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5일 독일을 방문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아버지가 1964년 방문할때는 독일에서 보내준 전용기를 타고 갔다고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전용기는 아니었다. 아래 내용에 7곳을 28시간이나 걸려서 갔다 하는데 여기에 더하여 내가 읽은 조갑제의 '박정희 13권' 책에 보면 경유지에서 승객들 내리고 태우고 기름 채우고 정비하고 할 동안에 그곳 국가와 수교관계에 있는 나라는 공항을 나와서 편하게 쉬었는데 수교관계가 없는 나라의 공항에서는 공항 로비에서 대기했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 대통령의 애환이었다.
서독이 편의를 베풀어 1등석과 2등석을 반으로 나눠서 박정희 대통령과 수행원이 탈수 있겠금 한것이 전용기라고 부르는가 본데 우리가 요즘 생각하는 전용기라면 김포공항에서 서독으로 바로 날라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서독은 전용기를 보낸 것이 아니고 자국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에게 요청을 해서 대한민국 대통령 일행을 김포를 들러서 태워 오라고 부탁을 한 것이었다. 최초 출발지인 일본에서 일본 승객을 태우고 김포로 날라오는 바람에 한국 대통령 일행 환송행사를 구경한다. 일본 탑승객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 아무리 힘 없는 나라 대통령이라도 대통령과 일반 민간인이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 현대에 와서는 있을 수 있겠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홍콩으로 바로 가야할 승객들이 한국 김포를 들러서 가는 일본 승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샘페인을 한잔씩 돌렸다는 것이다.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장면이었다. 그러든 대한민국이 그것도 그분의 따님이 이번에는 당당히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통일된 독일을 방문한다. 참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독 방문길
1964년 12월6일 일요일 낮 12시 30분쯤, 청와대 본관에서 박대통령 부부를 태우고 나온 승용차는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멎었다. 예 총회관 낙성식이 준비돼 있었다. 박대통령은 준공 테이프를 끊고 참석 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다시 차에 올랐다. 차가 세종로로 나오면 서 차량 행렬은 달라졌다.
기동경찰대의 모터 사이클이 여덟 팔자 대 형으로 선도하고 대통령 부부가 탄 차량의 좌우로는 경찰의 지붕없는 지프차가 호위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차량 뒤로는 검은 색 세단들이 꼬리를 물었다. 시청앞-덕수궁 모퉁이를 돌아 김포공항에 이르는 주요 도로는 태극기와 독일의 삼색기로 단장되고 공무원과 학생들이 시민들 과 어우러져 태극기를 흔들며 박대통령 일행을 배웅했다.
출발 30분 전인 오후 1시10분, 김포공항에 도착한 박대통령은 군악 대의 주악이 울려퍼지며 21발의 예포가 터지는 가운데 정일권 국무총 리의 안내로 삼군의장대를 사열했다. 박대통령은 각 방송사의 마이크 들이 숲을 이루고 서 있는 환송대로 올라갔다. 단상 좌우에는 옥색 치 마와 두루마기 위로 은색 밍크 목도리를 두른 육영수와 정일권 국무총 리가 섰다.
박대통령의 뒤로는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보잉 707기 가 대기중이었다. 이 비행기는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본-도쿄 상용노선 에 취항중인 여객기였다. 서독 정부가 1등석과 2등석 절반을 비우게 하고 중간에 커튼을 친 다음 한국의 대통령 탑승기로 제공한 것이었다. 2등석 후미에는 동경에서 탑승한 승객들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창밖 에서 진행중인 행사를 지켜보았다. 박정희는 카랑카랑한 육성으로 인 삿말을 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오늘 우리와 가장 친밀한 우방의 하 나인 독일 연방공화국 뤼브케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독일 방문의 여정 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박정희는 다음 대목에서는 특히 힘을 주어 말했다.
