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원으로 그 아이 영혼을 사라!
나는 자주 인도 형제들과 직원 그리고 장학생들로부터 돈을 달라거나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직접 면전에서 요청하는 사람도 있고 지인을 통해서 전달하는 사람도 있고 이 메일이나 카톡, 텔레그램으로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
친하던 친하지 않던 간에 기습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너무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기분대로 라면 열 받은 대로 “NO” 라고 소리를 질러야 하지만 그들의 가난과 비참한 현실을 너무 잘 알기에 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그래서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NO”를 삼키는 대신에 “기도하세요.”라고 권면하곤 한다.
그 동안 집을 사는데 돈이 모자란다며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은퇴하는데 집이 없어서 집을 짓게 도와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부모님이나 친인척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입원비가 없다며 빌려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노트북 컴퓨터를 사달라는 학생도 있었고 사설 학원비를 대달라는 학생도 있었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사서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영양실조로 죽을 것 같다며 도움을 호소하는 청년도 있었고, 등록금을 요청하는 학생도 있었다. 수술비를 대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딸의 지참금을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는 선거에 출마하였는데 선거비가 모자란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도움을 요청하면 속으로 ‘상식 이하의 사람들’이라고 매도하며 나를 ‘호구’로 본다고 욕하고 화를 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는 오죽이나 힘들면 나 같은 외국인에게 하소연 하겠는가 싶어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개인들의 사적인 일들을 은밀히 도우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해 놓은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경험으로 말미암아 나는 언제 어디서나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함께 수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예비 되고 준비되는 것은 아니므로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할 만하였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개인 수발이 보람차면서도 힘들었고 때로는 진위가 의심스러워
도우면서도 은혜를 받지 못하였다. 특별히 청년들의 요청은 나로 하여금 나쁜 탐정 노릇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여기 있고 그들은 인도에 있으니 그들이 나를 속이려고 하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청년이 카다파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허가서를 받았다면서 등록금 청구서를 보냈다. 청년의 대학 입학을 축하하고 축복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보아도 서류가 가짜였다. 의심을 하면 안되지만 나는 그 지역에 사는 분에게 대학교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내가 의심한대로 서류는 가짜였다. 나는 꾸짖지 않는 대신에 충고를 하였다. ‘당신의 적성은 회계학과보다 컴퓨터디자인이 맞으니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빨리 컴퓨터 디자인 쪽으로 전공을 바꾸라. 그러면 등록금을 지원하겠다.’ 라고. 다행스럽게도 그 청년은 대학교를 포기하고 취업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주었다.
그 뒤 여러 사람들이 졸업 논문비, 특강비, 의료비, 사설학원비, 노트북 컴퓨터, 호스텔비 , 생계비 등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공부와 생계비 그리고 의료비에 대해서는 가능한 그대로 돕고자 하므로 적당히 가감하며 공들여 지원을 하였다. 특별히 취업을 위한 사설학원비와 숙식비를 장학금으로 지원한 것이 소문이 날 것이므로 앞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요청을 해올 것을 예상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두 명의 청년이 지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였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청년들과 고아들을 위해서 취업을 위한 장학금을 계속 지원하여 청년들에게 꿈을 주려는 소망 때문에 나는 가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어느 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건실한 청년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자신이 우수 사원으로 선정되어 세르비아에 있는 자기가 근무하는 회사의 지 회사에 1년 동안 파견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세르비아에서 1년 일하고 다시 돌아와서 현 회사에서 2년을 근무하는 조건이며 월급은 네 배나 더 많이 준다고 하였다. 그는 가고 싶지만 용해작업이 너무 힘들고 자신이 에이즈 환자라서 망설여진다며 나에게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물었다.
나는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회사에 알리고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자신이 회사에서 1년 동안 열심히 일하여서 회사가 자기의 성실성과 열심을 인정하여 유럽으로 파견하려고 하는 것인데 건강 때문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서 기가 막힌 메시지가 왔다.
맘!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저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가 없어 이제 말씀드립니다.
1년 반 동안 취업해서 일을 했으나 돈을 모으지 못하고 사탄의 탐색에 빠졌어요.
매일 지옥에서 살아요.
돈을 대출 받아서 썼는데 갚지 못해서 너무 괴로워요.
사실을 숨겨서 죄송해요.
제가 마음을 다하여 이사야를 믿게 되어 그런 탐색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힘들게 번 돈을 유혹 때문에 다 잃었어요.
저는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고난을 당하고 있어요.
저는 날마다 자신에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강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해요.
만일 제가 맘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사탄이 나를 지옥으로 데리고 갈까 두려웠어요.
좀 더 일찍 말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맘! 지금 너무 괴로워요.
도와주세요. 맘!
사랑해요. 맘!
부기
그래서 저는 세르비아에 가서 일하려고 하였어요.
그런데 지금 막 회사로부터 건강 문제로 거부당하였어요.
맘! 저는 어떻게 해요!
나는 이 편지에 아연실색하였다.
