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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농암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주막담
이쁜아, 사랑한다!
시작하면서
여자분들이 듣기 싫어하는 남자들의 이야기
3위 군대 이야기, 2위 축구 이야기, 1위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한다.
군대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군대생활을 한 곳은 강원도 양구군에 있는 백두산 부대 21사단 63연대 1대대 1중대 최전방....방책선(후방에서는 휴전선이라고 부르더군요)에서 밤에 근무서고 낮에 잠자는 팔자좋은 생활을 하다가...보급병을 하라는 국가의 부름에 따라 보급병이 되어....평지에 있는 대대본부로 하산을 했다. 계급은 상병....보급병이 하는 일은 방책선 기지에 부식, 편지 이런거 날라다 주는 것이다.
첫 만남
때는 1981년 6월 중순.
비가 디지게 와서 산비탈 절벽에 매달린 도로가 폭싹 무너져 보수도 어려워...더 이상 다찌차로는 부식 운반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자 느닷없이 말 세 마리가 나왔다....전부 숫놈...덩치가 경마용 말만큼 큰 두 마리하고 노새만한 1마리....군마병 김 병장, 경 일병 두 명하고...김 병장은 폼만 잡고. 팔자에 말이라는 동물은 농암 살면서 본 적이 없는 동물이다. 내가 말을 운행(정확히는 운마라는 말이 맞는데)해야 한다고 하면서 말에 대해 경 일병이 교육을 시켰다.
기온이 30도인가 몇 도이상일 때는 운행해서는 안되고...경사가 몇 도이상 되는 곳에서 운행해서는 안되고....(이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말이 먹으면 마취되는 잎사귀가 있는데 그걸 먹으면 안되고....(이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못했다)...그리고 나서 가장 중요한 거라고 하면서 말에 짐묶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좌우 균형을 맞추고 말 허리가 휘지 않도록 묶어야 된다고 하면서....안그러면 늑막염이 걸린다나 어쩐다나...하여튼 이런 교육을 대충 받고 말을 운행하게 되었다.
줄을 잘못 서서 내가 맡은 기지는 7개 기지....다른 중대 보급병들은 두 세 개 기지 밖에 안되는데. 5개 기지는 다찌차로 운반하고 제일 멀고 제일 높은 산꼭데기 있는 2개 기지는 말로 운반을 하게 되었다.
바쁘다 바빠
대대본부에서 아침 10시에 부식을 받으러 간다. 7개 기지 인원별로 대충 부식을 나눈다. 재수 좋은 기지는 동태 몸뚱이가 가고 재수 없는 기지는 동태 대가리만 가고. 닭똥집은 빼버려 한 곳에 모으고...여름이라 기지에 도착하기 전에 다 상해 먹지도 못하니까...닭똥집은 모아서 시원한 도랑물속에 보관했다. 기지가 많아 여러 종류의 부식을 일일이 정량 따져 가면서 나누기에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나눈 부식을 M60 트럭에 전부 싣고 대대본부로 돌아와서 다시 중대별로 기지별로 다찌차로 갈 곳은 다찌차에 싣고 말로 갈 곳은 말에 싣는다.
옷은 거지중의 상거지. 바지는 동태비늘로, 닭고기로, 돼지고기로, 배추로 번질번질하고 뻣뻣하고 퀴퀴하고 비리하고 역한 냄새가 진동을 친다. 여름이라 냄새가 더 난다. 노숙자 원조가 바로 나다.
시간이 없다. 대대본부로 돌아오면 대략 12시. 기지별로 다찌차에 싣고 말에 싣고...편지 챙기고...비문(비밀문서) 챙기고...기지에서 사달라고 부탁받은 PX 물품 빵, 편지지 등등 챙기고...이러다 보면 시간이 없다. 식기에 밥만 담아 도랑물에 가서 물에 말아...엄지손가락만한 멸치젖 2개를 반찬으로 해서...목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이런데도 보급관은 늦다고 눈알을 부라리고 목청을 높이고 생×랄...익은 ×랄...삶은 ×랄...있는 ×랄은 다 부린다.
