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빗줄기가 말린 멍석처럼 구르며 월출산을 밀고 또 밀었다.
설을 쇠자며 묵은 때를 밀어주는 어머니처럼 끝없이 산을 씻기 운다.
점심때가 지나면서 힘에 겨운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아침부터 계획했던
일을 행동으로 옮겼다.
텃밭 두엄자리에서 지렁이를 잡아 지천으로 널브러진 호박잎에 싸 들고
저수지 아래로 뛰었다. 그곳에는 넓고 깊은 웅덩이가 있었고 흙탕물이
넘치면 장어가 낚였다. 혼탁한 물이 햇빛을 차단해서 야행성 장어가
<이것이 낮이여 밤이여?>라고 긴가민가하면서 나들이 한 것이리라.
웅덩이는 기대 이상으로 혼탁 했으며 월출산을 씻은 물로 철철 넘쳐났다.
조심스럽게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은 나는 바동거리는 지렁이를 낚시에
꿰어 두근거리는 마음을 살며시 흙탕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
오늘이 마치 장어 마을 장날이기를 기대하면서.
역시 입질은 오고 장어는 낚였지만, 마릿수는 파장수준이어서
아버지 엄지만 한 장어 두 마리와 피라미 열댓 마리가 전부였다.
그래도 아버지 막걸리 안주로는 썩 괜찮을 걸 같아서 꿈틀거리는
장어를 앞세우고 집으로 뛰었다. 좁은 골목을 돌고 사립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섰는데 집안 분위기가 이상했다.
어머니는 부엌 입구에서 다듬던 고구마 줄기에게 말 하셨고,
마루에 앉은 아버지는 앞산을 향해 뿌연 담배 연기를 거푸
날리셨다. 두 분은 목표물과 전혀 다른 쪽을 겨냥하는
곡사포 설전을 펼치고 계셨다.
‘오메, 이것이 먼 일이 당가 이?’
설전의 원인을 확인하려고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어머니의 소프라노 목소리가 나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이녁은 참외 몇 개 건져 오려고 신발을 잃어버려요.
그 돈이면 참외 한 바지게는 산단 말이오.”
<어, 아부지 신발> 유탄이 튀듯 얼른 고개를 섬돌 쪽으로 돌렸다.
짝을 이뤄야할 아버지의 흰 고무신은 어찌 된 영문인지 한 짝뿐이었다.
섬돌보다 더 울퉁불퉁한 아버지의 맨발이 비 오는 날 우장을 잃어버린
농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허투루 보아온 아버지의 발뒤꿈치 검은 줄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했다.
거친 무논을 옹골차게 짓눌러서 생긴 상처였다. 하얗게 무서리가 내린
거친 밭에 보리 씨앗을 덮는 강인함도 깃들어 있었다.
아홉 식구 내년 보릿고개까지 넘겨 밟던 그 힘겨움에 가뭄 든
천둥지기처럼 갈라진 아버지의 발, 그렇지만 그 발로 일군 들녘은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푸른 날숨을 내쉬어 잠든 우주를 깨웠다.
“허허, 그만해둬 이 사람아, 아이들 주려고 들고 오던 참외가 떠내려간께
그런 것 아니더라고.” 포연만 무성했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밀리고 있었다.
뿌연 담배 연기 속으로 주름진 아버지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맨발인 아버지 발가락이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아버지 발을 쳐다 본 것 같아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만 허기는 지난 장에 산 새 신 인디.” 어머니 코에서는 유황 연기까지
흘러나왔지만, 아버지는 비구름 사이를 비켜가는 햇볕 같은 미소를 내게
보냈다. 그 미소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괜찮다. 애야 걱정 마>
두 분의 말눈치를 살피는데 아버지 곁에 문제의 참외가 오롯이 놓여있었다.
장어를 잡는다고 잔비를 맞으며 물속을 헤집던 배에서 얼른 참외를 집어
넣어달라고 꼬르륵 신호가 왔다. 나는 누가 오기 전에 하나라도 더
먹을 옥생각으로 어머니 앞으로 바투 다가서며 살며시 물었다.
“아니 엄니, 아부지 신발은 왜 잃어 부렀다우?” 어머니가 나를 힐끔
쳐다보시더니 <너 마침 물때 맞추어서 잘 왔다> 라는 듯이 반응 없는
고구마 줄기대신 답답한 속내를 막내에게 마구 쏟아 놓았다.
“비가 많이 와서 저수지 아래 개울물이 솔찬이 불었지야 이?”
어머니는 이렇듯 상대의 뒤를 꾹 놀러놓은 방법으로 상대의
관심을 유도하셔서 당신께서 의도한 답을 얻으셨다.
