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을 받고 잉그마르가 목욕 시중을 들었다.
“젠장! 이 나이에 내가 니 목욕 시중을 들어야 되겠니?”
“알았어, 팔 나으면 내가 언니 때 싹 밀어줄게!”
“됐어, 공주 시중 받고 명 짧아 질 일 있니?”
“비밀로 하면 되지!”
“쳇! 자드, 고자질쟁이가. 왼팔 들어봐. 윽, 안 되겠다. 이 옷 버리자!”
그러더니 단검을 가지고 와서 옷을 죽죽 찢었다.
“오! 자드 너 몸이 변했나봐. 근육이 진화됐어!”
“정말? 와! 진짜네, 아싸. 어쩐지 몸이 가벼워진 것 같더라니까!
머릿속에든 생각 그대로 몸이 움직이더라니까?”
“진짜 불공평하다. 왕족은 전부 이런 식으로 강해지는 거냐?”
“글쎄……. 언니, 왕족들은 다 강해?”
“아냐, 그건 아니지, 이런 식이면 대륙 열일곱 왕조에 마스터가 수십 명은 돼야 하는데, 겨우 몇 명밖에 없잖아. 어쨌든 자드 넌 이런 식으로 변하면 조만간 마스터 되겠다.”
“아싸! 언니 여기 복근 좀 봐봐. 언니하고 비슷하지? 완전 빵빵해!”
“어디, 오, 나보다 나은데!”
잉그마르가 내 온몸을 주물럭거렸다.
“야, 대단하다. 근육이 살아 있는 것처럼 탄력이 있어. 마스터들의 근육이 이런 식 인가봐, 부드러우면서도 굉장히 강한 느낌이야. 어떤 동작에도 근육경련 같은 게 안 일어 날 것 같아, 그런데 가슴이 없네? 웬만한 남자보다 납작해!”
“당연하지! 몸이 최적화돼서 지방이 거의 없어졌는데, 가슴은 지방덩어리니까, 더 작아졌지. 그래도 난 좋아!”
“어이구! 여자가 되가지고 하는 짓이. 전하는 싫어하실걸?”
“됐어! 움직일 때 불편하기만 하지, 맘에 안 들면 딴 여자 고르라 그래. 나야 그래주면 고맙지!”
딱!
“아야, 왜 또!”
“염장을 질러요! 고마운 줄도 모르고.”
“언니는! 사실 이건 전하를 위한 말이기도 해. 봐 내가 여기서 한 번 더 변신하는 거야.
키가 2미터가 넘게 말이야, 어때? 내가 귄터 공작만 해져도 전하가 나랑 결혼할 것 같아?” 온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걸? 자 물 좀 부어 줘봐! “
“그럼 너는 전하가 괜찮다고 하시면 그 떡대로 왕비가 될래? “
“절대 안 돼! 그렇게 되면 차라리 귄터 공작과 결혼하는 게 낫지! 내 인생 신조가
‘시선 끌지 않기’야. 참고로 이조는 ‘평범하게 살기’야”
“귄터공작님이 너랑 결혼해준대? 왕의 약혼자와 결혼, 그거야말로 세상의 시선 집중이다. 배신의 떡대 부부 탄생, 그거 보려고 온 대륙이 다 몰려오겠다!”
“오! 그럼 안 되지, 아야! 거기 말고 그 밑으로 좀 밀어봐, 근질근질해!”
“온 몸이 아주 퍼렇다. 어떻게 굴러다니면 요렇게 완벽하게 멍이 드니?”
“됐어, 됐어, 이젠 물 좀 부어 줘봐. 근데, 퍼펙트 근육이면 이렇게 멍이 안 들어야 되는 거 아냐? 어깨도 그렇고 말이야.”
“자, 수건, 아냐, 보통사람이 너처럼 그랬다면 찢어지고 부러지고 했을 거야, 멍만 들었다는 게 대단한 거지. 잠깐! 머리는 내가 닦아줄게.”
“아, 고마워 언니, 대충 짜서 수건으로 감아줘 그래야 퍼석해 지니까.”
“으이구! 내가 너 보면 인생이 공허해진다. 넌 진짜 별종이야!”
“안 돼, 언니 나한테 별종이란 말 욕이야, 선전포고라고!”
짝!
아얏!
잉그마르는 내 등을 눈물이 찔끔 나게 후려치고는 욕실을 나가버렸다.
나는 침실로 가서 덜렁거리는 오른팔을 놔두고 왼팔로 쇼를 하며 옷을 입었다.
벗는 거보다 입는 게 더 힘드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베르시가 오른팔을 고정시켰다. 벌써 두 번째다.
공주 몸이 고생을 하는구나.
