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보와 야고보(소) 사도 [0503]
1코린 15,1-8 요한 14,6-14
2024. 5. 3.
주제 : 나에게 들리는 소리에 관하여...
오늘은 필립보사도와 소야고보로 불리는 사도성인을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필립보사도는 바르톨로메오 사도를 인도한 사람으로도 요한복음이 기록하지만, 우리가 오늘 복음에서 만난 표현은 예수님께 하느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청했다가 아쉬운 소리를 듣는 성인으로만 등장합니다. 아쉽게도 소야고보로 불리는 성인에 관련된 내용은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만나지 못합니다.
사람이 삶에서 드러내는 것은 자기의 목소리를 높이고, 자기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전제(前提)로 합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산다고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사는 사람의 일반적인 모습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모습을 그러하다고 표현하면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사람이겠습니까?
우리가 복음에서 본, 필립보사도를 설득하시는 예수님의 표현은 애절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도대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필립보사도에게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안에) 계시고,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안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세상의 삶에는 다른 사람의 설명으로 또 다른 사람을 바꾸거나 이해할 방법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일도 있습니다. 안타깝고 아쉬운 것을 표현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니 달리 드러낼 방법은 없습니다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말하는 것을 알아듣고 실천하는 방법이 되겠습니까?
바오로사도는 코린토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자기가 선포한 복음에 관한 내용을 말합니다. 그 내용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사람들에게 생명이 되었다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현실에 사는 우리가 복음에 관한 내용을 이렇게 알아듣는지도 궁금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 내용을 복음으로 알아듣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사는 것이 옳다고 하겠습니까?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리로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혹시 나보다 힘이 강한 사람이라면, 내가 그 앞에서 내 고집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바뀌는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소리가 나를 변화하게 할 힘이 있으려면 그 소리를 듣는 내가 들려오는 소리대로 충실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일입니다. 무엇인가가 내 귀를 울렸는데 그렇게 울린 소리가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나에게 들려온 복음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복음과 그 내용에 관하여 우리가 잘 생각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