그 이름은 이쁜이
다찌차에 싣고 나서...마굿간을 간다. 근데 세 마리 말 중에서 제일 덩치가 큰 놈은 앞발로 떡 버티고선...날 잡아잡수소...하면서 마굿간에서 아예 나오질 않는다...할 수 없이 남은 큰 놈하고 덩치가 적은 놈...두 놈을 끌고 나온다. 나와서 짐을 묶을려고 하자...제기랄....큰 놈은 배에 짐을 대자마자 미친듯이 히힝거리면서 날뛴다....계속 이러니 결국 포기하고 만다...에이 나쁜 놈...이제 적은 놈에게 짐을 댄다. 덩치가 조그만게 나한테 눈을 맞추고는..."덩치 큰 쟤들 놔두고 왜 나한테만 짐을 실어요?..."라고 한다...미안하다...짐을 싣지만 덩치가 적어 얼마 싣지를 못한다....짐을 다 묶을 때까지 조용히 있는다...이쁘다...그래서 내가 "이제부터 니 이름은 이쁜이다"라고 말해준다.
이쁜이와의 동행
이쁜이하고 이제 출발이다. 시간은 오후 1시. 태양은 뜨겁고 적막강산의 산길을 간다. 가끔 꿩병아리와 산토끼가 앞길을 가로질러 간다. 며칠을 같이 다니며 길도 익숙해지고 서로간의 정감도 들자...이제 이쁜이는 알아서 내 앞장을 서서 간다...나는 이쁜이 뒤에서 이쁜이가 꼬리 칠 때마다 나오는 말똥 냄새를 기분좋게 마시며 뒤따라 간다....이쁜이는 오르막을 오르기 전 잠시 쉬면서 물먹을 곳에 먼저 가서 나를 기다린다.
<머리 중간에 머리카락 빠진게 보이시죠...속알머리 없게 시리>
물을 먹고 오르막을 오른다. 돌길이다. 이쁜이가 빠각빠각 돌을 밟으며 오르막을 오른다. 편자가 빠질듯한 소리다. 이쁜이 몸에서는 땀이 후두둑 후두둑 땅에 떨어진다. 꼬리를 한 번 휙치면 이쁜이 땀이 내 얼굴에 철썩 붙는다. 조금만 참고 가자. 이쁜아. 다와간다....정상 도착이다. 이쁜이 입에서는 허연 거품이 뿍쩍뿍쩍 나온다. 힘이 들어 옆으로 드러누울려고 한다. 병사들에게 "옆에 가서 말 안넘어지도록 얼른 받쳐주고 빨리 부식내려!"라고 내가 소리친다. 짐을 다 내리자 이쁜이 눈에 생기가 조금 들고 이쁜이는 푸하고 숨을 크게 쉰다. 그런데 내가 이쁜이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미안하다 이쁜아. 이 시간이 오후 4시반.
다시 대대본부로 돌아가야 한다. 부식받는 병사들이 말한다. "말을 타고 가지 그래요"....내가 말한다. "야 미친놈아...이렇게 말이 고생했는데...말이 나를 타고 가야지...내보고 말을 타고 가라고?"...내가 이쁜이를 업고 가고픈 맘이든다...내리막길이지만 이쁜이는 쉽게 걷지를 못한다. 천천히 간다. 물먹는 곳에 와서 이쁜이에게 물을 먹인다. 내가 이쁜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깊은 산속이라 벌써 산그림자가 어둑하게 색깔을 더하며 하얀 산길을 덮기 시작한다. 달도 밝은 빛을 더해간다. 풀벌레 소리와 산새 소리를 들으며 이쁜이와 나는 산길을 걷는다. 무섭지 않다. 이쁜이하고 같이 있으니까. 정겹다. 이쁜이 몸도 시원하게 식어간다. 대대본부에 돌아왔다. 저녁 8시.
서로가 빠져 버렸다.
먼저 이쁜이를 마굿간에 넣고 먹이를 준다. 덩치 큰 두 놈은 미워 죽겠다. 확 차버리고 싶다. 나도 저녁밥을 먹으러 간다. 다들 먹고 난 뒤라 내 밥만 식은 채로 식기에 담겨있다. 도랑으로 가서 식은 밥을 찬 도랑물에 말아 시어터진 깎뚜기 몇 점과 함께 먹는다. 밥을 먹고 나서 목욕을 한다. 교교히 흐르는 달빛 속에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총각이 혼자 목욕을 한다. 머리에 비누칠을 하고 비누를 본다. 이런 이런!!!!! 비누에 머리카락이 새까맣게 많이도 묻어 나온다. 달빛에 비춰보니 가느다란 머리카락도 많이 묻어난다. 대머리 시작이다. 얼굴을 밀어보니 뭐가 밀린다. 허물이 코끝에서부터 벗겨진다. 아이고 이럴 우째노? 벌써 대머리가 되다니...내 고운 얼굴 다 버리삐고...아이고 내 팔자야....
