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임을 말씀하신다. 인간의 존엄성은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에 따라 지음 받은 특별한 존재라는 데 있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교제하는 존재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 있는 존재다. 이렇듯 인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만 그 존재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
'지능'은 인간의 특성적 기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 정신적인 삶을 누리는 존재이고 초월적인 상상력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영적인 존재'다 이런 인간의 가치를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다. 높은 수준의 지능을 잘 구현했다고해서 인간에 근접했거나 초월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근대 전기학의 대가 마이클 패러다이가 어느 날 학생들에게 액체가 묻은 천을 주고 분석해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약간의 물과 염분을 발견했을 뿐 이렇다 할 물질 성분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때 스승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액체는 자기 아들을 걱정하고 찾아온 어머니가 흘리고 간 눈물입니다. 어머니의 눈물에는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깊고 귀한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이 배우려는 과학의 힘으로는 그 눈물이 함유하고 있는 어머니의 애정을 분석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눈물은 하루에 1-1, 7밀리리터 정도 분비되는데, 관학적으로 성분 조사를 해보면 90퍼센트는 수분이고, 식염 7퍼센트, 단백질 2퍼센트, 점액소, 1퍼센트가 들어 있으며, IgA, IgG, IgE 등의 면역글로불린, 림프구, 탐식세포, 인터페론 등 많은 방어 물질과 리소좀, 지질, 염소 등도 미량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과학적으로 눈물을 분석했다고 분석했다고 해서'어머니의 눈물'을 다 해석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쳇 GPT체에게 "수박이 뭐야?" 라고 물으면 깔끔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렇다고 쳇GPT가 정말 수박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타는 듯한 여름날 시원한 수박을 한 입 베어 물 때 느끼는 그 상쾌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 인공지능이 과연 수박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히브리어에서 '안다'라고 할 때 쓰이는 단어인 '야다'에는 '알다'뿐만 아니라 '관계하다', '성적 관계를 가지다' 등의 의미가 있다.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깊은 관계성에 기반하여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오시게 될 메시아 예수님을 가리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질고를 아는 자"(사 53:3)라고 표현하셨다. 이때의 '앎'은 질고를 직접 체험했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라고 말할 때는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것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과 깊은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분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공지능 쳇GPT가 단 몇 초만에 내놓는 하나님에 관한 설멸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인공지능은 예배드릴 수가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고유의 가장 큰 특권이자 유일성이 바로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경배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어거스틴과 더불어 중세 최고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소천하기 얼마 전인1273년 12월 6일, 예배 중 강력한 신비 체험을 한다. 그날 이후 그는 수도사 생활을 시작하고서 단 한 차례도 멈춘 적이 없던 펜을 놓게 된다.
그리하여 아퀴나스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집필하던 (신학대젖)도 제3부 '속죄'에 대해 쓰다가 멈추어서 이 책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토마스는 자신의 친구요 동역자였던 레지날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게 계시된 모습에 비하면 내가 쓴 것은 모두가 지푸라기처럼 보인단 말이네."
그는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그가 이제껏 쓴 것들은, 그가 보았고 그에게 계시된 것에 비긴다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퀴나스에게 임한 그 신비 체험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절필할 정도로 강력한 신비, 하나님의 임재 체험이었음은 분명하다. 어느 설교가 아퀴나스가 그때 본 것은 겨우(?) 하나님의 옷자락 정도였을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옷자락만 보았을 뿐인데도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신학대전)이 지푸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귀하다고 여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는 배설물에 불과하다고 고백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8
아퀴나스와 바울의 이러한 고백을, 아니 이 고백이 있기까지 느겼던 하늘의 은혜를 인공지능은 알 수 있을까?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흘리는 눈물을 인공지능도 흘릴 수 있는가? 찢기고 상한 심정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와와 위로를 인공지능이 공감할 수 있는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전도 선교를 하며 생사를 넘나드는 선교지의 영적 전쟁에 인공지능이 동참할 수 있겠는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과 용기를 얻는다. 인공지능은 전기 충전을 받을 뿐이다.
첫댓글 주님의 영광.!!
주님께 영광.!!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알고 그 은혜를 알고 찬양하며 경배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