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인데, 신기하지 낯선 골목에 당신의 얼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니 네게선 물이 자란다, 언제 내게서 그런 표정을 거둘거니 누군가가 대신 읽어준 편지는 예언서에 가까웠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나의 감정을 선언하니 벽이 조금씩 자라나고, 그 때에 당신은 살아있구나, 눈치 챘지 문장의 바깥에 서서 당신은 긴 시간동안 사람이었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언젠가 손을 맞잡았던 적이 있지, 짧게 우리라고 불릴 시간은 딱 그만큼이어서 나에겐 기도가 세수야 당신을 미워하는 건 참 쉬운 일이지 오래 마주보고 있기엔 당신의 눈동자는 너무나 투명해 표정은 쉽게 미끄러지고 벽을 등지고 걸으면 내 등이 보이는 오늘 누구랄 것 없이 녹아 흘러내리지만 언제나 당신은 젖지 않지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당신의 종교가 되길 바랄게 기일 축하해,
[당선소감] / 안지은
불면에 시달린 날들 이제 푹 자고 싶어요
극심한 불면증이었다. 열대야를 기르는 나날. 지옥에는 다 자란 내가 있다고 믿으며 매일을 버텼다. 내게 죄를 부여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하루에 삼켜야 할 알약이 늘어나는 만큼 내가 소화해야 할 내일이 쌓였다. 하루 열두 시간 노동을 해야 서울살이가 가능했다. 퇴근길 버스는 늘 기분 나쁠 정도로 따뜻하고, 나는 언제나 잠깐의 사람. 버스에서 내리면 가야 할 집은 있지만 정착할 수 있는 집은 없는 사람. 나는 꿈에서조차 잠이 든 척을 했다.
이런 제게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손을 뻗어주신 정호승, 문정희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려요. 명지대학교 김석환·이재명 교수님, 품에 넘치도록 저를 꼬옥 안아주시는 신수정 교수님, 다정한 편혜영 교수님, 감사합니다. 늘 저를 예뻐해 주시는 남진우 선생님, 부족한 제 언어에 힘을 실어 주시고 다듬어 주셨어요. 영원한 나의 캡틴, 이영주 선생님께는 언어라는 틀에 차마 다 담아내지 못할 마음뿐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 마음 써주신 천수호, 박상수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 올립니다.
빛나는 순간에 항상 함께해준 윤수, 지윤, 주혜, 은혜, 예솔. 나의 꽃들. 앞으로도 함께하자. 나의 안식처 희정 언니, 애틋한 선화. 계속 글 쓰자. 오래오래 축하해준 태우 오빠, 고마워. 보고 싶은 민용 오빠, 인영, 보배 언니. 지원, 유경, 지애, 양정. 너희를 떠올리면 내 마음은 이미 대구야. 나보다 더 기뻐해준 지향, 보람 언니 고마워요. 건강하자, 지수. 내 대학생활의 즐거움, 흑풍. 제 시의 처음을 읽어준 선희, 혜민, 은희 언니. 용준 오빠. 명지대 시모임, 이미 나에겐 최고의 시인들. 그리고 내 영혼의 쌍둥이 우선. 내가 심해 로 가라앉을 때 넌 내 산소통이었어.
엄마, 기철. 당신들은 나의 원동력. 내가 시를 쓰는 이유. 나의 수호천사 이모, 고마워. 이모부도. 할머니, 고모,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당신들의 기도 덕분에 제가 숨을 쉽니다.
마지막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제야 답합니다. 사랑해요.
- 1992년 8월 6일 서울 출생 -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재학 중
[심사평] / 정호승 시인, 문정희 시인
소통의 詩… 삶· 죽음에 대한 역설적 인식 돋보여
최종심까지 올라온 16명의 시 50여 편을 읽고 느낀 공통점은 '소통로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두루뭉수리여서 쓴 사람 혼자만 읽고 서랍 속에 넣어두어야 할 시를 읽게 되는 고통은 무척 컸다.
"이전의 이후의 반물질과/ 무기체의 감각/ 물렁뼈에 속하는 밤/ 귀, 귀(鬼), 현실/ 가느다랗게 흐트러져가는 형상에 대한/ 신뢰는 얼마나 대단한가."(이현정 '벽에 걸어놓은 외투는 살아 있다' 부분)
한 예에 불과하지만 최종심에 오른 시는 대부분 시 스스로 독자의 이해를 거부한다. 현란한 기교가 난무하고 몰이해를 바탕으로 한 산문성이 두드러진다. 시의 심장이 은유라면 그 은유의 심장이 피를 흘리다 멈춘 듯하다. 다양성이 미덕인 시대에 그 다양성을 긍정한다 해도 지나칠 정도로 관념적이다. 마치 관념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이는 서정과 구체에 뿌리를 내린 비관념적 소통의 시는 이미 낡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시는 낡았든 새롭든 소통의 통로를 통해 써야 한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흐르지 않는 꽉 막힌 수도관을 통해서는 물 단 한 잔도 받아 마실 수 없다. 그동안 한국 시단은 뒤틀린 추상과 관념의 언어로 구축된 불통의 시를 새로움이란 이름으로 지나치게 관용하거나 방치해왔다. 