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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나는 은혜 받을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지난주 우리 가정에 이슈가 있었어요. 큰 이슈는 아닌데 이슈가 뭐냐 하면 부정적인 말이에요. 부정적인 말과 그리고 생각과 부정적인 사람에 대한 이슈가 저희 가정에 잠깐 있었습니다. 우리 가정의 부정적인 말들이 이슈가 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가 부정적인 영향력 아래 살았고 목회자로서 많이 훈련받고 연단 받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정적인 말과 생각이 제 입을 통해서 외부로 이렇게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겐 당연히 조심하죠. 여러분 그 정도 제가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가족은 편하다 보니까 내 본래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요. 어떻게 보면 영성이라는 것은 가족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냐가 진정한 영성일 수도 있어요. 나머지의 신앙은 다 이렇게 포장된 거잖아요. 일단 교회 올 때 우리 옷부터 이렇게 다르게 입고 오고 또 마음이 약간 다짐을 하고 오잖아요.
일단은 내가 담배 냄새를 풍기지 말아야지 뭐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어쨌든 다짐을 하고 오니까 교회에서 여러분의 부정적인 모습이 이렇게 발현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부정적인 것을 우리 사회가 그 대수롭게 여긴다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 좀 부정적인 사람을 어떤 면에서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볼 때도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좀 분별이 필요한데 부정적인 것과 비판적인 건 좀 달라요. 비판적인 능력은 키워야 되지만 부정적인 것은 우리가 돌보면 안 돼요. 만약에 여러분이 부정적인 것들을 성품이나 말들이나 여러분의 내면에 키우기 시작하면 이거는 순식간에 크기 시작해서 여러분을 잠식하게 될 거예요.
부정적인 것과 비판적인 것은 구별을 해야 됩니다. 부정에 대해서 좀 기분 나쁘게 말을 하면 아마 오늘 설교는 좀 기분 나쁜 분들이 있을 거예요. 저도 설교하면서 기분 나쁠 수 있어요. 제 이야기가 들어 있으니까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 기분 나쁘게 말하면 여러분이 부정적인 사람과 같이 살거나 부정적인 사람과 같이 일하거나 부정적인 사람이 여러분의 주변에 있다면 여러분은 불행한 사람 왜냐하면 부정적인 사람은 늘 매사에 부정적이고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대안을 말하는 게 아니라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요. 대안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불평과 불만이 많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은 자신의 삶을 수렁에 빠뜨리는 것과 같아요. 만약 여러분이 부정적인 사람이라면 그리고 여러분 주변에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면 오늘 말씀에 우리가 함께 좀 귀를 기울여야 돼요.
왜냐하면 저만 부정적인 사람일까요?
저만 문제, 저희 가정만 문제가 있어서 제가 부정적인 문제를 안고 내가 가지고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 한국이라는 이 나라 자체가 이 부정적인 생각과 말과 판단들과 그리고 견해들과 생각들이 가득 찬 나라에 우리가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것들과 잘 싸워내려면 부정적인 사람의 특징을 좀 알아야 되겠죠. 이게 되게 일반적인 거예요. 여러분이 아무 데나 찾아봐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겁니다.
첫 번째로 부정적인 사람의 특징은 예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수위를 조절하지 못해요. 못하는 거예요. 비판의 방식이나 비판의 수위를 조절하지 못해요. 부정적인 사람은 상대방에 따라서 내 말이나 행동이 조절돼야 된다는 것을 잘 몰라요. 그래서 조절할 기능이 없습니다. 힐난이나 조롱의 언어가 입에 배어 있고 이걸 빼면 말이 안 되고 과격한 표현으로 인해서 항상 공동체에 수시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부모나 가족, 이웃과 동료에 대해서 예의가 없어요. 더 나아가서 부정적인 사람과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두 번째로 부정적인 사람은 사소한 것에 집착합니다. 그러니까 작은 실수를 못 넘어가요. 그러니까 큰 실수는 오히려 잘 넘어가는데 작은 실수를 잘 못 넘어가요. 그러니까 큰 실수를 잘 넘어간다고 해서 대범한 사람이 아니에요. 실제로 부정적인 사람은 작은 실수를 못 넘어갑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흥분을 해요. 말고기를 잡고 정작 중요한 문제는 등한시하고 정말 작고 하찮은 문제에 목숨을 겁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사람은 그릇 자체가 아주 작기 때문에 유치하고 치사해요. 그러니까 어른이 유치하고 치사한 건 그 사람이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대화의 내용도 유치하고 행동도 유치합니다. 대부분의 진상들은 부정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세 번째로 부정적인 사람의 특징은 대화나 사건의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합니다. 하늘을 보라고 하면 산을 보고 달을 보라고 하면 달을 가르치는 이렇게 손가락을 봐요. 앞에 말했던 것처럼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물고 늘어져요. 그 때문에 정말 중요한 문제는 해결도 하지도 못하고 작은 문제에 공동체나 가정이 그냥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맥락이 아닌 자기 멋대로 오해하고 그리고 비난을 합니다.
