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과 환대, 겸손의 사랑 “예수님의 가르침”
2026.4.30.부활 제4주간 목요일 사도13,13-25 요한13,16-20
“주님의 자애를 영원토록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시편89,2)
세월은 끊임없이 강물처럼 흐릅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2014년 새 원장이 뽑혔고, 원장직을 내려 놓은 저는 안식년을 가졌고, 시간은 물같이 흘러 12년 후 어제 또 새 원장이 또 뽑혔습니다. 앞으로 12년이 지나면 제 나이 90입니다. “어떻게 살아야하나?” 자문하게 됩니다. 오래 전 “흘러간 것들에”란 자작시가 떠올랐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마라
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이사43,18-19ㄱ)
그렇다
시간은 흐른다
흘러간 것들에 마음 아파해하지 말자
아쉬워하지 말자
쓸쓸해하지 말자
흘러간 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듯
흘러간 사람은, 사랑은,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는 것은 과거가 아니고 오늘이고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을 시작하는 것이다
언제나 오늘을 사는 것이다
오늘 여기서 만나는 사람에, 사랑에, 시간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이게 영원한 현재를, 젊음을 사는 길이다
흐르고 흘러도
늘 새롭게 만나는 주님이 우리의 기쁨이요 행복이다”<2005.4. >
언제나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을 살자는 것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지혜도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누구나 아는 가르침을 아무나 실천하지 못하듯, 보통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보통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다산>
“바른 이치에 순종하면 여유가 있고, 욕심을 따르면 위험에 빠지게 된다.”<정자>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평범한 일상을 충실히 사는 것이 보통의 삶이요 이 또한 깨어 노력해야합니다. 오늘 복음의 가르침대로 섬김과 환대의 아가페 순수한 사랑을 사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랑은 저절로 섬김과 환대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집착 없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겸손한 사랑이 바로 아가페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서두의 가르침이 바로 섬김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다음,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사랑은 영원한 감동을 주는 하느님의 겸손한 사랑의 절정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주님을 닮아 섬김의 삶에 충실할 때 참 행복입니다. 새삼 이런 행복은 발견이요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줄 알면 행복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종과 섬김의 영성뿐이요,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뿐이요 여정이 있다면 섬김의 여정뿐이요 권위가 있다면 섬김의 권위 하나뿐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 바로 앞에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이 있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참으로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섬김의 현장이요, 영원한 섬김의 스승이자 달인이요 대가인 예수님께서 그 섬김의 중심자리에 계십니다.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도 일치합니다. 성 베네딕도 규칙 머리말중 마지막 결론부분입니다. 저는 학원이란 말보다 배움터란 순수한 우리말을 선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를 설립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것을 설립하는 데 거칠고 힘든 것은 아무것도 제정하기를 결코 원치 않는 것이다.”
말그대로 보통의 가르침이 섬김의 삶인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평생 섬김도 배워야 하는, 섬김의 여정은 동시에 배움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섬김을 배우고 실천하라 연장되는 날들입니다. 섬김의 영성에 이어 환대의 영성이요 복음의 영성이자 베네딕도 수도회의 영성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을 환대함은 예수님을 환대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환대함은 하느님 아버지를 환대하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건강하고 온전한 영성이자 신비주의입니다. 형제들 하나하나가 예수님과 하느님을 배경하고 있으니 형제들에 대한 냉대는 바로 예수님과 하느님에 대한 냉대와 직결됨을 봅니다. 성 베네딕도의 환대의 가르침 역시 감동적입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장차 내가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주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환대의 집 수도원에서 환대의 수도자로 살고 있는 우리 수도자들이요 정주의 영성은 그대로 환대의 영성으로 표현됨을 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섬김과 환대의 모범을 본격적 선교 여행에 오른 바오로 일행에게서 봅니다. 정말 예수님처럼 섬김과 환대의 정신이 없으면 이런 선교 여행도 불가능합니다. 서로 섬기고 환대하는 사랑이, 또 이들을 섬기고 환대하는 익명의 무수한 착한 신자들이 있었기에 이런 선교여행이 성공했음을 봅니다.
오늘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회당에서 안식일 바오로의 열화와 같은 이스라엘 역사를 망라한 설교 후반부 세례자 요한을 섬김과 환대, 겸손한 사랑의 본보기로 소개합니다.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예수님은 요한의 존재이유이듯 우리의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랑의 예수님을 섬기고 환대할 때 비로소 참나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의 우리의 섬김과 환대의 영성을 날로 깊이 해 주십니다.
“제가 아뢰나이다.
‘주님은 자애를 영원히 세우시고,
진실을 하늘에 굳히셨나이다.’”(시편89,3).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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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님을 닮아 섬김의 삶에 충실할 때 참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