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식양(式樣)따라
본 문 : 출 25:1-9
요 절 : (출 25: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우리 기독교 신앙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천국을 향해 가는 경주
혹은 예수님을 닮는 신앙!
오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을 짓는 것으로 보아 즉 성소를 짓는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 모습의 한가지 공통된 것은 나대로식이나 우리식이 아닌 하나님식대로 해야 된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달리기 경주를 해도 법대로 경주해야 되고 주님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이어야만 창수가 나도 안전하다고…
다 같은 말씀 아닌가요?
노아 할아버지는 하나님의 식양대로 방주를 지어 홍수 심판을 면할 수 있었던 것, 훗날의 우리에게 훌륭한 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하나님 식양을 배제한 체 내 나름대로의 신앙을 하다가 훗날에 부실신앙의 낭패를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주님의 경고하심을 들어봅시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앙은,
사느냐 죽느냐! 하는 사활이 걸린 신앙인 만큼 다소 힘들고 시간이 지체되어도 식양따라 해야만 안전되고 인정받습니다.
종종 우리 중에, 믿는 연륜은 오래되고 깊은데 비해 참 예수님의 형상을 회복하지 못한 이들을 보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애쓰고 힘쓰지만 내식대로 믿기 때문에 더 이상 복음의 진보를 이루지 못한 겁니다.
마치 오랫동안 집을 지었건만 법대로 짓지 않아 준공검사 못 받은 건축가와 같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
다시 성찰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식양대로 하련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대로 하련다. 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따라야 할 하나님의 식양은 무엇인가요?
① 신구약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역사의 산물이 아닙니다.
즉 인간들에 의해서 기록되거나 보존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간들의 기록은 오류나 오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역사의 기록은 강자에 의해서 쓰여지기에 왜곡되는 일이 있습니다.
좋은 예로 작금에 국제적 문제로 비화된 일본국의 교과서 왜곡 같은 경우입니다.
여기에 비해 신구약 성경의 권위는 무오성입니다.
4,000여년 동안 기록되어 보존되어 오는 경우 무엇하나 틀린 것이 없었습니다.
옥에도 티가 있다고 했던가요?
그렇지만 신구약 성경에는「티」는커녕「흠」도 없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다는 옥스퍼드 대백과사전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10년에 한번씩 내용이 증편되거나 개정되어 개편되는 일에 비해서,
성경은 아직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왜 이토록 완전하게「무오」할까요?
무엇보다도 이 성경은「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딤후 3:16∼17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온전케」하여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온전케」하려 함이니라."
아까도 언급했습니다만,
노아 방주도 이 계시의 식양따라 지었기에 홍수 심판을「온전」하게 견딜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모세도 하나님께서 성막의 식양을 계시하였기에 그 성막이 외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안전적으로 온전할 수 있었습니다.
9절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예컨대, 신앙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멋대로 해서 되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최근에 김수환 추기경이 나와서 도올의 논어에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의 얘기인즉,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참 인간다운 인간이면 종교를 초월해서 다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착각입니다.
성경의 계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인(仁)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信)입니다.
바로 이점을 바로 잡기 위해서 하나님의 식양은 절실히 필요한 겁니다.
성경을 보세요. 그리고 들으세요.
구원에 관한, 예배에 관한, 심판에 관한, 이웃 사랑에 관한… 그밖에 관한 일들에…
그야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식양을 어떤 자세로 따라야 합니까?
②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2절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 지니라."
성막 짓는 것이 신앙의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내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식양따라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그 식을 이루는 자세를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은 드러난 행위보다는 감추어진 내면의 마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믿음이 작용하는 곳은 마음입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식하고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자각하고 구세주가 예수님이심을 영접하는 그 마음의 결단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이때 성령님은 앞서 구원받을 인생의 마음에 깊은 죄에 대한 두려움과 구원의 가치와 예수 구세주이심을 믿는 믿음을 감동주시는 겁니다.
롬 6:17 "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에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이 말씀을 잠시 상고하면,
하나님께서는 완악하고 부패한 우리를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를 예수님이라는 틀에 집어넣고 예수 사람으로 찍어냈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통하여 복음을 믿도록 하신 겁니다.
흔히 내가 믿겠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혹은 지금부터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십시오. 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큰 잘못입니다.
여하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우리 인격 중 제일 먼저 사용하는 요소는「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아니 예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억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고 능동적으로 순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에게「복」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에게「화」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붙잡힌바 된 사람들입니다.
주의 말씀은 필연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할 수 없고 하기 싫어 마음은 거부한 체 행동만 하고자 한다면,
살았으나 죽은 신앙인이 됩니다.
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군대의 훈련소는 고달퍼도 긴요한 곳입니다.
멋대로 자란 청년을 용감한 군인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내식이나 우리식이 없습니다.
오직 군대식만 있을 뿐입니다.
훈련의 과정은 모든 것이 반복 반복입니다.
결국 힘들어도 여기에 익숙해지면 군대생활은 힘들지 않고 능동적으로 하게 됩니다.
교회생활도 이렇습니다.
내식의 신앙생활, 우리식의 신앙생활을 변화시키는 곳입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시작을 잘 이루면 능동적인 신앙인이 됩니다.
주의 말씀이 대저 무겁고 쓴 말씀이 아니요 꿀보다 더 단맛 나는 말씀이 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할 수 없는 신앙입니까?
능동적인 신앙입니까?
주의 모든 말씀이 달게 느껴집니까?
여전히 듣거나 보기에 힘겹게 느껴집니까?
그렇다면, 아직은 내식을 버리지 못한 증거입니다.
③ 참 성막 짓기는 하나님 형상의 회복입니다.
8절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하나님께서 백성이나 모세를 시켜 성소를 짓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기술이 천사보다 좋아서?
신속하기가 말씀의 권능보다 우월해서?
결코 아닐 겁니다.
성막을 지음으로 그들은 그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과 구원을 가슴에 지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생활, 혹은 교회생활의 참 목적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부귀와 장수와 형통을 위함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잃어버린 하나님 새롭게 이루어지기 위함인 줄 믿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후반부에 가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가 계속계속 나옵니다.
한가지 식양 주면 그대로 순종하고, 또 다른 식양따라 그대로 순종한 겁니다.
마침내 귀한 구절을 만납니다.
출 39:43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우리의 신앙에는 언제인가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식양대로, 그러나 아직은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순종하였더라…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식양을 하찮게 여겨 벗어 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식양! 유행이 아닙니다.
계시의 말씀입니다.
지켜 행해야 합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