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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신년} 마음의 소원을 이루려면/시편 37:3-7
(신년주일)
성경본문| 시편 37편 3절 ~7절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4절) 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희망을 갖고 살고 꿈과 비전을 갖고 삽니다.
사람마다 다 한 가지 이상의 소원을 갖고 삽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구 가운데 하나는 미래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고 우상 숭배하고 귀신과 교제하고 소위 동양철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주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주란 자기가 태어난 연월일시, 이것을 근거로 길흉과 화복을 점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은 그런 어떤 사주를 통해서 푸는 점도 있고, 또 신, 귀신이 어떤 사람 속에 들어가서 그 귀신이 어떤 것을 알려 준다고 점을 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다 마귀의 조종받는 사람들의 행위입니다. 다 허무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 예수 믿어 목사가 되었지만 제가 예수 믿기 전 저의 부모님들이 사주팔자를 보고 다녔습니다. 제 생일이 1월 8일인데 음력으로 정월달에 저의 어머니가 저를 잉태해서 만삭된 배를 안고 일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신수보고 사주 보려고 점쟁이 찾아가다가 갑자기 산기가 있어서 동리에 들어가 저를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어머니가 점쟁이 찾아가는 길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훗날 점쟁이가 점을 쳐서 내 운수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의 사주팔자에는 나이 삼십이 되면 죽을 운수다, 운수라는 말은 이미 그렇게 되도록 예언되어 있어서 인간의 의지로는 어떻게 변경할 수 없다 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조선시대로부터 세시풍속으로 내려온 토정비결을 보면서 1년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걸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것도 다 허무한 것입니다.
만일 사주팔자대로라면 저는 나이 삼십 세에 죽어야 되는데 제가 죽지 않고 살고 있는 걸 보면 다 헛된 것입니다. 인간의 운명이 사주팔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의 믿음 하에 결정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보다 더 멋있고 아름다운 미래를 확증할 수 있는 것은 성경말씀대로 믿고 살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멋있는 성공의 비결이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히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어떤 자화상을 미리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한 믿음은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한 기대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꿈을 꾼다, 비전을 갖는다, 소원을 가졌다고 해서 그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계획한대로 모든 일이 잘 된다면 여러분은 벌써 만사형통자가 되었을 것이고 행복자가 되었을 것인데 세상만사는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손에 달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인도하는 믿음을 갖기만 하면 우리 운명이 바꾸어집니다.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자가 되고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의 힘으로 가능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즉 이방지역에 갔습니다. 그 때 가나안 여자가 한 명이 문제를 안고 주님 앞에 나옵니다. 그 문제란 자기 딸이 귀신들려서 고통 중에 빠져있는데 우리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를 시험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 왔지, 너 같은 이방여인을 구원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그래도 이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뒤에서 부르짖다가 앞으로 달려와서 주여 나를 도와달라고 또 간청합니다. 그때 우리 예수님은 또 시험합니다.
자식들에게 주려고 준비한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 이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녀고, 이방사람은 개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이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매달립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겸손과 적극적인 믿음을 보시고 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귀신들이 떠나고 고침을 받게 됩니다.
믿음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꿈을 갖고 소원 갖고 비전을 갖고 살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면 반드시 주님이 그 일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개인마다 꿈이 있고, 가정마다 소원이 있고, 민족마다 소원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소원은 꿈에도 통일입니다. 제가 3년 전 북한 평양에 가서 칠골교회의 성도들과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그 노래를 부르니까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 노래를 부를 때도 눈물이 났습니다.
저 인왕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주여, 이 민족에게 하루속히 통일의 은총을 내려달라고 기도할 때도 울었습니다. 또 모란봉에 올라가서 대동강 옆에 능라도 경기장, 축구 경기장이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면서 주여, 속히 통일되어 제가 저 경기장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부흥회 인도할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한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북한 복음화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일차적인 꿈은 두 가지이어야 합니다.
