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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井中月(정중월:우물 속의 달) - 李奎報(이규보)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하여 竝汲一甁中(병급일병중) 하여.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하니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이네
산승이 달빛을 탐하여 한 바가지 길어 넣어, 절에 돌아와 때마침 깨닫게 되니 바가지가 기울자 달 또한 사라지네.
[作者] 이규보(李奎報:1168∼1241) 원래이름은 인저(仁底)였으나 사마시(司馬試) 합격꿈에 규성(奎星)이 과거에 오를 것을 알렸다하여 규보(奎報)라 이름을 고쳤다. 선(禪)에 이끌려 호를 백운거라(白雲居士)라 하였으며, 다시 백낙천(白樂天)의 풍류를 따라 스스로 시금주삼혹호선생(詩琴酒三酷好先生)이라 했으며 당시 사람들은 주필이당백(走筆李唐白)이라 불렀다. 1190년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10년이 지난 뒤에 지방관리가 되어 벼슬길에 나아갔다. 1232년에 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로 기용되어 몽고가 병란을 일으켰을 때 사명(詞命)의 일을 도맡아 서(書)와 표(表)를 지어 몽고왕이 병사를 거둔 적이 있었다. 벼슬에 물러난 뒤 평생에 즐겼던 시와 술을 낙을 삼아 가난한 생애를 살다 74세로 생을 마쳤다. 나라에서는 3일동안 조회를 보지 않았으며, 시호를 문순공(文順公)에 봉했다. 그의 시는 생동하고 기골(氣骨)에 차 있으며, 운(韻)을 따라 시상을 형식속에 자유자재로 채워넣는 굉재(宏才)가 있었다. 그래서 동명왕편과 같은 대서사시가 가능하였을 것이다. 그의 시가 8천여수에 이르고 최자(崔滋)는 그의 시를 '일월(日月)과 같아서 칭찬을 초월한다'하였으며, 천재준매(天才俊邁)라 하고 탁연천성(卓然天成)이라고도 하였다.
[鑑賞] (기구) 스님이 저녘 지을 물을 길러 갔다가 물에 비친 달빛이 너무 예뻐 '아 ! 좋다'하고, 도취해 물을 길어 갈 생각도 잊은 채 달빛에 반해 있다. (승구) 예쁜 달을 절에 가져 가서 두고두고 바라봐야지 마음 먹고 바가지에 함께 길어 넣었는데, 이와 같은 스님의 탐욕을 탐한다 할 수 있는 것인가 ? (전구) 절에 돌아와서는 저녁 공양도 드리고 바빠서 깜빡 잊고 있다가 '아차 ! 내가 달을 가져왔지 !' 하고 바가지에 담아 온 달을 생각해 내었다. (결구) 허겁지겁 달려나와 보니 둥그런 바가지가 기울어 달 또한 사라진다. 시인은 어린애같은 천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온갖 사물을 꿰뚫어 보는 심안을 갖고 있다. 시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 10개라면 3개만 쓰고, 나머지 7개는 감추어 놓았다.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그리고 있으니, 별 볼일 없는 시처럼 보이나 각 구의 끝글자를 연결해 보면 색중각공(色中覺空)이라는 불교의 진리가 드러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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