행과 연 구분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필연성이 결여된 산문 형태의 시와 관념적 불통의 시가 한국 현대시의 미래라고 여기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오늘의 현상은 한국 현대시가 어떤 한계에 다다른 부정적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구어체로 이루어진 당선작 안지은의 〈생일 축하해〉는 당선작이 될 만큼 작품으로서 우수성이 탁월했다기보다는 소통 가능한 시가 그래도 이 시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생일 축하해〉는 삶과 죽음을 동질 관계로 인식한 바탕에서 쓴 시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일상의 순간에 만나 깊은 애증의 대화를 나눈다. 죽음이란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이라는, 기일이 생일이고 생일이 바로 기일이라는 이 역설적 인식은 죽음을 도외시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종심에서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박은지의 〈공유지〉, 박진경의 〈다이빙〉, 이종호의 〈작은 방〉, 이현정의 〈북극점 한 바퀴〉 등이다. 이 작품들에 대해서는 시는 언어로 이루어지며 그 언어가 지닌 구체의 본질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웅웅거리고 부서지고 내장처럼 고요 쏟아져 내리고 내려야 할 역을 잃고 흘러가는 페름 행 전신주 흰 눈송이들
백야의 건반을 치는 사내 - 창문을 두드리는 나뭇가지 - 길고 가는 손가락 갈라지고 떠도는 핏방울 소용돌이
변두리로 나를 싣고, 창 밖 쁘이찌 야흐 행 마주보며 또 길게 늘어나고 민무늬 토기처럼 얼굴 금이 가고 스쳐가는 가,
가문비나무 그늘 나뭇가지 그림자 일렁이는 시간 산란하는 밤의 시작을 경계를 지나 나는 또 바라보고 있고
마젤란 펭귄들 발자국 소리 울음 아, 미역줄기처럼 늘어지고
움푹 파인 자국, 발자국들, 혀 뿌리가 길게 늘어져 꿈틀거린다 하얀 모래밭, 그리고 하얀 추위, 그리고 하얀 포말
기억과 마디가 끊긴 생선뼈와 조개 무덤 사이를 가마우지들 종종 걸어나오고
점령할 수 없는 나라의 국경, 우수아이아, 숲길, 뒤틀린 비치나무 뿌리, 물거품이 사그라든다
[당선소감] / 조상호
절벽에 섰을 때 들려온 말 “더, 더 고민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은 혹독했던 과정보다 뜻깊은 순간을 떠올리고 싶다. 근래에는 ‘더, 더,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이, 또 ‘힘을 들여야 한다’는 말씀이 들려오곤 했다. 고백하자면 절벽에 서 있을 때 들려온 귀한 ‘말씀들’이었다.
한 선생님은 인상적인 하나의 시적 표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하지만 내 둔탁한 감수성으로는 언어의 질감을 매만지며 이미지의 흐름을 좇는 것만도 벅찼다. 한 선생님은 또 버리는 쾌감을 맛보라고 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우연의 빛나는 표현과 잠시 조우할 때도 있었다. 교착상태에서 탁한 감정과 부박한 언어를 경계하며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을, 화자 중심의 시선으로 쉽게 결론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새해가 되면 나의 아름다운 고창에 가야겠다. 오래 비워둔 집에 보일러를 돌리고 아버지가 머물러 계신 산소에도 들러야지, 그리고 어머니가 보고 싶다.
오랜 시간 섬세한 눈길로 미욱한 제자를 깨우치고 기다리고 또 지켜주었던 오형엽 교수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한결같은 마음이 없었다면 시가 시작되는 이 자리에 이르지 못했을 것만 같습니다.
어머님 같았던 김미란 오태환 강웅식 선생님. 귀한 선생님들과의 만남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밥과 술과 안식처로 내 가난한 영혼을 항상 그 자리에 서서 지켜준 올곧은 동혁. 우리 시천(詩川) 동인인 진실한 승진 형, 명민한 형철, 용국 형, 원경, 모던한 의리남 원준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진섭 형 차례입니다. 민영, 종만 선배님. 초등 친구 성규. 연구실의 아름다운 청년 영찬, 시로 도발할 때 가장 아름다운 보영 병주 혜미 지민 은진 누님 고맙습니다. 이제는 오래된 기와집처럼 진한 할머니 냄새 물씬한 내 어머니, 가족들….
읽을 때마다 눈이 부신 황현산 김혜순 선생님.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께 정진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동아일보사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1976년 전북 고창 출생
- 고려대 국문과 박사과정 재학
[심사평] / 황현산 문학평론가, 김혜순 시인(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빠른 질주-멈춤의 리듬감… 언어적 상상력이 돋보여
본심에서 6명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펜트하우스’ 외 4편의 시는 비유를 적절히 운용해서 한 편의 시를 끌고 간다. ‘엄마가 방안에 앉아 재봉틀로 짝퉁 루이비통에 유성들을 박아넣는 경험’에서 시가 발아한다. 그 자리에서 재봉틀은 유성이 되고, 방은 펜트하우스가 되고, 인공위성을 미행하며, 재봉틀의 잔소리가 음속을 돌파한다. 비유된 세계와 실제 세계가 일대일로 대응하고 있다. 다른 시에서도 자신의 입으로 불어야만 하는 ‘진술’ 행위와 유리알 전구 만들기 같은 두 가지 행위가 ‘불다’라는 동사의 주어로서 같은 의미를 내포해 배열되고 있다. 그러나 시 한 편에 다 포함될 수 없는 문장들이 돌출하고, 비유에 치중하느라 현실감을 놓쳐 버리는 부분이 지적됐다.
