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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isa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426 박근혜를 당선시킨 일등공신 이명박, 한화갑, 문재인 | ||||||||||||||||||
박근혜 당선은 '상대에 대한 반사이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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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제18대 대통령의 자리는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인으로 결정되었다. 박 당선인의 당선 일등공신으로 측근 인사들을 조명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비단 이번 18대 대선이 ‘잘한 내 편보다’는 ‘못한 상대편’ 때문에 생긴 반사이익이 너무나도 컸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본지는 이번 18대 대선을 분석하며 박 당선인의 승리에 대한 결정적 요인이 된 주요인물 3인을 조명해보았다. 박근혜 당선의 일등공신은 이명박 대통령 박 당선인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정권심판론은 박 당선인이 지난 5년간 이명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면서 '여권 내 야당'으로 자리매김해온 것으로 상쇄시켰다. 결정적으로 이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현 정권과의 차별화에 성공하였다. 박 당선인은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무기력한 실정으로 ‘이명박근혜’ 프레임 논란에서 확실히 벗어났다. 특히 이명박 정권 5년 내내 지속된 ‘경제위기’는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경제부흥’을 부각시키는 호재로 작용했다. 일각에서는 ‘5060세대의 결집이 이번 대선승리의 주요 원인이라면 5060세대를 결집시킨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즉 경제부흥에 대한 향수가 작용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박 당선인의 당선 일등공신으로 정권심판론의 주체가 된 이명박 대통령을 꼽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무리한 4대강 토목공사를 밀어붙이는 등 민생 뒷전의 정권 운영으로 서민층의 비난에 대상이 되어왔다. 또한 내곡동 사저 특검, 이상득, 최시중 등의 측근비리, 대선공약 불이행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져버리는 국정운영과 함께 불어닥친 경제한파는 이번 대선의 주요 승리요인인 5060 세대가 박 당선인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부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에 차관을 빌리러 갔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박 전 대통령이 현지에서 고생하는 한인들을 보며 내내 우는 모습에 이를 측은하게 여긴 독일이 차관을 빌려줬다는 일화는 5060 세대에게 각인되어 있는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 그 자체이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무능함이 박 당선인이 차별화를 통한 탈이명박화하는데 구심점이 되어주었으며 ‘경제부흥’이라는 대선 주자로서의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스스로에게 아젠다화 할 수 있던 밑거름이 되었다. 더불어 이번 대선주자들의 공약이 겹쳐 ‘공약의 부재’ 논란이 일었던 것은 오히려 박 당선인의 방어전략으로 만들어진 판이었다. 박 당선인은 이미 작년 말부터 경제 민주화와 복지 이슈를 제기함으로써 진보진영의 주요 논리를 무력화시켜왔다. 대선 공약의 대동소이는 결국 박 당선인의 이러한 전략에 기인한 것이다.
보수대통합을 국민대통합으로 국면전환시킨 것은 한화갑 야권은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 박정희 시대의 과(過)를 박 당선인과 연결하면서 정수장학회 등을 집요하게 비판했다. 또한 나꼼수에게 제기하는 ‘아이패드 컨닝논란’, ‘신천지 연관설’ 등의 네거티브도 박 당선인의 대선 악재였다. 나꼼수의 의혹제기는 매번 각 포털사이트의 실시간검색어를 오르내리며 대선 정국을 뒤흔들었지만 네거티브에 대한 일관된 방어전략 즉 ‘국민대통합’이 박 당선인에게 안정감을 실어주는 정치 이미지로 작용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지배적 분석이다. 이후 박 당선인은 지난 5일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지지 선언을 마지막으로 범보수연합을 완성했다. 