하나는 내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나는 신자되기 원합니다 하고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닮은 성도 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주님이 그렇게 원하는 소원, 즉 한 사람도 멸망받지 않고 다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주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될 때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평생 소원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기분이 좋아지듯이 주님이 나를 바라보고 기뻐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일차적으로 이런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보다 더 큰 일을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첫째,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여러분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거든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되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의뢰한다는 말은 힘있는 자를 의지하고 자기의 문제 해결을 그 분에게 부탁하는 것을 의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그 부모님들을 의뢰합니다. 엄마, 이것 못하겠어요. 엄마가 해 주세요 하고 부탁합니다. 믿고 의지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을 의뢰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철부지 어린아이 같습니다. 분별력이 모자라고 힘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밤길을 혼자 가면 길을 잃습니다. 그러나 엄마 손 붙들고 가면 안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 손에 이끌리어 살 때 안전한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또한 성경은 예수 믿는 우리를 어린 양으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비유합니다. 그런데 또 마귀를 가리켜 우는 사자 같다고 했습니다. 벧전 5:8절 이하 말씀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린양인데 마귀는 사자랍니다. 여러분, 어린양과 사자가 싸워서 어린양이 이겼다, 그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어린양은 다 사자 밥입니다.
죄로 타락한 우리 인간은 다 마귀의 밥이 되어서 다 병들고 다 저주 아래 있어서 곤고하고 죽지 못해서 살고 신음하고 원수 맺고 그게 다 마귀의 밑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양같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한 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목자 곁에 있으면 됩니다.
이 땅에 많은 짐승들 가운데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짐승들이 있습니다. 힘이 센 황소, 들소, 하마, 코끼리, 감히 누가 덤비지 못합니다. 비록 몸집은 작지만 발이 빠른 노루, 그런데 이 양은 노루처럼 빠르지도 못하고 눈도 어두워서 멀리 못보고 눈앞만 보는 근시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황소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니고 사자가 나타나면 빨리 노루처럼 도망도 못 가고, 그러니 이 양이라는 동물은 목자가 없으면 못 사는 동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하면 양, 양하면 목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를 온전히 지켜주실 선한 목자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믿으니까 어떤 의지를 할 수 있지만 이 세상에 하나님 외에 어떤 다른 것 믿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람을 믿은 만큼 상처받고 의지한 만큼 내가 손해보는 일이 세상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자이기 때문에 전능하신 그 분이 우리를 지켜주면 악한 자가 손 못 댑니다. 그런데 문제는 양은 양인데 목자 곁에 있어야 안전하지, 아웃사이더가 되어서 바깥으로만 돌면 사자 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도록 우리는 목자장되신 주님 곁에 바짝 다가서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 앞에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세 가지인데
▶ 첫째는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삶을 우리는 주님 안에 산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곧 말씀 안에 계십니다. 성경 말씀을 읽으십시오. 가까이 하십시오. 암송하십시오. 배우고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목자 곁에 있는 양과 같습니다.
▶두 번 째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의 능력이 대단히 크더라도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시간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받으면 마귀권세를 깨뜨릴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성경에 나와는 마귀의 지혜를 전부 뽑아서 컴퓨터에 입력을 시켰더니 마귀의 아이큐가 육천이 나오더랍니다. 여러분의 아이큐는 얼마입니까? 두 자리입니까, 세 자리입니까? 어떤 사람은 99, 어떤 사람은 86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좀 영리하면 120이 나옵니다. 그리고 130이 넘으면 벌써 준천재라는 말을 듣고 140이 넘으면 천재라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아이큐가 200이라 할지라도 마귀에 비하면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그럼 하나님의 지혜는 얼마나 될까 하고 한번 계산을 해봤더니 하나님의 아이큐는 칠천이 되더랍니다. 그러니까 칠천 되신 하나님의 손을 붙잡아야 육천이나 갖고 있는 마귀를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면 이 험악한 죄악 세상에서 나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주시고, 내가 예수 안에 있으면, 능히 마귀를 대적해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성실해야 됩니다.
여러분, 2002년도를 어떻게 살 것인가 마음에 결정하셨습니까?
나는 최소한 하루에 세 장 이상 성경 읽으리라 결심하고, 삼십분 이상 무릎을 꿇으리라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그 결심을 중도에 포기되지 말고 끝까지 성실하십시오. 용두사미격으로 시작만 크게 해놓고 끝은 없는 그런 식으로 하지말아야 합니다. 성실이라는 말은 시종여일하게 시작과 끝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아가십시오. 그것이 바로 주님 곁에 있는 성도, 목자 곁에 있는 양이 되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관리해주심으로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 째,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맡겨야 합니다.
