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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11-15절. 조창훈 목사강해 (칼빈주석과 설교에 근거)
신 5: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우리의 이웃과 교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하시니 우리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된다. 만약 우리 가운데 어떤 의심이나 불화가 생긴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게 함으로써 그것이 사라지게 하신다. 다시 말해 만약 우리가 신뢰를 받지 못해서 문제가 꼬이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이 중재인으로 등장해서 모든 분쟁을 해결해 준다. 그렇게 해서 문제는 확정되고 확실해 진다. 하나님이 그의 지체를 낮추셔서 우리에게 그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은혜가 아닌가?...... 따라서 우리는 맹세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재판관이시며 모든 의심스롭고 비밀스러운 문제를 의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고 생각해서 하나님께 경의를 표한다. 그런 것들을 밝혀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유지하시며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명예에 속한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자신을 섬기는 것으로 간주하신다. 그러므로 맹세는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위증을 하거나 무모하게 맹세하는 자들의 잘못이 그만큼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있는 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제사를 범하고 폐하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위증죄를 범하는 자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쓰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배신자이며, 악하고 비열한 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건전하고 성실하게 사용하지 않는 자들 모두는 신성모독죄를 범한 자들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그것은 중요한 요점이 되게 하자. 아무 목적 없이 경솔하게 맹세하는 자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귀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을 희롱할 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1)
피조물을 걸고 한 맹세- 악하고 미신이며 우상숭배자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맹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우월하시다는 것을 알려준다. 따라서 그것을 통해 우리는 피조물을 걸고 한 맹세는 악하며 미신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로마 카톨릭에서는 사람들이 사도 안토니 혹은 사도 요한을 걸고 맹세하는데 그것은 그들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과 똑같다. 내가 전에 인용했던 사도 바울의 말, 즉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의 상관이시며, 우리의 절대적인 여호와시라고 고백한다고 한 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과 맹세를 하시는데 누구를 걸고 맹세하는가? 그 자신을 걸고 맹세하신다. 하나님은 그 영광을 자기 자신이 독점하신다...... 따라서 피조물을 걸고 맹세하는 자들은 우상숭배자들이다. 미신을 믿는 자들이 하는 맹세는 그들이 율법의 순수성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책임을 맡은 목자들은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라고 가르쳐야 한다(렘12:16)고 말했다. 즉 그렇게 하지 않는 모든 맹세를 폐하고 절대로 피조물을 걸고 맹세하지 말라고 했다.”2)
사랑주신 이유는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시고 인정이 많으신 아버지처럼 우리를 그의 곁으로 다정하게 끌고 가신다면 그것은 우리로 그를 더 영화롭게 해드리게 하기 위해서이다.3)
말씀에 자신의 표시를 함
우리는 대자연의 모든 질서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주로 그의 말씀에 자신의 표시를 하신다. 자신의 표시가 제일 먼저 그의 말씀에 새겨지기를 바라신다. 비록 해와 달은 온 세상에 빛을 발하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의 위엄을 율법이나 예언서나 복음만큼 잘 나타내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의 말씀을 무엇보다 영광스럽게 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라고 부탁하신다는 사실을 알아두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부탁을 하시는 것은 우리가 성경에 담겨 있는 내용을 가장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4)
신 5: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신 5: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신 5: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안식일- 율법아래서 그림자
안식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까지 율법 아래 있는 그림자였다.
“안식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오셨을 때 이루어질 것을 예시하는 형상과 같았다. 따라서 안식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로 확장되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또 자신을 이 세상과 육신의 모든 부정한 것에서 격리시키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영화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5)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옛 속박에 매이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이 안식일에 대해서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즉 그는 ‘지금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옛 속박에 더 이상 매여 있지 않다’(골2:16)라고 말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것을 통해 만족을 얻고 있으므로 그분을 영화롭게 해드려야 한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던 외향적인 것들을 더 이상 갖지 않게 되었다. 의식 자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전에 말했던 대로 그것은 과거의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실질적인 것에 집착해야 한다. 즉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든 뜻과 생각과 감정을 억누르도록 노력해야 한다.”6)
인간 최고의 행복- 하나님과 한 몸이 되는 것
“인간 최고의 행복은 그들이 하나님께 붙어있고 하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불러서 그의 곁에 있게 하신 후에 우리에게 일을 멈추고 쉬지 않으면 거룩하게 될 수 없으며 하나님과 한 몸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신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고집이 세서 항상 우리의 팔과 다리를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용하고 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어진 약속을 파괴하는 것과 같고, 있는 힘을 다해서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격리시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것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사단의 제물이 되기 위해 버려지기를 바란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않게 되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를 홀리고 괴롭힐 것이다.”7)
안식일- 하나님을 섬기는 훈련시키는 수단
