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봉산 산행기
대한건축사등산동호회 전국산행지인 용봉산으로 가기 위해 교대역으로 나갔다. 하지를 앞둔 시절이라 이른 아침인데도 날이 훤히 밝아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떠는 느낌도 들지만 나서고 보면 하루가 넉넉한 느낌이 든다.
이번에 가는 용봉산은 충남의 홍성에 위치한다. 충청남북도의 행정구역의 나뉨은 경상도나 전라도와 달리 남북이 아닌 동서로 구획된 형국이다. 충청북도에 속하는 지역이 대체로 백두대간의 영향권에 들어 험준한 지형을 갖고 있는데 지형이 험준하고 높은 곳을 위쪽의 위미가 담긴 북쪽으로 인식하여 그리 하였을 것 같다. 충청남도의 주 지세의 바탕은 금북 정맥에 의해 형성되는데 당진 서산 등은 금북정맥으로부터 독립된 산줄기에 면하며 그 두 지형사이에 예산, 홍성이 있다.
7시 조금 넘어 교대역을 출발해 과천 옆을 지나 서해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가다 서해대교를 지나며 좌우를 돌아보니 무엇이든 너끈히 들어 릴 수 잇을 것 같은 커다란 코브라 크레인이 보였다. 다리 건너 좌측에는 가로를 빽빽이 채운 숙박 건물들이 보였다. 오래전 이 곳에 투기 열풍이 일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러한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건너는 심훈이 농촌 계몽운동을 하면서 살았던 필경사가 있으며 소설 ‘상록수’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서해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그 소설의 분위기처럼 목가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이후 아산만에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급속히 변모가 되었다.
지나는 차창 밖 들녘에 벼가 뿌리를 내려가는 모습이 바라보였다. 모내기 한 벼가 이제 막 자리를 잡아서 푸르러지고 있었다. 산에는 아카시아 꽃이 지고 이제 밤꽃 향기가 한창이었다. 이처럼 산행에 나서면서 도시 안에서 느끼지 못하던 계절 감각을 대할 수 있는 것도 좋다. 일기예보에는 앞으로 한주 가까이 맑게 나타나 있었다. 그런데 출발해 서울을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는 하늘이 찌뿌듯하게 흐려 있었다. 하지만 서해안 고속도로로 접어들 무렵부터는 점차 맑아지고 있었다. 올해도 벌써 한 해의 중간 지점으로 치달으며 여름이 점차 무르익는 시절이 되었다.
푸르름이 무성해지는 6월 중순은 가을 같은 쓸쓸함은 느낄 수 없고 한 해의 중간을 지나며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시기이다. 그리고 이맘때는 논밭에 무언가를 가득 심어 놓은 후의 풍성한 수확을 꿈꾸고, 모내기를 마친 후 한숨 돌리며 시간이 잠시 늘어지는 느낌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곧이어 장마가 들고 기후가 사나워지면서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게 되고 그 후 벼가 익어갈 무렵부터는 한해도 마감의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지금이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가장 넉넉한 시절이다.
9시 25분 용봉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전국 각지에서 온 회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띠었다. 집행부 임원들이 명찰을 나눠주며 수고를 하고 있었다. 9시 30분 산행을 시작했다. 일행이 조금 오르다 길에 멈춰 체조를 하다 보니 지나는 사람들이 멈칫 거렸다. 잠시 후 우측 능선 길로 접어들어 10분 후 거북바위에 올라섰다. 산행을 시작한 쪽의 내포평야가 펼쳐 보였다. 지금은 그 곳에 내포신도시가 들어서고 있다.
9시 50분 병풍바위에 도착했다. 용봉산 주능선에 감싸인 계곡지점에 용봉사가 내려 보였다. 그리고 지나갈 용봉산의 주봉 산세가 펼쳐보였다. 10시 용바위에 오르자 종주 능선이 더 시원스레 펼쳐 보였다. 거기서 보니 용의 몸에 봉황의 벼슬을 한 산이라는 이미지가 느껴졌다. 용봉초등학교를 종착지로 삼아 종주코스를 걸어갔다.
다시 조금 더 가니 준수한 바위와 능선이 차례로 펼쳐 보였다. 용봉산은 고도는 높지 않지만 여기저기 기암괴석이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띠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특히 오늘은 전국각지에서 온 우리 일행들과 다른 등산객들이 산행을 하여 더 활기찬 분위기가 되었다. 몇몇이 짝을 이루어 올라온 다른 일행들은 잠시 쉬면서 간식을 나눠먹으며 즐겁게 한 때를 있었다.