“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기서 너의 길을 맡기라는 말은 너의 인생 전체 여정을 맡기라. 네가 2002년도 한 해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너의 계획이나 목표나, 방법, 모두를 포함해서 그에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맡기라는 말은 히브리말에 달랄이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니까 돌을 굴러버린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는 길목에 장애물, 돌이나 바위같은 장애물이 있을 때 굴러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복 받는데 있어서 가장 우리를 괴롭히는 장애물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합리주의요, 이성주의요, 내생각입니다. 여러분 교회생활을 영적으로 해야지, 육신의 생각대로 하면 늘 곤고하고 문제가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 8:5이하에서 인간의 운명이 생각으로부터 결정되는 것을 강조합니다. 만일 너희가 육신의 생각을 좇아 살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고 영의 생각을 좇아 살면 생명을 얻고 평강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도 않고 할 수도 없음이라. 그러나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면 죽을 몸도 다시 살아나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민수기 14장에 나오는 사건을 통해서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를 통과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라.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받은 모세는 이제 바란 광야, 가데스 바네아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면 그 땅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땅에 일곱 족속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는데 그 땅을 차지하려면 싸워야 됩니다. 싸우기 위해서, 전쟁을 하기 위해서 제일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정보수집입니다.
정보가 어두우면 전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며 사십일 동안 땅을 탐지하고 오라 명령합니다. 때가 되서 돌아와 보고하는데, 육신의 생각을 말한 열 명이 있었습니다. 모세여, 우리가 가서 보니 땅은 비옥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못 들어갑니다. 이유인즉 그곳 사람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싸움에 능하며 성은 견고하니, 아낙 자손을 보았는데 우리하고 그들의 키를 재보니 우리는 그들에 비해서 메뚜기밖에 안됩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울 수 없습니다. 싸우면 우리는 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못 갑니다. 그들이 바로 육신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갈렙과 여호수아는 아닙니다. 갑시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우리에게 준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의 생각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면 죽습니다 하던 사람은 가서 죽게 하지 않고 광야에서 죽게 했습니다. 항상 죽음을 생각합니까? 제 명대로 못 살고 빨리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현실이 칠흑같이 어둡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내일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슨 일을 만나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힘 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바로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행을 믿어서 돈을 맡깁니다. 택시기사를 믿으니까 택시를 탑니다. 의사를 믿으니 내 몸을 맡겨서 수술하게 합니다. 조종사 믿고 비행기를 탑니다. 그런데 믿다가 큰 코 다치는 일이 생깁니다. 이 땅에 어떤 자도 온전한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가변적인 존재, 즉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을 못 믿습니까? 자꾸 변덕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영원히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과 사랑이, 그 약속 성취함이 변함없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주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지하는 믿음은 곧 맡기는 것입니다. 나의 앞날을 맡깁니다. 그리고 나의 짐을 맡깁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가 의로운 행실을 해서 의롭다기 보다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 1:17절에 바울은 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나니 기록된바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저가 하나님을 믿으니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은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킨 것이고, 우리는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구원은 우리가 쟁취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줄 믿습니다.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수학의 숫자를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데 수학의 숫자가 제로, 0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1이 있고, 2가 있는데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1이 큽니까, 0이 큽니까? 1이 큽니다.
그러면 큰 1을 하나님으로 비유하고 작은 0을 우리로 비유합시다.
작은 내가 하나님을 앞섰다. 0이 앞에 있고 1이 뒤에 있다. 그래서 0 다음에 1이면 0.1이니까 십분의 일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여러분의 생각을 앞장 세워 놓으면 하나님의 능력은 10분의 1로 줄어들고, 여러분의 생각이 두 번 앞섰다 그러면 0이 둘, 다음에 1이 서니, 0.01 즉 100분의 1, 내가 하나님보다 세 단계 앞에 섰다 그러면 1000분의 1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장세우면 세울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점점 더 반비례해서 약해지고 맙니다. 그러나 0앞에 1이 나오면 얼마입니까? 10입니다. 1이 0앞에 한 다섯 번 앞에 오면 얼마입니까? 100,000입니다. 주님을 앞장세운 만큼 나에게는 플러스가 되고, 내가 주님 앞에 서서 뛰면 뛸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 상식을 알고 이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 보면 내가 깨어지고 부서질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크게 드러나고 내가 고집 부리고 내 육신의 생각으로 가면 갈수록 주님은 아무 능력도 못 발휘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다녀도 예수 예수 믿어봐도 아무것도 없더라 그런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더라 간증하는 사람도 있는데 주님을 앞장세우고 나가면 주님의 능력이 무한정 커지고, 주님을 뒷전에 던져놓고 나 혼자 뛰어 다니면 어떤 능력도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모든 것을 주에게 맡기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 째,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원하거든 때를 기다리십시오.