"맘"이라는 말도 귀찮고 싫어졌다. 토하고 싶었다.
무엇이 사실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진위를 파악하기를 포기하였다. 그의 친구 몇 명에게 연락을 하면 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었다. 사실 일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약에 거짓일 경우 그가 당하게 될 소외와 고통을 생각하며 힘들어도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 가기로 하였다.
먼저 매월 받는 월급 액수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돈을 빌린 은행과 금액을 확인하였다. 돈을 빌린 이유를 물었다. 가장 빠르게 진위를 확인 할 수 있는 것이 은행 통장과 돈을 대출 받을 때 사인을 한 증서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차마 요청할 수가 없었다. 대출이 사실이면 그가 그 증서를 사진 찍어서 보내주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고 슬픔이 오르르 밀려왔다.
그가 H은행에서 빌린 돈은 한국 돈으로 100만원 정도였다.
그의 한 달 월급은 한국 돈으로 25만원 정도였다.
대출 받은 이유는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생각대로 공부가 되지 않아서 공부를 포기하고 취업해서 빚을 갚으려고 했는데 빚도 갚지 못하고 현재 돈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철도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서 공무원이 되어 안정된 신앙생활을 하며 전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며 살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눈 먼 누나가 행복하게 살도록 돕고 싶다고 하였다. 그는 끝으로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버렸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자기의 보호자로 주셨다고 확신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인도 현실과 도무지 맞지 않았다.
취업 1년 6개월이면 24번의 월급을 탔고 그 돈은 6백만 원에 이른다. 공장의 경우에는 숙식이 다 제공되므로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한 생활을 할 경우 100만 원 정도의 은행 빚은 1년이면 충분히 갚고도 남는다. 그런데 빚을 갚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돈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인도 은행은 문턱이 높고 까다롭기 그지없다. 대출을 할 경우 담보나 직장에서 나오는 고정 수입이 없는 자에게 결코 돈을 빌려 주지 않는다. 회사는 돈을 통장에 넣어주고 은행은 통장에 입금되는 돈을 가장 먼저 인출해 간다. 그런데 그가 돈을 갚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에게 말 못할 고통스런 사연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의 힘과 의지로 풀 수 없는 사연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을 해서도 안되는 사연이, 어둠이, 고통이, 슬픔이, 아픔이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나는 그의 일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의 도움 요청에 일체 침묵하기로 하였다. 더 이상 이해가 되지 않는 점에 대하여 질문하지 않고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고 사연과 사실을 추궁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 아이에 대한 나의 마음에 찬바람이 불었다. 나는 냉정한 마음으로 종려주일 카드를 보내며 건강과 평화를 빌어 주었다. 그리고 그의 미래와 건강한 일상생활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였다.
그의 도움 요청 건에 가위표를 긋고 마음 밑바닥으로 내려 보내고 근 한 달 동안 미얀마 난민 사랑의 쌀 긴급구호와 부활절 계란 보내기와 빈민아동들을 위하 자매결연 기금 모금과 송금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문제가 불쑥 표면으로 떠올라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질문을 하였다.
“아버지! 그 아이 건은 어떻게 해요?”
“속아 주어라!”
“예에?”
“백만 원으로 그 아이 영혼을 사라!”
“백만 원으로 영혼을 사라고요? 좋아요! 그런데 그 다음에 또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그 문제는 다음에 가서 해결하면 되는 거지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 그것은 그 아이에게 결코 좋지 않아요. 바람직하지 않아요.”
“부모는 자식에게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다. 속아주는 것이 부모의 일이다.”
“속아주는 것이 부모의 일이라고요? 그럼 자식의 인생을 망치게 되잖아요.”
“내가 너희들에게 속아주지 않았으면 너희들 중에 세상에 살아 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가 너에게 속아주고 참아준 것을 기억해보렴. 그리고 그 때문에 네가 더 나빠졌는지? 좋아졌는지도 생각해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속아주고 참아주셨기에 내가 나 된 것이었다. 하나님의 속아주심처럼 부모님도 속아주고 참아주었다. 내가 자식이기 때문에 자식을 믿어준 것이었다.
그렇다! 그가 내 자식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어주었을 것이다. 믿어줄 뿐만 아니라 기꺼이 속아주고 벌써 돈을 보냈을 것이다. 맨발로 열두 번은 찾아 갔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를 확인하고 그 구덩이 속에서 자식을 끌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영혼보다 속지 않으려는 마음, 진위를 가리는 마음, 판단하는 마음, 돈을 먼저 계산하는 마음, 골치 아픈 일에서 일찌감치 손을 떼려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그까짓 백만 원으로 그 영혼을 어둠에 처박아 둔 것이었다.하나님께서 그를 나에게 보낼 때는 내가 그의 아픔을 품고 어둠에서 끌어내길 원하셨는데 나는 2차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나를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영혼을 사라 ‘는 하나님의 말씀이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나의 침묵으로 그가 받았을 고통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물결에 떠밀리며 소리쳤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2024년 4월 21일 주일 축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