 의장, 율랴 피스쿨로바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의회 회장(이범진 공사 외증손녀), 안드레이 신 독립유공자 후손, 송잔나 러시아고등경제대 교수, 장인영 한국대사관 교육원장, 김원일 러시아 루데엔대학교 교수이 나섰다.
러시아에서 한반도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보론초프 과장는 "한반도 해방은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의 결과라기 보다는 당시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와 신속한 한반도 진격작전이 성공한 것에 힘입은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뒤이어 김원일 교수는 광복 77주년을 맞이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반일이 얼마나 큰 사회적 울림을 갖는 지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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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김원일 모스크바대 정치학박사, 전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