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4. 10. 28. 월요일.
날씨는 흐리다.
<국보문학카폐> '감동 좋은 글방'에 글이 올랐다.
일부를 퍼서 여기에 올린다.
인생의 세 가지 불행
중국 송나라 성리학의 대표적 학자인 '정이'는
인생에는 세 가지 불행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는 '소년등과(少年登科)'로
너무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인생의 쓴맛을 보지 못한 사람이 단번에 벼슬을 얻는다면 쉽게 나태해지고,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석부형제지세(席父兄弟之勢)'라고 하는데,
이는 권세 있는 부모, 형제를 두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일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하면 특권의식에 빠질 수 있으며,
어려움이 닥쳐도 끈기가 없어서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유고재능문장(有高才能文章)'으로
재능이 뛰어나고, 문장력이 탁월한 것을 뜻합니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나더라도 인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만에 빠지고 우쭐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외면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이는 위 세 가지 조건을
인생을 내리막길로 이끄는 '인생삼불행(人生三不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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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정이 왈 :
有人生三不幸
。少年登科
。席父兄弟之势
。有高才能文章
정이의 자는 정숙(政叔). 중국 하남에서 태어났다. 형은 정호.
정이는 성리학과 양명학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 유교의 인물 : 공자, 칠십자, 맹자, 순자, 동중서, 소옹,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주희, 왕양명
내가 댓글 달았고, '세상사는 이야기방'에도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내 댓글 :
송나라 : 서기 960년 2월 4일 ~ 1279년 3월 20일까지 존재했던 중국 국가.
송나라 사람인 '정이'는 위 기간 중에 존재했군요.
유학, 성리학 운운하니... 아직도 이런 학문이 필요할까요?
송나라 유학자 정이가 주장한 논리를 21세기인 지금도 적용하나요?
1) 소년등과(少年登科) 대신에 40~ 50대에서야 뒤늦게 공직시험에 합격해서 그때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하나요?
2) 석부형제지세(席父兄弟之勢) 대신에 지지리도 못나고 가난한 부모형제를 두어야 하나요?
3) 유고재능문장(有高才能文章) 대신에 못나고 엉터리로 글을 써야 하나요?
괴이한 논리이군요.
우리 역사 가운데 '이씨조선(1392 ~ 1910년)'이 있었지요.
중국 공맹사상에 찌들고, 한자문화에 푹 빠져서 세계에서 극도로 가난하고 빈약한 '쪼다 국가'였다가 일본한테 1910년 8월에 멸망당해서 일제식민지가 되었지요.
1945년 해방 후 대한민국은 한글로 공부하고, 노력해서 지금은 세계 230개 국가 중 국력은 10위 안으로 올라섰지요.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한글)으로 공부했기에 머리가 깨우쳐서 국력이 크게 성장했지요.
중국 고대와 중세문화에 치중한 듯한 위 글에 고개를 흔들고 싶군요
나는 정년퇴직한 지도 만16년이 더 되었기에 지금은 폭싹 늙은이가 되었다.
하도 무능하고, 무기력해서 할 일이 전혀 없는 늙은이 백수이다. 건강도 아주 나빠서 바깥으로 별로 나가지도 못한다.고작 아파트 안에서만 머물고,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 뉴스나 보고, 문학카페에 들락거리면서 회원이 올린 글을 보고, 또 나도 잡글이나 끄적거려서 올린다.
오늘도 똑 같다.
아내는 성당모임이 있다면서 바깥으로 나가면서 남편인 나한테 말했다.
"점심밥 혼자서 드세요. 성당 다녀올 게요."
오늘도 국보문학 카페에 들어와서 회원들이 올린 글을 보고 있다.
글 하나를 읽고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는 중국 한자, 중국 문화에 아주 눈이 어둬서 중국과 관련된 책은 보지 않는다.
특히나 고대와 중세의 중국 성리학에 대해서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괴이한 문화이기에.
내가 날마다 밥 먹는 식탁 유리판 밑에는 세계지도가 있고, 내 방안에는 세계지구의가 있고, 책꽃이에는 세계지리부도 책이 있어서 날마다 세계지도를 본다.
우리나라는 극동에 치우친 정말로 작은 나라이다.
세계 230개 국가 가운에 우리나라 남북한의 면적 크기는 세계 86위 쯤이며, 남한 면적은 세계 109위 순이다.
이처럼 국토가 작고, 인구 숫자도 별로인데도 대한민국(남한) 국력과 위상은 2020년대인 지금은 세계 10위 안에 들어서고 있다. 극동에 치우치고, 남한 북한으로 양분된 지극히 작은 나라인데도 대한민국(남한)이 강대국 대열에 거의 다가선 주요 요인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 가운데 나는 학교교육이라고 본다. 학교에서 한글로 공부해서 지능과 지혜가 크게 향상된 결과로 국가경쟁력이 갑자기, 크게, 세계적으로 떠올랐다라고 본다.