본문 7-8절 말씀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농사짓는 것과 같습니다. 농부가 풍성한 가을을 기대할 때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정성껏 가꾸고 그 다음에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길이 참으라. 때를 기다리라. 인간이 할 도리를 다 했으면 이제 기다려야 됩니다.
야고보 5:7-8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하심이 가깝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여호와 앞에 잠잠하라 하는 말은 단순히 침묵하고 있으란 뜻이 아니고 잠잠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여 인간의 생각이나 마음으로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말고 모든 것은 좋으신 아버지께서 잘 이루시겠지 하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또 이 기다리라는 말은 히브리말에 홀이란 말에 시선을 집중시키라는 말로써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길로 나를 인도할 것이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변함없이 끝까지 그 길로 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주님은 이루어주십니다.
왜 이리 날씨가 추워? 주님 내가 믿습니다. 겨울아, 물러갈지어다. 여름아, 와라! 그러면 여름이 옵니까? 안 옵니다.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겨울 빨리 좀 지나가게 해주세요. 아무리 목놓아 부르짖어도 1,2월 지나고 3월이 와야 봄이 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왜 이렇게 밤이 어두워? 어둠아 물러가라. 빛이 나타나라. 그러면 태양이 떠오릅니까? 아닙니다. 아침 여섯시가 되어야 해가 떠오릅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살이에 어떤 문제로 인해서 현실이 너무 암담하고 칠흑같이 어두워도 내가 십자가 붙들고 말씀 지켜 살면 때가 되면 그 날이 오겠지 하는 소망 가운데 인내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좋은 것들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욥이 큰 시험을 당했습니다. 태풍이 불어와서 집을 치니까 집이 무너져 10남매가 압사 당했습니다. 부모 앞에서 자식 하나 죽어도 가슴을 치는데 10남매가 한꺼번에 죽었으니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도적들이 와서 짐승들을 잡아가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짐승들이 다 죽었습니다. 거지가 되었습니다. 몸이 병들었습니다. 자기 아내가 악담을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겠소? 하나님 욕하고 죽어 버려요. 그때에 욥이 두 가지 말씀의 신앙고백으로 승리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적신으로 나왔고 끝날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 명백하지 않는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니하고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욥기서 23: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이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소망을 갖고 인내했습니다. 그리고 욥 42장 말씀에 보면 자기를 찾아와서 이렇게 저렇게 변론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복을 빕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그 곤경을 돌이키시고 그에게 복을 주시되 처음 복보다 갑절의 복을 주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약 5장에 보면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하나님은 시험을 참고 견디는 사람을 때가 되면 복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원하거든 십자가 끝까지 붙들고 말씀 지켜 살면서 때를 기다리십시오. 주님이 반드시 큰 것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마 23:21절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일로 너에게 맡기리니,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내 아버지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우리에게 진정한 즐거움은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면 그 기쁨이 메아리쳐 돌아와 기뻐지고, 우리 가 하나님 마음을 섭섭하게 하면 내 마음에 어두움이 찾아옵니다. 이것을 우리는 메아리의 법칙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법칙입니다.
이상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면 그 기쁨이 나에게 배가되어 돌아옵니다. 그런데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해주면 불안이 함께 따라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 원리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활을 자꾸 하면 나한테는 영광스런 일만 나타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 욕 돌리는 일로 살아가면 욕된 일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을 의뢰하십시오. 성실하게 신앙생활하십시오. 그리고 다 맡기십시오. 그리고 참고 때를 기다리십시오. 할 도리를 다하고 때를 기다리면 때가 되면 주님이 이루어주십니다.
금년 한 해 동안에도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들이 주님의 도우심으로 다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최낙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