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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삶 2:1~4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구원, 하나님의 선물 2:5~10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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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진노의 자녀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심은 그 은혜의 풍성함을 여러 세대에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구원은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받은 선물이니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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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삶 2:1~4
하나님을 떠난 삶은 죽음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였습니다(1절). 바울은 우리가 죽었던 ‘그때’의 특성을 열거합니다. 악과 불의가 일상이 된 세상 풍조를 즐겼고, 불순종의 사람들 속에서 활동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유혹하는 악한 영을 추종했으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욕망을 따라 살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 대상인 ‘진노의 자녀’ 모습입니다(2~3절). 그럼에도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 큰 사랑’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1, 4절). 그리스도가 없었던 ‘그때’와 그리스도를 만난 ‘지금’을 대비하면, 하나님 사랑 안에서 누리는 구원의 가치를 잘 알 수 있습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 삶을 어떻게 묘사했나요?
그리스도를 믿기 전 내 모습을 돌아볼 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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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하나님의 선물 2:5~10
구원의 설계는 하나님의 주권이고, 구원의 실현 방법은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표현합니다(5~6절). 자신의 피를 제물로 삼아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아니면, 우리의 구원과 부활과 승귀(昇貴)가 결코 실현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 은혜로 가능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장차 도래할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기 위함이며(7절), 어떤 사람도 자신의 구원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9절). 하나님의 작품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선행은 구원받은 성도의 책무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이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은혜로 구원받은 내가 미루지 말고 행할 선한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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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임계점
강헌구 교수는 「가슴 뛰는 삶」이란 책에서 ‘임계 질량’을 돌파하라고 강조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도중에 포기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반드시 필요한 양을 채울 때 놀라운 상승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수소 폭탄이 핵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일곱 개의 원소 봉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여섯 개의 원소 봉을 집어넣을 때까지는 원자로 안에서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일곱 번째 원소 봉이 들어가면 비로소 원자로 안에서 핵반응이 일어나면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분출되어 나오기 시작한다. 이처럼 핵분열 연쇄 반응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 질량을 가리켜 ‘임계 질량’이라고 한다. 물은 99도에서 절대 끓지 않는다. 100도가 되어야 끓는다. 물을 수증기로 바꿔 놓는 것은 바로 그 결정적인 1도의 차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터지듯 어학 실력이 느는 것도 그렇다. 자전거를 배울 때도 한참 동안 균형을 못 잡고 쩔쩔매다가 어느 순간 방법을 터득한다. 결국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 구원을 얻지 못한 것처럼, 가장 중요한 한 점에 이르지 못하면 모든 신앙적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삶과 신앙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대상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나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 강준민 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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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에베소서 2장 1~2절
은혜는 예수님을 믿기 이전 삶을 생각할 때 깊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 밖에 있을 때는 세상 풍조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습니다. 악한 영의 지배 아래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세상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우리를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불순종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했습니다. 우리 삶을 절망에서 소망으로 바꾸신 예수님께 우리가 드릴 것은 영원한 찬양입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희망찬 미래를 보고 약속을 붙든다면 어떤 절망 중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 하용조
오늘의 기도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세상을 바라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여전히 붙들고 있는 제 연약함을 용서하소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저를 측량할 수 없는 사랑으로 살리신 구원의 은혜만을 자랑하길 원합니다. 하나님 손에 빚어진 인생이니 하나님의 선한 일에 힘쓰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93 주의 사랑 비칠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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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려 주신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가지 않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를 올려 드리도록 하자
자비가 넘치시고,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주시는 그분을 믿고, 그분의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하루가 되도록 하자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이 모든 상황들 속에는 주님께서 계획하고 뜻하신 의미들이 있을 것임을 잊지 말고, 그런 상황들 속에서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또 많이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
본문에서 먼저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이나 이 복음을 받는 에베소 성도들이 모두 과거에는 허물과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존재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어서 바울은 그들이 죄사함 곧 구원을 받은 것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구원은 사람들이 어떤 선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선물과 같이 그저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따라서 구원 받은 성도는 불신자들과 비교해서 하나님 앞에서 전혀 자랑할 것이 없다.
오히려 성도는 오직 은혜로 받은 구원을 늘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뜻이 무엇인지 묵상하며 '선한 일'에 더욱 힘써야겠다.
1.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구원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해서는, 은혜의 내용이 무엇인지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성도가 구원받기 전의 상태를 먼저 설명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요, 산 자가 아닙니다(1). 이들은 모두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를 따르며 살아왔습니다(2). 또한 이들은 오직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살았으며,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들이었습니다(3).
