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유고집
오주석 선생의 책을 볼 때마다
오주석의 안타까움 죽음이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
그는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1권을 내고,
10년만에 2권을 준비하던 중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이 책은 원래 2004년에 출간하려고 했으니,
갑작스런 병마로 인해, 이 책을 완간하지 못하고 마셨다.
그가 떠난지 일년쯤 되던 2006년 2월,
그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미완인 채로 발간하였던 것이다.
1권에서는 11작품의 그림을 설명해 주었지만,
2권에서는 6작품만을 실은 이유이다.
비록, 더이상 그가 들려 주는 그림 이야기는 들을 수 없지만,
그가 알려준 방법으로 독자들은 우리 옛그림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의 명복을 빌면서, 한 자 한 자 곱씹으면서 책을 읽어내려갔다.
1. 김홍도 <송하맹호도>
<논어>에서 호랑이를 위엄있으되, 사납지 않다고 하였다.
이것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덕목이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과 호랑이는 오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멀게는 단군신화에도 호랑이가 출현하고,
가깝게는 88올림픽 때 마스코트도 호돌이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영토는 대륙을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위엄있는 조선 호랑이의 특징은 곧 조선인의 정신이었다.
일제들이 조선을 침략하고 나서, 조선호랑이를 무자비하게 살해했기 때문에,
지금은 조선호랑이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조선호랑이의 멸종은 한민족 정신의 멸종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조선호랑이를 가장 잘 나타낸 그림이 바로 김호도의 <송하맹호도>인 것이다.
호앙이는 김홍도가 그렸고, 소나무는 그의 스승 강세황이 그렸다고 적혀 있지만,
정황으로 봐서 소나무는 김홍도의 친구인 이인문이 그린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송하맹호도>는 한국화의 특징인 여백이 적절하게 나타나 있고,
가는 붓으로 털을 일일이 그려 극사실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입을 굳게 다물고, 큰 코를 가진 호랑이의 모습은
박지원의 <호질>에서 사람을 꾸짖는 호랑이의 근엄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훌륭한 그림인 <송하맹호도>
하지만 그림의 시각을 넗혀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표구와 함께 보면
그 그림은 급격하게 초라해지고 만다.
왜냐하면, <송하맹호도>를 둘러싸고 있는 표구가 일본식 표구이기 때문에 그림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의 정신을 갖고 있는 조선인이 일본인의 기모노 옷을 입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림의 손상을 우려하여 한번 만들어진 표구는 고칠 수 없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2. 김홍도 <마상청앵도>
말 위에 있는 선비와 말을 끄는 구종아이가 버드나무의 꾀꼬리를 쳐다보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여백의 미가 강조되어 있는데,
지은이는 이 여백을 위대한 음악 중간의 침묵에 비유하였다.
지은이는 또하나의 추측을 해본다.
익살맞은 표현들을 보건데, 술을 좋아했던 김홍도가 한잔 걸치고 그린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실제로 호탕한 성격의 김홍도가 술을 먹고 그린 그림들이라고 판명난 것들이 있다.
이런 호탕한 김홍도를 정조도 좋아했다고 하는데,
정조 사후 2~3년 동안 김홍도의 종적이 묘연했다고도 한다.
정조의 급작스런 죽음은 많은 재능있는 자들을 숨게 만든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아무튼 <마상청앵도>의 그림에는 시 한수가 적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운치있는 선비가 술상위에다 밀감 한쌍을 올려 놓았나.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며, 수양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
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다가 봄강에 고운 깁을 짜고 있구나.'
여유로움이 돋보인다.
지은이 오주석은 김홍도가 비록 전문 화원이기는 하였지만,
그의 그림들의 일부는 문인화로 분류해야 한다며 이를 다음과 같이 뒷받침하였다.
첫째, 김홍도가 비록 전문화원이지만, 선비만한 풍부한 교양을 가지고 있으면,
한시를 즐겨다는 것이다. 이는 시서화의 전형인 것이다.
둘째, 문인화는 대부분 수묵화나 사군자가 대부분이지만,
중요한 화가의 정신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독특한 내면의 세계를 지닌 김홍도가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째, <포의풍류도>, <단원도>에서 자신을 화원이 아닌 선비로 그렸다는 점.
네째, 자신만의 내밀한 세계를 그렸다는 점,
다섯째, 형상을 극소화하고 상상을 극대화하였다는 점,
여섯째, 개성을 내세우지 않고, 정을 그렸다는 점,
일곱째, 삶의 진실에 가깝고 솔직하고 건강하다는 점 등이 그의 그림을 문인화로 정의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비롯한 오주석의 책들을 통해,
김홍도의 또다른 모습, 아니 숨겨졌던 그의 진정한 모습을 알게 되어 좋았다.
3. 정선 <금강전도>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1>에서 정선의 인왕재색도를 설명하면서,
그 그림은 단순한 산수화가 아닌 정선 자신을 그린 것이라는 색다른 평을 내놓았던 지은이.
이번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2>에서는 정선의 <금강전도>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림을 설명하기 전에 금강산이 우리 민족, 우리 나라에 끼쳤던 영향을 이야기하고 싶다.
금강산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이제 관광이 자유로워지면서, TV를 통해서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장관은 듣던 소문 그대로이다.
중국의 사신들이 조선에 왔을 때 꼭 들렀던 곳이 금강산이요,
들르지 못하면 금강산을 그린 그림이라도 보았다 하니, 그 명성은 대단한 것이다.
