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제26회 수주문학상 당선작]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 강산에
유현성
여기의 동물들은 거짓말을 사고 판다.
훌륭한 거짓말은 세계에 신빙성을 더해줌으로
우리에게 더욱 현실적인 진실은 필요가 없다.
토끼의 경우
어렸을 적 불렀던 노래 가사가 금서에 일부라는 것을 토끼는 알고
있다. 생산라인 A동에서 머릿속으로 가사를 부르며 토끼는 유물들
위로 공업용 거짓말을 붓는다. 공업용 거짓말은 3% 정도의 사실로
구성된 액체 유형의 말로 발음되는 휘발성이 매우 높아 늘 공업용
마스크를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독성의 거짓말에 감염될 수 있
어 대화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
생산라인 B공장의 한 구석에는 필리핀 앵무새를 사육장에 가둬
두고 약간의 사실과 함께 거짓말을 읊게 하는데 이때 흘리는 침을
모아 90% 이상의 거짓 농도로 압축해 드럼통에 담는다. 이것은 악취
가 매우 심하며 필리핀 앵무새들이 가끔 괴롭다고 이야기하면 방독
면을 부리에 씌우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게 한다.
생산된 거짓말 드럼통은 제약 회사에서 코미디언을 위한 알약으로
판매된다. 코미디언들은 대체로 긴장하면 진실을 내뱉기 마련이라 우
황청심환처럼 해당 알약을 복용해 유려한 유머를 선사한다. 웃음이란
건 대체로 진실된 경우가 많다. 체내에서 거짓말을 해독하면서 나오
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토끼는 공장 뒤 편으로 가 담배를 태운다. 비가
내린다. 공장 내부는 안전처럼 침묵이 가장 중요함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토끼는 연기와 함께 말을 내뱉는다. 강물에 몸 던져 쓴 편
지는 어디로 흘러가나
코끼리의 경우
코끼리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 코로 먹지요.
유서 깊은 노래가 코끼리에 대한 예언을 한다. 예언은 유예된 거짓
말이라서 예언의 시간이 되지 않으면 거짓일지, 진실일지 모른다. 오
늘도 코끼리는 그 시간을 기다린다.
코끼리는 코가 손이라서 인간들은 코끼리코를 하고 빙빙 돈다. 한
쪽 손으로 코를 잡고 다른 손으로 코끼리 코를 만든다. 회전하는 인
간들의 어지러움은 마치 원심분리기처럼 거짓된 마음을 뽑아내는 장
치와 같다.
코끼리는 고무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나라에서 가장 많은 거짓된
마음을 생산한다. 마음은 먹기에 달렸으므로 코끼리는 마음을 주면
코로 먹는다. 코로 먹은 마음은 엔돌핀을 생산하며 이 엔돌핀은 거짓
말을 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준다. 코끼리의 조증은 거짓말의 증상이
다.
코끼리는 마음에 취해 꽤 오래 일어나지 못한다. 육중한 몸을 코로
몸을 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함으로 앉은 채로 비틀거린다. 그 시간이
왔다.
코끼리는 코가 손이래.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서 수출 품목에 해당 되지 않는다.
과자를 주면 코로 먹지요.
반쯤은 맞는 말이라서
원숭이는 야유하며 바나나 껍질을 던진다.
원숭이의 경우
이 원숭이는 코끼리 띠다. 십이지신 중에 거짓말을 한 동물은 쥐라
서 이 나라는 쥐를 잡지 않는다. 원숭이는 속이기 위해 거짓된 표정
을 지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래서 진심을 가질 수 있다. 진
심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사랑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사랑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불행한 것이다.
원숭이는 유일하게 동물로 수출된다. 수출된 원숭이는 필요에 따라
TV에 등장하며 TV는 과도한 현실을 보여준다. 과도한 현실에 따라
사상이 구축되는 이 동물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혼란에 빠진 것은 쥐
들이었다. 쥐들은 드럼통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었다. 너무 많은 생존
의 진심들이 가득해서 세상을 위협할 수 있었다.
원숭이는 이때 이 드럼통을 관리한다. 도시의 인간이 쥐를 관리하
는 방법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거짓말이다. 코끼리 띠 인
것도, 그래서 원숭이로 하자는 것은 모두 코끼리 빼고 결정한 것이었
다.
