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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8.9.16.) 말씀 /사무엘 상 16:7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그의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마음중심을 보느니라”
믿음의 길을 가다보면 우리는 능력 지상주의로 성공주의로 달려가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 할일이 없다는 것을 배우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의 은혜를 많이 받다보면 가능성과 소원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믿음의 말씀을 배우고 나서 큰 힘을 얻고 믿음으로 무엇이던지 할 있겠다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도 조용기 목사님처럼 위대한 부흥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고, 무디처럼 학교를 나오지 못했지만 그런 위대한 믿음의 종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이미 이런 믿음을 체험하고 성공해서 간증하며 부흥설교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며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때 저는 154개국 선교 여행이라는 목표를 기도제목으로 삼고, 공부보다도 복음 전하는데 더 마음을 쓰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기도 부탁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높고 숭고한 목표가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보다도 실현불가능이 되고 점점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깔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복음에 그런 능력이 없는 것인가! 왜 안 될까? 기도가 부족한가? 더 빡세게 기도해야할까? 아마 한창 청년의 때 이런 생각 이런 꿈과 비전을 안가져본 사람이 없고, 또 그런 갈등을 해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서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띄어 넘어 부흥의 역사를 이루고,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승리를 체험할 수 있는 것, 다 것 맞습니다. 다른 사람도 되는데 왜 나라고 안 되겠습니까? 왜 못하겠습니까? 자,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자 따라서 해봅시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나도 할 수 있다.” 아멘! 아멘! 확실히 외치고 나니 힘이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믿음 생활에서 이 큰 능력과 역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성경은 무룻 지킬만한 것보다 우리 마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심을 주지시켜주고 있습니다. 큰 일, 큰 역사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칫 성과 지상주의로 흐를 수 있습니다. 믿음에서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 입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여 바로 세우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으로 승리한 선진들의 이야기를 할 때 믿음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사자들과 싸워서 이기도 불 시험을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믿음으로 굶주리고, 믿음으로 쫓기고, 칼에 켬을 당하고, 약속을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며 세상적으로 보면 지기도 하고, 실패도한 자들의 이야기도 동일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히브리 11:34-39 33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공통점은 이기고 지는 문제, 성공 실패의문제가 아니고 어떤 형편과 상황에서든지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마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또 계시록 23장에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을 보면 주님이 인정하시는 교회는 큰 역사가 있고, 외적으로 부요한 교회가 아니라 서머나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실상은 부자,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충성된 교회라 칭찬을 받았습니다. 충성은 마음의 중심을 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외적인 것보다도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칭찬 하신 다는 것입니다. 사무엘 상 16: 7에 보면 선지자 사무엘이 하나님의 지시로 기름 부어 왕을 택하기 위해서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한 후보자를 선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무엘은 겉으로 볼 때 듬직하고 왕의 품새가 나타나는 사람을 눈여겨 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시며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무엘 상 16:7 “그의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마음 중심을 보느니라”
제가 요즘 TV를 잘 안 봅니다. 그런데 요즘 자기 전에 한번 씩 보게 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히든 싱어 모창가수 대회입니다. 원조 가수와 모창 실력자들이 섞여서 박스 안에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면 청중들이 듣고 누가 긴가 아닌가 맞추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승까지 올라가는데 ...음악 전문가 가수들이 모여 판단하는데도 여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등을 하면 2천 만원을 받고, 왕중 왕 결승에까지 진출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모창가수들이 잘 하는지 원조가수도 떨어지는 이변이 생깁니다. 조성모도 떨어졌고, 얼마 전에 소녀시대 태연이도 모창가수에게 져서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경악합니다. 너무나 극적인 감동의 연출이 되기 때문에 긴장이 되고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 감동을 주는 것은 모창자들이 여기에 올라오기까지 그 숨은 삶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라는 것입니다. 목소리 숨소리까지 닮고 연구하고, 노력하고, 외우고, 얼마나 반복하여 들으며 애쓰는지 모든 행동가지 원조가수를 닮다가 아에 띄어 넘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짜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그렇게 예수를 닮고자 애를쓰는가 자문해보았습니다. 소녀시대 태연이가 마지막까지 경합을 했던 김환희라는 자매는 자기를 얼굴 없는 김태연이라고 소개 했습니다. 목소리는 너무나 똑같아서 SNS에서는 인정 받지만 얼굴은 소개를 안 합니다. 뚱뚱하고 못생긴 것입니다. 거기도 엄마가 제발 한번만 나가라고 해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가수들은 얼마나 미모가 띄어납니까? 노래는 잘 하지만 열등감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소리로 신과같은 존재 김태연마져 이기고 이천만원을 거머쥐었습니다. 