잉그마르가 과일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어제부터 몬스터들이 난리를 치고 있댄다.”
“왜?”
“시의 발표로는 어제 신성의 빛이 발한것 때문이라고 하더라고, 위험해서 정벌군이 하루 일찍 철수하고 있다네.”
“그럼, 오거도?”
“그래 성벽 한 쪽이 허물어지고 한 떼가 난입했는데, 피해가 많았대, 그러니 시내까지 들어왔겠지…….”
“다들 무사해야 할 텐데…….”
“공주! 시에서 감사장이 왔습니다. ‘일급 용병 패’하고요!”
“무슨 감사장요!”
잉그마르가 깔깔거리며 뒹굴었다.
“오거 두들겨 팼다고 보냈죠, 용병패는 군 생활 싫증나면 언제든 환영하겠다.
이런 뜻 아니겠습니까, 좋~으시겠습니다.”
또, 또, 저걸 언제 한번 작살을 내야 하는데. 지금은 실력이 딸려서 안 되겠고.
“아! 돈도 보냈습니다. 공주 50골드, 나한테 100골드.”
“와! 근데 베르시는 왜 백 골드야?”
“그야, 자드 너는 오거, 베르시는 트위헤드오거!”
“뭐야, 그거 내가 미끼가 돼서 잡은 거니까 수고비 내놔!”
“목숨 구해줬는데. 감사비나 주시죠!”
와! 진짜 안 진다. 저거…….
“언니, 50골드면 얼마나 되지?”
“아! 너 공주지! 자꾸 잊어버린다니까, 딱 내 월급이네.”
“와! 그렇게 많아? 언니, 우리 오거나 잡으러 다닐까?”
“됐어, 죽을 뻔해놓고 겁도 없어, 한 마리씩 차례로 나와 준대?”
오거 잡으려면 용병들도 50명 이상이 한조야. “
나는 50골드와 감사장, 용병 패를 받아 잘 챙겨 놓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 와서 처음 만져보는 돈이다. 여태껏 빈대 붙어 살았는데.
“아! 언니 월급날 언제야?”
“왜!”
“월급 받고 싶어서!”
배타고 놀고 왔어도 엄연히 한 달, 이리저리 두 달이다.
“우리 올 때 2개월분 미리 받았고, 돌아갈 때 상업도시에서 5개월분, 돌아가서 3개월분 받을 거야.”
“난 왜 안줘?”
“공주는 정식이 아니고 견습이니까요, 앞으로도 없을걸요.” 이 자식이!
“너무해!”
“월급 받아서 뭐하려고?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헉!
맞다. 예전에는 돈 모아서 성형수술하고, 이쁜 옷 사고 면허 따고,
취직하면 차도 사고 싶었는데,
그래서 손에 들어온 돈은, 절대 새 나가지 않은 나였다. 그런데 이게 뭐야?
수술 필요 없어, 이쁜 옷 입으면 웃길 떡대, 말 타고 다니니 면허증 필요 없어.
갑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축져진 어깨 그것도 한 쪽은 부서진 어깨를 하고,
머리엔 여전히 수건을 감은채로 좀비처럼 이층 침실로 올라갔다.
몸이 한기가 드는 것이 몸살이 오려는 것 같았다. 아! 우울증이 도진다.
이럴 땐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자는 게 제일이다.
그리고 삼일 잤다.
투명인간이 된 듯, 영화를 보는 듯 또 꿈을 꾸었다.
통역이 안 되는 언어로 지구의 포세이돈처럼 생긴 신과 알록달록한 머리를 한 인간으로
플리모프된 상태의 드래곤들이 공중에 둥둥 떠서 말싸움을 하고 있다.
조용히 말이 오가는데도 분위기는 마치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한가운데처럼 느껴진다.
신이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모두의 시선이 아래를 향한다.
아! 대륙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눈에 찍히는 곳이 줌인 되듯 낱낱이 날아와 박혔다.
뭐야?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인가? 퇴폐와 타락과 문란과 범죄와 모든 죄악이
눈에 들어온다. 구역질이 났다.
다른 쪽은 ‘트로이 전쟁’편인지 인간의 군대가 미친 듯 서로를 살육하고 있다.
또 다른 쪽은 마법사들이 발칸판 731, 마루타 실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마법사들이 신과 드레곤이 있는 하늘을 가리키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들의 눈동자엔 적의가 가득했고, 입가엔 비웃음이 흘렀다. ‘신을 죽여라,
드래곤을 죽여라’ 그들의 마음이 흘러 나왔다.
놀라서 신을 쳐다보았다.
공허해 보이는 눈이다. 드래곤들의 눈을 보았다. 슬퍼보였다. 그러나 그 슬픔보다도 고통과 안타까움이 더한 것 같았다.
