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금요일
“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
정치에는 ‘친구도 적도 없다’라는 있습니다.
어제의 친구가 정적이 되고 오늘의 반대자가 내일 필요하면 서로 야합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하는 말이 있지요?
세상에 모르는 것이 셋이 있는데, 여자의 마음이고,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이고,
정치하는 사람인데 이 중에 그 마음을 알기가 제일 힘든 것이라고 하네요.
아하즈야 임금의 어머니 아탈리야는 자기 아들이 죽은 후에 왕족의 왕자들을 살해하고 왕권을 거머쥡니다.
‘무력은 무력을 낳는다’고 결국 아탈리야는 여호야다 사제에 의해서 살해됩니다.
야호야다 사제는 살아남은 아하즈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으로 추대하고 나라의 평정을 되찾습니다.
따지고 보면 요아스는 아하즈야의 아들로 아탈리야에게는 손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탈리야의 눈이 무서워 숨어서 하느님의 집에서 지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권력의 암투는 무서운 것으로 결국 핏줄까지도 정적으로 삼아 생명을 뺏고 빼앗기는 것입니다.
성경의 이런 이야기는 재물욕도 무섭지만 권력욕도 이에 못지 않게 무서운 것임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행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 재물을 쌓아 놓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사람이 재물을 창고에 쌓아두지 말고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당부하십니다.
사람이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마음이 착한 사람도 일단 재물이 생기면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기 쉬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마태 6,19-20)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씀을 이어서 해 주십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21절)
그 보물을 어디에다 두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누구나 한 두 번 쯤 경험하는 이야기입니다. 몰에 가서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에서
값을 계산하려고 지갑을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자동차에 지갑을 두고 내린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제까지 아무런 생각도 없었는데, 서둘러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습니다.
혹시 누가 차 문을 열고 가져간 것은 아닌가? 왜 어리석게 지갑을 자동차에 두고 내렸는가?
등등의 생각이 마음의 평화를 무너뜨립니다.
자동차 문을 열고 보니 지갑이 운전대 자리 위에 그대로 있으면 반갑기도 하지만
또 한편 이제까지 걱정과 후회가 부질 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새겨봅니다.
재물을 자신의 창고에 두면 재물욕에 사로잡히기가 쉽지요. 그러나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면 천국 이전에도 지금의 생활에서도 기쁘고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어서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듯 사람의 마음을 눈은 표현해 줍니다.
그래서 서로 친한 사이에서 대화할 때에도 눈을 바라보며 하지요. 만일 거짓이 있거나
꾸밈이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것을 회피하게 되는데 상대도 그 느낌을 눈치채게 되지요.
사람이 욕심에서 자유로우면 그 모습도 순수하고 이웃에게도 진실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재물이나 명예욕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눈빛은 탐욕으로
흐려져 있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짝 맞추어 표현한다해도 그 속셈은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입으로는 번지르하게 봉사 봉사라는 말을 달고 다녀도 그 속에서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심의 빛은 감출 수가 없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을 비우고 현실의 탐욕에 빠지지 말고
하늘 나라에 재물을 쌓으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첫째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