'나는 종전후의 그 폐허 위에서, 더구나 공산주의 세력과 대치하면 서, 오늘의 위대한 경제 건설과 번영을 이룩한 독일연방공화국의 부흥 상을 샅샅이 시찰할 것이며, 아울러 경제적 자립을 위해 분발하는 패 기에 찬 한국민의 결의도 소개함과 동시에 양국 공통의 관심사에 관해 상호 이해를 증진시켜 ….'
인사말을 마친 박대통령은 이효상 국회의장, 정일권 국무총리, 조 진만 대법원장, 주한외교사절단을 대표한 로제 상바르 프랑스 대사의 인사를 받고 환송식을 마쳤다.
박대통령 부부는 공항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던 약 1천여명의 환송 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비행기로 이어진 1백여m 길이의 붉은 양탄자길 을 걸었다. 수행원 24명이 대통령의 뒤를 따라 비행기에 올랐다. 공식 수행원으로는 영부인 육영수를 비롯, 장기영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 관, 이동원 외무부장관, 박충훈 상공부 장관, 김동환 국회 외무위원장, 김성진 공화당의원, 조윤형 민정당 의원,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 최 덕신 주독 대사, 김종오 합참의장,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정도순 외무부 의전실장, 조상호 청와대 의전 비서관 등 13명이었다.
비공식 수행원으로는 백영훈 중앙대학교 교수(대통령 통역), 노석 찬 공보부 차관, 박상길 청와대 대변인, 지홍창 대통령 주치의, 신동 관 청와대 경호과장, 이복형·이천배 청와대 경호실 경호관, 나은실· 황경분 영부인 비서, 이정섭·박진석 공보부 사진기사 등 11명. 수행 기자단 10명도 2등석에 올랐다.
박대통령 일행을 태운 루프트한자기는 오후 1시40분에 김포공항을 이륙했다. 상용노선에 취항중이던 관계로 함께 탑승한 민간인 승객들 의 중간 기착지를 모두 경유했다. 박정희는 홍콩-방콕(태국)-뉴델리 (인도)-카라치(파키스탄)-카이로(이집트)-로마(이탈리아)- 프랑크푸르 트를 거쳐 본 공항에 도착하는, 28시간이나 걸리는 긴 여행을 시작했다.
박정희는 외국을 방문하는 국가원수로서 외국 여객기에 일반승객 과 합승해야 하는 처지에 대해 느끼는 비애가 남달랐을 것이다. 오후 1시40분. 김포공항을 이륙한 대통령 탑승기는 항로를 일본 쿠슈 남단 방향으로 잡고 비행했다. 한국 공군의 F-86 세이버기 1개 편대가 제주 도 남단까지 호위했다. 이때 박대통령은 서비스로 제공되던 샴페인을 들었다. 자신 때문에 동경에서 홍콩으로 직항하지 못한 채 서울까지 들러야 했던 2등석 가림막 뒤의 일반 승객에게도 샴페인 한 잔씩을 돌 렸다.
쿠슈 남단 상공에 도착한 특별기는 정기항공노선에 올라 1차 경유 지인 홍콩으로 향했다. 일본 상공에서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박대통령 은 육영수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주로 창 밖을 내다보며 깊은 생 각에 잠기곤 했다. 당시 조선일보 정치부에서 수행기자단에 참가했던 이자헌(전 민자당 원내총무·현 한나라당 평택을 지구당 위원장)기자 의 회고-.
'이등석에 앉았던 우리들은 가림막 뒤의 일반 승객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화장실에 가 보니 이상하게 생긴 물건이 거울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 번씩 화장실을 다녀온 기자들이 모여 이것이 무슨 용도로 쓰이는 것인지 논의를 했습니다. 그때 여기자로 유일하게 수행기자단에 포함됐던 한국일보의 정광모 기자가 물비누라 고 설명해 줘 모두 실소를 금치 못했지요. 그때는 기자들도 국제적 촌 놈들이었고 대통령 일행도 참 초라한 행차를 하고 있었습니다. 박대통 령의 표정이 밝지 못했습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http://www.chogabje.com/premium/book/view.asp?sCidx=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