그러다 한 존재의 신과 열일곱의 드래곤들이 내게 동시에 말했다.
‘나에게 오라…….’ ‘나에게 오라.......’
헉! 아, 깼다! 다행이다! 이곳은 꿈도 아주 시리즈로 꾼다.
난 누운 채 생각했다. 이것이 예지몽이나 신탁일지라도 지금의 모습은 아니다. 많이 보진 않았지만 이곳은 이상하리만큼 국경 분쟁이 없는 곳이다. 몬스터 때문에 싸울 힘도 없다.
사회적 퇴폐나 문란도 심하지 않다. 역시 몬스터 때문이다. 마법사들 역시 숫자도 적지만 치료에 전념하는 쪽이다. 역시 몬스터……. 오히려 이 꿈은 지구의 모습을 약간 과장 한 것 이라는 게 더 어울린다.
이곳의 미래란 말인가? 맙소사……. 끔찍하다!
이것이 예지몽이라면 아무 상관도 없는 나에게 왜? 혹시 내가 구세주? 설마?
아니,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데. 초 미녀에. 초 사이언에. 완벽한 근육에. 어째 척척 변신할 때 알아 봤어야 하는데…….
그렇다! 나는 이 대륙을 구하러온. 타락과 전쟁과 사이비 과학자의 척결자, 자드 라실 이었던 것이다! 과연 그럴까?
임무가 너무 막중해서 또 잠이 올 것 같다. 어떡하면 이 세상을 악에서 구할까 하는 명상에 잠기려는 순간, 잉그마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드! 전하께서 네 월급 열 달 치 보내 주셨어!”
뭐야! 돈?
쾅!
“아야!”
으잉, 이 목소린? 귓속말 하던 사람은 어디가고…….
“레위나 언니? 언니 무사했구나! 아싸. 내 돈!”
“뭐야, 이 돈벌레는?” 엥겔 큰언니 무사 하셨군요!
“섭섭해!” 피오나언니두요.
“아싸! 다 모여 있었네. 자! 오늘 내가 한 턱 쏜다!”
“쏜다?” 엥겔이 말했다.
“내가 낸 다구요. 월급, 내 월급 어디 있어?”
“얘, 왜 이러니?” 피오나가 말했다.
“웃겨! 견습이라 월급 안 준다니까, 그 길로 삼일을 잠만 자는 거야! 그래서 본국에 통신을 보냈잖아, 전하께서 월급 열 달 치를 주라 그러셨어, 그 다음은 봤지? 벌떡 일어나는 거.”
“얼마야, 언니? 오백?”
“죽을래? 어디 초보가, 십 년차 월급을……. 자 삼백골드야!”
“에게."
“뭐? 이 돈이면 일반가정 2년 치 생활비야! 간이 부었어. 아! 공주지!”
잉그마르가 혼자 자문자답을 해댔다.
오! 그렇게나. 그럼 혼자 아껴 쓰면 8년은 쓸 돈? 오예! 여전히 나는, 돈을 보면 행복해 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내 재산은 총 350골드다!
“근데, 자드 왜 이리 몸이 작아졌니? 많이 아팠어? 월급 때문에?” 엥겔이 말했다.
“말도 마, 저게, 한 번 더 변신했어. 몸이 장난 아니야, 오거를 맨 주먹으로 때려잡았다니까 그러니까 있잖아…….”
잉그마르가 저렇게 수다스러울 줄은 생각도 못했다. 넷이서 아주 신이 나서 떠들어댄다. 배타고 감옥살이한 얘기를 끝도 없이 해댔다. 거기에다 오거 잡은 얘길 얼마나 실감나게 하는지 내가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어느 정도 듣던 나의 신경은 다시 돈으로 돌아왔다. 한 가정 이년치의 종자돈, 이 돈으로 대륙을 재패해 버리리라. 우하핫. 그랬다. 나의 심사숙고는 역시 본대로 배운 대로 돈으로 세상을 평정시키겠단 각오로 결말이 났다. 돈의 평화와 평탄을…….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일어나!”
난 간밤에 날 씹어대다 잠든 4인조를 깨워댔다. 온갖 욕설과 구타와 증오의 오로라를 무시한 채. 다 깨워 일으켰다! 왜? 돈을 벌려면 시장조사를 해야 하니까!
혼자하면?. 재미없으니까!
첫댓글 후..-_-주인공 참..나는 미녀가되고싶은데 주인공은떡대가 되고싶다니!!하하 역시 사람이라서 그런지 돈은 밝히는군-_-....다음편도 기대할게요~
^^ 감사합니다. 우리 떡대 예쁘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