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마다 황톳빛,
화가 변시지는 평생에 걸쳐 제주-오사카-도쿄-서울-제주로 이어지는 삶을 살았다.
시작과 끝은 제주였다.
변시지 미학의 풍토인 제주의 '빛과 바람'이 태평양을 건너 세계화의 한축으로 자리한다.
변시지는 1926년 제주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6세 때인 1931년 가족과 일본 오사카로 갔다.
1933년 소학교 2학년 때 교내 씨름대회에서 상급생과 겨루다 평생 지팡이를 짚게 된다.
그의 그림 속에 지팡이를 든 사람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연유다.
1945년 오사카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옮겨간 그는 당대 일본 화단의 거장 데라우치 만지로
(1890~1964)도쿄대 교수의 문하생으로 서양 근대미술 기법을 배웠다.
인물화와 풍경화를 집중적으로 그렸다.
변시지는 1948년 22세 나이에 당시 일본 최고의 중앙화단으로 알려진 광풍회 공모전에서
'베레모의 여인'으로 최연소.최고상을 받았다.
당시 '조선인 청년' 변시지의 최고상 수상은 NHK에서도 뉴스로 크게 다뤘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24세 땐 최연소 광풍회 심사위원이 됐다.
일본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작업하던 그는 1957년 서울대 교수로 초빙돼 고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서울대 윤일선 총장과 장발 미대 학장이 '조국의 미술발전을 위해 서울대 강의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영구 귀국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와 화단에 적응하지 못하고 1년도 안 돼 서울대를 떠났다.
마포고 교사, 중앙대·한양대 등의 강사로 전전하며 화업을 이어갔다.
변시지, 1948년 / '베레모의 여인' 여인/1947년
변시지 '난무' 유채 162 x130cm
미국 국립스미소니언박물관 상설 전시작품
변시지의 제주 화풍에서 주요한 요소는 ‘바람’이다.
초가집은 낮게 움추렸고 지붕은 새끼줄로 단단히 동여매었다.
팽나무도 바람에 한쪽으로 쏠렸다.
그 위를 까마귀 떼가 난무한다.
풍경 한가운데 조랑말도 빠지지 않는다.
변시지 '까마귀 울때' 유채 162 x 130cm
평생 자신의 화폭에 황톳빛 흙과 제주를 담고자 했던 화가.
작가의 인장처럼 새겨진 황갈색과 먹색 선,
하늘에는 까마귀가 나는데 제주여인은 바다로 향한다.
변시지 ‘성산 일출봉’ 65 × 53㎝ 유채/2009
변시지 '어느 날' / 1978년
제주 귀향 후 3년 뒤 그린 그림이다.
변시지는 50세이던 1975년 가족과 떨어져 홀로 제주로 귀향해 201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8년간 제주에 머물며 ‘향토빛’의 독특한 화풍으로 은둔자처럼 그림만 그렸다.
그는 서양화와 동양의 문인화 기법을 융합해 그만의 고유한 화풍을 완성했다.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Museum)에는 2007년부터 10년간 변시지
작품 2점이 상설 전시되었다.
- 제주 기당미술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