“예, 금방 보고 왔어라우.” 내가 어머니 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대답했다.
“그라고, 저수지 수문까지 모두 열어놓아서 냇물은 미친 소처럼 바위도
굴리며 흐르는디. 아 글씨 참외 몇 개 들고 오시다가 발을 헛디뎌 강물에
참외가 떠 날아간께. 신발 잊어버리는 것도 모르고 참외 잡으러 갔다 안 허냐.
아이고! 미련한 양반 그러다 사람이 떠나러 갔으면 어쩔 뻔 했느냐 이”
“아니 엄니, 아버지는 논에 가시면서 머 더러 새 신을 신고 가셨다요?”
무심코 내가 한마디 거들었는데 그 효과가 아주 그만이었다.
어머니는 막혔던 숨통이 터지듯이 허리를 펴시며
“오메~오메! 내 말이, 시방 내 말을 니가 다 해 분다 이. 아야? 너 어디서
엿듣다가 와부렀냐? 장날이던가, 동네 마실 가실 때나 신고 가실 것이지
머더러 들일 가면서까지 새 신을 신고 갈 것이냐 이. 한 달을 나물 캐서
장만한 흰 고무신인디….” 마지막 소리는 너무 작아서 어머니 곁에 있지
않았더라면 못 알아들 뻔했다.
“그래라 이. 오 메 짠한 거”
잃어버린 고무신은 어머니가 월출산 이 능선 저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캐온 나물을 다듬고 말려서 지난 장에 낸 돈으로 사온 것이었다.
아버지 고무신을 장만하려고 돋을볕에 산에 든 어머니는 해동갑해서야
돌아오셨다. 나무 열매와 칡뿌리로 허기를 달랜 망태기 속에는 잔약한
몸으로 바위산을 타며 체취한 산나물이 반쯤 담겨있었다.
밤이면 어머니는 멍석 귀퉁이에 망부석처럼 앉아서 그날 캐온 더덕
껍질을 손톱으로 벗겼다. 웃을 벗은 더덕은 달 속의 <항아>선녀처럼
하얗게 변해갔지만, 더덕 진이 엉겨 붙은 어머니 손가락은 점점 더덕
껍질에 가까워졌다.
끈적거리는 더덕이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으로 변하기까지는, 손톱 반월
같던 초승달이 선잠 깬 주막집 작부 같은 희부연 그믐달로 바뀌었고.
소쩍새는 어머니 머리 위를 밤도와 울며불며 오갔다.
그토록 허리 휘고 골 빠진 어머니의 노력이 그만 닷새를 못 넘기고
햇볕에 쫓기는 무지개처럼 사라져버렸다. 장어가 축 늘어지도록 이어지던
곡사포 설전은 아버지가 한마디를 던지고 힁허케 냇가로 가시는 바람에
싱겁게 끝나 버렸다.
“호랑이에게 물려갈 줄 알면 누가 산에 가나? 그라고 나가 아이들 줄 참외를
잡으려다 신발을 잃어버린 것하고, 이녁이 내 고무신 장만한다고 더덕 캐다
물팍 깨지고, 가시에 찔려 피 난 것하고 무엇이 다른지 나는 몰것네”
과묵한 아버지의 한마디에 나는 누가 승자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육남매를 낳고 기르면서 터득한 섬세한 어머니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꿰뚫은 촌철살인 이었다. 시쳇말로 좁쌀 백 번 굴러도 호박 한번 구루니
만 못하다는 말대로 되고 말았다.
망부석처럼 오도카니 앉아서 아버지의 검게 갈라진 발뒤꿈치를 바라보던
어머니가 바가지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남은 앙금으로 고구마 줄기를
곤죽을 만들어 된장국을 끓일지라도 틀림없이 장어 굽도록 잉걸불은
준비할 것이다. 어둠침침한 부엌에서 주전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나의 입가에 텁텁한 막걸리 맛이 맴을 돌았다.
오늘 참외 사건은 장날이면 이십 리 후방 외가까지 유황 냄새를 날릴 것이다.
외가에는 참외 때문에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형부라 부르는
여인네가 넷씩이나 있었다. 옆에서 입을 가리고 웃을 멋쟁이 숙모 둘도
무시할 수 없는 우수리.