목욕을 끝내고 팬티만 입은 채로 이쁜이가 있는 마굿간 앞을 지난다. 이쁜이가 말발굽으로 뜨거덕하는 소리와 푸하는 콧김을 낸다. 내 냄새를 알고 내 발자국 소리를 알고 내는 소리다. 이쁜이에게 다가가자 이쁜이가 입으로 내 옆구리와 겨드랑이를 툭툭친다...그래 이쁜아 오늘도 수고 많았다. 잘 자라. 니는 동물이고 나는 사람이지만 니하고 나하고 무슨 전생의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옷을 갈아입고 점호 끝나고 나면....도랑으로 가서 시원하게 물속에 잠겨있는 닭똥집을 꺼낸다. 식용유통에 닭똥집, 고춧가루, 소금을 넣고 나무로 불을 때 끓인다. 짭잘한게 그런대로 맛이 난다. 식기에 담아 소주 한 병을 챙겨 보안대서 파견나온 최 중사한테 간다. 최 중사는 의성 사람이었는데 상당히 인간적이었고 나를 고생한다고 많이 생각해 주었다.
고난의 대문이 열리고
8월 중순 어느 날.
하늘이 빵꾸가 났다. 버지기로 비를 쏟아붓는다. 이쁜이도 운행을 못한다. 이쁜이에게는 운수좋은 날이다. 쉴 수 있으니까...나도 기분이 좋다. 이쁜이가 운반하던 2개 기지는 다찌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병사들이 지게를 지고 나와 부식을 받아가야한다. 무겁다고 무버리지 말고...비문(비밀문서)은 특히 조심해서 잃어버리지 말고...부식받으러 나온 병사들에게 당부한다.
1주일 후
중대 통신병한테 전화가 왔다. 통신병은 내 동기다. "너 혹시 통신확인표 못봤니?" 내가 물었다. "통신확인표가 뭔데? 왜?" "아니야, 그냥 니가 봤나 싶어서..."하고 전화를 끊었다. 1주일이 지나면 비문인 통신확인표를 대대본부로 반납해야하는데 중대통신병이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신문지에 빨간 두줄이 그으져 완전이 밀봉 상태로 싸여져 있는 비문을 부식받으러 나온 병사에게 분명히 전달했기 때문에 별 걱정을 안했다.
그 다음 날 아침 9시쯤 찦차 한 대가 대대본부에 도착했다. 대대장이 쫓아나가고 난리가 났다. 보안대에서 나온 것이다. 좀 있더니 보안대 대위가 나를 부르더니 "1중대 보급병은 오늘부터 부식받으러 가지 말고 운반도 하지말고 대대본부에서 대기하도록!"하고 명령하신다. 이날부터 군마병 경 일병이 이쁜이를 운행했다.
저녁을 먹고나자 통신대에서 전화가 와서 통신대로 나를 오라고 한다. 가서 들어가라는 막사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빨간 불이 켜져 있어 앞이 잘 안보였다. 조금 두리번거는데 퍽하면서 앞이 번쩍하더니 양쪽 볼로 주먹이 날아오고 배를 주먹으로 때리고 앞정갱이(일명 촛대뼈)를 사정없이 찼다. 아야 소리도 제대로 못내고 땅바닥에 나뒹굴어졌다. 아픔이 좀 가시자 눈을 뜨고 보니 앞에 식탁이 있고 누군가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중대에 갖다주라고 비밀문서를 나한테 건네주던 통신대 일병이었다. 그리고 덩치가 산돼지만한 놈이 병장 계급장을 달고 한 다리는 식탁 의자에 올리고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일어나 이 ×새끼야!" 하면서 강아지만한 내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여기 앉아. 그리고 통신대 너 이새끼, 너는 다시 비문을 신문지에 싸서 1중대 보급병한테 건네주는 걸 다시 해봐"라고 했다.
