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정리한 후 - 양배추를 심고
2022.9.1
이발(理髮)은 머리를 다듬고 정리하는 일을 말한다.
이런 일을 하는 곳은 이발소지만, 요즘의 젊은 남성 중에는
거기 단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이 태반이라
이발소가 대체 뭘 하는 곳인지도 잘 모른다.
이발소가 줄어든 이유로 흔히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남성들 사이에 장발 문화가 퍼지면서
남자 머리를 다듬는 수요가 대거 미용실로 몰렸다는 것이고,
둘째는 궁지에 몰린 일부 이발소가 자구책처럼 성(性)을 상품화했기에
그저 머리를 깎기 위해 이발소에 들어가는 선량한 남성들조차
종종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느꼈기 때문이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975년 약 3만 개의 이발소가
2014년 2만 개가량으로 줄었다고 한다.
같은 기간 미용실은 만육천여 개에서
무려 10만 개 이상으로 6배가 증가했다.
중.고등학생 때는 스포츠 머리라고 부르는 것을 해야만 했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있었던 염광이발소는
내 학창 시절의 온갖 추억을 자동으로 재생시키는,
주문(呪文) 같은 상호다.
혁대같이 생긴 가죽에 쓱쓱 문질러 날을 세우던 면도칼,
포마드라 불리던 머릿기름의 비릿한 내음,
머리 감길 때 대야 대신 쓰이던 파란색 물뿌리개.
그리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푸시킨의 시가 적힌 액자까지,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그 시절의 풍경은
신기하게도 화질 좋은 사진처럼 세세하고 선명하다.
나는 30대 후반부터 머리가 거의 반백이 되어
회사에서 상사들에게 결재받을 때나, 브리핑할 때 민망하여
그 후 20여년간 염색을 했는데, 나중에는 염색약을 사서
아내가 집에서 해주었다.
회사 은퇴한 후에는 자연그대로 살자는 생각으로
염색을 하지 않았는데 머리결도 좋아지고
눈에도 좋고 무엇보다 편한생활을 하게 되었다.
자연그대로의 모습으로 산다는 것이 정말 편하고 행복하다.
헤어스타일이 어떻게 변했는지 앨범을 찾으며
내 인생을 짧게나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머리만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변했지
스타일은 차이가 없음을 알게된다.
제주에 와서도 동네 미용실에 가서 커트를 한다.
10분이면 끝나기에 학창시절 이발소의 정경에 비하면
아쉽기도 하지만 편리한 것이 좋다.
가끔은 목욕탕에 있는 이발소에서 이발하기도 한다.
머리는 백발이지만 다행이 숱은 솎을 정도로 많다.
어느 한 곳을 정해놓지 않고 서너군데에서 머리를 자른다.
밭에서 일을 하기에는 짧을수록 관리하기에 편해
거의 스포츠형 머리정도로 자른다.
이발하고 났을 때의 상쾌함은 흡사
목욕한 후, 신문배달이 끝난 후, 설겆이 후의 느낌과 같다.
특히 잡초를 제거하고 밭을 정리하고 났을 때는
이발하고 난 후의 느낌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영국 속담에
"하루 동안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 동안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한 해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새 집을 짓고,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정직해야 한다."고 했다.
매일 이발할 수는 없지만 매일 정직한 생활을 한다면
평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죄를 지은 사람)은
발뻗고 잘 수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늘
노래 봉사를 하고 얻은 양배추 1판을 심기위해
담밑을 비롯 밭주위에 심으려고 정리하고나니
이발하고 난 후의 개운하고 행복한 느낌을 받았다.
P.S 양배추 모종은 5일 전 모종작업을 하는 공소회장댁을 방문하니
8명이 작업을 하고 계셨다.
근처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누고 난 후
노래 한 곡(찔레꽃)을 불러 잠시 휴식겸,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양배추 한판을 선물로 받은 것임.
예기치않은 태풍 힌남로가 북상하고있어
심어놓은 양배추가 태풍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 많다.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주님의 뜻에 맡길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