2.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허물로 죽어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4~5). 이것이 거듭남(중생)이며, 이것은 오직 은혜로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난(새로 태어난) 사람들을 하나님은 일으키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6). 사도는 성도의 구원이 얼마나 확정적인지를,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것은 이미 완전히 이루어진 구원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모든 인류에게 보여주고자 하십니다(7).
3. 우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이며,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8~9). 우리의 믿음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입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우리 안에 믿음이 생겨났고, 그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구원이 성도의 삶의 모든 근거라면,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자답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10).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사람들의 과거 상태를 폭로하고, 그러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과 그 결과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심은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여러 세대에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게 하시려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구원 이전의 상태, 은혜로 받은 구원, 구원의 원리, 구원의 목적 등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너희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악한 영의 통치를 받아 살았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곧이어서 나오는 ‘우리’라는 말과 대조되는 것으로, 곧 이방인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의 두 부류가 있었는데 후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방인 성도들만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에 속해 살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유대인 성도들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다음 문장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라는 문장에 종속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방인 성도들이나 유대인 성도들이나 한결같이 과거에 악한 영의 통치를 받아 살았으며, 진노의 자녀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불순종의 아들들’은 ‘하나님에게 대적하여 불순종하는 사람들' 곧 복음을 거부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란 불순종의 사람들을 격동시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방해하는 초자연적인 악한 세력, 곧 사단을 의미합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하늘에 앉히셨다’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죄로 인하여 초래된 영적 죽음에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부활로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하늘에 앉히셨다고 선포합니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부활이 주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과 같이, 하늘에 앉는 것도 주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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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죄와 허물 속에서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우리를 예수님이 살리셨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회심 전 우리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허물은 ‘진리에서 벗어남’, ‘일탈’, ‘타락’, ‘과실’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사람은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산 사람으로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으니 영이 죽어 있을 수 밖에 없지요. 유일한 회복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의 구속밖에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비로서 우리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가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심지어 종교를 가진 사람이나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나 다 똑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죽었던 우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에 그분의 뜻에 맞추어 살아야 할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 우리 목숨은 우리 것이 아니라 그분 것입니다. 더는 우리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할 수 없고, 육체의 욕망대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의 특징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며,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다 보면 죄와 친하게 되며, 또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뿌리 같은 것이죠. 아무리 마음에 성령을 모시고 지낸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죄가 회복이 된다는 사실! 웬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선한 본성으로 회복이 되어야 하는데, 최대한 악한 본성으로 회복되니........그것도 빠른 속도로 말입니다.
‘리질리언스(resilence)’ 라는 말이 있습니다. ‘회복의 탄력성’을 뜻하는 말인데, 죄에 대한 ‘리질리언스’는 광속도인 것 같습니다. 선한 곳으로의 회복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망합니다. 아마도 우리라는 존재가 그것을 꺼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자아라고 볼 수 있는데, 만약 그것이 사라진다면 우리라는 존재도 사라져야 하므로 정녕 딜레마입니다. 따라서 자아가 올라올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봅니다. 자기 부인, 자기 포기, 자기 부정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자기가 죽어야 그리스도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부인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나는 부정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져야 할 새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부인, 자기부정, 자기 포기라는 이름입니다. 우리 마음의 가슴에 이름표를 하나씩 다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마음이 무언가를 하기를 원할 때, 육체의 욕망이 움직일 때, 바라보아야 할 이름표를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시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름표는 원래 다른 사람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이름표는 자신이 보아야 합니다. 그 까닭이 본문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살아났기에 이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답게, 스스로 선한 일들을 행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삶을 누리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죽은 것은 무게로 팔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게로도 팔리지 못하는 죽은 것이었습니다
입김보다 가벼워 무게를 달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시62: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우리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죽어 마땅한 진노의 자녀였을 뿐입니다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2~3)
그래서 다윗조차 사람은 입김보다 가볍고 사람의 날이 한 뼘 같으니 아, 슬프도다 탄식했던 것입니다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시39:5)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를 살리시고 하늘에 앉혀 중하게 하시고 우리의 날들을 영원하게 하셨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4~8)
우리가 이렇게 큰 사랑을 입고 이렇게 큰 선물을 받았는데, 어떻게 더 죄 가운데 살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6:1~2)
이제는 오직 주께서 우리를 지으신 처음 뜻대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백성 되기 원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2:10)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
‘죽은 사람들(1절), 진노의 자녀들(3절)’
우리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그분께 속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된 소식입니다. 심지어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속한 것만으로도 때론 자부심이 되고 위기에서 강력한 방패막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거하는 자로 선택받고 그로 말미암아 보호받는 존재라는 것이 얼마다 더 놀랍고 안전한 소식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이 땅 가운데 단 한 가지의 달란트도 위로부터 허락되지 않으면 소유하고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이 심각하게 죄로 오염되고 사망의 권세에 휩싸여 이미 죽었으며 준엄한 진노의 채찍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 어둠을 경험하고 그 두려움과 불안을 경험한 이는 그곳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물(8절)’
하지만 이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을 수 없었던 영혼 구원을 선물을 받은 존재이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양자가 되었음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마치 어떤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그 내각에 초청받는다면 세상에서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없듯이 우리의 능력으로 얻어 낼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다면 우리는 그에 합당한 그분의 선한 일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그분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을 감사하고 그 일에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반응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 귀한 사역에 초대받아 겸손과 순종으로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복된 주님의 성령 충만한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세상의 가치와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1~3절).
