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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전부터 존재한 지혜 8:22~30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삶으로 찾아오는 지혜 8:31~36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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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이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지혜를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지혜가 그 곁에서 창조자가 되어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했습니다. 지혜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 은총을 얻을 것입니다. 지혜를 잃는 자는 자기 영혼을 해하며, 지혜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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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전부터 존재한 지혜 8:22~30
하나님의 지혜는 창세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잠언 기자는 세상을 질서와 조화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의인화해 표현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이 태초에 자신을 소유하셨고, 땅과 바다와 산과 진토의 근원이 있기 전부터 자신이 존재했다고 합니다(22~26절). 하나님이 하늘과 궁창과 바다와 땅을 지으실 때도(27~29절) 창조자로서 하나님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 지혜가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는 모습은 하나님의 창조가 완벽하고 그분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30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결코 우연이나 진화의 결과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지혜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를 좇아 질서 있고 조화로운 삶을 삽니다.
● 더 깊은 묵상
지혜는 언제부터 있었으며 하나님 곁에서 무엇을 했나요?
질서와 조화로 창조된 만물을 볼 때 내가 고백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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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찾아오는 지혜 8:31~36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뻐합니다(31절). 창조의 질서와 조화에 참여한 지혜가 이제 인간 세상과 삶에 안내자가 되길 원합니다. 지혜는 “아들들아”라고 청중을 부르며 자신의 말을 듣고 지키라고 권면합니다(32절). 지혜를 잃는 자는 영혼에 해를 입고 사망에 이르지만, 지혜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됩니다(35~36절). 하나님의 지혜로 창조된 세상을 지키는 것만큼, 그 지혜로 우리 영혼과 삶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내 삶이 흐트러지고 균형을 잃었다면, 하나님과 그분 말씀 앞에 다시 엎드림으로 영적 질서와 조화를 회복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창조 때 있었던 지혜가 인간 삶에 기뻐하며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삶에서 흐트러진 영역은 어디며, 회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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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오래전 “하나님이 조수석에 앉아 계신다.”라고 적힌 자동차 범퍼 스티커가 유행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조수석에 앉아 계신다면 운전석에는 엉뚱한 사람이 앉아 있는 셈이다. 예수님을 참되게 따르는 길은 완전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신 그분께 키를 넘겨 드리고, 지혜로우신 주님께 우리의 길을 완전히 맡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창조주시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을 대체하려고 애썼던 모든 우상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은 분이시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있는 그분의 풍성함에 따라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겠노라 약속하셨다. 예수님의 주가는 결코 폭락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돈보다, 로맨틱한 연애보다 무한히 더 깊은 만족을 주신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힘보다 무한히 더 강력하시다. 우주의 모든 분자를 통제해 우리의 선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보다 더 큰 힘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예수님의 인정은 세상의 성취감보다 무한히 오래간다. 영원 속으로 들어가면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듣는 만족감은 그 어떤 트로피와도 비교할 수 없다.
예수님은 우리 몸의 건강보다 무한히 귀하시다. 그분은 아무도 앗아 갈 수 없는 영생을 약속하신다. 인간이 추구하는 다른 신들은 모두 우리를 실망시켰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히 우리를 만족시키신다. 그러한 분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다.
