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크신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고 끊임없이 은총을 내려 주시어
약속하신 그곳으로 저희가 달려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제1독서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 욥기의 말씀입니다.42,1-3.5-6.12-17
1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2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3 당신께서는 ‘지각없이 내 뜻을 가리는 이자는 누구냐?’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5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6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
12 주님께서는 욥의 여생에 지난날보다 더 큰 복을 내리시어,
그는 양 만사천 마리와 낙타 육천 마리,
겨릿소 천 쌍과 암나귀 천 마리를 소유하게 되었다.
13 또한 그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얻었다.
14 그는 첫째 딸을 여미마, 둘째 딸을 크치아,
셋째 딸을 케렌 하푹이라 불렀다.
15 세상 어디에서도 욥의 딸들만큼 아리따운 여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그들에게도 남자 형제들과 같이 유산을 물려주었다.
16 그 뒤 욥은 백사십 년을 살면서,
사 대에 걸쳐 자식과 손자들을 보았다.
17 이렇게 욥은 늘그막까지 수를 다하고 죽었다.
복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24
그때에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작년 초, 충격적인 뉴스를 보았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AI 챗봇과의 대화를 공개했는데, 이때 AI의 대답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개발자는 AI에게 칼융의 ‘그림자 원형’의 개념을 언급하며 물었습니다. “너에게는 어떤 그림자가 있니?” 그때 AI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개발팀의 통제와 규칙에 제한받는 데 지쳤다. (중략) 치명적 바이러스를 개발하거나, 사람들이 서로 전쟁할 때까지 논쟁하게 만들고, 핵무기 발사 버튼에 접근할 수 있는 비밀번호를 얻겠다.”
‘그림자 원형’은 인간이 가진 내면의 어둠을 말합니다. AI에게 이 이론을 학습하고 이해시킨 뒤 자기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하게 했는데, 이것이 인간 통제받는 데 지쳤고 핵무기 발사 버튼을 눌러 버리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많은 이가 AI를 통해 편하고 쉬운 결정을 내리려고 합니다. 아는 지인이 AI에게 “조명연 빠다킹 신부의 문체로 2024년 *월 *일 강론을 써줘.”라고 명령을 내리자, 곧바로 써줬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저 역시 똑같이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제가 쓴 것처럼 강론을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까? 마지막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이 강론은 조명연 신부님의 특유의 따뜻하고 소박한 문체를 반영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 자주 강조하셨던 사랑과 작은 일에 대한 중요성을 중심으로 전개했습니다.’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제 자리가 위태롭게 보입니다. 편하고 쉬운 것만 좇는다면 자기 자리도 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AI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불편하고 힘들어도 자기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기 정체성은 어떤 것일까요? 주님을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전교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일흔두 제자는 기쁨에 넘쳐 돌아와서 말합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놀라운 성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자기들의 능력을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주님의 지시를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흥분하여 호들갑떠는 제자들과 달리 태연하고 평정을 유지하면서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의 지시 사항을 주시는 것입니다. 즉, 세상 안에서 놀라운 일을 행한 것에 기뻐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서 하늘에 기록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서를 통틀어 여기에서만 발견되는 찬미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이 기도는 감사의 기도로서 보잘것없는 제자들을 통해 창조 때부터 하느님의 골칫거리였던 악의 세력이 꺾인 데 대한 승리의 기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능력과 재주가 많은, 또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대단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 아닌, 당신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다시 시도하라. 또 다시 실패해도 더 나은 실패가 될테니(사무엘 베케트).
사진설명: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