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재발견, 태권도 창설지 용대리에 관한 두 번째 기고문이다. “태권도의 창시자 최홍희 회고록 태권도와 나”에서 제29사단이 인제군 용대리에 주둔하면서 오도관을 창설하여 당수도의 간판을 태권도로 바꿔달기까지의 진행과정에 대한 기록에 초점을 맞추었다.
1) 당수도 시범. 29사단(익크부대)은 1954년 6월경 제주도를 떠나 제1군단에 배속되어 예정목적지 조산해안에 도착하였고, 이곳에서 훈련하면서 특히 당수도 소문이 전군과 일반사회에까지 퍼졌고(332면), 1955년 9월에 사단창립 1주년 기념식이 오호리 평야에서 열렸는데 이때 당수시범대회(334면)가 있었고, 이를 관람한 이승만 대통령이 “이것이 우리나라에 옛날부터 있던 택껸이야. 이것을 전군에 가르쳐야 해”(335면)라고 기록하고 있다.
2) 용대리 오도관 창설. “우리 사단은 1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얼마 안지나 송요찬 장군이 지휘하는 제3군단에 배속되어 용대리에 본부를 두고 동해안을 포함한 동부전선 일대의 작전책임을 맡게 되었다. 나는 먼저 이곳에다 국제태권도연맹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오도관을 창설해 앞날 전군에 보급할 수 있는 사범 양성에 박차를 가했다. 물론 아직도 당수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그 사이 동작이 많이 개선됐고, 남태희 사범의 도움을 얻어 화랑 및 충무형을 완성함으로써 점차 태권도의 토대를 구축해 나아갔다.”(338면)고 했다.
3) 용대리 오도관 수련생이 태권도 국제화의 개척자. “사실상 이 시절의 수련생 대부분이 후일 국제 사범이 되어 제1착으로 해외에 나가 태권도 개척자가 되었다. <중략> 나는 오도관에서 키운 제1기생 중사 김수기 3급과 또 한명의 3급, 이성가 장군의 지휘하에 있는 제7사단의 제2기생 하사 이응삼 4급과 이화섭 4급을 백인엽 장군의 제9사단에 각각 파견하여 전군에 보급한다는 첫 신호를 올렸다.”(339면)고 적혀있다.
4) 태권도 명칭 결정. “다행히 그 당시 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던 이형근 장군의 힘을 빌려 조경구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저명인사와 언론인들이 참석한 회의를 모 요정에서 갖게 되었다”(344면), 그 자리에서 최홍희 장군이 태권(跆拳) 글자와 역사성을 “설명하니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됐다”(345면)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유화청 의원이 만장일치로 가결된 이름을 다시 대통령 재가를 받은 후 결정하자는 제안에 3인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5) 용대리 오도관에 태권도 새 이름을 쓰라. “한편 이날 저녁회의에서 형식적으로 결의한 3인 소위원회 구성에 관계없이 나는 다음날부터 오도관에다 태권도의 새 이름을 쓰라고 지시하고, 직접 경무대 서장실에 연락하여 한자로 태권도라고 쓴 이대통령의 휘호를 요청했다.”(346면)
6) 이대통령의 태권도(跆拳道) 친필 하사. “이 대통령의 손발 노릇을 하는 경호대의 실력자 서정학, 곽영주 그리고 심지어는 경무대 부서장까지도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정에다 초청했다. <중략> 내가 원하는 태권도(跆拳道) 세글자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중략>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태권도가 탄생한 1955년 4월 11일 저녁 내 기쁨이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다.”(347면).
7) 용대리 오도관의 당수도 간판을 태권도로 교체. “먼저 나는 내 지휘 하에 있는 오도관, 청도관에 걸려있는 당수도 간판을 태권도로 바꾸어 놓았다. 또 태권도를 수련하는 군인들이 경례를 할 때는 반드시 ‘태권’하도록 남태희 사범에게 지시했다.”(347면)고 기록하고 있다.
필자는 <설악신문> ‘태권도 창설지, 인제 용대리’와 관련해서 6월 21일 인제군청을 방문, 최상기 인제군수님과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 인제군 문화재담당 학예연구사가 배석했다. 필자의 제안에 호감으로 경청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아울러 29사단 주둔 당시 태권도 오도관을 생생하게 증언해주신 용대리 가평(내가평)마을 정종범(90세) 어르신께도 감사를 드린다. 모쪼록 태권도 창설지 용대리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한다.
참고로, “태권도의 창시자 최홍희 회고록 태권도와 나”(도서출판 사람다움, 1997년 11월 29일, 초판1쇄)는 현재 절판상태로 간혹 인터넷 중고책방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희귀본(稀貴本)이 되었다. 다행히 경동대학교 글로벌캠퍼스 우당도서관에 초판본이 소장되어 있어서 참고문헌으로 활용할 수 있었음을 밝힌다.
최철재, 경동대 온사람교양교육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