여러분 일에는 맥락이 있잖아요. 대화에도 맥락이 있어요. 부정적인 사람은 그것 자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 때나 오해하는 거죠. 사람이 대화하다 보면 오해할 소지가 있는 영역이 있어요. 그 영역에서 오해를 하는 건 정상적인 거예요. 그런데 이 부정적인 사람은 아무도 오해하지 않는 영역에 오해를 해요. 그래서 문제를 일으키고 공동체가 분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히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들은 되게 치졸한 사람들인데 이상하게 힘과 권력 앞에는 아주 복종을 잘해요. 힘이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난하다가도 자기 옆에 힘이 있는 사람이 등장하면 그 사람의 논리를 순식간에 따르게 되는 게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네 번째로 부정적인 사람은 개선의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좋지 않은 방법과 항상 좋지 않은 방향만 제시해요. 그러니까 대화를 하면 해결할 수 없는 방향을 제시하고 해결할 수 없는 방법을 가지고 와요. 그러니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죠. 대부분의 결론 부정적인 사람의 대부분의 결론은 자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거죠. 심지어 자기가 죽어야 한다는 거예요. 항상 좋지 않은 쪽으로 해석을 하고 해결책이 없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그래서 시간과 정력을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게 합니다.
자기 일은 엉망으로 하면서 남을 탓하고 항상 누군가를 핑계합니다. 자신의 잘못은 정당화하고 남은 비난하고 비하합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사람은 고치기가 어려워요. 다섯 번째 이유가 부정적인 사람이 자기 성찰이 없다고 그러는데 자기 성찰이 없기 때문에 고치기가 어려운 겁니다.
다섯 번째로 부정적인 사람은 자기 성찰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반성이 없기 때문에 자기를 잘 몰라요. 자기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자기의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이 부정적인 사람은 자기에게 너무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해요. 그래서 자기 개선이 안 되는 거죠. 여러분 사람이 자격에 관대하잖아요. 그러면 못 고쳐요.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기에게는 엄격해야 자신을 고칠 수 있지 자기는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하면 자기는 못 끝입니다.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상하게 보고 심지어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비롯해서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다 비정상적으로 보여요. 이게 부정적인 사람의 일반적인 특징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과 제가 이 부정적인 사람을 옆에 두고 있는데 내 삶에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큰 잘못이에요. 착각이에요. 결국 부정적인 사람에게 휘말려서 우리조차도 부정적인 사람이 되게 됩니다.
썩은 과일은 멀쩡한 과일을 금방 썩게 해요. 과일을 판매하는 분들은 가장 자주 빈번하게 해야 될 일들이 썩은 과일을 이렇게 골라내는 것입니다. 멀쩡한 과일을 썩게 하지 않는 방법은 썩은 과일과 분리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사람은 그 해악이 너무 커서 말씀이 아니고 복음이 아니라면 그 사람과 분리하는 것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최선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좀 더 하면 저는 지난주 좀 부정적이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제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 저 말이 헷갈렸네요. 공부를 못한 건 아니었어요. 저희 동네에 물어보시면 압니다. 공부를 못한 건 아니었어요. 어쨌든 늘 등수에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공부를 더 잘하는 사람과 비교가 됐어요. 이런 저의 부정적인 배경이 때로는 제 아내와 아이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주에 제가 어떤 생각을 했냐 하면 가족들이 저의 부정적인 모습에 이렇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제가 너무 놀랐어요.
내가 이렇게 있다가는 우리 예쁜 아들과 안 되겠다.