정선은 그런 금강산의 겨울, 즉 개골산을 <금강전도>에 담았다.
이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태극의 음양오행설을 나타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위쪽에 특이한 배열 11행 56자로 구성되어 있는 칠언율시는 주역의원리로 지어졌다고 한다.
오른쪽부터 행별 글자수를 10,7,4,4,2,1,2,4,4,7,11 로 되어 있다.
처음을 10자, 마지막을 11자로 한 것은
당시 왕인 영조가 즉위한지 10년에서 11년으로 넘어가는 때라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였다.
이 그림을 설명하면서, 이 그림의 핵심이 된 주역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아마추어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았다.
4. 정약용 <매화쌍조도>
옛부터 매화라는 꽃은 올곧은 선비의 지조와 정신적 지향을 상징하였다.
많은 선비들이 매화를 즐겼다.
특히 이황은 매화를 형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매화에 대한 시조는 많이 지었다.
그리고 유언으로 매화에 물을 주라고까지 하였다.
그런 매화이다.
정약용은 긴 유배생활 동안에 가족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정약용의 그림 <매화쌍조도>는
그런 편지 중에 하나와 함께 그려진 그림이다.
딸에게 전해주는 시로쓴 편지에 삽입하여 그린 그림이다.
종이가 아닌 빛바랜 아내의 다홍치마 조각에 정성들여 그린 그림이다.
시의 내용은 딸에게 행복하게 살고, 형제간의 우애에 관한 글이다.
아내의 빛바랜 치마조각을 자르고,
그 곳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정약용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정약용이 전문 화원이 아니라서 아마추어다운 서투름이 그림 속에서 나타나지만,
그림 속의 그의 진실함은 하늘을 찌를 듯 하다.
--- 인터넷에서 그림을 찾지 못함 ㅜㅜ ---
5. 민영익 <노근묵란도>
민영익. 그는 누구인가?
민영익은 명성황후의 지지를 받고, 세도정치를 하였었다.
그는 세계일주를 하면서 개혁의 깃발을 들었다.
하지만, 갑신정변의 실패이후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고,
명성황후가 일본 깡패에 의해 운명한 이후에는,
정치에 관심을 끊고, 시서화에 열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김정희의 학문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그는 줄곧 중국에서 지냈는데, 그 이국 땅에서
한일합방 소식을 듣게 된다.
나라 잃은 슬픔에 그는 연일 폭음에 빠져 살다가 1914년 세상을 등지고 만다.
그런 민영익이 나라잃은 슬픔을 뿌리뽑힌 난초를 그린 그림이 바로 바로 <노근묵란도>이다.
그림 속의 난초가 뿌리가 뽑혀져 있지만, 그 잎은 꼿꼿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흙은 왜에게 빼앗겼지만, 단아한 기백을 빼앗기지 않았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에는 화제가 4개나 있었다.
지은이 오주석 선생은 그 화제가 없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하였다.
그 화제를 적은 글씨가 빼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위치도 안좋았고,
글을 쓴 이 중에 나중에 친일을 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왼쪽 위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인 오세창의 글로 그는 끝까지 항일 투쟁을 하였다고 한다.
오른쪽 중간에 적힌 시의 주인공이 문제의 변절자 최린의 글이었다.
그도 민족대표 33인이었나 변절한 길을 걸었다.
그런 그의 부탁으로 오른편 예서체로 이도영이 글을 적었는데,
형식없고, 공허한 글을 남겼다.
이는 변절한 자의 부탁이라 그랬을 것이라는 것이 오주석 선생의 추측이다.
그리고 화면 맨 위에 '심전 안중식이 보았다'란 글이 적혀 있는데,
안중식은 조선 마지막 화원으로 우리 전통 그림을 끝까지 지키고자 노력하였다고 한다.
6. 작자 미상 <이채 초상>
조선시대 가장 많은 노력이 들어간 그림은 바로 초상화이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중국이나 일본의 초상화와 구분되는 특별한 특징이 있다.
중국의 초상화는 실물보다 훌륭하게 그리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일본의 초상화는 세부처리가 세밀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추상적이다.
하지만, 조선의 초상화는 일체 변형이 허용되지 않은다.
못생기면 못생긴대로, 잘생기면 잘생긴대로 그렸다고 한다.
검버섯이나, 얼굴의 병기운까지 그림에 나타나
어떤 의사는 조선의 초상화를 보고 병명을 추측할 수도 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왕의 초상을 그린 어진도 많았지만,
일제시대에도 잘 보관하던 그 그림이 한국전쟁 중 화재로 대부분 유실되었다고 하니,
이 안타까움은 또 어디가서 호소하리오.
작가 미상의 <이채 초상>은 조선시대 초상화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채 초상>이라고 알려진 것은 2개인데,
얼마전까지 그 중 하는 이채의 조부인 이재의 초상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극사실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조선 초상화의 특징이
<이재 초상>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은 <이채 초상>이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지은이 오주석 선생은 <이채 초상>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작자 미상인 지은이를 김홍도로 조심스럽게 추측을 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이채는 성리학에 깊이 침잠했던 학자로써,
초상화 속 그의 얼굴에 조선 선비의 고고한 넋이 그려져 있었다.
책제목 :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지은이 : 오주석
펴낸곳 : 솔
펴낸날 : 2006년 2월 5일
정가 : 13,000
독서기간: 2007.11.27 - 2007.11.28
페이지: 235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