나중에 소감을 말하고, 누군가 가수매니져인지 작곡가 인지 맨트를 해주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신감 가지세요. 미인으로 노래 부르는 것은 한계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은 무한한 발전 끝이 없습니다. 외모보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더 중요 한 것입니다. 열심히 하세요. 지난 수요일에는 이승환이도 떨어졌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왜 이새의 일곱 다들 중에 왜 다윗을 택하셨을까요? 그 아버지 이새는 형들 양이나 지키라고 사무엘에게 선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다윗을 지목하셨나요? 용감했기 때문인가요? 똑똑해서인가요? 다른 어떤 것도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셨다고 했는데 사도행전13:21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마음에 합했다는 것입니다. 외모 신장 외적 능력보다도 그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사야 1:11-12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이들은 근본 마음이 죄는 회개하지 않고 제사만 드리려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을 때에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릐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미가서 6:608절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까지 주님 믿음으로 살아왔는데 주니께 결산해서 내놓을 것이 있다면 무엇을 내놓겠습니까? 지난번 한고운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이력서를 적어보내라고 해서 왜 귀찮게 이런 것을 필요하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수양회 소개책자 만드는데 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내긴 했는데 다른 분들 소개서 올린 것들 보니 웬 감투들이 많은지 나는 내 놓을 것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조선대학교 나왔다는 것하고 책 몇 권 냈다는 것 적어 올렸습니다. 나중에 주님 앞에 서서도 이력서 내놓으라면 내 놓을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내놓을 것 많이 있습니까? 저는 마음밖에 드릴 것이 없더라고요. 사랑하는 마음, 영원히 변함없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여러분 마음을 잘 가꾸고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과부의 두랩돈을 가장 많이 헌금했다고 칭찬한 이유가 무엇이겟습니까? 마음입니다. 없는데도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힘쓰는 마음, 향유를 부은 여인이 창기와 같은 죄인이었는데 그 향유 부은 것마저 제자들은 허비했다고 꾸짖었지만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여인의 일도 전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싼 향유를 헌물롤 드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용서 받은 죄인으로서 감사하는 마음을 최대한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는 그 중요한 때에 가장 소중한 것을 아김 없이 드린 것입니다. 다른 이력서로는 주님게 보일 것이 없지만 주님은 여인의 마음을 더 인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큰 일은 못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원하는 그런 마음은 소유할 수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할 수 있습니다. 소자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합하면 주님의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물론 믿음에 합당한 마음이겠지만 그 것을 보시고 구체적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마음을 순수하게 진실 되게 잘 가꾸는 것이 믿음 안에서 승리의 길인줄 믿습니다. 보이는 것을 붙들고 살아가면 결국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교회문제들 신앙인의 끊임없는 문제들이 어디서 생깁니까? 보이는 외적인 것들을 붙드는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문제가 신앙 문제뿐이겠습니까? 일상의 모든 삶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 일지>에 보면 논상 보다 논심(論心)을 강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민족의 지도자였던 김구 선생이지만 관상만 놓고 보면 거지 거지팔자였다고 합니다. 백범은 어렸을 때에 수두를 앓아 얼굴에 마마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소년 시절 김구 선생은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시험을 보러갔다가 큰 실망을 안고 돌아왔는데 이는 글도 모르는 부자들이 남의 글을 돈 주고 사는 등 매관매직의 극심한 부패상을 논으로 목격한 것입니다. 집에 돌아온 김구는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글로서 입신양명하기는 그른 세상이니 서당 공부를 포기하겠습니다.” “그러면 풍수나 관상 공부를 해보거라. 풍수에 능하면 명당의 복록을 누릴 수 있고, 관상을 잘 보면 성인군자를 만날 수 있느니라.” 이에 김구는 <마의 상서>. 한권을 빌려다가 독방에서 두문불출하며 석달동안 관상공부에 열중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자신의 관상부터 살펴봤는데, 결과는 낙심천만 이었습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부귀와는 거리가 먼 빈상(貧相)인데다가 천하고 고단한 흉상(凶相)일 뿐이었습니다. 비탄에 빠진 김구는 세상을 등질 마음까지 들었는데 문득 이런 구절을 발견하고 힘을 얻었습니다. “얼굴 잘난게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얼굴 잘 난 사람보다는 마음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김구는 심기일전하여 마침내 현대사의 거목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외모가 아무리 좋다 해도 마음이 좋은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성인과 거지의 차이는 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잘난 다윗의 형들을 택하지 않고 못난 막내 다윗을 택하신 이유도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평가는 사람과 다른 것입니다. 사람을 외모를 보고, 또 겉으로 들어난 업적과 성과를 보지만 주님은 마음의 동기를 보시고, 그 중심이 바른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가도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받은 은사와 능력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처음부터 열 달란트 받은 사람이 있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가 괴겠습니까? 많으면 많이, 적으면 적게 충성된 마음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바로 그런 마음 이라는 것입니다. 지나친 욕심도 아니고, 불평도 아닌 주님 주신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점점 더 많은 일을 맡기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이렇게 마음의 중심을 드림으로 주께 합한 삶을 사는 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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