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차량을 구매했을 때의 황홀함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십수 년 전 차량 한 대를 구입했었는데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오묘했다. 영입된 외국 유명 디자이너가 설계했다고 했다. 평범한 중형차의 쿠페 버전으로 디자인된 그 차량은 10년이 더 지났어도 마치 새 차가 지나간 듯 바라보게 됐다. `이게 바로 프로의 작품이구나` 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차를 처음 타고 다닐 당시 많은 사람들이 "외제차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당시 쿠페 버전 중 빨간 색상은 잘 없었는데다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차를 인도받았을 때의 기쁜 마음은 할부금을 절반밖에 갚지 못한 상태에서 아쉽게도 차를 중고 매물로 넘기면서 느꼈던 씁쓸함과 중첩돼 기억에 남아 있다.
예전에 중고차를 사고팔 때는 중고 매매상을 거치는 것이 불문율처럼 인식돼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의 수많은 앱을 통해 손쉽게 중고 상품을 거래할 수 있다. 중고 매물 사이트에 접속해 가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본적인 절차가 있기 때문에 본인과 차량 소유주가 일치해야 등록된다. 때문에 거래 당사자가 서로의 신분을 꼬치꼬치 캐물어 볼 필요가 없다. 개개인이 마치 중고 거래 상인처럼 신분을 보장받는 셈이다.
올해 우연히 중고차를 구매할 기회가 있었다. 소유주는 국적이 파키스탄으로 울산 산업단지에 근무하고 있었다. 야간 근무 뒤 기숙사로 돌아갈 때 택시 타기가 아까워 출퇴근용으로 구매했다고 했다. 또 잠시 본국에 갔다가 다시 재입국해야 비자가 나오기 때문에 차를 판다고 했다.
그런데 한 달 후 사정이 생겨 다시 팔게 됐는데 이번에는 아프카니스탄 사람이 찾아왔다. 한국말이 굉장히 능통했다. 한국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데 자신은 소유한 차량이 있고, 형님에게 사준다고 했다. 온산공단 쪽에 일하던 러시아 사람도 한국인 한명과 함께 찾아왔다. 아마 중고차로 같이 출퇴근하는 용도로 구매하는 거 같았다. 그들은 차량 엔진에 떨림현상이 있다며 차량 상태를 점검하는데 30분 이상 소요했다. 애꿎게 차량 공회전에만 30분 이상 소요된 셈이다. 그 모습을 몇 발치서 지켜보며 정말 우리나라가 글로벌화됐다는 느낌을 실감했다. 그들이 가격을 흥정 하길래 구입할 때 보다 조금 깎아준다고 했더니 다음날 회사 출근했다 점심시간에 맞춰 인수하러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차에 `예약중`을 걸어놓고, 다음날 점심시간에 차를 매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러시아 사람이 "못 사게 됐다"고 연락해 왔다.
이후 바로 이전 매매할 수 있도록 울산 차량등록사업소 길 건너편에 차를 세워두었는데 결국 포항 차량등록사업소로 이전 매매됐다. 직원 차를 계약했는데 4개월 가량 대기시간에 출퇴근시키려니 힘이 들어 몇 달만 타는 용도로 구입한다고 했다.
일전에 필자는 중고 노트북을 구입했다가 팔았는데 러시아 사람이 사무실에 찾아와 거래했다. 구글 앱 번역기를 통해 필자가 쓸데없는 참견을 했고 아차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푸틴 대통령은 왜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일으켰지요" 하지만 중고 노트북 사려고 왔던 한국인에게서 그런 대화를 듣는 러시아 청년은 개의치 않고 반듯하게 매너를 지켰다. 오히려 필자가 쓸데없는 발언을 해버린 터였다. 지금은 중고 물건을 외국 사람과 거래해도 마차 옆집 아저씨와 거래하듯 전혀 어려움 없이 소통하는 시대다. 가히 글로벌리즘의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