‘훈풍’ 외 4편의 시는 시편마다에 들어 있는 간곡한 말, 경험을 고백할 때 언뜻 보이는 아픈 정경들의 표현이 좋았다. 자신의 기억을 말에 걸칠 때 그 말의 결을 스스로 발명해 내는 것이 시의 새로움이란 사실을 증명하는 문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영특한 손놀림’, ‘팔딱이는 주먹 심장’처럼 두 개의 단어나 세 개의 단어로 경험을 응축해 버린 어구가 많고, 이 부분들이 오히려 시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입과 뿌리에 관한 식물학’ 외 4편은 상상력으로 시를 끌고 간다. 은유된 언어의 머뭇거림과 확장, 빠른 질주와 멈춤이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 시는 마치 ‘점령할 수 없는 나라의 국경처럼’ 언어로 만든 점과 선, 리듬으로 시에 여러 개의 경계를 설정한다. 동시에 언어적 상상으로 세상을 더듬어 나가고, 더불어 떠나고, 정신의 세계를 어루만진다. 무작정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음운과 음운들이 서로 조응하면서 달려간다. 시의 ‘입술을 달싹’여 저 ‘마젤란 펭귄’이 사는 곳까지 뿌리를 내리며 가는 것이 아마도 이 시인의 ‘식물학’이리라. 논의 끝에 응모작 5편 모두 고른 시적 개성과 성취를 가진 점을 높이 사서 ‘입과 뿌리에 대한 식물학’을 당선작으로 선했다.
이 세상에는 의자가 참 많다. 카페에도 도서관에도 지하철에도 의자는 넘쳐난다. 아니다. 의자보다는 엉덩이가 훨씬 더 많다. 내게도 늘 의자를 그리워하는 엉덩이가 있다. 가끔 시를 쓰는 대신 차라리 나무를 심었다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결국 나는 그 나무로 또 의자를 만들었겠지만 이제 의자와 나무가 같은 혈족이라는 걸 안다.
오늘은 잠시 의자와 떨어져 있었고 황송하게도 누워서 당선소식을 받았다. 몽중일까. 눈을 뜨고 있어도 꾸는 꿈처럼 더듬더듬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본다. 여전히 내 머리맡을 지키는 의자, 이 기회에 의자에게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의자여! 정말 미안하다, 아니 참 미안했다, 그리고 다시 더 미안하겠다. 당선소감을 쓰는 지금도 나는 의자를 믿고 까분다.
나는 행운아다. 의자와 궁합이 잘 맞는 엉덩이를 갖고 있으니. 시를 빌미로 의자와 엉덩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해가 즐겁다. 언젠가 삐거덕거리던 시들이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어주는 날들이 올까. 대화는 계속될 것이고 의자는 나의 모든 시들이 마지막으로 태어나는 성소다. 어떤 자세로 의자에 앉아야 할까 늘 함께 고민하는 ‘구밀’과 ‘13시’ 나의 시동지들과 행운을 나눈다. 의자에 항상 따뜻한 방석을 놓아주는 나의 가족 연, 동 그리고 남편 너무 고맙다. 심사를 해주신 이시영, 황인숙 선생님 그리고 손택수, 김행숙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경향신문사에도 깊은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영광은, 의자에게 바친다.
- 1963년 경남 밀양 출생.
- 대구 거주. 영남대 국문과 졸업
[심사평] / 이시영 시인, 황인숙 시인
기존 틀 차용했지만 사유를 끌고가는 의식 우뚝
14건의 응모작이 예심에서 올라왔다. 그중 우선 고른 작품이 ‘의자가 있는 골목’ ‘벽과 대화하는 법’ ‘투명한 발목’이었다. 이 과정이 수월했다는 건 좀 서글픈 일이다. 새로운 종의 시를 포획하기를 기대하며 무엇이든지 빨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심사자들의 눈에서 그토록 쉽사리 빠져나가는 시들이라니. 재량껏 성심을 다한 시들을 보내주신 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다. 아, 하지만 왜 그리 겉도는 거지? 붕붕 떠 있지? 한 걸음 더 성심을 담으시라. 진정을 담으시라. 하긴 열네 분의 시가 근사하면 얼마나 머리가 터졌을까. 고마운 일이다만.
‘벽과 대화하는 법’은 감각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이이가 갖춘 표현력에 세상-사물을 읽는 힘, 인식의 힘이 더해지기를 바라며, ‘투명한 발목’과 ‘의자가 있는 골목’을 최종심으로 놓았다. ‘투명한 발목’은 섬세하고 예민하고 차분한 묘사와 어조로 독자를 시의 정황 속으로 천천히, 깊게 이끄는 시다. 그런데 이 매력적인 시에도, 흠을 잡자고 눈에 불을 켜니, 성근 부분이 있어 아쉽다. ‘의자가 있는 골목’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로 시작되는, 이상의 가장 널리 알려진 시 ‘거울’의 말투를 베껴서 쓴, 즉 이상 풍으로 쓴 시다. 새로운 시인을 가려 뽑는 자리에 기존 시인이나 시를 패러디함으로써 오마주를 보이는 시를 뽑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이 틀 속에 자기 생각, 자기만의 세계가 담겨 있는 점을 높이 샀다. 사유를 길게 끌고 나가는 힘 있는 진술 속에 시인 의식이 우뚝하다. 그의 다른 응모작들도 두루 소재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가 아니어서 믿음이 간다. 건필을 빌며 축하드린다!
노국희(37)씨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복수전공으로는 건축을 공부했다. 전형적인 이과생인 그가 시인이 될 줄 자신을 포함한 주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늘 물질세계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릴 때 특별히 책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읽더라도 문학 쪽이랑은 거리가 멀었죠.”
건축설계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건축잡지 기자로 전직한 노씨는 거기서 처음 글쓰기의 재미를 알았다.
그 관심이 문학으로 옮겨간 것은 서른 무렵 건강 문제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구직자로 있을 때다.
“일이 없으니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책을 엄청나게 읽었는데 그때 시도 처음 접했어요. 내가 가진 생각을 누군가 먼저 언어로 표현해놓은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죠.”