10시 8분 앞에 바라보이던 산봉우리에 올라 뒤돌아서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거기서는 이 지역의 산세를 한눈에 파악 할 수 있었다. 남동쪽에 내포평야가 보이고 북서쪽에는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이 보였다. 금북정맥을 사이로 펼쳐진 내포평야와 가야산이 있는 서쪽 능선으로 형성된 골격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저수지와 들녘이 바라보였다.
다시 종주 능선을 따라 걸었다. 점차 암릉지대가 많아지고 길도 급한 경사길을 오르락내리락 하게 되었다. 10시 16분 악귀봉(369)에 도착했다. 으스스한 이름과 달리 귀여운 모습의 물개 바위가 놓여 있었다. 종주 하는 동안 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건너편 산봉우리와 종주 능선이 펼쳐 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다.
용봉산은 가야산 산줄기 맨 남쪽 끝자락 건너에 독립적으로 형성된 지세를 이룬다. 해발이 381m 밖에 되지 않아서 높이로만 보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지만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특별한 기세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어느 산맥에 속하기보다 산 이름대로 한 마리용과 봉황이 날아와 엉켜 한 형체를 이루는 것 같은 형국이다.
10시 29분 노적봉(350)에 도착했다. 그 주변에는 높은 바위가 벼락으로 자려 나간 것 같은 모습의 행운바위와 촛대 바위 등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기묘한 풍광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나온 병풍바위 용바위 악귀봉 등이 종주 능선을 따라 시원스레 펼쳐진 풍광이 빼어나게 펼쳐 보였다. 그리고 진행방향 쪽도 마찬가지로 완만한 능선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이루고 있었다.
11시 2분 최영 장군 활터에 도착했다. 그 곳에 놓인 정자 안에 들어서니 세분의 제주 회원들이 먼저 와 쉬고 계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 옆에 표지판에는 전설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거기서 최영장군이 말에게 “내가 활을 쏠 테니 화살보다 먼저 도착하면 상을 주고 늦게 도착하면 목을 베겠다”고 했다. 그러자 말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껏 달렸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화살이 보이지 않았다. 말이 늦게 도착한 줄 알고 목을 내리친 순간 화살이 지나갔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최영장군이 자신의 경거망동에 눈물을 흘리며 그 자라에 묻어 주었다는 예기이다. 현재 활터로부터 5km 쯤 떨어진 곳에 말 무덤이 있다.
앞쪽에 내포평야가 훤히 바라보였다. 현재 이곳에 내포신도시가 건설되고 있는데 한쪽에 이미 완공된 충남도청사의 모습이 보였다. 홍성과 예산의 합병 등을 거치며 홍성에 도청이 유치되고 내포신도시 안에 짓게 되었다. 이곳은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쉽게 도시가 들어설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조선시대부터 오랜 세월 전통 농경사회의 기반을 유지하고 있었고 전통적인 사대부가의 삶의 체취와 충청도 양반 문화가 배인 곳이다. 그러한 곳이 급속히 현대 도시로 변모되어가고 있다.
활터를 뒤로 하고 다시 종주 능선으로 돌아들었다. 길 가에 드문드문 싸리 꽃이 피어 있었다. 그 꽃은 새봄에 앙상한 가지에서 새 생명의 신비를 띠고 피어나는 꽃들과 달리 그 꽃 들이 자취를 감추고 녹음이 무성할 무렵 나무 가지에서 피어난다. 그리고 화들짝 한 느낌 없이 은근히 피어나는 꽃이다. 산천이 온통 푸르름으로 농익어 갈 때 녹색의 단조로움을 깨고 풍경을 수놓는다. 그 싸릿대는 빗자루를 만들어 쓴다.