헷갈려 잘생긴 아들과 예쁜 딸과 못 살겠더라고요. 행복하게 못 살겠더라고요. 되게 그 마음이 좀 두렵기도 하고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부정적인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50대 60대는 부모가 부정적이어도 그것을 자기의 운명으로 여기며 살았어요. 우리가 그렇게 살았잖아요. 우리의 부모들이 우리의 선배들이 선조들이 부정적이어도 그 가정을 떠나거나 그 가정을 깨거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잘 살아봤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부정적인 부모와 사는 것을 싫어해요. 왜요?
그것이 자기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속에 작은 다짐을 해봤습니다.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것과 좀 더 싸우자. 물론 많이 싸웠어요. 근데 좀 더 싸워야 되겠더라고요. 좀 더 싸워야 교회에서 좋은 리더로 쓰고, 좀 더 싸워야 가정에서 좋은 남편과 아버지로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은 만약이에요. 만약 만약 여러분에게 다시 아내와 남편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절대로 부정적인 사람은 만나지 마십시오. 그분들은 교회도 엉망으로 만들고 여러분의 가정과 삶도 엉망으로 만들 것입니다.
청년들에게 부탁합니다. 배우자가 될 사람이 가난하고 얼굴이 예쁘거나 잘 생기지 않아도 학별이 별로여도, 소득이 많지 않아도 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사람과 결혼하십시오. 그리고 만약 지금 여러분이 긍정적인 사람과 산다면 여러분은 정말 행복하신 분이에요.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 여러분의 부모나 여러분의 형제들에게서 늘 긍정적인 말이 나와서 여러분을 격려하고 여러분을 이렇게 잘 세워질 수 있도록 격려한다면 여러분 지금 정말 행복한 사람들과 살고 계신 거예요. 이 사실을 조금 마음에 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긍정적인 부모, 긍정적인 스승, 긍정적인 어른들을 만난다는 건 행복한 거예요. 우리 교회 모든 어른 성도들이 긍정적이면 지나가는 청년들이나 우리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겠죠. 그 아이들은 그냥 교회에서 들은 말로만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여러분과 제가 긍정적으로 바뀌어서 그냥 우리를 통해서 그냥 교회 올 때마다 한두 마디 듣던 그 말 때문에 우리와 함께 이곳에 예배하는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멋진 인생을 살 수도 있어요.
여러분 교회는 큰 규모도 물려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정말 중요한 건 아이들의 영혼의 소중한 것을 심어주는 거예요. 그 소중한 것이 뭐냐 저는 긍정적인 생각과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시선이나 말이 무서운 것은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사람에게 가면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긍정적인 사람에게 가면 멋진 사람이 되기 때문인 거예요.
부정적인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도 완전히 쓸모없는 사람을 만들고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상황을 만듭니다.
이제 성경 말씀으로 좀 돌아가면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나머지 10명의 정탐꾼이 본 가나는 다른 가나안이 아니라 같은 가나안이었어요. 따로 가서 본 것도 아니고요. 함께 가서 봤어요. 다른 곳을 본 것도 아니고 한 곳을 봤어요.
그런데도 10명의 정탐꾼에게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삼키는 땅이었어요. 여호수와 갈렙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부정적인 시각 때문이었어요. 이스라엘 민족은 어제나 오늘이나 같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10명의 정탐꾼으로 인해서 갑자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뚜기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메뚜기로 보이게 된 거예요. 아무런 실제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어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같은 사람이었고 정탐군이 본 땅도 같은 곳이었고 함께 갔었어요.
여러분 근데 다른 다르게 봤던 거죠. 2명은 긍정적으로 보고 나머지 10명은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첫 번째로 가나안 땅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한 10명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부정적인 사람이 많을수록 원망과 불평이 공동체에 가득 차게 돼요. 그러니까 모세는 여러분 탁월한 지도자예요. 모세만한 지도자를 찾을 수 없어요.
근데 그 사람에 대해서 원망하게 만든 거죠. 그게 부정적인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여러분과 제가 쉽게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성경에 기록됐고 우리가 성경을 묵상하니까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모세가 우리 앞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도저히 모세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지 못할 거예요. 그만큼 특별한 사람인 거죠. 모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한 게 아니에요. 절대로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그런데도 10명의 정탐꾼들로 인해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그 모세를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을 보면 모세가 어떻게 평가를 받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한번 같이 읽습니다. 시작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과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정자 여호수아는 벼막을 떠나지 아니하더라.