그때까지도 독자일 뿐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일 같았단다. 그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 쓰는 사람들과 친분이 생기면서 점차 ‘나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 대한 마음은 점점 진지해져 올 가을 1인 출판사를 차리기에 이르렀다. 문학이 취미에서 직업으로 바뀐 것이다. 그 와중에 당선은 큰 선물이었다. 시에 빠진 뒤에도 ‘왜 시를 쓰는가’란 질문에 답하지 못한 노씨에게 어느 정도 답을 주는 것만 같았다.
“언제부턴가 시 쓰는 게 힘들더라고요. 표현에 대한 부담이 너무 심해서 중단한 적도 있어요.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어차피 오래 쓸 테니 마음 편하게 먹자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래서 당선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웃음)”
그가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내놓고 싶은 것은 시나 소설이란 말로 규정되지 않는 새로운 글이다. 본인을 포함해 실험적인 글쓰기를 시도하는 다른 작가들의 책도 기획 중이다.
“지금까지는 시가 내 이야기를 가장 편안하게 풀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을 계속 찾아갈 거예요. 장르에 매이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하면서 글이 어떻게 바뀌는지 스스로 지켜보고 싶어요.”
- 1978 전남 목포 출생
- 이화여대 물리학과 졸업
[심사평] / 김소연 시인, 조강석 문학평론가, 황인숙 시인
과감한 언어의 도전
1차 심사를 거치고 난 뒤 심사위원들의 손에 들려 있던 작품은 세 편이었다. 김수화씨의 ‘아버지가 족문을 옮기는 방식’, 이언주씨의 ‘만두를 빚다’, 노국희씨의 ‘위험 수목’이 최종적으로 거론됐다.
세 편의 작품 모두 그럴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우선 김수화씨의 작품은 삶의 경험을 지나친 감정적 과장 없이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기량을 보여줬다. 이언주씨의 작품 역시 일상적 소재에서 삶의 실감을 잘 구현해내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다만 김수화씨의 경우 군더더기 없이 경험을 풀어내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발화법이 지나치게 안정적이어서 신인의 패기에 값하는 도전의식이 아쉬웠다. 이언주씨의 경우에도 단정한 사색이 장점이 되지만 동시에 언어의 입체적 개진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심사위원들은 이와 같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노국희씨의 ‘위험 수목’을 당선작으로 선보이는 데 합의했다. 과장이나 엄살이 없이 기억과 상처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구도에 있어서는 안정적이면서도 동시에 과감한 언어 운용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물음으로 짜인 나무 그늘” “울어본 기억만 있고/소리를 잃은 말들”과 같은 긴장감 있는 상상력이 “당신의 삶을 훔치는 것으로/도벽을 완성하고 싶었어”와 같은 도전적인 문장에 실려 전개되고 있다. 취의와 언어 운용 능력에서 안정감과 패기가 함께 드러나고 있어 짧지 않았을 시 쓰기의 이력에 신뢰감을 갖게 한다. 좋은 신인을 시단에 소개하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앞으로의 도정에 문운이 함께 하길 기대한다.
하염없이 눈물 쏟는 애인을 또 하염없는 입맞춤으로 달래본 사람이 알 것이다 같은 이에게 다른 피가 돌 때가 있단 사실을
지뢰를 밟았을 때 떠오르는 감정은 아직 발 떼지 않았다는 것 너는 위험한 마음으로 바닥을 문지른다
너도 이제 그만 목소리를 내보려 한다 그러나 침묵하고 싶지 않을 때에야 침묵다운 무거움이 온다는 걸 우린 이제 알고 있다
네 혀에 도달할 문장을 기다린다 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늘어지는 고드름처럼 오랠수록 흉기가 되는
조금씩 심장 가까이 이 겨울 속으로 완전히 입수하기 전에
[당선소감] / 김재필
함께 해줬던 사람에게 보상 되길 바라며 써
Soli Deo Gloria.
준모 형께 감사하다. 이런 날이 오면 가장 먼저 형의 이름을 쓰고 싶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언어로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런 무능이 허락되기 전까지 어떻게 견뎌야 할까. 이런 태도가 모두에게 중요할 수 없으므로 농담은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 언어를 삼키기 때문에 외롭단 걸 알게 되면 농담은 미운 애인 같다. 만약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을 인간이 언어를 연마한다면, 그런 생은 도대체 어떤 수수께끼의 대답이 되는 건지 생각하며 웃었다. 그런 세계에 누가 거주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언젠가 그런 인간이 방문했을 때, 그에게 필요한 대답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오랜 시간 함께 해줬던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되길 바라며 썼다.
뽑아주신 황동규 선생님, 정호승 선생님, 김기택 선생님, 문태준 선생님께 감사 인사드리고 싶다. 부족한 작품이지만 가능성을 봐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마음의 빚을 덜게 해주심에 감사하다. 스승이신 박찬일 교수님께 감사하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셨기를 바란다. 졸업 후에도 이끌어 주신 이형우 선생님께도 감사하다. 제자라 말하기엔 민망하여 성함을 적진 않지만 청강을 허락해주셨던 선생님께도 감사하다. 인정이란 걸 가르쳐주신 김미향 선생님께도 감사하다.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하다. 역시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되신다면 행복할 거 같다. 더 많은 분께 감사하고 있다. 말 대신 찾아뵙는 걸로 대신하겠다.