앞서 김영삼 전 대통령,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인제 전 선진통일당 대표, 이재오 의원 등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일각에서는 보수를 이 정도로 결집시킨 것은 근래에 찾아볼 수 없던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보수총집결은 박 당선인에게 양날의 검이었다. 보수와 진보를 갈라놓는 폐단은 정치구태였고 국민대통합이 아니라 반쪽통합임을 자처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 반쪽대통합을 국민대통합으로 완성시킨 일등공신은 한화갑, 한광옥등 동교동계 정치거물들이다. 박 당선인 지지에 가장 먼저 손을 든 한광옥에게는 ‘변절자’의 낙인이 찍혔다. 호남은 한광옥의 변절에 등을 돌렸고 심지어 새누리당 내부에서 조차 동교동계 인사들의 캠프 합류는 불가능하다 판단했을 정도였다. 선거마다 반복되는 배반정치의 폐단이라는 비판에서 극적전환을 이룬 것은 바로 리틀DJ라고 불리는 한화갑의 지지합류였다. 특히 동교동계 중에서 자기 조직을 가지고 있는 인사는 당 대표를 했던 한화갑 전 대표가 유일했다. 한화갑 전 대표는 “우리가 다시 유신시절로 돌아가 현재의 박근혜와 왜 싸워야하냐”며 호남의 고착된 인식을 꼬집었다. 특히 “호남은 무조건 민주당만 찍어야 하는 이유가 무었이냐? 그이유를 모르겠다. 이제 대통령은 정책과 공약으로 뽑는 시대다” 며 호남에 의미심장한 변화의 메시지를 던졌다. 게다가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는 안철수, 문재인 단일화로 수세에 몰린 새누리당의 입장을 방송출연으로 차단시키는 결정적인 역활까지 했다. 호남의 발전을 박 당선인으로부터 약속받은 한화갑은 서울 수도권의 호남 세력을 규합하고 호남 투표율 두 자리 수라는 정치지형의 변화에 쐐기를 박았다. 여권이 호남에서 두 자리 수 투표율을 기록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이 유일하다. 한화갑의 호소가 호남을 움직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화갑의 박 당선인 지지는 ‘반쪽통합’ 혹은 ‘보수대통합’을 ‘국민대통합’으로 인식시키게 하는데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5060세대의 총집결을 꾀했으며 투표율이 낮으면 낮을 수 록 고정표수가 많은 여권이 유리하다는 통념을 깨트리고 투표율 75%로도 여권이 과반득표를 할 수 있다는 정치사상 유례없는 선례를 남겼다.
다른 편에 있지만 같은 편 한화갑 다른 편에 있는 다른 편 문재인 박근혜 당선을 도운 것은 문재인 그 자신 박근혜대세론을 무너뜨린 안철수는 물론 심상정, 이정희라는 진보연대 조차 과거 노무현 정권 당시 팽배했던 ‘보수위기론’을 잠재우기에는 대항할 정치적 아젠다 조차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만큼 진보 진영은 정치권에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정치연대의 파급력 조차 ‘노무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꼴이 되었다. 게다가 외곽부대의 관리 소홀은 문 후보 자신의 지도자로서의 무능력함을 드러나게 했다. 지난 4월 총선 패착의 원인이된 나꼼수는 이번에도 네거티브 공방으로 대선을 뒤흔들었고 문 후보 지지를 표명함으로서 보수층이 더욱 결집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국정원 직원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접촉사고를 내고 그 자택을 점거한 당원들이나 일명 ‘꼰대론’'늙은표'로 불리는 정동영의 입조차 단속시키지 못한 까닭에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 말아먹는다는 인식이 보수층에 강렬히 인식되었다. 무엇보다 문 후보 자신이 노무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이명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박 당선인에게 있어서 상대적인 호재로 작용했다. 안철수와의 단일화 과정이 지루해짐에 따라 지지층의 열망은 식어가 당시 대선 정국을 관통하던 “박근혜대세론 무력화”의 힘도 상실했다. 더욱이 단일화 과정에 문 후보는 집권당 대선 후보로서의 통 큰 면모를 보이지 못하고 줄다리기의 주체가 되어 권력욕에 사로잡힌 낡은 구태정치의 표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는 단일화 이후에도 지지층을 머뭇거리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 후보가 친노 대 비노라는 구도를 깨트리지 못한 것은 결정적이다. 손학규 전 고문으로부터 시작 한화갑 전 대표까지 친노의 태생적 한계를 깨지 못하고 야권의 분열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문 후보의 역량은 박 당선인의 ‘노무현 프레임’ 공략 에 힘을 실어줬고 ‘용광로선대위’는 박 당선인의 ‘국민대통합’ 앞에 초라하게 무릎 꿇었다. 결국 최종 투표율 75.8%임에도 과반득표를 달성한 보수총집결의 마침표는 문재인 후보 그 자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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