과거시대에는 왜그리 가난하고 못났을까?
내가 보기에는 조선조는 중국 한자문화, 중국 성리학/유학 등에 찌들었다고 본다.
즉 '이씨조선(서기 1392 ~ 1910년 8월)은 온통 중국 한자로 생활하던 국가, 한자 병이 든 사회, 즉 '쪼다 조선이였다'라고 나는 말한다.
조선조 제4대세종이 1443년에 훈민정음(한글)창제하고, 3년 뒤인 1446년에 세상에 널리 알렸는데도 당시의 지식층인 왕족, 양반, 사대부들은 훈민정음을 천대 멸시했다.훈민정음(한글)은 고작 아녀자들, 백성, 천민들에게만 조금 전파 사용되었다.
즉 한자로 된 유학 성리학은 크게 발전했어도 훈민정음(한글)으로 된 교육은 지극히 미미해서 조선조 백성은 대부분 문맹자였다는 뜻이다.
조선조 권력층인 양반계급 지식인들은 오로지 중국 한자에나 정통하고 익숙해서 중국 고전인 유교/주자학/성리학에나 찌들었다. 공자 맹자를 일컫는 '공맹사상'에나 급급했다.
지금은 2020년 새로운 세상이다.
오늘은 2024. 10. 28. 월요일이다.
<국보문학카페>에 오른 어떤 글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싶다.
나는 1949년 1월 말 생, 충남 보령군 웅천읍 산골 아래에서 태어났던 당시를 떠올린다.
마을사람 어른들은 초등학교(소학교, 국민학교)조차 다니지 못한 문맹자가 대부분이었다. 한글조차도 읽지도 못하는 산골사람들이었다.
동네에서 초상이 나면 유식한 한문쟁이 영감들이 한자로 된 제례문 기제사 축문을 써서 주었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한자 밑에 한글로 음역해서 한글을 겨우 읽는다.
* 나보다 한 세대 앞선 내 아버지와 어머니도 학교 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다. 동네 야학에서 가갸거겨를 배워서 한글은 그런대로 읽으셨다.
維 歲次 丙申九月丙辰朔 十一日丙寅
孝孫 ㅇ ㅇ 敢昭告于
顯祖考學生府君
顯祖妣孺人 ㅇㅇㅇ氏 歲序遷易
顯祖考 諱日復臨 追遠感時 不勝永慕
謹以 淸酌庶羞 恭伸奠獻 尙
나는 이런 류의 한자를 2024년인 지금도 제대로 읽지도 못한다.
지금은 2020년대 새로운 세상.
내 한 명뿐인 외손자는 유치원생이다.
이 어린아이가 유치원에서 한글 가갸거겨를 배워서 어린이 동화책을 읽는다. 더듬거리며 글자를 읽기는 하되 그게 무슨 뜻인지를 제대로 모를 게다. 그래도 글자인 한글을 읽는다.
2.
일전 내 큰딸이 구입해서 택배로 우송한 '소년이 온다' 소설책.
나는 한강 소설가가 쓴 이 소설을 6번이나 읽었으나 나한테는 느낌이 별로이다.
이 소설 속의 내용은 나한테는... 그냥이다. 아무런 느낌도 없는... 상투적인 .....
나는 1979. 12. 12. 사태 당시 그날 밤 서울 용산구 삼각지 어떤 청사에서 숨어서 벌벌 떨면서 밤을 지새웠다.
그 이후에 전개된 상황.... 그거 역사적인 기록이 제대로 남았을까?
'아니다.'라면서 나는 고개를 내젖고 싶다.
오늘 방금 전 큰딸한테서 문자가 왔다.
한승원 소설가의 딸 한강이 쓴 소설책 한 권을 택배보냈다고 한다.
아파트 문 앞에서 우송된 책을 가져왔다.
'작별하지 않는다'
나는 큰딸한테 고맙다고 문자로 회신했다.
'앞으로는 소설책 사서 친정으로 택배 보내지 말라. 한강 소설책 '소년이 온다'를 6번이나 거듭 읽었어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내가 경험했고, 체험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기에...'라는 뜻으로 회신했다.
한강 소설책 3종류를 사서 친정으로 택배보낸 큰딸한테 고마워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책은 제주 4.3사건에 관한 내용
제주 4·3사건(濟州四三事件) :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 항쟁에서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 광복 이후 미군정과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일어난 소요를, 군경이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발생한 사태이다.
내 대학교 시절(1960년대 말) 정치학교수들은 한국정치사를 제대로 강의하지 못한 채 에둘러서 외국의 사례나 고작 강의했다.
오늘 택배로 받은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의 소설책을 읽어야겠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작가 한강이 태어나기 이전인 1948년 ~ 1954년에 걸쳐 발생한 혼탁한 국내 정치변동이기에 1970년 11월에 태어난 한강은 이를 제대로 이해했을까 싶다.
그래도 한번쯤은 읽어야겠다.
내 큰딸의 성의를 봐서.....
나중에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