11시 12분 용봉산 최고봉(381)에 도착했다. 여러 등산객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 있었다. 나도 차례를 기다려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곳은 용봉산의 정상이지만 산세 중심으로부터는 남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리고 경관도 아까 지나온 노적봉 주변 같은 빼어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종주 능선 끝 지점을 향해 내리막길을 걸었다. 올라오는 사람에게 종주 끝 지점까지 거리를 물어보니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길도 험하지 않아서 하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전체 산행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아서 모두 모여 뒤풀이를 하는 식당까지 가는데 시간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산을 거의 내려올 무렵 가까이서 색소폰 소리가 들렸다. 직접 연주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따라 가 보니 석불사가 나왔다. 절 마당에서 한 분이 연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절로 들어서면서 보니 대웅전이 있고 미륵불상이 보였다. 커다란 자연석에 새긴 미륵불상의 느낌이 크게 다가왔다. 잠시 후 연주를 마치자 스님이 다가와 예기를 나누다 내가 스케치 하는 것을 보고 안사를 건넸다. 스님에게 미륵불의 느낌이 아주 자연스럽고 빼어나 보인다고 하니 자랑스럽게 예기를 했다. 그 분들께 인사를 하고 용봉초등학교 앞쪽으로 내려서니 제주에서 온 김영식 건축사가 진지한 포즈로 정성스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니 전에 제주 지역회장을 역임했다고 했다.
그와 함께 식당을 찾아가면서 용봉산 둘레길 을 걷게 되었다. 좌측에 용봉산 산세가 한 눈에 바라보였다. 서울에서 이곳에 들어설 때와 달리 바라보이는 용봉산 능선을 다 걸은 후여서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종주에 둘레길 까지 걸으면서 용봉산의 면모를 좀 더 많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 앞 들녘에 심은 모가 한낮 햇살을 받아 맑은 연두빛깔을 띠고 논바닥에 파란 하늘이 비춰 보여서 모처럼 시골 풍경을 만끽하면서 한가롭게 걸게 되었다. 김영식 건축사도 고향에서 농사짓던 때를 예기하면서 모내기할 때 손가락이 아팠던 기억을 떠올렸다. 잠시 오래전 시절을 회상하다보니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12시 47분 뒤풀이 장소인 돌산가든 식당에 도착했다. 마당 쪽으로 들어서서 너른 풀밭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곳인 줄 알고 가 보니 다른 일행이었다. 다시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건물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돌아서면서 푸른 잔디밭에 미련이 생겼다.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천정이 높아 예상 밖으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먼저 자리 잡은 김영식 건축사가 자리를 권했다. 주인이 8명씩 채워 앉아야 음식이 나온다고 했다. 차례차례 모여 들어서 너른 식당이 참가한 회원과 가족들로 꽉 차게 되었다.
식사를 하는 도중 전국건축사 등산동호회 행사를 진행했다. 대한건축사협회회장 지역회장 등산 동호회 회장 등이 번갈아가면서 건배를 제의 했다. 그 때마다 ‘위하여’ ‘좋다’, 등 흥겹게 맞장구치며 주변 분들과 술잔을 부딪쳤다. 이어서 경품 추첨을 하자 여기저기서 당첨자의 환호소리가 들렸다. 점차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전에 전국 건축사 대회에서 만났던 회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충북 회원들은 초창기 교차 초청 산행 등을 하면서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낙동정맥 단독종주 때 뒤풀이를 해준 진주에 김진수 회장 이철식 건축사 등도 만났고 경남의 신종복회장, 지리산 산행 때 서울 일행을 맞이해준 진주의 이춘식 건축사도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한때 백두대간 종주와 낙동정맥 종주 등, 산을 열심히 다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산행에 자주 나서질 못하다 보니 문득 그립게 느껴질 때도 있다.
회원들이 각자의 고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식당을 나섰다. 주차장 쪽으로 조금 내려오다 용봉산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해를 등지고 순광으로 찍으려다 용봉산을 배경으로 방향을 바꿨다. 한 나이 많으신 회원이 일일이 각도를 잡으며 회원들에게 정열을 시키고 찍어 주었다. 관록이 배어나는 느낌이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주차장 입구로 내려오다 보니 길가에서 고추, 완두콩 등을 팔고 있었다. 몇몇 할머니들이 각자 집에서 수확하여 갖고 나오신 것 같았다. 예전에는 보기만 하고 지났는데 땡볕에서 팔고 계신 피로를 덜어드리려는 생각에 조금씩이라도 사려는 마음이 생겼다.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 화백은 귀가할 때 노상에서 한사람에게만 사면 서운할 것 같아 과일을 여러 사람에게 샀다고 한다.
주차장까지 함께 걸어온 충북의 최동철 건축사와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이동춘 전국건축사 등산 동호회 회장이 버스까지 올라와 배웅을 해 주었다. 막힘없이 올라와 5시 조금 넘어 사당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해가 긴 여름철에 아직 한 낯 기운이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산행을 마치고 아직 하루가 남아 있는 느낌에 여유가 있어 좋았다.
(20140614김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