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겨울소리
김진숙
겨울에는 우리만의 소리가 생활 깊숙히 박혀 있다.
“뒷문 밖에야
시래기 타래
바람만 불어도
날 속이누나!"
어느 지방에 전해오는 시래에 얽힌 민요.
뒷뜰, 흙 벽에 걸어둔 시래기 타래의 서걱이는 소리를 듣고, 그리운 님이 오는 소
리로 들리는 듯 하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기다렸으면 시래기 나래 소리마저 그렇
게 들렸을까. 가을 김장할 때, 미끈하게 잘 생긴 무를 어슷비슷 먹기 좋게 썰어 썩
박지 담그고, 싱싱한 무청일랑 볏짚으로 굴비처럼 꼼꼼히 엮어 집 처마 끝에 매달
았다. 고른 바람 고른 햇볕에 잘 마른 무청은 웬만한 굴비맛보다 더 좋았다. 바닷
사람이야 굴비맛을 으뜸으로 치지만 내륙사람은 시래기 맛을 더 친다. 겨울 날, 어
머니는 입김서린 부엌 문을 열고 아침을 지을 때면, 시래기 국이 제일 만만했나보
다. 된장을 적당히 풀고, 입맛나게 간을 맞춘 시래기 국을 한소끔 끓고나면, 구수
한 냄새는 시장끼를 돌게 해싿. 온 가족이 앉은 두레반 상에 방금 가져온 국을 후
루룩- 마시면서 어른들은 “아, 시원하다!” 이렇게 김이 모락모락나는 뜨거운 국인
데 시원하다니 어린 마음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끼 내리 시래기 국을
주어도 대인기련만 겨울양식으로 아직 남겨두어야 한다고 그 날 이후, 시래기 국은
드문드문 아침 상에 올라왔다. 얼마 전, 시래기 국이 생각나 끓여보았지만 그 맛이
아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미 다른 입맛에 길들여진 탓도 있겠고, 또 어머니의
장 맛, 손 맛이 아닌 까닭이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기억나는 ‘문풍지’
새 하얀 창호지를 방 문에 말쑥 발라놓고 파리가 앉아도 뗑- 울릴듯한 문인데
아버지는 우러동준비가 덜 끝났는지 작업을 했다.
“문풍지는 왜 달아요?"
“이래야 겨울에 춥지 않지”말씀하며 웃으셨다.
겨울 밤, 장판방에 뜨끈히 등을 대고 누워 있으면 문풍지는 제 몸을 떨었다. 바
람 때문에 떨며내는 소리가 영락없이 요즘 유행하는 ‘한국의 랩송', 이 랩송을 들으
면 저절로 신이 나듯이 빠른 리듬에 공연히 등잔불만 춤을 추었고, 두터운 솜 이
불을 시린 어개까지 끌어 올리는 할머니는 고단하기도 하지만 짐짓 잠을 청하는 눈
치이다.
할머니께 옛날 이야기 해달라는 손주들이 조를까봐.
할머니는 초저녁, 벌써 옛날 얘기, 몇 편을 떼셨다.
안방 댓돌위에 비슷비슷한 크기의 여자 고무신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 날도 동네
할머니들이 거의 집합하셨나보다.
무슨 이야기인지 문 밖으로 “아하!”하는 감탄이 합창처럼 동시에 들려오기도 하
고, 또 어느 때는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손벽 치며 좋아
라 했다. 저격마다 우리 집은 이렇게 ‘열린 안방극장’이었던 셈. 누런 장지에 노끈
을 엮은 책을 보면, 그 시절 할머니가 낭낭하게 들려주던 소설 한 대목이 떠오른다.
그 당시 문풍지는 할머니가 읽어주던 이야기 들으랴 자신을 위해 혼신을 다해 노
래하랴! 고달펐으리라.
뿐만 아니라 사랑방에서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났다. 기침소리에 답하듯 외
양간에서 소 방울 소리가 ‘쩔렁' 울렸다. 할아버지 기침소리는 쉽게 잠이 오지 않
는 탓도 있지만 소에게 “너도 이제 자거라"하는 신호처럼 들리기도 했다.
닭장에선 이따금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 집에선가 개 짖는 소리가 멀
리서 들려오고...
고향의 겨울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첫댓글 할머니가 낭낭하게 들려주던 소설 한 대목이 떠오른다.
그 당시 문풍지는 할머니가 읽어주던 이야기 들으랴 자신을 위해 혼신을 다해 노
래하랴! 고달펐으리라.
뿐만 아니라 사랑방에서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났다. 기침소리에 답하듯 외
양간에서 소 방울 소리가 ‘쩔렁' 울렸다. 할아버지 기침소리는 쉽게 잠이 오지 않
는 탓도 있지만 소에게 “너도 이제 자거라"하는 신호처럼 들리기도 했다.
닭장에선 이따금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 집에선가 개 짖는 소리가 멀
리서 들려오고...
고향의 겨울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문풍지는 할머니가 읽어주던 이야기 들으랴 자신을 위해 혼신을 다해 노래하랴! 고달펐으리라.
뿐만 아니라 사랑방에서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났다. 기침소리에 답하듯 외양간에서 소 방울 소리가 ‘쩔렁' 울렸다. 할아버지 기침소리는 쉽게 잠이 오지 않는 탓도 있지만 소에게 “너도 이제 자거라"하는 신호처럼 들리기도 했다.
닭장에선 이따금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 집에선가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고향의 겨울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