복음 특강 / J. D. 그리어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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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8장 34~35절
하나님 말씀을 기다리는 자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기다린다'라는 말은 기회를 엿보며 주의해서 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기회를 놓치지 말고 꼭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누구의 음성을 듣고 있는지를 점검하면, 누구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기회가 될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생명과 은총이 그분께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임마누엘 하나님을 경험하는 길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났기에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 요소다. - 본 로버츠
오늘의 기도
하나님,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지혜의 말씀 앞에 제가 어떠한 모습으로 서 있는지 돌아봅니다. 말씀을 대하는 제 메마른 마음과 태도를 성령으로 새롭게 하소서! 깨어진 삶을 온전히 회복시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는 말씀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78 저 높고 푸른 하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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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당신의 지혜를 사랑하고, 당신의 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분별력과 지식을 주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께 나아가 주님의 명철을 배우고, 주님의 지혜를 배우면서, 이 세상 속에서 바른 분별력과 지식을 가지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하자
재물보다 더 크고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여 주시는 것이 바로 지식이고, 주님의 지혜임을 잊지 말고, 더 큰 결실을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주님의 지혜를 구하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가고,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을 성실히 잘 감당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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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의인화된 지혜가 자신의 기원과 역할에 대해 회고적인 고백을 하는 내용으로, 그것은 삶의 원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창조의 도구이며 아울러 창조 이후에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한 창조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전에 지혜를 가지셨고 세상을 만드실 때 그것은 조력자가 되어 그 앞에서 즐거워합니다. 지혜를 잃는 자는 자기 영혼을 해하며, 지혜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지혜의 유래, 지혜의 역할, 지혜의 원리, 복 받을 자 등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 ‘여호와께서 우주를 창조하실 때 그 무엇보다 나를 먼저 만드셨으므로 나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처음부터 있었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지혜가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했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세움을 받았다’라는 말은 지혜의 창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때의 시제는 수동완료태입니다. 곧 ‘내가 태어나게 되었다’라고 풀이할 수 있으니, 그러므로 지혜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선언입니다.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 ‘바닷물을 명령하여 그가 정한 한계를 넘지 못하게 하시고 또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에도 내가 거기 있었다. 그때 나는 그의 곁에서 기능공 노릇을 하였으며 날마다 그의 기쁨이 되었고 언제나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지혜가 창조의 도구 역할을 했다는 말입니다. ’창조자‘로 번연된 히브리 원어는 ’기술자‘, ’건축가‘, ’명장‘, ’기능공‘을 뜻합니다. 따라서 창조자가 되었다는 말은 그렇게 기술자로서 조력하였다는 말이지, 창조자 하나님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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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권고로, 교훈을 잘 새겨들어 지혜를 얻으라는 것으로 그렇게 문 앞에서 찾으며 문 밖에서 기다리면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지혜를 아끼고 사모하는 자는 마치 귀한 복을 만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 복은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복으로, 문이 열릴 때 얻는 기회를 말합니다. 여기서 ‘기다리다’는 말은 단순히 기다리는 것보다는, 잠자지 않고 밤을 새워 망을 보는 것으로 그렇게 적극으로 주의하여 지켜 살펴보면 문이 열릴 때 마치 주인을 만나듯 지혜를 만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외아들을 멀리 예루살렘에 유학 보낸 한 아버지는 병을 얻어 자신이 곧 죽을 것 같아 유서를 쓰기로 합니다. 그 유언은 전 재산은 노예에게 물려주되 그 가운데 그의 아들이 원하는 것 한 가지만 주라는 내용입니다. 드디어 아버지는 죽고, 노예는 자신의 행운을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아들에게 알려주고 유서를 보입니다. 아들은 몹시 놀랐지만 급히 달려와 성대하게 아버지의 장례를 치릅니다. 그리곤 존경하는 그 마을의 랍비를 찾아가 상의합니다. 랍비는 그 유서를 보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그리고 ‘자네 아버지는 참으로 현명한 분이시네. 완벽한 유서야!’ 라고 말합니다.
아들은 또 한번 놀라면서 그 이유를 묻습니다. ‘자네 아버지는 자네가 옆에 없었기 때문에 임종 후 노예가 재산을 가로채 도망쳐 버리거나, 써버리거나, 어쩌면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리지도 않을 것을 생각하여 재산 전부를 노예에게 준다고 한 걸세. 그러면 노예는 당연히 재산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고스란히 보전될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이지.’ ‘하지만 그것이 저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랍비는 지혜와 명철이 부족한 아들을 나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노예 재산은 모두 주인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자네는 모르나? 자네는 노예만 선택하면 되는 걸세. 그러면 아버지의 전 재산은 노예를 포함해서 자네 것이 되는 것이지.’