통신대 일병은 수십번을 싸서 나한테 건네주는 걸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늦는다고...아까하고 신문지에 싸는 방법이 좀 다르면 다르다고 하면서 통신대 일병의 뺨을 이리치고 저리쳐댔다. 나한테는 신문지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도 안해봤다고 뺨을 때렸다. 나로서는 신문지에 빨간색으로 Ⅱ급 비밀이라고 쓰고 두 줄이 그어져 완전 밀봉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문지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필요도 없었고...또 통신대 일병도 건네줄 때 말한 적이 없으며...중대 통신병도 비밀문서 뭐뭐를 잘 받았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밤 12시가 되어서야 나한테 돌아가라고 하면서 부식보급나가지 말고 어디 가지말고 대대본부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
신나게 터지고 돌아오는 길에 마굿간을 지나는데 이쁜이는 내 사정도 모르고 여전히 말발굽으로 뜨거덕 소리를 내고 콧김을 푸하고 내뿜었다. 난 그냥 지나쳤다.
돌아오니 대대보급관이 걱정을 한다. 잘못되면 나도 영창을 갈지 모른다고. 보안대 대위가 이번에 소령 진급을 해야하는데 이런 일이 터졌으니 전달한 나도 책임을 물을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보안대에서 파견나온 최 중사는 찾아가지 않고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잤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부식보급도 못나가고 그냥 대기하고 있었다. 저쪽을 보니 PX관리관이 오고 있는게 보였다. PX관리관은 나이가 많으신 계급이 상사였는데 영외에서 출퇴근을 했다. 이 분도 인정이 많으신 분이다. PX관리관에게 다가갔더니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다. 군대생활을 잘 마쳐야 하는데 이런 일이 터져 고생한다고 하시면서....집은 잘 사냐고 물으셨다...못산다고 하자...그러면 보안대 파견나온 최 중사가 니를 많이 생각하던데 최 중사를 찾아가보라고 하신다.
점심 때 군마병 경 일병이 이쁜이에게 짐묶는 것을 도와주고 나서...PX로 갔다. 가서 "관리관님...제가 집에 편지를 보낼려고 하는데...사제 편지로 빨리 집에 도착하는 걸로 좀 부쳐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관리관님 주소 좀 가르쳐주세요"..."알았다. 우리 집 주소야 양구군 동면 월운리 내 이름 적으면 우체국에서 알아. 퇴근하기 전까지 빨리 가져오너라"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군대서 공부할 게 있어 필요한 책을 사야하고 또 다른데 쓸 것도 있다고 하면서 25,000원을 PX관리관님 집주소로 통상환을 끊어 부쳐달라고 집으로 편지를 썼다. 그리고 PX관리관님께 우편요금과 함께 부쳐달라고 드렸다. 이날 이후 우리 중대장이 불려오고 중대 통신병이 불려오고 했지만...더 이상 나는 부르지를 않았다.
엄마, 여보 지금도 미안해
지금 아내는 군대가기 전에 내가 먼저 프로포즈를 했다. 군대가기 전 아내가 아내 친구와 함께 우리 집에 와서 군대 잘갔다 오라고 했다. 어머니가 이를 보셨다. 이 때 집이 어디냐고 아내에게 물어 아내의 집 위치가 어디인지는 대충 알고 계셨다.
편지가 집에 도착했다. 내 동생이 남자 둘인데...바로 밑의 동생은 군대에 막 들어가 있었고 막내는 고드학생으로 싸이클 선수하느라고 여념없이 바빴다. 이웃집에서 받아두었다가 장사마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신 어머니께 군대간 나한테서 왔다고 했다. 어머니가 한글을 몰라 편지에 뭐라고 적혀있느냐고 하자 돈이 필요하다면서 25,000원을 부치라는 내용이라고 했다. 왜 돈을 부치라고 하는지 밤새 걱정을 하신 어머니는 날이 밝자마자 아내의 집을 물어 아내를 찾아가 편지를 보여주었다.
아내는 편지를 읽고 걱정하지 말라고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직접 면회를 갔다오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내는 당일치기로 몰래 아침 일찍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로 출발해서 PX관리관님 집을 찾아갔다. PX관리관님은 아직 퇴근을 안하셨다. 면회를 어떻게 하는지를 PX관리관 사모님께 물었다. 바로 앞 민통선 초소에서 하면된다고 했다. 초소에 가서 면회를 신청했지만 방책선 최전방에 근무하는 군인은 면회가 안된다고 하여....PX관리관 사모님께 25,000원을 주면서 나한테 전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돌아섰다.