인간의 경우 진실을 폭로하기 위해서 이 드럼통을 도시에 떨구기
도 한다. 드럼통이 터지면 생존한 단 한 마리의 쥐가 배를 두드리며
노래한다. 강물에 몸을 던져 쓴 편지는 어디로 흘러가나, 코끼리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 코로 먹지요. 어린이들은 이를 따라 부른
다. 공장에서 탈출한 앵무새가 창공을 날며 이를 따라 부른다. 독재
자가 예언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강물에 몸을 던져 쓴 편지를 읽은
것이다. 역사는 흐른다
♧ 원문 부천문화재단 출처
[제26회 수주문학상 심사평]
제26회 수주문학상 예심을 거쳐 최종 심의에 오른 20인의 작품들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시적 내공을 갖고 있어 당선작을 선정하는 데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중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 강산에」를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함께 하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주목 하도록 한 것은 기성 시단의 작품들과 다른, 응모자가 아니면 감히 누구도 주저할 수밖에 없는 미적 도발을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동물(토끼, 코끼리, 원숭이)의 시선을 통해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온통 거짓(위선과 위악)이 난무하며, 심지어 거짓에 아주 둔감해 버린, 그래서 거짓 없는 세상이 비현실적인 것처럼 비쳐지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대한 우화적 풍자를 산문시의 형식으로 재현하고 있다.
거짓말이 양산되는 것도 모자라 거짓된 마음을 생산하고, 이 거짓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할 수 있는 진심을 가진 사랑을 할 줄 알지만, 도리어 어찌된 영문인지 “사랑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불행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시의 마지막 행 “역사는 흐른다.”가 우리에게 던지는 풍자적 진실이 섬뜩한 비수 그 자체다.
지금 여기 우리는 이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자아내는 시인의 풍자적 진실에 어떤 웃음을 지어야 할까. 우리시의 음역대를 넓혀준 시인의 또 다른 활력과 도발을 기대해본다.
심사위원 고명철(문학평론가)
제26회 수주문학상에는 440명이 참여해 3,508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해를 더할수록 수주 문학상에 대한 높은 참여 열기가 이어지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2024년은 수주 변영로 선 생의 대표작인 『조선의 마음』(평문관 1924)이 출간된 지 100주년을 맞는다. 『조선의 마음』에 는 수주 변영로 선생의 대표작인 「그때가 언제나 옵니까」, 「논개」, 「봄비」, 「생시에 못 뵈올 님을」 등의 시와 여러 산문이 수록되었다.
수주문학관에서는 『조선의 마음』 복간을 비롯해 <수주 변영로와 그의 시대> 전시와 <수주 변영로 서거 63주기 필사 응모작> 전시 등의 행사 를 개최해 시민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예심을 거쳐 본심 대상이 된 작품은 스무 편이었다. 이 가운데 최종심 대상이 된 작품은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와 「날씨 : 맑음」이었다. 하지만 김난수의 경우 삶에서 느끼 는 신산고초의 감정을 솔직하게 다루고자 한 점은 좋았으나, 유구한 서정시의 형식으로 포괄 하기 어려운 다양한 정동들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형식미학에 대한 새로운 탐구가 아쉬웠다.
이 점에서 유현성은 서정시의 형식미학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 인간 문제를 토끼, 코끼리, 원숭이 등 비인간 존재(동물)의 관점에서 보려 했고, 산다는 것의 문제를 우화적이되 우화일 수 없는 ‘이야기’ 형식의 발견을 통해 풀어내고자 한 점이 눈에 띄었다.
특히 당선작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는 코로나 펜데믹 3년을 거치며 인간중심주의라는 오래된 중 력장에서 벗어나 다른 시선으로 시적인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이 시인의 음역대가 매우 넓다 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별내」 같은 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역 소멸의 문제를 서 사의 소멸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등 일정한 ‘이야기성’을 획득함으로써 자폐적 자 의식에서 벗어났다는 점 또한 큰 신뢰를 보내기에 충분했다. 시의 형식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면서 무엇이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형식미학인지를 꾸준히 고민하는 수상자의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고영직(문학평론가)
응모작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매우 높았다. 우수한 기량을 갖춘 작품들이 많았고, 여러 개 인적·사회적 아픔이 형상화되었다.
