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등소평(덩 샤오핑)의 탄생 백주년으로 해서 온 중국이 떠들석 했던 모양입니다.
덩의 평전이 쏟아져 나오고 급기야 덩은 마오를 제치고 중국 최고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중국인민들을 먹여 살리는 개혁과 개방을 설계하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를 완수했다는 겁니다.
마오는 언제나 혁명을 예찬하고 반조류(反潮流)의 미학을 강조한 이론가이자 혁명가였고 모든 것을 파괴한 이상주의자 였습니다.
마오에게는 저우언라이(주은래)가 있었지만 저우는 마오의 제왕적 통치에 저항하거나 이를 저지할 힘이 없었습니다.
마오가 잠자리에서 두명의 미녀를 안고 있을 때 저우는 그 옆에서 무릎을 꿇고 대기하고 있는 정도였으니 어찌 저우가 마오의 문화혁명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마오의 이상주의는 흰고양이를 용납할수 없었으므로 문화혁명으로 흰고양이를 숙청하고 3000만명을 굶겨죽이므로써 자신의 불파불립(不破不立 :파괴없이는 건설도 없다.)의 이론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러나 마오에게는 파괴만 있었지 건설이 없었습니다.
마오의 시대는 검은 고양이의 시대였습니다.
덩은 흰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하여 중국에 무진장한 쥐가 있으니 전세계의 흰고양이들은 중국으로 오라고 유혹하여 중국을 전세계의 흰고양이들이 모이는 흰고양이들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흰고양이들도 중국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중국의 남은 과제는 검은 고양이의 나라에서 흰고양이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므로 이를 어떻게 조화시켜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는 함께 갈 수 없고 경제를 일으켜서 중산층이 생겨야 민주화가 된다는 것이 정설이므로 앞으로 중국의 민주화는 경제성장에 달려 있고 우리 또한 박정희시대의 경제건설로 중산층이 형성됨으로써 민주화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박정희나 덩은 공히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설계가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박정희시대에는 우리에게 쥐를 잡을만한 고양이가 없었고 국내에 내수쥐도 없었습니다.
인프라가 전무한 상태에서 박정희는 몇 마리의 흰고양이를 키워 외국의 쥐들을 잡아오게 하였습니다.
박정희와 덩의 공통점은 실용주의와 부국강병의 의지입니다.
또한 개방에는 성공했으나 정치적 개혁에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그리고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흰고양이는 쥐를 잡는 데에는 명수입니다.
사회주의와 평등주의를 주장하는 검은 고양이는 생전 쥐를 잡아본 일도 없고 쥐를 잡는 방법도 모릅니다.
주인의 생선을 훔치던가 흰고양이가 잡아온 쥐를 뺏았아 먹으므로써 연명합니다.
검은 고양이 시대인 마오의 시대에 3,000만명이 굶어죽고 흰고양이를 죽이는 북한에서 300만명이 굶어 죽은 이유입니다.
박정희시대에 열심히 쥐를 잡은 흰고양이들이 몸단장을 못하고 쥐를 잡으러 돌아다니느라 흰털에 오물이 많이 묻었습니다.
어느날 국민은 흰털에 오물이 많이 묻은 더러운 흰고양이라고 주장하는 검은 고양이의 말에 속아 몸단장 깨끗이 한 검은 고양이와 더러운 흰고양이를 보니 검은 고양이가 더 예뻐 보였기에 흰고양이를 버리고 검은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검은 고양이는 몸에 오물이 묻어도 잘 보이지 않기에 깨끗한 줄로만 알았더니 생선을 훔쳐 먹느라고 이미 몸은 더러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검은 고양이는 내 몸은 검으니 오물이 좀 묻어도 괜찮다는 겁니다.
노무현의 역사 뒤집기는 흰고양이의 역사를 부정하고 핍박받은 검은 고양이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것입니다.
마오를 존경한다는 노무현이 홍위병을 내세워 21세기의 문화혁명을 이루어 내어 그들의 이상주의 사회를 완성시키겠다는 것인데 그런 검은 고양이의 이상주의가 실현되면 이땅에서도 국민이 굶주리는 참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오와 노무현, 덩과 박정희.
우리가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복식조를 택하시겠습니까?
노무현과 덩을 바꿀 수만 있다면 마오가 죽을 때(76년) 중국의 소득은 100불을 넘지 못했으니 중국은 아직도 100불의 나라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박정희 이후에 덩과 같은 지도자가 이땅에 있었더라면 이나라는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중국이 우리를 무시하고 고구려사문제를 일으킬 꿈조차 꾸지 못했겠지요.
박정희는 18-년간 76불에서 1600백불로,덩은 21년간 100불에서 700불로 만들었으니 두사람의 경제에 대한 실용주의적인 자세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불행히도 노무현이 중국으로 가지 않고 이땅에 옴으로써 박정희시대의 업적은 함몰되고 그의 과오만이 남았습니다.
덩의 얘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습니다.
"예전의 실책을 이야기 할때 우리는 마오쩌뚱동지만 탓해서는 안된다.우리는 대약진 운동 기간중 마오쩌뚱동지가 지나치게 들떠 있었다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했는가?"
라며 마오는 공은 7이요 과는 3이라고 하여 과거에 대한 정치적인 논란을 막으므로써 중국을 분열시키지 않고 최고의 정치적 안정 속에서 경제건설의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과거캐기에 혈안이 되어 경제를 돌보지 않고 모든 것을 코드에 따른 이분법으로 보는 노무현은 모든 것을 문화혁명을 지지하느냐 않느냐로 적과 동지를 구분했던 마오의 오류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박정희죽이기와 함께 지난 시절 열심히 쥐를 잡은 흰고양이까지를 죽이려 합니다.
천안문 사태라는 민중학살을 자행했고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는 덩에 대해 중국인민들은 덩은 체제를 지키고 경제를 위해서라면 수십만명이라도 죽였을 것이다.중국인민을 먹여 살린 덩은 중국역사의 위대한 영웅이라고 칭송합니다.
국민을 먹여살린 박정희가 악마가 되는 한국의 현실과 대비됩니다.
첫댓글 음.........백번 천번 박정희를 선택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