하나님과 대면했던 사람 바치 하나님을 친구처럼 대할 수 있었던 사람이 모세였어요. 여러분 이런 모세의 삶과 영성을 우리가 비교할 수 있을까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근데 부정적인 사람에 의해서 모세가 원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들은 부정적인 사람은 공격하지 못하는 게 없어요. 여러분 부정적인 사람이 모세를 공격했다. 그럼 저를 공격하지 못하겠습니까? 부정인 사람이 부모를 공격하지 못하겠어요? 부정적인 사람이 교회를 공격하지 못하겠냐고요.
다 공격해요.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과 견해와 삶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 무서운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혹 여러분이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했다면 여러분 무서워해야 돼요. 소름 끼쳐해야 돼요. 두려워해야 돼요. 그것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발견한 그 어떤 것보다 여러분을 최악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에요. 저처럼 지난 한 주간의 저처럼 혹 여러분들의 삶에 그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했다면 제가 그렇게 반응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소름 끼쳐 하고 두려워해야 돼요. 그리고 무서워해야 돼요. 이게 부정에 대한 성도들의 올바른 반응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부정을 잘 통제하고 다스린다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요지는 제가 그만큼 좀 부정적인 것을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결국 하나님까지 공격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저주의 말을 퍼붓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한번 부정적인 것이 여러분 발동했을 때 여러분의 얼굴과 여러분의 입에서 어떤 표정이 나오고 말이 나오는지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도 공격의 대상이었을걸요 교회도 공격의 대상이었을걸요?
하나님이 어떻게 여러분과 저의 공격의 대상이 되나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가 어떻게 여러분과 저의 공격의 대상이 될까요?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어떻게 우리의 공격의 대상이 될까요?
부정적인 생각 견해, 삶 때문입니다. 요즘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을 향해 악행한 악평으로 인해서 자신들도 죽음의 재앙을 맞이해야 했고, 그들에 의해서 선동되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죽음의 재앙을 광야에서 다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들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말이 온 민족의 희망을 빼앗아 간 거예요.
여러분 부정적인 말은 한 개인의 삶의 희망도 빼앗아 가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들은 부정적인 말들이 지금 여러분의 머리에 다 새겨져 있을 거예요. 그게 여러분의 희망을 빼앗아 간 거예요. 여러분 삶의 의지도 빼앗아 간 거예요. 삶을 대한 노력도 빼앗아 갔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망은 출애굽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망은 가난이었어요.
근데 이 부정적인 말이 민족의 희망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래서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10명의 정탐꾼은 이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게 됐을까?
제가 예전에도 말씀드렸죠. 애굽에서의 400년의 종사이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400년 동안의 부정적인 경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감정을 갖고 삶을 살게 했던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부정적인 공간에 오래 노출이 되면 노예는 부정적인 거죠.
여러분 노예가 긍정적일 수 있나요?
여러분이 노예로 자랐어요. 여러분이 노예예요. 여러분 그게 긍정적인 거예요. 부정적이죠. 당연히 그러니까 노예로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적인 감정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이 되고 부작용인 삶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이 됐던 거예요. 그래서 부정적인 삶과 견해와 감정을 가지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불쌍한 사람들인 거죠. 선택할 수 없었잖아요. 태어났더니 애굽이었어요. 태어났더니 애굽이었어요. 어떻게 해요?
여러분과 저도 마찬가지예요. 태어났더니 부정적인 아버지 밑이었고 태어났더니 부정적인 어머니 밑이에요. 태어났더니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동네였고, 태어났더니 부정적인 사람이 많은 주변에 많았어요.
여러분과 저도 우리 중에 누구도 선택하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들 대부분 애굽과 같은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불행한 사람들인 거죠. 여러분 우리가 좋은 부모는 자녀가 이 부정적인 환경에 노출되지 않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생을 시키지 말라 개념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고생을 해도 좋은 동료가 있는 직장 고생을 해도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는 공간 구성을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섭리로 해석할 수 있는 그런 공간에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근데 그렇지 않은 공간에 있으면 우리는 부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했잖아요. 그래서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또 부정적이었을까요?