본문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는 말을 랍비와 어리석은 아들에게 비유하면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랍비의 심정이 그랬을 것입니다. 유언을 받은 아들이 조금 더 명철하였다면 아버지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하마터면 아버지의 뜻과는 무관하게 재산이 노예에게 넘어가는 불상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랍비의 말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 마치 죽은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말한 것 같습니다. 아들은 은과 정금보다도 더 나은 지식과 지혜를 구했어야 합니다. 랍비의 그런 지식과 지혜가 없었다면 은과 금을 충분히 사고도 남을 유산을 몽땅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의 유서는 지혜의 완결판입니다. 지혜가 좀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 이 말씀을 평생 잊지 않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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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지혜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예수님은 지혜의 주로서 창세 전부터 계셨습니다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잠8:22~23)
따라서 예수님은 창세 전부터 영화로우셨습니다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
또한 태초에 창조자로서 아버지 곁에 계셨습니다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잠8:27~31)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생명의 지혜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2:2~3)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잠8:32~33)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1:30)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으로 넘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엡1:8)
그래서 생명과 은총을 얻게 하실 줄 믿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잠8:34~35)
‘태초에(22절)’
누구든 집이나 건물을 지을 때 설계도와 모형을 먼저 준비합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사전에 상의된 순서에 따라 시간을 배정하고 내용을 넣어 그 의도한 계획에 따라 진행해야 큰 무리나 실수 없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계획이나 뜻 없이 이 세상과 그의 사랑하시는 사람을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크신 지혜로 말미암아 이 모든 시작과 끝을 계획하셨고 시간과 공간을 만드시고 피조물인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영원의 세계까지 준비하신 후에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의 크신 지혜를 망각하는 이들은 결코 맛볼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이 그 말씀을 듣고 깨닫고 지키는 이들에게 허락됩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께만 머물 수 없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그 생명을 내어주시고 그 피를 쏟으시며 우리를 죽음의 권세로부터 건지셨고 부활의 반전을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 끌어올리시기까지 했습니다.
그 지혜에 참여하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거룩한 자녀로 오늘 하루의 삶을 살아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문의 세 번째 단락은 천지창조의 태초로 우리를 데려갑니다(22~31).
그리고 지혜는 땅이 생기기 전(23~29),
처음부터 있었다고 말합니다(22~27).
지혜는 그 곁에서 창조자가 되었고(30)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여호와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자였다고 선언합니다(30~31).
이 본문은 어거스틴과 칼빈, 매튜 헨리와 같은 신학자들에 의해서, 삼위일체의 2위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본문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의 첫 네 절은 이 본문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주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매튜 헨리).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셨고, 성부 하나님의 기쁨의 근원이셨으며, 그 창조의 순간에 함께 즐거워하셨습니다. 이 즐거움은 사실 ‘장난’, ‘웃음’, ‘농담’과 같은 의미를 전달하는 표현인데, 마치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하면서, 창조의 위엄과 능력에 흥분하여 성부 하나님과 함께 장난하며 농담하며 웃는 그런 환희의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묘사함으로써 이 본문을 지지하고 있습니다(고전 1:30). 본문은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신성 뿐 아니라, 영원 속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누리셨던 관계의 놀라운 친밀함을 묘사해주기도 합니다. 본문은 다시 지혜를 구하고 얻으라는 호소로 마칩니다(32~36). 지혜를 들으며 날마다 지혜의 문 곁에서 기다리며 그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34). 지혜를 얻으면 생명을 얻고, 지혜를 잃으면 자기 영혼을 해하는 것이며, 사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35,36).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태도가 우리의 영원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혜가 우리를 부르듯,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아와 은혜의 생수를 마실 자들을 부르시고 초청하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지혜의 생수를 주님으로부터 받아 마시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 구하기 위해 날마다 그 문 곁에서 기다리는 자가 되게 하시고, 지혜를 듣고 지혜를 얻으며 지혜를 따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재물이나 성공이 아니라 지혜를 얻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 지혜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삶이어야 합니다(22~26절).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니...’(22절).. ‘조화의 시작’은 지혜와 동일시되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창조사역 이전에도 존재하셨으며,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능력으로 사역을 진행하셨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성자 그리스도를 창조 사역의 동역자로 세우셨습니다(23절). 아직 깊은 바다가 생기기도 전에, 아직 산의 기초가 생기기 전에, 아직 땅도 들도 만드시기 전, 세상의 먼지를 만드시기 전(24~26절)부터 존재하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7),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지혜는 우주 만물의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들에게 참된 삶의 길을 제시하시고, 나아가 인생의 궁극적은 문제들을 해결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지혜의 가르침을 받고 지혜가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내 자신에게는 생명의 길이 됩니다. 내 자신의 삶의 원리를 제공하여 주시는 지혜 말씀에 더욱 적극적으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지혜의 능력을 매일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지혜를 소유하여 승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27~31절).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 지혜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 거기 있었습니다. 바다의 한계를 정하시고,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도 그 곁에서 ‘건축사가 되어 매일 기쁨으로 충만하였고, 항상 그분 앞에서 춤추며, 그분이 만드신 온 땅에서 춤추며, 사람들에게서 기쁨...’(30~31절,쉬운성경)을 얻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오묘하게 창조하실 때 지혜가 필요하셨다면, 오늘 내 자신이 당면한 삶의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그 지혜를 내 자신이 소유하게 될 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여전히 우주 가운데 섭리하시고, 내 자신의 모든 삶을 주관하여 가십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내 마음과 삶으로 초청하여 모셔 드릴 때, 삶의 승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지혜의 능력이 내 자신의 모든 막힌 벽을 허물어 주셔서, 선하신 길로 날마다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 말씀에 가까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지혜를 사모하여 생명얻는 삶이어야 합니다(32~36절).
