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하의 ‘잡록’이 특이한 점은 그가 이 일련의 문제 풀이를 가지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속에 자신과 하국주 사이에 일어난 교류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담았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홍정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같은 시기 하국주와 허원 사이에 이루어진 천문학적 교류와 그 결이 아주 달랐다. 허원의 이야기가 선진적인 청나라 천문학이 조선에 전해지는 일 방향 전파의 서사였다면, 홍정하는 자신과 하국주의 만남을 두 나라 수학 전통 사이의 대등하고 호혜적인 교류로 묘사했던 것이다.
홍정하의 이야기는 두 나라를 대표하는 수학자 사이의 자존심 대결로 시작한다. 먼저 청나라 수학자가 조선 수학자들에게 아주 쉬운 곱셈, 나눗셈 문제를 냈다. 예를 들어 “지금 360명의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마다 은 1냥 8전을 내면 모두 얼마인가”라는 문제를 냈는데, 물론 조선 수학자들은 ‘648냥’이라고 간단히 답을 맞혔다.
그러다가 합석하고 있던 청나라의 상사(上使) 아제도(阿齊圖)가 조선 수학자들을 도발했다. “오관사력의 산학은 천하에 네 번째요. 그는 산법이 뱃속에 가득하여 그대들이 대적할 수 없을 것이오. 사력이 이미 많이 질문했으니, 그대들도 질문을 내어 그의 술법을 시험해 보지 않겠소?” 그러자 홍정하가 낸 것이 바로 하국주가 쩔쩔맸다는 다음의 문제였다.
“지금 새알같이 둥근 박옥(璞玉) 한 덩어리가 있습니다. 그 안에 정육면체의 옥이 담겨 있는데, 그것을 비우고 난 껍질의 무게가 265근 15냥 5전이고 껍질의 두께가 4촌 5분이라면 정육면체 옥의 한 변 길이와 둥근 박옥의 지름은 얼마입니까?”
홍정하의 이야기에서, 하국주는 결국 답을 맞히지 못했다. 자신의 승리를 확인이라도 하듯, 홍정하는 자세한 해법을 제시했는데, 이는 중국 송나라, 원나라 시대에 등장하여 유행했지만 이후 중국에서는 사라진 고차방정식 풀이법, ‘천원술(天元術)’을 이용한 것이었다.
조선의 수학자가 대국(大國) 수학자의 코를 납작하게 한 이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홍정하의 기록이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다.
하국주(청), 서양에서 전래된 ‘삼각함수’로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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