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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임재를 지속하게 하는 거룩한 순종 (행3-5)
2026년 8월 6일 (목요일)
찬양 : 환난과 핍박 중에도
본문 : 사도행전 5:1-42절
☞ https://youtu.be/HRBItvJwpKY?si=I21Tw_LAo-ycvZHM
어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공부를 통해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나누었다. 특히 어제는 요16장13-14절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주께 들은 것을 말씀하심으로 우리에게 장래 일을 알리시고 그 사역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말씀이 큰 울림을 주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계속 사모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친밀한 교제가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오늘은 부대표와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려 한다. 그간 홀로 라마나욧선교회를 이끌며 어느 때보다 바쁘게 여름 사역을 진행하셨다. 수고하신 강사님들과 이끄신 부대표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며 수고하신 사역자들의 열정에 하늘의 기름부어 주심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사도행전 5장은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에 일어난 두 가지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며, 또 하나는 사도들의 핍박이다.
우리는 가끔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이기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가진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에 교회 내부에도 또 외부에도 문제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리며 중요한 사실은 성령안에서 이런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먼저 내부의 문제이다. 3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성령이 일하시는 교회가 되자 모든 성도에게 사랑으로 구제하기 위한 열풍이 불었다. 특히 바나바란 사람은 자기 밭을 팔아 그것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한다. 이는 하나님께 완전한 주권의 이양을 선언하며 교회의 질서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표현이다.
이때 아나니아란 사람이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이 열풍의 대열에 참여하여 소유를 팔았다. 그러나 그는 값의 얼마를 감추고 일부만 가져와 전부인 것처럼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이때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 베드로는, 이것이 단지 헌금의 액수 문제가 아니라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성령을 속인 거짓임을 정확히 분별해 교회의 거룩을 지켜낸다.
분명 성령의 일하심으로 놀라운 변화의 바람이 부는 순간, 내부에서 사탄이 교묘한 시기와 경쟁과 거짓의 씨앗을 퍼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칭찬을 얻기 위해 외식적인 행동을 하였지만, 사도들은 성령안에서 이를 분별하여 거짓을 차단하고 더 놀라운 부흥의 기폭제가 되었다. 14절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하나님 나라는 거룩이 지켜질 때 성령의 역사가 지속된다. 작아보이는 이 내부에서 일어난 사탄의 교묘한 전략은 바로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행동속에 작은 거짓을 심는 일이었음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일로 세상은 교회의 거룩을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사도들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가 더욱 많이 일어나게 되어 베드로가 지나는 길에 그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소망하며 병든 사람들을 거리로 메고 나오는 엄청난 부흥이 기폭제가 되었다.
성령이 주신 분별력으로 내부의 위기를 이겨내자, 사탄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의 시기심을 통해 외부의 핍박을 시작한다. 18절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사도들을 통해 일어나는 부흥의 불길을 가로막기 위해 사도들을 감옥에 가둔 것이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은 이들에게 사자를 보내어 옥문을 열어주며 이렇게 당부하신다. 20절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이유도 없이 감옥에 가두는 때, 성령은 이들의 복음 전함이 막히지 않도록 이들에게 천사를 보내어 문을 열고 분명한 사명의 자리를 알려주신 것이다. 사도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당당히 복음을 새벽부터 전하기 시작한다. 21절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그들은 두려움 없이 새벽부터 성전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주님이 주신 말씀에 온전한 순종으로 나아간 것이다. 여기에 그 어떤 타협이 없다. 성전에 들어가 새벽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실 대놓고 나를 잡으라는 말이 아닌가?
새벽부터 성전에 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간적인 얄팍한 계산이나 효율성을 따지면 정말 어리석은 방법일 뿐인데 제자들은 그대로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고 다시 끌려와 공회앞에 서게 된다. 27-28절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옥문을 열어주고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신 하나님은 바로 잡히는 자리로 가라고 하신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그런데 그렇게 사도들을 잡은 대제사장은 그들의 숨은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유대 사회에서 누군가의 '피를 돌린다'는 것은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과 그에 따른 형벌을 묻는다는 관용적 표현이다. 즉, 대제사장은 "너희(사도들)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예수가 메시아라고 가르침으로써,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우리(산헤드린 공회)를 살인자로 몰아세우고 민중의 분노와 심판을 우리에게 쏟아지게 하려느냐!"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 예수님을 심판하며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쳤던 이들이다. 그렇게 당당하게 외쳤던 이들이 성령이 일하시는 놀라운 교회를 보면서 자신들이 내뱉었던 그 저주의 말이 자신들의 목을 조여오는 것으로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음을 보게 된다. 바로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사도들을 성전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교회의 위기에 꼭 필요한 사실은 그러므로 거룩한 순종임을 배운다. 교묘한 인간적 계산서를 뛰어넘어 겸손히 거룩한 순종으로 나아갈 때 그곳에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일들이 펼져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성령에 이끌린 베드로는 당당히 외친다. 29-32절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는 사탄의 교묘한 공격대상이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내부와 외부의 공격에 이기는 중요한 비결은 성령께 순종하는 삶이 될 때 이런 공격을 분별할 수 있고 그 자리에 예비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게 됨을 배운다.
이 일로 사도들은 채찍을 맞는다. 그러나 이들은 기뻐하면서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를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40-42절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를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성령이 이끄시는 사람이 되자, 이 채찍을 맞는 사건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능욕을 받는 가치 있는 사람임을 알고 기뻐했다는 말이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는 참으로 그 어떤 것으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며 복음의 빛이 약해진 지금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이 바로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로 거듭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사탄의 전략인 거룩을 더럽히는 일에 순전함으로 순종하고, 외부의 핍박에 굴복시키려는 일에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으로 나아가 성령의 일하시는 교회로 다시금 거듭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하고 기도하게 된다.
한줄 묵상 :
<내 안의 얄팍한 계산서를 찢어버리고, 다시 성령님의 뜻에 거룩한 순종으로 나아가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적용 질문 :
1. 아나니아와 삽비처럼 내 안에도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보다 사람들의 인정과 시선을 의식하여 포장하고 있는 외식적인 모습은 없습니까?
2. 최근 주님이 내게 감동을 주셨을 때, 나의 '인간적인 계산서' 때문에 순종을 망설이거나 타협한 적은 없습니까?
3. 나는 신앙생활 때문에 억울한 일이나 손해를 겪을 때 원망합니까, 아니면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심을 기뻐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