"1중대 보급병!"하고 PX관리관님이 출근을 하시면서 나를 불렀다. "니 마누라가 주더라. 이거 받아"하면서 하얀 봉투를 주셨다. 봉투안에 25,000원이 들어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혹시 잘못되면 나도 영창을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PX에 갔다. 카시오 전자손목시계가 나온지 얼마 안된 때였다. 이 전자손목시계하고 싸구려 나폴레옹 양주를 샀다. 이 두 가지가 합쳐 가격이 2만원 정도되었다.
저녁에 닭똥집을 끓여 식기에 담아 카시오 전자손목시계하고 나폴레옹 양주를 갖고 최 중사를 찾아갔다. "어서 온나. 고생많지?" "저... 그런데 최 중사님...이거 좀 받아주세요"하고 어색한 얼굴로 가지고 간 것을 내밀었다.
"나 이런 거 받고 하는 사람 아니야. 군대오면 다 고생하지만 난 니가 다른 중대 보급병보다 더 많은 기지를 맡아 부식나르고 뙤약볕에 말끌고 부식나르면서도 힘들다는 소리안하고 묵묵히 하는게 좋았어. 그리고 니가 나를 좋아하고...이거는 가져가. 알았지?" 하면서 다시 나한테 내밀었다. "참, 시계는 니가 차라 그만."
그 다음 날 아침
아침을 먹고나자마자 대대 통신대에서 나를 오라고 한다. 겁이 덜컥 났다. 왜 나를 부르지? 통신대에 가니 대대통신대 일병, 중대 통신병이 먼저 와 있었고 옆에는 찦차가 시동을 걸고 붕붕거리고 있다. "세 놈 전부 차에 타!"하고 보안대 대위가 소리쳤다.
찦차를 탔다. 앞이 노래졌다가 깜깜해졌다.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내가 뭘 잘못했다고....그런데 잠시 후 갑자기 "1중대 보급병 내려!"하는 소리가 들렸다. "못 들었어? 1중대 보급병 빨리 내려!"
찦차에서 내리자 보안대 대위가 손을 저어 자기한테로 오라고 한다. "1중대 보급병은 고생이 많다고 하던데....말을 끌고 부식을 나른다고? 이 더위에 고생이 많구먼....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잘 한다고 최 중사가 칭찬을 하더구먼....앞으로 남은 군생활 몸 건강히 잘하게." "......"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나를 두고 찦차는 두 사람을 싣고 떠나갔다.
터벅터벅 힘없이 돌아오는 길에 마굿간을 보니....밉디 미운 덩치 큰 말 두 마리는 오뉴월 개팔자보다 더 좋게 팔자늘어지게 여유를 부리고...이쁜이는 오늘도 말없이 등에 짐을 지고 왕복 8시간을 갔다와야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날 같이 갔으면 좋으련만...아직 같이 가도 좋다는 명령이 안떨어졌으니 갈 수도 없고...또 나 자신이 너무 지쳐있고....잘 갔다 오너라. 이쁜아.
저녁에 나폴레옹을 가지고 최 중사한테 갔다. 내가 술병부터 땄다. 그리고 "날 보안대에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말했다. 최 중사는 "아니 난 그런 적 없는데... 니가 잘해서 그런거지..."하고서는 딴 술병을 보고는 잔을 내어와서는 "한 잔해라. 수고했다."고 말하면서 술을 따라 주었다.
그 다음날 아침
아침 점호가 끝나자마자 중대에서 전화가 왔다. 따블백 꾸려 연대로 들어가서 하사 교육을 받으러 가란다. 명령대로 연대로 갔다. 연대에서 대기하던 중 추석이 내일로 다가왔다. 추석날 다들 외출을 끊어 준다고 하자...다른 대기자들은 모두 양구읍이나 남면에 가서 술도 한잔하고 당구도 치고 면회도 오라하고....야단들이다.
이쁜이와의 재회
추석날이다. 나는 외출을 끊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이쁜이가 있는 곳으로 가는 진중버스(말이 버스지 트럭임)를 탔다. 다들 의아해한다. 추석날 남들은 민통선 안에서 민간인 마을로 외출을 나오는데 거꾸로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다니....