다단한 아픔을 섬세하게 보듬는 점은 분명 좋은 시의 덕목 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필요 이상으로 무겁고 엄숙하게 그리려는 태도는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더러 감정의 과장이 곧 시적 깊이를 획득하는 길이라 오인하는 것도 같 았다. 시를 조탁하는 기술적 유려함과는 별개로, 가난이나 죽음과 같은 익숙한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내용적 전형성을 벗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본심에서 최종으로 논한 시는 「날씨 : 맑음」외 6편과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 / 강산에」 외 8편이었다. 「날씨 : 맑음」외 6편은 자연스러운 어법과 활달한 감각으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응모작의 수준이 다소 고르지 못하다는 인상이 있었다. 몇몇 작품의 경우 사유를 조금 더 진척시켰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 / 강산에」 외 8편 은 편편의 완성도 면에서 우선 신뢰할 수 있었다. 오랜 숙련을 짐작케 했다.
무엇보다 우화적인 수법으로 지금-여기의 세태를 핍진하게 그려내는 솜씨가 훌륭했다. 깊이 있는 사유와 충 만한 에너지로 인해 긴 호흡의 시임에도 지루한 감이 없었다.
토론 끝에 심사자들은 「아름다 운 이 땅에 금수 / 강산에」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이 작품이 내실 있는 한 시인의 시작을 근 거하는 토대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성심으로 쓴 작품을 보내온 다른 모든 응모자 분들께 도 응원을 전하고 싶다.
심사위원 박소란(시인)
계급장(등단 여부) 떼고 이름도 떼고, 그것도 미발표 작품들로, 다양한 연령의 다양한 문학 장르 종사자들의 다양한 시적 취향을 가진 심사위원 5명의 동의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차를 거쳐 올라온 2차 심사 대상자가 20분이었다. 전체적으로 시적 성취는 물론 다채로운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어서 심사위원 모두 이구동성으로 수주문학상의 밝은 미래를 예견하면 서, 20분의 작품들을 다시 읽으며 3차 심사 대상자를 골랐다.
마지막으로 3분의 작품이 집중 적으로 논의되었다. 「소풍」 외 8편은 매 편의 시를 빚어내는 솜씨가 군더더기 없이 날렵했다. 그러나 몇 편의 작품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날씨 : 맑음」 외 5편도 시적인 제어와 방임을 균형 있게 안배하면서 새로운 시선을 놓지 않는 수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 강산에」 외 8편을 수상자로 선정하는 데 의견을 일치했다.
시인만의 분방한 개성, 유장한 호흡과 분출하는 에너지, 긴 시임에도 시의 밀도를 놓치지 않은 시적 긴장, 경계가 없어 보이는 시의 스케일을 높이 평가했다.
무엇보다 시적인 여운 혹은 잔상이 오래 남는다는 점, 시인의 다음 시가 궁금하다는 점이 큰 미덕이라 생각한다. 이 신예 시인의 가능성이 더욱 궁금하다.
심사위원 정끝별(시인)
제26회 수주문학상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블라인드 심사로 진행하였습니다.
사전심의에서 선정한 20명의 작품은 각기 독특한 질감의 언어들로 넉넉하게 제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색깔이 있는 목소리지만 힘에 부치거나, 단단하게 근육이 붙은 소리지만 음역대 가 불안정하거나, 귀에 익숙하여 다른 소리에 묻히는 작품을 제외한 후, 「소풍」외 8편, 「아름 다운 이 땅에 금수/ 강산에」외 8편, 「날씨 : 맑음」외 6편을 두고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각기 개성이 강한 3명 중 어느 작품에 마음을 두거나 마음을 빼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심 사자들은 수주문학상 수상이 더 오래 시를 품고 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여러 의견 끝에 조금은 장황했지만 세상의 측면을 자신만의 보폭으로 디디고자 싱싱한 걸음을 보여준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 강산에」에 손을 내밀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논의했던 2명을 포함하여 「상자와 사람」외 7편, 「손 없는 날」외 7편, 「킹스베 리, 킹스베리」외 6편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든 자신의 목소리를 뽑아낼 것으로 생각하며, 축하와 아쉬움을 전합니다.
심사위원 최은묵(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