키득거리며 먹던 참외는 엿처럼 달았다. 왜 아니겠는가? 심부름하면서
조금씩 훔쳐 먹은 술은 이제 중독될 지경이었고 동구 밖에서 엿장수 가위
소리가 들려오면, 참외에게 짝을 빼앗긴 고무신은 달콤한 엿으로 환생할 터,
빨래를 널던 철삿줄에는 제비들이 앉아<지지배배 지지배배>어머니 흉내를 냈고,
처마 끝에 세워놓은 낚싯대는 과묵한 아버지처럼 푸른 하늘에 안테나를 꽂고
조용히 다음 장대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외 한 개를 다 먹기도 전에 달그락 거리던 부엌에서
불쑥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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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무 방도가 없는 자리에, 한 방울 또 한 방을 처마 댓돌을 치는
낙수소리뿐이었다. 고구마 줄기를 다듬으시는 어머니의 볼품없는 검은
손가락 때문에 나도 축 늘어진 장어가 되어버렸다.
어머니가 고구마 줄기에 한 말은 다행히 일본어는 아니었다.
일본서 사시다 오신 두 분은 자식들이 들어서 안 될 소리는 모두
일본어로 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 일본어가 난무하면 한국에서
출생한 꼬맹이들은 바로 심각한 얼굴로 숨소리를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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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어머니가 사다 주신 신발을 아끼셨는데 마을 누군가가
“어허! 자네 신발 좋네!” 이렇게 물어 오기를 은근히 기대하시면서
신고 나가신 것 같았다.
자랑스럽게 치켜든, 꿈틀거리는 장어를 보고서도 소 닭 보듯 하셨다.
어머니는 콧구멍으로 계속 유황연기를 내뿜고 계셨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겉보다 발바닥이 문제였다. 찬 서리가 내리면 벌어진 아버지 발뒤꿈치에 쇠기름을 떼어 넣고 성냥불로 지졌다. 쇠기름이 지글거리며 스며드는 틈은 작지 않았고 두 번 다시 보기 싫을 정도로 깊었다. 아버지는 지질 때마다 끙~끙, 몸을 뒤틀며 타는 고통을 안으로 끌어안으셨다. 이렇게 아버지 살이 타야 육남매와 반신불수 작은아버지가 그 타는 살 먹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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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에 우기가 찾아오면 하루에 한차례씩 왁자하게 비를 쏟는다. 뾰쪽한 야자 잎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고향 초가삼간 처마 끝 낙숫물처럼 까마득한 반세기 세월 너머 유년시절이 마치 오늘 일인 양 선명하게 내게 다가왔다.
창밖에 야자나무가 산발한 여자처럼 창문에 빗물을 흩뿌리는 바람에 흠칫 놀라면서 현실로 돌아왔다. 나도 자식에게 줄 참외를 찾아서 머나먼 이국땅 까지 온 것이다. 세파에 흔들릴 때마다 우리에게 줄 참외를 들고 강물 속으로 뛰어 든 아버지가 떠오른다.
‘괜찮아요. 아버지! 저도 참외를 찾다가 잃어버린 신발이 한두 짝이 아니거든요. 갈라진 발뒤꿈치 사이에 쇠기름을 욱여넣고 지지면 기름은 지글거리며 파고들었죠. 우리는 성냥불을 그어대며 아버지의 그 타는 살 먹고 살았건만, 온몸이 뒤틀리는 아픔의 크기는 어림하지 못했답니다.
‘아버지!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남국의 땡볕 속으로 달리는 나의 춤사위를 아이는 전혀 볼 수가 없어요. 참외 찾아 너무 멀리 나와 버렸어요. 아버지의 손자가 춤사위를 잃어버린 꿀벌이 되어버리면 이를 어찌하지요?’
제 발뒤꿈치는 염치없어서 꽁보리밥에 수저도 얹지 못하도록 깨끗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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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지자 아버지는 샛강 건너 서당 골 논에 가셨다. 물꼬를 보고 돌아오시는 길에 원두막에서 참외를 사셨다. 우리에게 줄 참외였다. 샛강에 이르러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강물은 논에 갈 때와 전혀 딴판 있었다. 저수지 수문을 모조리 열어놓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출렁이며 소용돌이쳤다.
유속이 느린 곳으로 조심스럽게 강을 건너던 아버지는 중심을 잃고 손에 든 참외를 놓쳤다. 두둥실 멀어지는 참외를 허겁지겁 쫓던 아버지는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다. 어머니의 한숨과 푸념으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사설을 육하원칙으로 정리해 보았다. 걸러낸 어머니의 넋두리 속에는 이런 푸념도 섞여 있었다.
“그러다 사람이 떠내려갔으면 어쩔 뻔 했냐 이”
제목: 참외를 찾아서
에필로그: 참외만 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야자나무를 올려다보다가 꼼지락거리는 내 발가락을 굽어보았다. '구찌땅굴' 구경 기념으로 사온 폐타이어로 만든 일명 '호 치민'슬리퍼가 나의 발을 얼키설키 붙잡고 있다.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어 내 자식에게 줄 참외를 찾아서 머나먼 이국땅까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