구원 받기 전의 우리의 모습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고, 이 세상 풍조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던(1~2절)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육신의 정욕대로 그리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3절)였습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모습은 한 마디로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내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 영적 죽음의 상태로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풍조라고 표현한 세상의 가치와 방식을 따라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며, 성경적 가치와 방식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육체와 세상의 가치와 방식에 묶여 살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쌓을 수 밖에 없고 급기야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지옥을 향해 가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세상의 풍조와 사탄의 유혹을 따라가던 삶에서 회개하여, 영적인 회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10월17일 퇴근후 상동역에서
➲ 긍휼이 풍성한 사랑안에 머물러야 합니다(4~7절).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 그 자체의 인간들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허물과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5절). 또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시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실 것(6절)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놀라운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해 자비로 베풀어 주셨습니다(7절).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은 참으로 크고 위대하십니다.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비양심적으로 세금을 거뒀던 사람도, 창녀도 살인강도도 용납해 주신 긍휼과 사랑입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을 범죄한 사람일지라도 용서해 주시는 긍휼과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그를 위로하신 사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아니었더라면 그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언제나 내 자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그 하나님을 날마다 믿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인생의 행복을 날마다 누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겸손해야 합니다(8~10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믿음을 통해 받은, 즉 하나님의 선물입니다(8절). 이 선물은 우리의 행위로 얻은 것이 아니기에 결코 자랑할 수 없는 것(9절)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10절,새번역)입니다.
조건을 바라고 주는 선물은 진정한 의미에서 선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조건을 바라지 않는 선물이 진정한 선물입니다. 죄와 죽음의 자리에 있던 내 자신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자리로 옮겨 주셨습니다. 사탄의 종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나의 신분을 바꿔 주셨습니다. 구원받을 만한 아무런 조건과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무 조건 없이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던 내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며, 늘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내 자신이 얻은 구원에 합당하도록 선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으며,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구원받은 자의 성숙한 삶이 무엇인지를 일상의 삶 가운데서 보여주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구원받을 어떠한 자격도 없는 나에게 빛으로 찾아오셔서 먼저 손을 내미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말로만이 아니라 거룩함과 선한 행실로써 구원받은 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며 살아갈 수 있기를(엡 2:1~10절)...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3절 :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구원받기 전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였습니다. 만족을 모르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그 욕심을 부추기는 세상 풍조를 따라, 그 풍조를 조장하는 악한 영의 역사를 따라 사는 것 자체가 죽음입니다. 우리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 사망의 길로 가면서도 그것이 죄이고 진노를 쌓는 일인 줄도 모른 채 살았습니다. 우리에게서 구원의 감사와 감격이 점점 사라지는 이유는 더 많은 은혜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구원받기 전 얼마나 비참한 상태였는지를 잊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이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실 분이 있을까?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이다.
원래의 모습은 불순종하는 자였고 세상 풍조를 따르는 영이었다.
육체를 따라 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존재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
그 은혜로 오늘을 살아간다.
구원의 감격을 잊지 말아야 한다.
때문에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하면서 그 은혜를 상기시켜야 한다.
