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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이끄시는 시선 (행3-3)
2026년 8월 4일 (화요일)
찬양 : 시선
본문 : 사도행전 3:1-26절
☞ https://youtu.be/MIGgKvdrjH8?si=wYGzmt9PZQAKp1Ox
어제는 오랜만에 퇴근한 아들과 함께 식사하고 대화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작가로서 한 길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던 아들이다. 그러나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들이 고마웠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준 것도 고맙고, 또 이런 고민스런 이야기를 부모에게 해 주니 더 고마웠다. 아들의 삶에 주님이 동행하며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오늘은 목회사관학교 강의안 준비와 중보기도 세미나 강의 준비를 해야 한다. 모든 일정가운데 주님의 인도하심과 지혜와 은사의 기름부으심이 있기를 간절히 사모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사도행전 1장이 언약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모여 공동체를 세우는 이야기라면, 2장은 성령이 임한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오늘 사도행전 3장은 성령이 다스리는 교회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절
‘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마가의 다락방에서 숨어서 기도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던 공동체가 이제는 세상을 향하여 문을 열고 나와 성전에 올라가고 있다. 그들의 시선이 바뀐 것이다. 성령이 임하자 그들은 이제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이들은 다락방의 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다.
이렇게 다락방 문을 열고 나와 성전을 향하던 베드로와 요한이 구걸하기 위해 날마다 성전 미문에 있던 한 사람을 만난다. 3-4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성령이 임한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에게 구걸하는 이 사람을 주목하였다고 하고, 그에게 우리를 보라고 외친다. 여기 주목한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테니조>란 단어로 대상을 향해 시선과 마음을 온전히 집중하는 행위를 뜻한다.
아마도 이전까지 그의 시선은 이런 사람에게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자 구걸하는 한 사람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그 영혼을 향해 일하시기 원하는 하나님의 이끄심에 집중하는 것이다. 성령에 이끌려 사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니 하나님이 일하시기 원하시는 사람과 자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선이 바뀐 이들은 당당하게 외친다. <우리를 보라>
그동안 이들은 두려움에 숨었던 이들이지만,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자 태도가 바뀐 것이다. 세상 앞에 당당히 서서, 자신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고 외친다. 그리고는 유명한 선포를 전한다.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당당히 전하면서 그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한다. 그는 누구도 줄 수 없는 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고 있다.
그는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것을 보는 사람이 되었다. 성령은 이들을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초라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꾼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가졌을 때 나에게도 이런 시선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게 있는 것을 보고 그 소중한 것을 당당히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성령의 충만함이 사라지자 그렇게 변해버린 것이다.
어쩌면 세상이 주는 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게 된 것은 아닌지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다. 주님은 오늘 나의 시선이 다시 세상의 은과 금이 아닌,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고정되기를 원하신다.
이 사건으로 예루살렘은 놀라운 사건에 소동했고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이때 베드로가 성령을 따라 놀라운 말씀을 증거한다. 12절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세상의 시선은 걷게 된 기적 자체와 그것을 행한 베드로와 요한에게 쏠렸다. 눈에 보이는 화려하고 놀라운 결과에만 집중하는 것,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세상의 시선이다. 성령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던졌던 그 거룩한 시선을, 세상은 맹목적으로 인간을 우상화하는 시선으로 왜곡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임한 베드로와 요한은 그 시선에 매몰되지 않는다. 14-16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베드로와 요한은 이 순간 복음을 증거할 기회로 보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이것이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일으킨 사건임을 분명히 증언한다.
성령이 임하여 충만함을 가진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시선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오늘 나의 시선은 어떠한가?
다락방에 머물러 세상을 향해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아닌가?
내 손에 쥐여 줄 '은과 금'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주신 감동과 영혼을 향한 주목을 스스로 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안에 계신 가장 귀한 보배, 예수님을 전할 기회를 세상의 기준에 위축되어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수많은 질문이 내게 쏟아지는 이 아침, 다시 한번 다락방의 은혜를 구한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달려왔던 그 당당함, 그리고 성령의 눈으로 영혼의 자리에 주목하며 살았던 그 뜨거운 순간을 후반전의 삶에 다시금 사모하게 된다.
이제 후반전을 시작하기로 다짐한 내게 앞으로 은퇴까지 3개월의 시간은 바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다시 적셔지는 시간이 되기를 다짐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이 바라보시는 그 시선으로 다시금 일어서는 내가 되기를 기도한다.
주님, 이 종이 세상의 시선에서 다시 성령의 시선으로 바뀌어 성령께 이끌리어 그 시선으로 세상과 영혼을 바라보며 복음이신 주님을 증언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내 손에 없는 '은과 금'을 보며 위축되던 시선을 거두고, 내 안에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을 당당히 주목합니다.>
적용 질문 :
1. 오늘 나의 시선은 '내가 가지지 못한 은과 금'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내 안에 이미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습니까?
2. "우리를 보라"고 외쳤던 사도들처럼, 내가 세상의 위축됨을 벗어버리고 당당하게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며 다가가야 할 삶의 '성전 미문'은 어디입니까?
3. 은퇴의 자리에 내 삶의 결과가 나를 주목하게 하는가? 아니면 십자가의 예수님을 주목하도록 시선을 돌려드리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