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6일 금요일 아침입니다.
글 옮긴 이 <건강 바이블 연구소> 원장 박 한서
제목 : 지나친 욕심은 반드시 화를 부릅니다.
<이솝>의 우화입니다.
아주 배고픈 <여우>가 구멍을 통해
<포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여우>는 정신없이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 먹고 나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배가 너무 커져서
구멍에 걸려 통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여우>는 배가 꺼질 때까지
<포도원>에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곧 밤이 되고 주인이 와서
<여우>는 잡혀 죽고 말았습니다.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릅니다.
자신의 욕심만 채우다 보면 망하게 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가 터질 때까지
욕심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은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았습니다.
<중국>의 <동탁>이나
<네로> 황제가 그랬습니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어릴 적. 강에서 놀다가
죽을 뻔.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처칠>을 살려준 사람은
그 집의 하인이었습니다.
<처칠>의 아버지는 고마운 마음에
하인의 아들이 의학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처칠>은
<영국>의 수상이 되고.
세계2차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처칠>은 전쟁터에서
<폐렴>에 걸려 죽게 되었는데.
이때 한 사람이 항생제를 가지고
나타나서 <처칠>을 살렸습니다.
그 항생제를 가지고 <처칠>을
치료한 사람은 그의 집에서 일했던
하인의 아들 이었습니다.
바로 그가 <페니실린>을 발명한
<알렉산더 플레밍>입니다.
<처칠>이 살아난 이유는
<부메랑> 때문입니다.
<부메랑>은 하늘을 향해 던지면
멀리 날아 가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선행의 <부메랑>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면
반드시 그 사랑이 나에게 돌아옵니다.
다른 사람에게 베푼 친절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향한 가장 좋은 투자는
땅이나 건물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이 되어서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 좋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15장 10절 말씀에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가난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십시오.
인색한 마음을 갖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과
여러분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구제는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라고 성경은 가르치십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은 그대로 내려가고 콩나물이
안 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받아서 주고. 받아서 주고 하는 중에
물은 늘어나지 않지만 콩나물은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주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 입니다.
고대 철학자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나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너” 없는 “나”가 있을 수 없고.
“나” 없는 “너”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름에 비가 오지 않기로 유명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
국립공원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끝없이
자라나는 숲이 있습니다.
비도 잘 오지 않는 곳에서
일반적인 크기도 아닌 최고 112m나 되는
거대한 나무들이 자랄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식물학자들이 궁금해서 나무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뿌리를 파헤쳐 보았는데
놀랍게도 나무뿌리가 옆의 나무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족한 것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기대어서
든든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잠언> 19장 17절 말씀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고
말씀했습니다.
나눔은 하나님께 꾸어 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일에 대해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잠언> 11장 24절 말씀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고 했습니다.
나누어 주면 더 풍족해 지고 더욱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두쇠처럼 아끼면 가난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즐거워하고
항상 남에게 나눠주고 베풀어주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묵상>
<누가복음> 6장 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아멘>
<박 한서 원장 건강 비방 공개>
제목 : 요양 병원 아무리 고달퍼도 가지마라
요양원 풍경!
얼마 전 지인이 보낸
요양원 경험실태를 읽고
요즘 어디서 영면해야 하나!
걱정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올립니다.
제가 지난 2022년 9월과 10월에 걸쳐
00 요양원에서 40여일을 보내고 와서
요양원의 풍경을 누구보다 깊숙히 알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요양원 생활이 어떠하냐?'는 질문에
나는 '아무리 고달프다고 해도
요양원은 가지 않는 게. 좋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표현 하자면 입소한 노인의 자식들이
원하는 바대로 '서서히 죽어가도록 하는 곳이
바로 요양원의 실태입니다.
저는 짐도 있고 컴퓨터도 있어 처음부터
1인실에 입소. 첫날부터 군사 훈련 보다도
엄격한 통제 속에 생활 기상이 5시30분.
조식이 6시 30분.
(조식도 겨우 먹고 죽지 않을 정도의 칼로리.
3끼가 거의 똑 같다.)
간식이 한번 나오는데 빵 반 조각?
운동이 너무나 중요한데
겨우 허락 된 장소가 거주하는 곳의 복도 뿐...
제가 3층에 거주 하였는데
<엘러 베타>를 비밀번호로 잠가 놓아서
옥상이나 1층에 있는 운동실을 사용할 수가 없고.
겨우 운동한다는 것이
복도 끝에서 끝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
그러니 종일 시간 대부분을 침대에서
누위 지내는 수밖에 없으니...
몸은 자연히 더 악화 될 수밖에 없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한번은 갓 입소한 노인이 제 방을 찾아와
살려 달라고 애원하기에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돈도. 헨드폰도. 카드도 없이
오늘 아들이 강제로 입소시키는 바람에
몸은 아파서 죽겠으니 전화 좀 걸어
달라는 것 이었습니다.
다행히 며느리 전화번호를 알아 와서
제가 제 핸드폰으로 ...
그분이 죽게 생겼으니 도와달라고 전화를 했는데...
집안이 난리가 나고 원장한테 까지 저한테 전화를
왜 했냐고 하길래...
사람이 살려 달라는데 전화 한 통화 한 것이
무슨 잘못인가 반문 하였더니...
그 이후부터는 제방 출입을 통제 하고..
CCTV로 보고 있다가 누가 들어오면
당장 요원이 달려와서 나가 달라고 요청하는 등..
통제가 너무나 지나쳐
제가 노인들의 권리보장 문서를 가져와서
원장과 한바탕 하고서...
여기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철저한 통제 속에 가둬놓은 상태로
최소한의 음식으로 서서히 죽어가도록
유도하는 곳이란 결론에 도달...
더 이상 내 삶을 맏길 곳이 아님을 느끼고
40일 만에 뛰쳐나왔습니다.
대부분 자식이 있어도 연락도 면회도. 전화도
오지 않는 외로운 삶의 현장 속에 있다가 나오니
이렇듯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 이라도
충분히 사는 보람을 찾고 있다고 확신 합니다.
참고 하시라고 긴 문자로 보냈습니다.
<추신>
요양원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지만
한 가지 정보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통상 들어올 때는 자식하고
같이 와서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이때 통상 자식들이 대필 한다며 계약을 하는데..
여기에 중요한 문구가 있습니다.
즉 계약한 자식의 허락 없이는 요양원 퇴소를
못하게 규정해 놓고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퇴소를 못하게 규정해 놨다는 것입니다
꼼짝없이 오고 가지도 못하게 계약을 했으니..
나중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다는 것
이거 명심해야 합니다.
계약 시는 본인도 입회하에 이 항목을 삭제해야
만약 나오고 싶을 때 나올 수가 있다는 것
명심해야 합니다.
나이 들어도 치매나 병들지 않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운동하고
건강하게 살다가 하늘나라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