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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자 하나님의 절묘한 타이밍 (행3-10)
2026년 8월 11일 (화요일)
찬양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본문 : 사도행전 9:32-10:48절
☞ https://youtu.be/0xf0SHuiITI?si=Db45jrXjooP8oVu0
오늘은 라마나욧선교회 대출 관련 문제를 위해 은행을 방문한다. 나의 사역기간 대출이 없는 선교회로 세우고 떠나기를 원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아 아쉽다. 근자에 대출이 어려운 가운데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기도한다.
이제 남은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로 다음 주자들이 달려갈 길을 수축하고 떠나기를 소망한다. 다시 백지로 서는 일에 두려움으로 많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젠 오직 주님을 신뢰하며 이렇게 움직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오늘은 목회사관학교 교재와 중보기도 세미나 교재를 완성해야 하는 날이기도 해서 마음이 바쁘지만, 주님의 성령을 따라 기쁨으로 나아가는 날 되기를 소망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9장 말미와 10장에는 베드로의 예루살렘을 떠나 사방으로 두루 다니는 선교사역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32절
‘그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예루살렘에서의 핍박을 피해 떠난 상황에 베드로는 사방으로 두루 다니며 성도들을 찾아 순회사역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그는 8년 동안 중풍병으로 침상에 누워 있던 애니아를 치료함으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한다.
그리고 욥바에서의 요청을 따라 베드로는 룻다를 떠나 욥바로 향하여 가서 병들어 죽은 다비다(도르가)라는 신실한 여제자를 살아나게 한다. 40절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놀랍게도 죽은 다비다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능력처럼 베드로를 통해 죽은 다비다가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 일로 온 욥바 사람들이 알게 되고 믿는 역사가 일어난다.(42절)
그리고 이어서 성경은 이 사역을 이룬 베드로가 거했던 곳을 의미있게 기록하며 9장을 마감한다. 43절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여기 무두장이란 동물의 사체에서 가죽을 벗겨내어 털과 고기를 긁어내고, 약품 처리를 통해 부드러운 가죽을 가공하여 텐트, 신발, 가죽 부대 등으로 가공하는 직업을 말한다.
문제는 레위기 11장 39절 등을 보면 "너희가 먹을 만한 짐승이 죽은 때에 그 주검(사체)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라고 명시되어 있다. 무두장이는 직업상 매일 동물의 사체와 피를 만져야 했기에, 율법적으로 1년 365일 내내 '항상 부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부정한 자이기에 성전 제사나 회당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고 심지어 탈무드에 의하면 남편이 무두장이 직업을 갖게 될 경우, 아내가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합법적 사유가 될 정도로 멸시받는 직업이었다.
오늘 베드로가 이곳에서 여러 날 머물렀다는 표현은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 온 유다를 순회하며 섬기는 사역을 넘어 이제 율법의 편견을 뛰어 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다.
이때 하나님은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라는 경건한 이방인 백부장에게 나타나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신다. (3-5절)
그리고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베드로에게 가까이 올 무렵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간 베드로에게 하나님은 환상 중에 나타나신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성경은 참 이상한 사실을 드러낸다. 9-10절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베드로는 욥바에 머무는 중에도 유대인들이 하루 세 번 기도하는 습관을 따라 변함없이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갔다. 그곳이 무두장이의 집으로 악취가 진동하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도 베드로는 하나님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여전히 지붕에 있던 그가 몹시 시장하여 밥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던 바로 그 시간에 그는 환상중에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이 절묘한 타이밍을 이 아침 묵상하게 된다.
