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제1독서
<둘이 한 몸이 된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2,18-24
18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19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20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21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22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2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제2독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2,9-11
형제 여러분, 9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10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복음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2-16
그때에 2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모든 일에 있어 권태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의욕도 없고 의지도 없습니다. 모든 일을 마지못해, 할 뿐이었습니다. 당연히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하면 삶의 권태로움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해 보았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에게 누군가 물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같은 곡들을 수천 번 반복해서 연습하고 또 공연해 왔는데 지겹지 않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아이작 스턴은 연습하고 또 할수록 “이거야!”하는 인사이트를 얻는 순간이 있다고 대답합니다. 막혔던 부분이 뚫리거나, 뻔하게 지나가던 부분에서 새로움을 느끼면서 똑같은 곡을 평생 연주해도 질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권태를 극복하는 방법은 이렇게 반복 속에서 깊이를 추구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저 역시 25년째 새벽 묵상 글을 쓰고 있지만, 매일 매일이 새롭습니다. 물론 처음 2~3년 동안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반복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새로움도 더 많이 그리고 그 의미도 크게 다가옵니다.
특별히 오래된 부부 사이에서 권태기를 갖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연인이든 부부든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이라고 하더라도 변화 없는 관계가 지속되거나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낸다면 이 권태기가 온다고 합니다. 반복 안에서의 깊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이혼을 율법으로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결합한 혼인을 사람이 갈라놓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지요. 혼인은 사랑의 계약이고 하느님의 축복이며 서로 일치를 이루어야 할 영원한 책임과 소명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깊이입니다. 이 깊이는 혼인에서만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축복에까지 연결됩니다. 그래서 혼인에 대한 말씀에 이어서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시고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십니다.
율법에 갇혀서 하느님의 계획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 계획은 삶의 반복 안에서도 계속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반복이 힘들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대신 반복의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의미를 새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반복되어도 깊이가 있으면 늘 새롭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깊이를 마음 깊이 새기면서 가정 안에 하느님을 모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충만히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노력 없이 쓰인 글은 대개 감흥 없이 읽힌다(사무엘 존슨).
사진설명: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