- 1988년 전북 무주 출생 -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 황동규 시인, 정호승 시인
최근 응모작 추상·관념의 유희 과해 … ‘입수’ 소통의 모호성 벗어나
최근 신춘문예 응모 시는 갈수록 모호성이 두드러지는 부정적 특성을 지닌다. 구체에서 일탈된 추상과 관념의 언어 유희가 지나쳐 소통의 길이 꽉 막혀 있다. 언어와 언어의 시적 관계가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 도대체 무엇을 왜 이야기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배배 꼬인 언어의 꽈배기를 맛도 보지 못하고 마냥 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도 인간을 위해 쓰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인간과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갈수록 그 소통의 길이 막혀있다. 이제는 시의 불통마저도 유행인가. 불통으로 훈련된 투고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분별없는 불통의 세계에서 분별 있는 소통의 세계로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4편이었다. ‘패러글라이딩 하는 새’(김영미)는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보다 “날개를 펼칠 때보다 접을 때가/ 더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을” 등의 통속적 단점이 더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강물학교’(진창윤)는 강물을 찾아오는 겨울 철새들에 대한 진술적 묘사가 진부하고 지루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먼저 탈락하였다. ‘평행한 세계’(강은재) 또한 꿈속과 꿈 밖의 경계를 넘나드는 만남의 세계가 펼쳐져 있으나 결국 “멀리 있어도 우리는 하나인 것 같다” “나도 내가 좋아질 때가 있다 이런 것은 혼자만 아는 비밀이다” 등의 통속적 산문성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당선작 ‘입수(入水)’(김재필)는 비교적 소통의 모호성에서 벗어난 시다. 내가 너(애인)의 사랑의 강물 속으로 입수하는 과정의 순간을 짧으나마 극명하게 그렸다. ‘지뢰를 밟았을 때 떠오르는 감정은 아직 발 떼지 않았다는 것/ 너는 위험한 마음으로 바닥을 문지른다’라는 표현은 이 시의 백미다. 지뢰를 밟았을 때 발을 떼면 생명을 잃게 되므로 발을 떼지 않고 있는 상태, 그 절체절명한 상태에서의 기다림과 그리움이 이 시의 전체적 정조를 이룬다.
다른 시에 비해 작품성이 높다는 장점도 있지만 소통이 가능한 시라는 장점에 더 마음이 기울어져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시를 쓰는 일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이므로 당선자는 남다른 노력을 통해 한국시단을 풍요롭게 꽃피워주길 바란다.
타크나 흰 구름에는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배웅이 있고 마중이 있고 웅크린 사람과 가방 든 남자의 기차역 전광판이 있다 전광판엔 출발보다 도착이, 받침 빠진 말이 받침 없는 말에는 돌아오지 않는 얼굴이 있다가 사라진다
흰 구름에는 뿌리 내리지 못한 것들의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자정을 향해 흩어지는 구두들 구두를 따라가는 눈 속에는 방이 드러나고 방에는 따뜻한 아랫목, 아랫목에는 아이들 웃음소리 몰래 흘리는 눈물과 뜨거운 맹세가 흐른다
지금 바라보는 저 타크나 흰 구름은 출구와 입구가 함께 있다 모자 쓴 노인과 의자를 잠재우는 형광등 불빛 그 아래 휴지통에 날짜 지난 기차표가 버려져 있다
내일로 가는 우리들 그리움도 잠 못 들어 나무와 새소리, 새벽의 눈부신 햇살이 반짝이고 어제의 너와 내일의 내가 손을 잡고 있다 새로운 출발이 나의 타크나에서 돌아오고 있다
우린 흘러간 다음에 서로 흔적을 지워주는 사이라서 지우지 않아도 지워지는 얼굴로 지워져도 서로 알아보는 눈으로 뭉치고 흩어지고 떠돌다 그렇게 너의 일기에서 다시 만나리
[당선소감] / 이윤정
동면 깨어나 … 마음 다독이는 시 쓰겠다
몇 번의 겨울을 애벌레로 동면했습니다. 날개 달지 못한 채 셀 수 없는 밤을 어둠에서 보냈습니다. 어느 날 태양이 눈부시게 다가왔습니다. 푸른 하늘이 보이고 겨드랑이가 가볍습니다. 길었던 겨울 동안 날개를 키우며 오늘을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내 짝사랑은 이제 긴 어둠을 걷어내고 새로운 곳으로 나를 초대합니다. 그동안 나는 나를 지탱하고 나를 세우는 힘을 익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늘 새로움으로 나를 채워주는 호기심과 변하지 않는 날개를 달고 푸른 하늘을 날아오를 것입니다.
늦은 밤 역사에서 갈 곳 없어 서성이는 사람들을 봅니다. 종착역도 출발역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종이박스로 방을 만들어 추운 잠을 청하는 사람들. 저들도 한때는 푸른 하늘을 날았었지요. 돌아갈 곳을 잃어버리고 떠도는 쓸쓸한 풍경에 가슴이 시려 옵니다. 타크나에서 떠돌던 구름처럼 잠들지 못하고 우리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 아닐까요. 오늘 밤 흰 구름 속에서 떠도는 사람들 모두에게 따뜻한 온기가 감싸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이 영광은 심사위원 최동호 선생님, 이시영 선생님 두 분께서 날개를 달아 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세계일보사에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든든한 반석이 되어준 용정씨, 가장 냉정한 평론가 민희, 지중해 하늘을 날면서 뜨거운 용기를 보내준 서윤, 눈빛만 봐도 마음 읽어주는 준호, 그리고 친구들. 두 눈으로 마주친 세상 모든 인연들과 오늘의 이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늦었지만 서두르지 않고 마음을 다독이는 시를 쓰겠습니다.
- 1961년 대구 출생
- 한양대학교 행정자치대학원 수료
- 커리어 컨설턴트
[심사평] / 최동호 문학평론가, 이시영 시인
오랜 시적 연마 느껴지고 서정적 언어 돋보여
1200여명의 응모자들 가운데 예선을 거쳐 넘어 온 30여분의 작품을 꼼꼼히 읽었다.
많은 응모작 때문인지 응모자들의 수준은 향상되어 있었으며 어느 작품을 선정해야 할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일반적인 신춘문예의 수준을 넘어서는 작품이 많았다는 것이 솔직한 소감이다.
