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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사진으로 보는 신미양요
유재석 추천 0 조회 2,813 12.10.10 15:48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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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10.10 16:53

    첫댓글 글씨가 하예서 읽을 수가 없어요...

  • 12.10.10 17:16

    최초의 교전이자 마지막 교전 그리고 두번다시 일어나면 안될 교전

  • 12.10.10 18:04

    어찌보면 조선이 최초로 미군을 빡치게한 나라인듯.

  • 12.10.10 20:38

    근데 말이죠....
    "남북전쟁때에도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포화와 총알이 쏟아진 적은 없었다." (블레이크 중령) 이부분은요..... 조선군을 칭찬하는게 아니에요;;;;;
    대원군이 강화도 방비에 신경을 많이 써서 이곳 저곳에 포대를 많이 강화해놓은 탓에 미군함에 강화 해협으로 들어서는 순간 정말 포탄은 무지막지하게 날라왔지만 명중탄은 없었거든요 -_-....
    남북전쟁을 겪었던 미군병사도 놀라게 할정도의 무지막지한 양의 포탄이 미군함으로 쏟아졌지만 다 빗맞추고 바다에 크게 물보라만.... 처음엔 미군 병사들도 무서워하다가 나중엔 뱃머리에 앉아서 그 신기한 광경을 구경했다고 합니다...
    좀 씁슬한 진실이죠 ㅇㅇ...

  • 12.10.11 08:41

    나중에 대원군이 서양의 화포를 어찌 구해내서 해안에 박아서 썼다는 일도 있더군요 그래도 운용하는 기술을 모르니 명중력도 형편없었고 서양식 대포 몸체만 가지고 쓸만하게 만들라고 닥달하다가 기술자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고딩 때 국사 선생이 말하길 대원군도 나름 신기술을 개발 구상을 했다더군요 애를 연에 매달라아서 포탄을 지게해서 떨구는 세계최초 폭격기겸 최악의 아동학대까지 나올 뻔... 구상에서 그쳤지만

  • 12.10.11 19:30

    역시 공돌이의 인신공양은 조선시대때부터 내려져온 전통이란 말인가

  • 12.10.10 22:07

    어떻게 하면 저렇게 상대가 안될수가 있는지... 진짜 창들고 돌격한듯. 쓰러져있는 조선군의 시체가 참 비참하군요

  • 12.10.11 00:37

    대원군의 [국방개혁]으로 조총과 화포를 주무기로 하는 군대로 재편된 이후입니다. 병인양요로 충격먹은 조선조정이 '심도포량미'라는 국방세를 신설하고, 전국적으로 급료를 지급하는 포수 3만을 양성한 시기... 문제는 무기가 너무 후달렸다는 겁니다.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함포사격으로 광성진과 부근의 땅바닥을 한번 뒤집은 다음 미리견 육전대가 돌격해왔어요...-_-;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싸운것이 더 대단한 겁니다. 무사의 나라라고 깝싸던 일본도 4개국 연합함대의 쵸슈공격 당시 매우 간단히 해안포대를 내주고 말죠...ㅋ

  • 12.10.11 00:36

    중간에 술병든 영감님 사진은 '거문도 사건' 당시 영국해군에게 술병과 영자신문을 선사받고 찍은 사진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신미년의 경우, 조선백성들이 병인년에 양이들에게 된통 당한 탓에 자발적으로 조정에 적의 내침을 알리는 등 경계가 심했던 시기였기에 저런 장면을 연출하기는 힘들었다고 봅니다...^^;

  • 12.10.11 08:37

    기록을 보면 이양선이 출몰하던 시기 조선의 방침은 인도주의로 조난 당한자들에게 식량과 물을 무상으로 제공하되 교류는 금지하고 바로 떠나게 했다더군요. 그리고 호기심으로 이양선에 타려 하거나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하면 바로 곤장맞고 하는 백성들도 있고... 대개 무서워하기보다는 호기심으로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던데.. 저 위에 조선인처럼 했다면 곤장행이라는...

  • 12.10.11 21:10

    조선의 대표적인 외교원칙인 [유원지의(멀리서 온 사람들을 잘 대해줌)]입니다. 쇄국이네 어쩌네 멋도 모르고 총포를 갈기던 일본과는 달리, 조선은 이양선에 대해서 평화적인 대우를 했습니다. 식수와 땔감, 식량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경우였고- 조난당한 이양선의 선원들은 사신단에 딸려서 북경으로 송환했어요. 꼭 뭣도 모르는 것들이 하멜의 경우를 일반화 시키는 병신짓을 한다는 것이 문제죠...-_-; 하멜이야 말로 아주 특수한 케이스...

    셔먼호 사건 당시에도 조선은 식량과 식수를 지원해주고 돌아갈 것을 요청했습니다만, 좋은 말 할 때 안가고 나중에는 민간인을 살상하는 지경에 이르자 싹다 죽여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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