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하느님,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으니
저희가 그 사랑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제1독서
<<먼지가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이 하느님께 되돌아가기 전에 젊음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11,9―12,8
9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10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12,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2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3 그때 집을 지키는 자들은 흐느적거리고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맷돌 가는 여종들은 수가 줄어 손을 놓고
창문으로 내다보던 여인들은 생기를 잃는다.
4 길로 난 맞미닫이문은 닫히고, 맷돌 소리는 줄어든다.
새들이 지저귀는 시간에 일어나지만 노랫소리는 모두 희미해진다.
5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8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43ㄴ-45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하루에 책 한 권을 목표로 책을 읽습니다. 맞습니다. 다독합니다. 물론 많은 분이 이것저것 많이 읽는 다독보다는 한 권의 책이라도 정독하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 정독보다 다독이 맞다고 판단됩니다.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오랫동안 한 권의 책만 읽는 것보다는 여러 장르의 책을 다양하게 읽으면서 깊이가 부족해도 넓게 지식을 갖추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질보다는 양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 안에서도 질보다 양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실패라는 ‘양’입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도자기 공예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학기 과제를 내면서 반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눠 평가 기준을 발표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50개 이상을 만들면 A, 40개 이상이면 B, 그 이하는 C”라고 했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몇 개를 만들든 가장 잘 만든 한 점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어느 그룹에서 최고의 작품이 나왔을까요?
첫 번째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은 많이 만들면서 실패의 과정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완성도 높은 최고의 작품을 만든 것입니다.
양보다 질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질 높은 ‘나’를 만들려면 양적으로 많은 실패가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멀리하려고 하지만, 이 실패는 성공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양적으로 많은 실패에 질적으로 높은 성공을 가져올 확률도 높아집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지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던 예수님이고, 예수님에 대한 평가 역시 대단했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 상은 정치적 메시아입니다.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할 힘 있는 임금님, 개선장군처럼 늠름하게 들어오는 영광의 임금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없이는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다들 예수님의 모든 활동이 실패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활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모든 실패처럼 보이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주님 뜻에 맞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 끝에 영원한 생명이라는 영광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늙은이는 젊은이들과 어울리려고 억지로 노력하지 마라. 누군가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해오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이야기하지 마라(조너선 스위프트).
죽음 앞에서
사진설명: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