그럼에도 심사를 위해 다음 네 분의 작품으로 좁혀서 논의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은지의 ‘구름의 공회전’외 3편, 이규정의 ‘오르막에 매달린 호박’ 외 4편, 노운미의 ‘일요일의 연대기’ 외 3편 그리고 이윤정의 ‘모자는 우산을 써 본적이 없다’ 외 4편 등이었다.
이 네 분의 작품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하나를 우선적으로 선정하기가 어려웠다.
각각의 장단점을 다시 살펴보고 심도 있게 검토한 결과 김은지와 이윤정의 작품이 최종 심사 대상이 되었다.
김은지의 작품은 시행을 밀어나가는 힘이나 사물을 관찰하는 시선이 세밀하고 좋았지만 전반적으로 시행의 압축보다는 다변의 서술에 의존하고 있어서 시적 언어의 절제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것이 아쉬웠다.
이윤정의 작품은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면서 적절한 균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일차적 장점이었다. 우리 시단에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는 새로운 시인으로서의 자격도 갖추고 있다고 여겨졌다.
예를 들면 이규정의 ‘오르막에 매달린 호박’과 같은 작품은 시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뛰어난 점이 있었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어 주저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이윤정의 작품을 놓고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느냐를 정하기 위해 좀 더 논의했다.
‘모자는 우산을 써 본적이 없다’의 경우는 새롭기는 하지만 접속어가 많아 시행의 흐름이 일부 어색했고, ‘흔적의 이해’는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조금 관념적이어서 구체성이 약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는 ‘타크나 흰 구름’이 당선작으로 적정하다는 것에 의견이 일치했다. 오랜 시적 연마가 느껴지는 다른 시편들의 안정감도 이런 결정에 도움을 주었다.
당선자에게는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아쉽게 탈락한 다른 응모자들에게는 따뜻한 격려의 말을 전해 드린다.
여러 해 전 도시 생활을 접고 이곳 시골에 둥지를 틀었다. 우리에게 온 햇빛과 바람과 풀 한 포기, 아이들과 내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를 자연에서 배운다. 그것은 소리 없이 물처럼 내게 스며든다. 어떤 과장도 억지도 없이 나를 불러 세우고 일으켜 세운다. 나는 내게 온 어떤 것도 가꿀 줄 몰랐다. 남편도 아이도 부모와 형제도 하물며 이름 없는 풀이며 벌레며 이웃들이랴. 내가 짓고 있었던 것은 시가 아니라 몽상가의 잠꼬대였고 허세였다. 내가 아닌 타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나무와 풀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마음을 읽고 나누고 드디어 그들이 되는 것, 오늘도 햇빛과 바람과 나무들의 살림살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사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시는 나보다 먼저 내게 닿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했다. 몸이 없던 내게 몸을 입혀 수도꼭지를 틀어 밥공기를 닦게 하고 바닥을 훔치게 했다. 밭고랑에 남아 있던 애기파가 등 뒤에 내려앉는 눈을 털어내고 있다. 주저앉아 있던 나를 애기파 한 포기가 가만히 일으켜 세운다. 시는 늘 그렇게 내게로 온다. 시를 쓰기에 앞서 언제나 정직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신 이영진 선생님, 내게 온 모든 인연들과 하나 되어 서로를 가꾸어 나가는 것이 시 쓰는 노릇임을 마지막까지 잊지 않으려 한다.
- 1961년 경남 거창 출생
- 2011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상
[심사평] / 정호승 시인, 유성호 문학평론가
깔끔한 표현으로 서정적 구체성·투명성 살려
이번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많은 분이 응모해주셨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부쳐진 작품들을 함께 읽어가면서, 일부 작품이 만만찮은 시간을 축적한 결과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대상을 좀 더 일상 쪽으로 구체화하여 우리 주위의 타자들을 애정 깊게 응시한 결실도 많았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쏟은 사례도 많았음을 깊이 기억한다. 이 가운데 심사위원들이 함께 주목한 이들은 모두 세 분이었다. 이혜리, 최혜성, 정신희씨가 그분들인데, 오랜 토론 끝에 심사위원들은 정신희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혜리씨의 작품들은 감각적 장면들을 상상적으로 모자이크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충격과 반응으로 연쇄해 가는 감각 운동이 진정성과 독자성과 연관성을 두루 지니고 있었다. 최혜성씨의 시편은 특별히 ‘미동’이 끝까지 경합하였는데, 매우 밀도 높은 관찰과 표현이 특장으로 거론되었다.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소묘의 집중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결국 정신희씨의 ‘가족’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전언의 구체성과 깔끔한 표현, 그리고 착상과 비유의 과정이 안정된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판단한 결과이다. 이 시편은 규칙적으로 서로를 향해 다가가면서도, 맹목과 위험을 동시에 지닌 관계로 ‘가족’을 파악한다. 물론 이러한 파악이 정신희씨만의 개성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당선작은 그러한 파악을 ‘그가 먼저 돌을 놓기를 기다리는 동안/나는 끝까지 돌을 움켜쥐고 있었다’는 표현에서 보이는 긴장과 예각적 균열을 통해 보여주고, 나아가 ‘길’의 뒤섞임, 팽창, 멈출 줄 모르는 질주의 형상과 그것을 어울리게 하면서 서정적 구체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살려주는 데 성공하였다. 이 점 여러모로 신뢰를 주기에 족했다.
예상을 넘어서는 좋은 수준의 작품이, 그것도 예년보다 훨씬 많이 답지한 것은, 중앙과 지방의 간격이 그만큼 좁혀졌다는 뜻일 터이다. 수원과 인천은 물론 서울에서도 많은 예비시인들의 작품이 날아와 쌓였다.