저만치 마굿간이 보이고 이쁜이도 보인다. 걸음을 재촉해 이쁜이에게 갔다. 나를 알아보고 반기는 눈빛에...콧구멍이 벌렁벌렁하면서...푸푸하고 숨을 쉬고...혀를 쑥 내밀어 날름거린다. 말발굽도 더 뜨거덕뜨거덕 소리를 낸다. 내가 다가가자 머리로 내 겨드랑이와 옆구리를 이리저리 쿡쿡 찌른다. 나는 이쁜이 머리를 꼬옥 안았다. 보고 싶었다 이쁜아. 만지고 또 만졌다. 군마병 경 일병에게 물으니 내가 연대로 가고 난 후로 말을 더 이상 운행하지 안한다고 한다. 이쁜이도 여기서 고생 끝, 행복 시작이 되었으니...축하해 이쁜아. 무너진 길이 다찌차가 다닐 정도로 보수가 되어서....며칠 있으면 사단으로 말을 철수시킨다고 한다. 최 중사는 외출을 나가고 없다.
추석날이 사람 좋은 날이지 말 좋은 날은 아닌 모양이다. 특별히 내가 이쁜이에게 해 줄게 없다. 경 일병한테 얘기하여 이쁜이가 좋아하는 칡말린 것을 주었다. 경 일병이 말발굽도 깎고 편자를 갈아줄 때가 되었다면서 도와달라고 한다. 듣던 중 반갑고 반가운 소리.....편자는 사람의 신발과 같은 것....말발굽을 너무 얇게 깎으면 빨리 편자가 헐렁거리게 되고...너무 깊게 깎으면 편자를 박을 때 말이 아프다고 한다. 이쁜이가 말발굽을 깎을 때 내가 발을 들어주었다. 편자 박을 때도... 큰 도움은 안되지만 내가 이쁜이에게 추석 선물로 좋은 신발을 주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저 이쁜이를 바라만 보고 서로 눈빛만 보고...내 혼자 중얼거리면서...이런 것만으로도 좋아 오후 마지막 진중버스 시간까지 이쁜이와 지냈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사 교육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이쁜이는 없었다. 최 중사도 다른 곳으로 옮겨 없었다. 왜 하사교육을 가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른다. 묻지도 않았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다.
비밀문서인 통신확인표는 어떻게 된 건가 하고 알아보니....통신확인표라는 것이 손바닥만한 건데...중대 통신병이 통신확인표가 신문지에 묻어 있는 줄도 모르고....신문지하고 같이 박박 찢어서 계곡으로 날려 보냈단다....나중에 조사 마무리 무렵에 다행히 찢어진 통신확인표 일부가 발견되어...중대 통신병은 영창은 안가고...연대 군기교육대에서 1주일을 보냈단다....동기지만 중대 통신병이 원망스러웠다....그렇다면 그 당시 찢어버렸다고 말하지...왜 말을 안해서...신나게 두들겨 맞고...어머니 마음 고생시키고...또 지금의 아내가 그 먼길을 왔다가는 고생을 하고...이 일 이후로 나는 중대 통신병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지는 나보다 더 고생을 했다는 생각에...제대 후 한 번도 중대 통신병을 만난 적도 없고 연락이 된 적도 없다.
이쁜아, 사랑한다!
이렇게 이쁜이와 나는 헤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이쁜이가 있고 가끔씩 내 옆구리와 겨드랑이를 툭툭친다.
씰데 없는 말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그런다. "뻥도 정도껏 쳐야지...아무리 군대 이야기지만....어디 조선시대도 일제시대 만주 벌판도 아니고 말이야"....그러면 내가 사진을 보여주면 그때서야 "아, 이런 것도 있었구먼"한다. 아직껏 군대에서 나보다 늦게 마부한 사람은 아직 못봤고 못들어 봤다. 그렇다면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마부(馬夫)다.
* 길고 재미없는 이야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년 6월 10일 결혼 25주년 기념일에 주막담
첫댓글 이 글은 고향 후배님이 고향카페에 올린글인데 내용이 재미도 있고 우리 친구님들 군대기억 속의 글이기에 이렇게 올립니다...혹시 알아요??? 이 친구랑 함께 군생활한 친구가 있을지...주막담님은 58년생으로 문경시 농암면 사현리 출신이고 초교로 따지면 3년후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