복되고 복된 자의 삶이란 지혜의 말을 듣고, 그 길을 따르는 사람입니다(32절).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고, 그것을 버리지 않는 사람(33절)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이 사랑하는 사람의 집 문 앞에서 지켜 서서 날마다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34절)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궁극적으로 ‘...생명을 얻어 여호와께서 은총을 얻을 것...’(35절)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혜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요, 지혜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는 자(36절)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 자신을 통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그 뜻대로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지혜를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바르고 선한 행실을 세상 속에서 드러내며 살아가도록 지혜를 사모하고, 그 말씀을 듣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혜는 내 자신을 사망의 길로부터 지켜주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품고 살아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내 자신의 삶의 질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되어 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오늘도 겸손히 지혜를 구하고, 기다립니다. 날마다 갈급한 마음으로 지혜를 구하여 생명 얻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행이 있는 삶을 통해 세상 속에서 승리하며 온전한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지혜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여, 생명의 길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잠 8:22~36절)...
창조 전의 지혜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지혜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태초에 일하시기 전부터 가지고 계셨습니다.
만세 전부터 있었습니다.
땅이 생기기 전부터 세움을 받았습니다.
바다가 생기기 전에 있었습니다.
큰 샘들이 있기 전에 이미 났습니다.
산도, 언덕도, 땅도, 들도, 진토의 근원도 없을 때 이미 있었습니다.
지혜는 원래 하나님의 것입니다.
지혜는 영원한 분이십니다.
요한복음에도 같은 맥락의 말씀이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며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고 합니다.
원래부터 계신 하나님, 말씀, 지혜는 다 같이 계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창조 중의 지혜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창조 전에 하나님과 함께 했던 지혜는 창조가 진행하는 중에도 함께 했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의 창조는 지혜 없이 되어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씩 지어질 때마다 기쁨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지으셨을 때는 그 기쁨이 극에 달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이유는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거처할 땅을 만드셨습니다.
그들이 사용할 것들을 만드셨습니다.
살아갈 모든 조건을 다 만드신 후 그 가운데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다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곳에는 하나님의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혜로 지으신 이 땅을 인간이 마음대로 다루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춰, 지혜의 힘을 빌려 다스려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셨다고 했던 그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라
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아비의 도를 지키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그 지혜의 말씀을 기다리는 자도 복된 자입니다.
그 앞에서 진지하게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반복되는 말씀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훈계를 들어야 합니다.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것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더 듣고자 기다리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그러한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여호와께 은총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 말씀을 청종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10월13일 인천대공원
그러나 지혜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입니다.
지혜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즉,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창조 전부터 함께 존재한 지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외치고 있습니다.
지혜가 부르고 명철이 소리를 높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따라가야 합니다.
지혜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함께 존재한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로 이 세상을 최상의 조건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만드신 후 그 세상을 주셨습니다.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
정복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기의 욕심을 따라 자연을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의 원래의 창조의 목적을 벗어난 모습으로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파괴되고 질서가 깨졌습니다.
그러한 결과를 인류는 고스란히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던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킬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상기시켜 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고 그 지혜를 얻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
인간의 욕심이 컸습니다.
주님의 뜻을 역행한 것이 많습니다.
주님의 지혜로 다스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파괴하였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회복될 수 있는 은혜를 구합니다.
깨어지고 부서진 부분들을 회복시켜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만드시고 멈추지 않는 축복으로 채우시기 기뻐하시는 그 지혜에 합당한 겸손과 순종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이 열어주신 구원과 생명의 길을 날마다 선포하며 변치 않는 그의 증인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도 끊이지 않고 악화되고 있는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신음하고 고통으로 눈물 흘리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모든 악을 제하시며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덮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오직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고
그 생명의 길 가운데 걸어가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0월13일 부천상동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