당선작은 신춘문예 역사상 유례가 없었을 거라 생각되는데, 지리산 일대에서 준동하다 죽어간 두 파르티잔(빨치산)과 죽음을 지켜본 어떤 여성의 생을 다룬 시다. 현대사와 가족사와 개인사가 중첩되어 있는데 시는 짧다. 한국전쟁 전에, 전쟁 과정에, 그리고 휴전 후에 몇 명이 지리산 일대에서 죽어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들이 묻힌 지리산 골짜기/ 유골을 찾을 때까진 살아 있어야 한다”고 삽을 놓고 울던, 고인의 어머니와 아내는 이제 연로해 몸도 마음도 성치 못하다. “며느리가 먹여주고 있는 대봉을/ 다 핥지 못하고/ 뚝뚝, 생혈(生血)을 떨구는 어머니”의 그 생혈은 눈물일까 홍시일까. 눈도 귀도 어두운 노파는 눈이 잘 안보이는 이유가, 귀가 잘 안 들리는 이유가 노환에만 있지 않다. 그 시절에 젊은 아낙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었다. 노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60년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임을 알고 있는 시인의 역사의식을 두 심사위원은 높이 사기로 했다. 생략과 비약이 좀 심한 것이 약점이지만 독특한 은유법과 의미심장한 상징화는 칭찬해줄 만한 장점이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소 발굽에서 꽃피고(박윤우)’가 단연 높았다. 문제는 이 작품을 받쳐주는 작품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 한 편만 놓고 본다면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도 화제가 될 시인데 아쉽고 안타깝다.
‘도배사(홍정선)’의 튼튼한 주제의식, ‘늦은 마트(권수옥)’의 따뜻한 시선, ‘절름발이(이경동)’의 세심한 관찰력, ‘스타킹페티시(이인영)’의 신세대적 감각도 놓치기 아까웠지만 내년을 기약하며 더욱 열심히 습작하기 바란다. 한두 해 늦게 등단해서라도 오래오래 시를 쓰는 것이 중요한 일이므로.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낙선자들에게는 격려의 악수를 청한다.
란제리도 망사스타킹도 액세서리도 색 바랜 바바리코트도 한데 뒤엉켜있던 가판대 가을 정기세일을 마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마네킹들이 서 있다 가로등 불빛이 훤하게 조명을 비추는 쇼윈도 은행나무의 옹이가 생식기처럼 열려 있다 저 깊은 생산의 늪에 슬그머니 발을 넣어보는 저녁 어둠이 황급히 제 몸을 재단해 커튼을 친다
첫눈이 내린다 칼바람을 따라가며 천을 박는 발자국들 재봉틀 소리에 맞춰 나무의 몸속에서도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길도 불빛도 사람들도 왕십리 돼지껍데기집 화덕 위에 불판으로 모여든다 올해의 유행은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 패션 마지막 단추까지 꼼꼼하게 채운 새들은 어디까지 갔을까 오래 서 있어서 아픈 플라타너스 무릎에 가만히 손을 얹는 홑겹의 흰 눈발
[당선소감] / 강서연
내 詩는 길에서 주웠다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기다리는 전화는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았으므로 금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내달려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행하는 이 없이 혼자 나선 길은 낯설고 두려웠다. 대전 시내를 벗어나 세종시 입구에서부터 엉키기 시작한 길은 영영 풀리지 않는 낡은 노끈 같았다. 추위와 굶주림보다 막막함이 더 외로웠다.
그런 와중에 울려온 전화벨은 내 삶의 내비게이션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길이 열리고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야 할 방향을 지침 해놓은 화살표를 따라 나는 이제 힘껏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상처투성이인 내 삶에 고운 새살이 덮이는 것만 같았다. 하늘도 그동안 수고했다고 위로해 주려는 듯 어깨 위로 토닥토닥 함박눈이 쌓였다.
그제야 강변에 누워 있는 나무와 풀들의 나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들의 벗은 몸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몸에 따뜻한 시의 옷을 입혀야 한다는 소명감이 든다. 이것은 ‘내 시(詩)는 길에서 주웠다’와 같은 말이다.
자전거로 강변을 달리고 돌아올 때면 주머니 가득 돌멩이, 풀꽃, 바람, 물결, 새소리, 햇살들이 도란도란 담겨 있었다. 작은 풀씨 하나에도 꼼꼼하게 이름을 달아주느라 밤을 지새웠다. 내 이런 수고와 노력을 늘 부추겨 주시고, 생각해보면 참 사람 따뜻한 주병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사유, 사유, 사유, 통찰, 통찰, 통찰! 귀에 못을 박아주시던 배재대 강희안 교수님께 오늘만큼은 채찍보다 칭찬이 더 듣고 싶은 날이다. 새벽녘까지 불 켜놓은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밝게만 자라준 내 영혼의 노래 같은 세 아이들에게 이 모든 영광을 돌린다. 험난하고 난해한 길일지라도 같이 걷고 있기에 힘이 되는 문우 례, 숙, 정, 헌, 주, 수, 영, 봄, 화, 아, 희 등과 ‘불이문학회’ 회원님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시고 이름 불러주신 영남일보와 이하석 선생님, 곽재구 선생님께 감사의 큰절을 올린다. 더 많이 통찰하고 더 깊이 사유해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외투 같은 시를 써나가리라 다짐해 본다.
[심사평] / 곽재구 시인, 이하석 시인
시인의 따뜻한 시각에서 詩 정신의 향기 느껴져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 난해한 화두에 부딪힐 때마다 지나간 1980년대를 떠올린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그 시절은 시에 있어서만은 풍요하기 이를 데 없는 시절이었다. 교사도 목수도 수녀도 철근공도 의사도 버스안내양도 자신의 목소리로 시를 썼고 시집을 펴냈다.