자기의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애굽을 떠나왔어요. 근데도 왜 부정적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여러분 인생의 수정은 하나님께 얼마나 노출되냐가 인생의 수정의 정도를 좌우해요. 나의 삶이 매일 말씀에 얼마나 노출되었느냐, 나의 삶이 매일 하나님께 얼마나 노출되어 있었느냐가 인생을 좌우하게 됩니다.
출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은 떠나왔지만 아직 하나님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았어요.
그래서 부정을 제거할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여러분의 언어가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미래를 망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정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인해서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여러분일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주변도 불행하게 만들고 자기도 불행해져요. 곤충은 성장을 위해서 탈피하는 과정을 거의 다 겪습니다. 더 나은 영적인 성장을 위해, 더 나은 영적인 공동체가 되기 위해, 더 나은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부정적이라는 못된 껍질을 우리가 좀 탈피해야 돼요. 이 못된 껍질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행이 길어지고 말씀 앞에 더 많이 내가 노출되어지면 짙게 흐물흐물해지고 벗어지게 돼요.
여러분 탈피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뭐 가재나 이런 메미 같은 곤충들이 탈피하다가 죽는 경우는 많지는 않더라고요. 만약에 죽었으면 그게 보였을 텐데 그냥 대부분 껍질로 보이는 걸로 봐서는 탈피는 어느 정도 건강하면 다 할 수 있다는 그런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여러분과 저는 이 부정적인 삶이라는 못된 껍질을 이렇게 입고 태어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성장이란 이 못된 껍질을 벗을 때 가능한 거예요. 이 못된 겁실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행이 얼마나 더 길었느냐에 달려서 내가 쉽게 벗을 수도 있고 못 벗을 수도 있어요. 내가 하나님 말씀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고, 내 은혜의 공간에 내가 얼마나 많이 노출되고, 말씀 앞에 얼마나 자기 자신이 말씀과 싸웠는지가 이것을 결정하는 거예요.
좋은 부모란 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 못된 껍질을 탈피한 부모가 좋은 부모인 겁니다. 좋은 스승도 마찬가지예요. 자기의 못된 이 껍질을 벗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좋은 스승이에요.
좋은 성도도 마찬가지예요. 이 못된 겁줄을 벗으려고 하는 성도가 좋은 성도인 것입니다. 그러려면 예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더 길어져야 하고, 말씀과 함께하는 시간도 더 길어져야 하고, 성령과 동행하는 시간도 더 길어져야 됩니다. 그래야 부정적인 사람을 내가 부서 던질 수 있어요.
저는 끝까지 제가 부정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을까 봐 두렵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저와 오래 한 여러분에게서 혹 부정적인 판단과 또 생각들이 나올까 저는 그건 더 두려워요. 더 두려워요.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정말 꼭 물려줘야 할 유산은 긍정적인 부모예요. 그리고 긍정적인 신앙의 선배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우리 교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음 들은 말씀이 하나도 기억나지도 않아요. 배웠던 찬양도 하나도 생각나지도 않아요. 아무것 생각나지 않아도 그 아이들이 교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분에게 들은 그 긍정적인 평가로 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 안에 살 거예요.
이제 여러분 사역입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는 정말 감사하게도 원래도 그렇게 하실 줄 믿고 제가 하는 거예요. 항상 자체 재정이 필요 없을 만큼 성도들이 부서를 많이 도와줘요. 갔다 와 보면 자기 재정은 거의 안 쓴 거예요. 성도들이 헌금 기도하고 개인적으로 다 후원하신 거죠. 후원하신 걸로 부서의 사역이 다 돌아가요. 청년부는 또 제 친구가 매년마다 이제 숙박 비용은 다 대주잖아요. 어쨌든 그래서 다 이렇게 돌아가요. 원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 다음 세대에게 좀 긍정적인 말을 하는 좀 여름이 됐으면 좋겠어요.
야 너 이쁘다 야 너 잘생겼다. 너 맛있게 먹어.
여러분 눈에 우리의 다음 세대가 멋지게 보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 기쁨이 되는 여러분 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아이들이 성경 말씀 한 구절 기억도 못해도 여러분에게 들은 그 메시지를 듣고 평생을 이 교회 마당을 떠나지 않는 복이 우리 재단 위에 부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