배고픈 베드로의 때에 하나님은 환상으로 부정한 짐승을 먹으라고 무두장이의 집에서 명령한 것이다. 베드로는 대답한다. 13-14절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
배가 고파 무엇이든 먹고 싶은 인간의 본능과 부정한 것은 먹을 수 없다는 율법이 충돌하게 만드신 것이다. 이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15절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렇게 하나님은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환상중에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환상에서 깨어나 무슨 뜻인지 고민할 때 성령님은 의심하지 말고 가라는 답을 주신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해서 베드로를 찾는 순간에 19-20절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고넬료에게 나타나심과 무두장이의 집에 거하게 하심, 기도하는 시간, 그리고 배고픔으로 이어지는 이 소름 돋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묵상하게 된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렇게 우리 삶의 진정한 연출자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심을 기억하며 그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찬송하게 된다.
이렇게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지역으로 왔다가 이제 이방인 고넬료에게로 넘어가는 위대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저 자연스런 하나님의 연출로 이어지는 사역인 것이다. 그렇게 그는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를 만나고 그의 신앙과 삶을 만난다.
고넬료는 이 자리를 만들고 정말 놀라운 신앙을 보여준다. 24-25절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33절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셨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자신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까지 모아서 기다리는 고넬료, 더 나아가 베드로 앞에 엎드려 절할 뿐 아니라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백하는 이 장면은 그야말로 베드로의 사고를 완전히 뒤집는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분명 고넬료는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고, 베드로는 식민지 백성인 유대인의 어부 출신이었다. 세상의 지위나 힘으로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 앞에 무릎을 꿇어야 마땅한 상황이다.
그러나 고넬료는 베드로가 들어올 때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한다'. 이것은 베드로라는 자연인에게 굴복한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영적 권위 앞에 세상의 모든 계급장과 자존심을 내려놓은 위대한 겸손이며, 은혜를 사모하는 열정의 모습이다.
이 모습에 감동한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34절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그는 율법의 울타리를 벗어나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며 마음을 열고 그들을 향해 기쁨으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복음을 증거할 때 놀라운 성령의 임재가 나타난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곳에 이방인을 향해 세례까지 베풀며 땅끝 선교의 장을 본격적으로 열어제친다. 47-48절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성령이 임한 교회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움직이는 과정을 여기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오늘 주님은 어떤 말씀을 내게 주시는가?
베드로와 12사도는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없이 부흥이 이어지며 세계 선교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들은 예루살렘에서 부흥을 이루고, 잘 준비된 다음 세대를 통해 유대 온 지역과 땅끝까지 선교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핍박을 통해 성도들을 흩어지게 하였고, 사도들과 세운 집사들을 통해 유대지역과 사마리아 및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기회를 연출하고 계심을 본다.
유대인이란 울타리를 벗고 땅끝까지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하나님은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이 시간을 연출하였다는 사실이 오늘 아침 큰 울림을 준다.
내 삶도 돌아보면 내 뜻대로 된 것이 별로 없다. 연출자 되신 하나님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나를 개척의 자리로, 그리고 라마나욧선교회로 이끄셨고 이제 은퇴라는 자리에 서게 하셨다. 그 어떤 것도 나의 계획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나의 연출자이신 하나님의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하며 내가 할 일은 그 하나님의 타이밍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일이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의 울타리를 내려놓고 주님의 이끄심에 겸손히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삶의 자리가 어디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는 기도의 자리를 놓치지 말아야 함을 배운다.
그 자리가 결국 분별의 능력을 허락하시는 자리이기에, 오늘도 주님 이 종이 당신 앞에 섭니다.
한줄 묵상 :
<내 뜻과 계획대로 되지 않아 아쉬운 바로 그 순간이, 위대한 연출자이신 하나님께서 가장 완벽한 길을 여시는 절묘한 타이밍입니다.>
적용 질문 :
1. 베드로의 배고픔마저도 절묘하게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현재 내 삶의 생각과 다른 답답한 일 그 이면에서 연출자로 일하심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2. 오랜 신앙의 연륜과 경험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만들어 놓은 나만의 '편견과 고집의 보자기'는 무엇입니까?
3. 식민지 백성인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린 백부장 고넬료처럼, 나는 오늘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서 철저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