“안식일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훈련을 시키는 수단 혹은 규례였다. 왜냐하면 그날은 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모여서 율법이 주는 가르침에 대한 설교를 듣게 하고 또 함께 제물을 드려서 교제를 하게 하고 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기 위해서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오점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옛날 사람들에게 해당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한 것처럼 비록 그 형상은 중단되었지만 그 규례와 관련된 많은 것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규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모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결함 때문에, 아니 그보다는 우리의 나태함 때문에 어떤 날을 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 유익이 된다. 그런데 사실은 어떠한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사람들은 주님의 날에도 거의 모이지 않으며, 모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강압에 못 이겨서 그렇게 한다. 우리에게 결함이 많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 규례가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해서 제정되어 그들로 함께 모일 수 있는 날을 갖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도 제정되었다는 것을 알아둡시다. 즉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해당된다......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을 더 높은 목적에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돌보는 것을 방해할지도 모를 우리 자신의 사업을 중지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날에 큰 잔치를 열거나 놀이를 하거나 게임을 하면서 보냈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크게 영화롭게 해드렸는가? 오히려 하나님을 농락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심히 망령되게 한 행동이 아닌가? 그렇다. 주님의 날에 가게의 문을 닫고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날에 하는 것처럼 더 마음 놓고 여유 있게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게 하고 또 함께 모여서 신앙고백을 하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고, 성만찬이나 세례를 유용하게 활용하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이다. 이 규례는 우리로 하여금 그런 목적을 이루게 해야 한다.”8)
토요 안식일 주일로 변경이유- 율법의 구속과 의무에서 해방으로 자유 얻었기 때문에
주님의 날을 설교를 듣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기도를 드리는 데 활용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주님의 날은 우리에게 망루와 같은 역할을 해서 우리로 거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멀리까지 바라보게 해준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님의 날을 게임이나 헛된 오락, 하나님을 완전히 거스르는 행동들로 보냈다면 그들은 자신이 주님의 날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노엽게 해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곁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제정하신 이 거룩한 규례가 그런 방법으로 어겨지게 되는 것이다.9)
“그 규례는 율법의 구속을 받고 있을 때처럼 의식을 엄격하게 행하라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형상이나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의 날에 따로따로 떨어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어느 특정한 날에 함께 모여서 우리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실은 매일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무지함을 고려하고 그들의 나태함 때문에 특별한 날이 그 목적을 위해서 온전히 바쳐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제 7일을 그날로 지정해야 할 의무는 없으며 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정되었던 것과 같은 날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전에는 그날이 토요일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우리를 율법의 구속에서 해방시켜 주셨으며, 율법에 담겨있는 의무를 취소시켰기 때문에 그날이 바뀌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까닭으로 그날이 옮겨졌다. 우리는 일주일 중 어느 날을 안식일로 정해서 그 규례를 준수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루가 될 수도 있고 이틀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 선택에 맡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여서 성찬식을 갖고 하나님께 공동의 기도를 드리고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날을 정하는 것이 편리하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자기 집에 들어 앉아서 성경을 읽거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믿음의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이 규례를 지킴으로써 교회의 모든 존속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합당하다.”10)
안식일- 영적 안식 얻게 하기 위해
“하나님 여호와께서 옛날 백성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를 쉬라고 명령하신 목적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 목적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 안식일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안식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게 하고 우리 자신의 모든 이성과 감정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피상적인 규례를 가능한 한 억제하도록 하자. 다시 말하면 우리는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와 세상적인 일을 삼가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마음을 쓰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데 전념하도록 하자.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드시기 위해 그의 복음을 통해서 매일매일 우리에게 내리시는 은혜에 감사하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날을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는데 할애했다면 그 후 일주일 동안에도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하자.”11)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일하지 말고 쉬어라- 성령이 일하시도록
“만일 사람들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면 성경은 그들에게 ‘너희는 힘써 노력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성경은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너희는 쉬어라’ 고 했다. 따라서 우리의 처지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우리의 마음 속에 새겨놓으시는 것과 또 그의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이 가능하다. 더욱이 그것은 우리에게는 향기롭고 가벼운 멍에가 될 것이며 그 안에는 우리를 지치게 할 어려움도 전혀 없을 것이다.”12)
안식일- 사랑을 베푸는 날
하나님은 남종 및 여종에 대해서 언급하시고, 그들이 애굽 땅에서 종 되었었던 것을 언급하신다. 이스라엘이 종 되었을 때 휴식 시간이 주어져서 원기를 회복하기를 원하였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수하에 있는 자들에게 인정을 베풀기를 원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영적인 규례로만 규정하지 않으시고, 사랑을 베푸는 날로 정하신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과 명예로운 지위에 있는 자들은 그들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학대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모두가 아담의 후손이며, 한 종족이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로 내려오셨다. 주님에게는 주인이나 종이나 모두 그의 지체이다.13)
이방인들도 안식일을 지키길 바라심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방인들도 안식일을 지키기를 바라셨다. 그 이유는 먼저 그의 백성들을 혼란하게 만들거나 그에게 드려지는 예배를 훼손시키는 걸림돌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불쌍한 불신자들을 우리에게로 끌어 모으고 그들의 마음을 사서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함이다.14
1) 칼빈. 신명기 설교. 5:11절.
2) 칼빈. 신명기 설교. 5:11절.
3) 칼빈. 신명기 설교. 5:11절.
4) 칼빈. 신명기 설교. 5:11절.
5) 칼빈. 신명기 설교. 5:12-15절.
6) 칼빈. 신명기 설교. 5:12-15절.
7) 칼빈. 신명기 설교. 5:12-15절.
8) 칼빈. 신명기 설교. 5:12-15절.
9) 칼빈. 신명기 설교. 5:12-15절.
10) 칼빈. 신명기 설교. 5:12-15절.
11) 칼빈. 신명기 설교. 5:12-15절.
12) 칼빈. 신명기 설교. 5:13-15절.
13) 칼빈. 신명기 설교. 5:13-15절.
14) 칼빈. 신명기 설교. 5:13-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