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암
직장을 정년퇴직하면서 현직에 남은 후배들에게 기념타월을 선물할 정도로 마음이 따뜻한 동료가 있었다. 그렇게 베풀며 살았던 호방한 성격의 그가 퇴직 몇 년 후 식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꺼져가는 생명을 구해보고자 서울 강남성모병원까지 찾아 정성을 쏟았던 가족의 허탈감은 어떠했을까. 그는 보통사람보다 건장한 편이었고 술도 즐겨 마시는 애주가이기도 했다.
그는 퇴직을 앞두고 직장에서 맺어진 친구와 자신의 고향에서 가까운 장안사 들머리의 작은 야산을 매입 개발해서 여생을 함께 그곳에서 보내기로 했었다. 하지만 퇴직을 일 년 앞둔 친구가 사정이 생겨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자 그는 임야 땅값을 혼자 부담하느라 빚까지 안다보니 야산을 개발할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다 대도시에서 인력을 조달해야하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는 결국 혼자서 땅을 일구는 작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30여 년 넘게 육체적인 노동을 해보지 않은 몸은 매일매일 녹초가 되게 마련이었다. 야산개발 진척상황이 궁금해 한 번씩 찾아가보면 평평하게 일군 땅엔 고추와 상추 같은 채소와 매실나무까지 심어 시골처럼 닭과 오리들이 그 밑을 평화로이 노닐고 있어 일견 전원생활의 꿈을 이룬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현관 입구에 소주병 상자가 쌓여가는 게 눈에 띄었다.
매일 육체적인 노동에 녹초가 된 몸을 그는 술로서 달래고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술안주엔 마당에 심어놓은 풋고추가 빠지지 않았고 그것도 맵기로 소문난 청량고추 ‘땡초’였다. 식도암은 맵고 뜨겁고 짠 음식이 식도에 들어가 그곳을 손상시키는 일이 반복되면 생긴다. 젊은 날부터 중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도록 찾아다닌 ‘맛집’이란 게 결국 식도에 해로운 맵고 뜨겁고 짠 음식으로 미각을 사로잡아 손님을 끌었던 게 아닌가 싶다.
자극성 심한 음식이라면 서울보다 부산이 몇 배나 심했을 것 같기도 하다. 뜨거운 국물을 훌훌 들이키며 “어이 시원타!” 감탄사를 연발했고 음식의 냄새나 맛이 맵거나 텁텁하여 목을 자극하면 ‘매콤칼칼하다’고 주인을 불러 칭찬을 늘어놓지 않았던가. 자갈치로부터 조방 앞, 동래 온천장까지 아구찜이나 낙지볶음 곰장어엔 고춧가루가 범벅이기 일쑤였다. 거기에다 독한 소주까지 빠지지 않았으니 목은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식도암은 사람이 입으로 음식을 섭취해서 생기는 것만 아니라 거꾸로 위에서 올라오는 위산에 의해서도 생긴다. 통계는 이러한 역류성 식도염 환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는 걸 알려준다. 역류성 식도염은 서구화된 식습관과 식후 바로 눕거나 술을 마심으로 생기는 증상이다. 식도암은 초기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발견이 늦어지게 마련이고 증상이 나타나면 이미 심각한 단계에 이른 것이니 꽤나 까다로운 병이 아닐 수 없다.
담당의사는 자극성 있는 음식과 술 등 식습관을 고치고 정기적인 내시경 검사만이 식도암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먹는 즐거움을 주는 식도 건강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이미 식습관으로 굳어진 뜨거운 커피나 아이스크림처럼 차가운 얼음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처럼 평생 마셔왔고 지금도 즐기는 술은 더욱 끊기가 어려운 것이다. 식도는 다른 장기와 달리 장막이 없다.
그래서 암이 생길 경우 다른 장기로 전이될 위험이 큰 편이다. 통계상 식도암은 4기가 되면 생존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지고 5년 생존율도 35% 정도로 낮은 편이다. 다른 암도 그렇지만 식도암도 일찍 발견하면 80%는 극복이 가능하다고 한다. 수술범위가 커져서 수술 후 합병증 위험이 높은 것도 식도암의 특징이다. 우리가 평상시 듣기 힘든 용어 ‘바렛식도’는 역류성 식도염이 오래가면 생긴다.
역류한 위산이 식도를 자극해 식도 일부분이 위장점막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바렛식도가 있으면 식도암에 걸릴 확률은 20배 가까이나 높아진다고 하니 경계해야할 일이다. 식도암의 전구병변인 바렛식도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술과 야식, 담배는 피하라고 의사는 주문한다. 위와 식도 사이에 있는 조임근 이완이 어려운 ‘식도이완불능증’은 조임근 자체가 벌어지지 않아 음식물이 통과하지 못해 발생한다.
식도암은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한 암 축에 속하지 않지만 예후가 나쁜 편이다. 주로 50대 이상 고령층에 잘 발생하며 남자가 여자보다 3배 정도 더 많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체 외부와 가까운 식도는 외부 자극에 견디기 쉬운 편평세포로 이루어져 있어‘편평세포암’으로 불리기도 하며 주로 식도의 중간지점에서 생긴다. 위험인자는 흡연과 음주로 양에 비례하며 독주와 시가가 발병률을 더욱 높인다.
식도는 음식이 지나다니는 길이란 특성상 암이 점점 자라나면 음식의 삼킴곤란이 발생하게 되는데 확실히 느낄 수 있으려면 식도 둘레를 60%정도 침범했을 때며 음식을 삼키는데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중엔 액체마저 삼키는 게 힘들어진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표준화가 안 되어 있는 게 식도수술이다. 수술이 까다롭고 동양과 서양에서 발생하는 종이 서로 다르기도 하지만 시행횟수 자체가 적은 것도 원인이다.
식도암은 초기엔 쉽게 완치되지만 진행속도가 빠르고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대부분 가슴통증과 음식을 삼키기 힘들고 쉰 목소리가 나고서야 진단받아 2~3기에 속하게 된다. 식도암은 술과 담배를 금하고 가공육과 탄 음식,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금하고 65도 이상 뜨거운 국물이나 음료도 적당히 식혀 먹을 것을 권한다. 술과 담배를 하거나 비만인 경우 별다른 증상이 없더라도 식도암 정기검진을 받을 것을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