사람들은 시를 통해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곤궁함을 지워내고자 했고 수십만 부 이상 팔려나가는 시집들이 이어졌다. 세계 문예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현상을 언론은 ‘시의 시대’라 지칭했다.
무엇이 그 시절의 사람들을 시 속으로 불러들였을까. 시정신이 지닌 향기가 그 답이라 할 것이다. 시는 결핍 많고 외로운 세계의 심장에 켠 따뜻한 등불 같은 존재이다. 가난하지만 결코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고 외롭지만 결코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궁핍한 생명들을 껴안고 따뜻한 지상의 꿈 쪽으로 걸어가게 한다. 익숙함과 타성에 젖은 시간들을 거부하고 평범 속으로 젖어드는 개인의 삶이 지닌 치욕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시 속에서 사람들은 정직하게 자신의 삶을 바라보았고 영혼의 정화가 뒤따랐다.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지성과 일치된 감정 속에서 자아와 세계를 온전히 느끼는 법을 찾은 것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우리들의 언어 치료시간’ ‘이층의 꽃집’ ‘가로수 마네킹’이었다.
‘우리들의 언어 치료시간’은 언술의 명료함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지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으나 이를 진술의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 흠이었다. 모두 알 수 있는 진술은 시의 긴장을 해치게 된다. 재해석된 평범한 풍경들이 갖는 생명력에 대해 성찰의 시간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층의 꽃집’과 함께 응모한 시편들이 지닌 사유의 깊이는 소중한 것이다. 이층의 꽃집에 있는 화분 하나가 꽃을 피우는 동안 펼쳐지는 이미지의 파편들은 자유연상의 즐거움과 세계에 대한 사랑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모된 시편들 속에 편향된 이국취향의 목소리는 이 응모자가 밟고 있는 땅이 어디인가 하는 의문을 지니게 했다. 이국정서 속에 자신의 고유한 삶의 정서를 새길 수 있다면 평가는 바뀔 것이다 .
‘가로수 마네킹’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선자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헐벗은 겨울 가로수들을 따뜻이 응시하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모습 속에 시 정신의 향기가 느껴졌다. 첫눈을 맞으며 왕십리 돼지껍데기 집 화덕으로 모여드는 사람들과 오래 서 있어서 아픈 플라타너스의 무릎에 손을 얹는 눈발의 모습은 이 응모자가 지닌 감정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 자신과 세계의 결핍을 예리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응시한 작품들, 심장의 쿨럭임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시편들로 독자의 마음을 훔치는 시인이 되길 바란다.
10년 넘게 시를 써오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를 쓸 수 있는 직업을 찾았으나 시를 쓰라고 배려해주는 편한 직업이 있을 리 만무했다.
시 쓸 시간을 벌 수 있을까 해서 숙박업을 하다가 있는 돈까지 다 까먹었다. 시 때문에 여유롭던 나의 생활은 팍팍해졌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시를 통하여 내면을 치유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었다.
여러 번 신춘문예에 응모하였으나 최종심에만 몇 차례 올랐을 뿐이다.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좌절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올해까지 등단이 안 되면 등단을 포기하겠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국제신문으로부터 당선 소식을 듣고 힘을 얻어 다시 시를 쓸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자리를 빌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린다. 어머니는 운명하기 며칠 전까지 막내아들인 나를 걱정하시며, 누님한테 유언까지 남겼다. 지난달 16일이 어머니의 사십구재였다. 구인사에 내려가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다.
시의 길로 이끌어주신 강인한 선생님, 정숙 선생님, 조연향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시마패 회원님들 사랑합니다. 그리고 시를 쓰며 만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딸, 아내, 다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남송우 박남준 안상학, 세 분 심사위원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 1959년 경북 영양 출생. 영양고 졸업
- 현재 서울에 살며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음
- 제1회 2400만 원 고료 암사동유적 세계유산 등재기원 문학작품 공모 대상(2013년)
[심사평] / 남송우 문학평론가, 박남준 시인, 안상학 시인
삶 현실감 있게 보여준 공감 능력 높이 평가
한국 문단의 새 별이 되기 위해 시 부문에 응모한 이들의 연령층은 20대에서 60대에 걸쳐 있었고, 지역은 전국적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참으로 많았다.
332명 응모자의 숫자만큼 작품의 우열도 편차가 컸다. 시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작품에서부터, 기성의 시를 초극해보고자 하는 의욕에 넘친 개성적이고 실험적인 시편까지 다양했다. 이들을 두고 시의 응축적인 구성력, 개성적인 상상력, 이미지화의 능력, 그리고 리듬 의식이 잘 융합된 빛나는 별이 될 작품을 골라내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1, 2차의 거름을 통해 남겨진 작품들은 수준작이 많아 심사자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했다.
본격적인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황미현의 '다랑어 도마氏', 이은주의 '개인별 오아시스', 종이정의 '묵화', 이윤하의 '4분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 이명우의 '스티커' 등이었다. 이들은 앞으로 시인이란 이름표를 달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황미현 이은주 종이정 3명은 투고된 다른 작품들이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과 같은 높이의 수준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윤하의 '4분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와 이명우의 '스티커'가 최종 논의 대상이 되었다.
전자는 개성적인 상상력이 장점으로, 후자는 삶의 진정성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공감력이 높이 평가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고단한 오늘의 삶을 무리 없이 이미지화한 후자에 심사위원 모두가 더 공감하여, 이를 당선작으로 밀었다. 새로운 별이 된 것을 축하하며, 큰 별로 성장해 나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