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상산(商山)은 경상북도 서쪽에 위치하는 상주(尙州) 지역의 옛 지명이다.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영토였으나 185년(신라 벌휴왕 2,고구려 고국천왕 7) 사벌국(沙伐國: 혹은 沙佛國)이라는 소국으로 유지해 오다가 신라 첨해왕 때 정벌되어 524년(신라 법흥왕 11)에 상주(上州)로 고쳐 군주(君主)를 두었다. 진흥왕이 상락군(上洛郡)으로 고치고 신문왕 때 사벌주(沙伐州)로 개칭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상주(尙州)로 개칭하였으며 776년(혜공왕 12)에 다시 사벌주로 환원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상주라 이름하였다가 곧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바뀌었고 성종 때 귀덕군(歸德郡)이라 하여 영남도(嶺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8년(현종 9) 전국에 8곳의 목(牧)을 설치할 때 상주목이 되었다. 1012년(현종 3) 다시 상주안무사(尙州安撫使)로 고쳐서 8목의 하나로 정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상주목으로 개편되었다. 1408년(태종 8)에 경상감영이 상주로 옮겨왔다가, 1596년(선조 29)에 관찰사영은 경상도의 중앙에 위치한 대구로 옮겨갔다. 상락(上洛)·상산(商山)·타아(陀阿) 등의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상주목이 상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896년 경상북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함창군이 편입되었고, 1931년에 상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에는 상주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고, 1995년 상주군이 상주시에 통합되었다.
성씨의 역사
상산김씨 시조 김수(金需)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여러 대에 걸쳐 상산(商山: 尙州)에 살았다고 한다. 그는 고려 때 보윤(甫尹)을 지냈고 시중(侍中)에 이르렀으며, 상산군(商山君)에 봉해졌다. 그 후 현손 김비궁(金匪躬)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벽상공신(壁上功臣)이 되었고, 상산부원군(商山府院君)에 봉해졌고, 9세손 김일(金鎰)은 대호군(大護軍)을 지내고 상락군(上洛軍)에 봉해졌으며, 10세손 김녹(金祿)은 보정공신(保定功臣) 삼한삼중대광문하시중(三韓三重大匡門下侍中)에 올라 상성군(商城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김수를 시조로 삼고 상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분적종 및 분파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보윤(甫尹)을 지낸 김수(金需)의 후손과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지낸 김조(金祚)의 후손으로 나누어지는데 김조의 딸이 김수의 9세손 김일의 부인인 것으로 보아 본관은 같지만 다른 일족일 것으로 생각된다. 김수 계통은 상산군파(商山君派), 낙성군파(洛城君派), 문충공파(文忠公派), 상서공파(尙書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제학공파(提學公派), 내원령공파(內苑令公派), 영중추공파(領中樞公派), 통사공파(統使公派), 시랑공파(侍郞公派), 상원공파(祥原公派)로 나뉘어지고, 김조 계통은 상주파(尙州派), 선산파(善山派)로 각각 나뉘어졌다.
주요 세거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본산리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법물리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화천리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화산리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죽암리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일원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상곡리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일원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이문리
전라남도 영광군 대마면 원홍리
전라북도 익산시 무을면 송옥리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일원
전라북도 고창군 산하면 일원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상성리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인리
평안북도 태천군 장림면 점남동
평안남도 평원군 노지면 정림리
황해도 연백군 화성면 산전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상산김씨는 19,921가구 총 63,528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