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파람4]자유로운 이미지 모자이크.. 시 간 : 2003-03-22 오전 10:41:04 내 용 : 간현역에서의 파람4는 아름다운 역광장에서 펼쳐지는 특별한 단독 주제를 두지 않은 이미지의 모자이크 방식이다. 즉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이며 파람 안에 새로이 등장한 인물들이 앞으로 이어 나갈 삶의 방식에 대한 첫 만남 같은 그림이다.
성미산을 지키는 사람과 수해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찾아가 그들과 함께 하기로 한 사람. 그리고 철거지역을 떠나 인도의 프램단으로 가는 사람 등 세사람이 그들이 준비한 마음을 자유롭게 제안하며 그 삶을 시작하는 공연. 그 속에 파람의 상무대가기는 이어지고 맨틀의 보듬어 바라보기가 이들의 모습 위에 겹친다.
제 목 : [파람4]구성.. 시 간 : 2003-03-22 오후 5:41:00 내 용 : 1. 파람의 입구 노인-인도로 떠나는 이. 2. 파람-,상무대의 주부 3. 냇골의 뱃사공-장덕리로 찾아간 이 4. 너의 의미-성미산을 지키는 이 5. 멘틀-맨틀 그리고 인도에서의 미니
제 목 : [파람4]간현역에서의 공연을 준비하며... 시 간 : 2003-03-23 오전 8:58:19 내 용 : 철도역공연의 일환으로 익산 촛불 집회에 이은 두번째 정식공연으로 [파람4]를 간현역에서 공연한다.
출연자들이 모두 새로이 파람에 등장하는 인물들이고 더군다나 예플 작업에 처음 참가하는 이들로 구성되는데다가 연습없이 참가하는 이까지 있어서 작업은 [파람]으로 가는 첫 단계 사람들의 모자이크로 만들어질 것이다. 준비한 것을 제안하기보단 공연을 통해서 느껴가면서 다음작업을 준비하는 단계가 될 공연.
그래서 오히려 사람을 만나는 기회며 이 시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축출해낼 존재의 방식 찾기 정도로 이 공연은 과정작업자체로 준비를 마쳤다.
마침 같은 시기 우리는 전쟁을 겪고 있다. 누구는 전쟁을 용납하고 누구는 그것을 반대하며 거리에 쓰러지며 그러는 사이에도 폭격과 사살은 이뤄지고 사람들은 죽어간다.
파람4는 이러한 시간에 지구 어느 곳에서 반전시위보다 더 가슴아픈 마음으로 이뤄지는 인간에 대한 고귀한 갈망이다.
각기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이 중요시하는 것을 찾아서 파람4의 인물로 접근하고 있는데, 그들의 모습이 간현역에서 어떻게 공간을 초월한 아픔의 공유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마상공원에서 첫 연습이자 마지막연습이었던 [파람4]팀과의 연습을 마치며..
제 목 : [파람4]간현역 공연 정리.. 시 간 : 2003-03-28 오후 12:12:44 내 용 : 간현역에서의 파람 공연은 가벼운 소풍같은 작업으로 제안되엇다. 하지만 그렇게만 자유로 울 수 없었던 것은 이시기 지구는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 안에 우리는 본의 아니게 침략자를 찬성하는 무리가 되어버린 나라의 국민이 되었으며 그 아픈 시선으로 폭격되고 파괴되어가는 사람들의 공간과 사람들을 죄인의 가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엇다.
공연엔 4명의 등장인물이 참가했는데, 처음부터 파람의 작업이 연출자의 의도처럼 피안에 이르는 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인물을 등장시킬 수는 없다고 포기한 상태에서 과정으로서의 인물이 나열되고 그 준비작업이 공연 안에 예시되듯 현재의 공연안에 파람의 인물은 맨틀과 파람 정도이다.
그래서 간현에서의 공연은 파람이란 작업과 예기플라타너란 작업에 초연자들이 셋 등장하고 그들의 나름대로의 인물만들기와 마음가지기가 자유롭게 배경처럼 놓여졌다.
인도로 간 이 장덕리에 함께 살기로 한이 성미산을 지키려는 이 세사람 모두 연출자와의 연습량만큼의 부족함으로 파람에 첫선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들인 정성과 자기를 버리고픈 마음의 만들어진 만큼의 모습으로 공연 안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들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들과 동떨어져서 한 사람 파람이 있고 마지막부분 맨틀이 지나간다.
작은 역과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파람의 인물같아서 다음공연 어디엔 가에는 작은 역을 지키는 이들의 모습도 파람 안에 담겨질 거란 생각이 들엇다.
사람들이 무엇을 할 때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의 심성과 감정을 본위로 내세우면 그는 그 둔덕에 이르지 못한다. 아마도 그가 바라본 둔덕은 이 봉우리가 정상인줄 알고 올라갔더니 저편에 정상이 따로 있는 등정가와 다를 바 없다.
파람의 인물들을 접하게 될 때 지나간 작업일지와 연출자의 노트가 지침해주고 안내해주어야 할 점은 그것인 것 같다.
결론적으로 파람의 단어들은 이승의 단어들과는 다르다. 선이며 착함이며 자유며 이성이며 길,.등등 모든 것이.
아직 파람의 작업과정이 그렇듯이
제 목 : 그곳에 함께 있기로 한 이 ..시작하며 시 간 : 2003-03-28 오후 12:27:15 내 용 : 내가 어디 엔가 다가가는 것은 나를 버리기 위함이다. 버린다는 것은 대개 나태나 포기의 개념으로 사용되지만 예기플라타너스작업과 파람에선 주어버린다 즉 드린다와 흡사하며 버림의 이유는 사랑이다. 일반적 인간의 단어에 희생과 근접하지만 인간의 단어는 희생조차도 자기본위성을 내재하고 있어서 자기만족적 용어로 들린다.
파람의 인물 중 장덕리 어느 겨울이야기에 등장하기 위해 준비되고 잇는 인물로서 그곳에 함꼐있기로 한 이 가 잇다. [함께 있기로 한이]란 이름으로 파람 안에 기억되어 성장할 그는 잃어버린 이 들을 위해 자기를 버리고 남은 시간의 모두를 그들 곁에 있기로 한 사람의 얘기다. 그래서 그의 모습은 항상 그 함께 있기로한 이의 초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그 이유를 잊는 자아의 표출도 없다.
장덕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들스스로 다시 일어서는 의지와 공동체적 가슴이 있다. 제3자였던 함께 있기로 한 이는 그들 속에 함께 있는다는 의미로 다가가서 공존하며 제3자이므로 더더욱 큰 의지와 실천을 이성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1년이지나고 10년이 지나고 다시 30년이 지나고 후에 언젠가 그곳에 누군가가 찾아와서 그를 바라보면 그는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그는 장덕리 사람들보다 더 장덕리를 사랑하며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잇는지도 모르는 그런 존재임을 눈치채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마주한 곳이 바로 파람의 길목임을 돌아오는 길에 알게 될 것이다.
그곳에 함께 있기로 한 이 는 그렇게 준비한다., 파람 4와 5에서 그는 처음 그곳에 찾아가서 할머니 저 함께 살려고 왔어요 라고 맑게 웃으며 바로 팔을 걷고 저녁 밥을 앉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어찌 보면 아직은 일상에서의 간혹 착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사람의 모습정도로 시작되지만 누구나 파람엔 그렇게 이르므로 그 어리석음을 탓할 수 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