오늘의 말씀 때문에 또다시 그 은혜를 새기게 되는 것이다.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그 크신 사랑을 오늘도 따라 살기 원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4-6절 :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나님의 긍휼이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가망 없는 우리에게 손을 먼저 내미신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거듭날 수도, 거룩할 수도, 거룩한 영광에 이를 수도 없었습니다. 구원은 단지 사죄나 해방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 하늘의 통치권에 참여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값없이 선물로 주신 구원이지만 결코 값싼 구원이 아닙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하나님은 허물과 죄로 죽은 생명을 살려주셨다.
가장 큰 은혜를 베푸신 분이시다.
내가 다시 산 것은 내 힘이 절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일 뿐이다.
다시 살 수 있는 은혜다.
그 은혜에 감격함으로 오늘도 살기 원한다.
주님을 멀리 떼어놓지 않는 하루를 원한다.
7-9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은 선물입니다. 받을 자격 없는 우리에게 주신 과분한 선물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믿음도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은혜 없이는 믿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 안에서 은혜 받을 만한 자격을 찾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고 고백합시다. 구원에 필요한 것은 나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구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겸손이지만 내 힘으로 얻어낸 듯 자랑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택하신 이유가 있다.
그 주님의 은혜를 나타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다.
나 혼자만 믿고 끝나면 안 되는 것이다.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음을 자랑해야 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구원의 은혜다.
오늘도 그 구원의 기쁨으로 채워지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10절 :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그 창조의 진폭을 보십시오. 죽음(1절)에서 새 생명으로, 죄짓는 삶에서 선한 일을 실천하는 삶으로 달라지게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겨우 살아난 정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낼 역동적인 구원입니다. 교회는 그 변화를 통해 세상을 놀라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도록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그 선한 목적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까?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나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존재다.
어디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원숭이가 진화한 것도 절대 아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시고 생기를 부어 넣어주신 존재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다 한다.
그 선한 일을 이루며 살아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 계획을 창세 전에 이루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 대열에 나를 불러주심이 가장 큰 기쁨일 수밖에 없다.
오늘도 그 기쁨과 감사를 안고 하루를 살기 원한다.
주님!
이 죄인을 완전하게 하시려고 불러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날마다 살아가면서 그 은혜를 찬양할 수 있기 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며 살기 원합니다.
이 하루도 주님 안에서만 참된 자유와 평안을 맛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죄인임을 알라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알라"라고 가르쳐 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쓴 편지인 로마서 3장 23절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사도 바울의 말과 연결해서 말한다면, "네가 죄인임을 알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쓴 편지인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네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고 알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합니다. 우리 함께 3절을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이후,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깨어졌습니다. 아담이 범죄 한 이후, 그의 후손인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으로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래서 2절과 3절처럼, 세상 풍조에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가 하면 육체와 마음의 욕심대로 살아가는 "불순종의 아들"이자 "진노의 자녀"였던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는 오직 심판과 영원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세상에 속한 자요 영원한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2. 구원받은 자녀가 되었습니다.
심판과 영원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진노의 자녀인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그러나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 구원 받은 자녀가 되었습니다.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멸망과 죽음의 자리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물로써 주어진 것이 구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물'은 헬라어로 'δῶρον'(도론)이라고 표현하는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에서 나온 선물'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자녀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이 선물로 인하여, 에베소 교회 성도들과 우리는 구원 받은 자녀가 되었습니다.
3.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뜻대로 만들어 가시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어지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0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위대한 작품으로 만드시고, 우리를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고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시기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특별한 작품으로 새롭게 완성해 나가시고 계십니다.
우리 자신이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원래 멸망을 향해 가던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결과이자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성도 된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작품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시고자 하시는 일들을 하는데 적합한 도구로 빚어 가고 계십니다. 때로는 불필요한 부분들을 잘라 내시기 때문에 아플 수도 있습니다. 또 형태를 바꿔 가시고자 빚으심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토기장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아름답게 빚으실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빚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이요 하나님의 손과 발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도구입니다. 우리를 빚고 만들어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실 때, 감사와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해 나갑시다. 특히 새벽에 우리를 불러 주신 이유는, 우리를 기도의 도구로 빚으셨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민족, 열방과 가정을 위해 우리가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기도의 일군이 됩시다.
함께 하는 기도
영원한 멸망 속에 있어야 할 우리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세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사명 감당하게 하시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성실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구원과 능력의 하나님 아버지,
그 구원의 기쁘고 복된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과
외치는 소리로 우리를 불러주시고 사용하여 주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며 예비하신
선한 일을 위해 전심으로 나아가는 축복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할 수 없는
탄식과 눈물로 신음하는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에 감사함으로 동참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