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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과거에 한 설교문이 있어서 몇 편 올립니다.
1. 꼭 해야 할 경건의 훈련 (약 1:19-27)
이 시간에는 “꼭 해야 할 경건의 훈련"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이것이 요리문답 제 1문답에도 기록 되었듯 인생의 제일가는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경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건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건훈련이 잘 되어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경건에 대한 성경의 약속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를 들으시고 받으십니다. 경건하면 성령이 위에 계십니다. 경건한 자를 쓰십니다. 경건은 금생과 내생에도 유익합니다. 경건은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귀한 자세입니다. 롬1:18에는 경건치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롬5:6에는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귀한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핍박도 따릅니다. 그러나 영원한 영생과 함께 받는 것이니 축복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경건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늘 훈련하고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딤전4:7-8에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럼 야고보가 말하는 경건의 훈련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1. 언어의 훈련입니다.
19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그랬습니다. 26절에도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언어의 훈련입니다. 언어의 훈련에서는 먼저가 절제의 훈련입니다. 왜냐하면 절제 된 언어생활이 없으면 경건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듣기를 먼저하고 말하기를 더디 해야 합니다. 내막도 잘 알지 못하면서 말부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그런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무엇을 들으면 사실여부보다 곧 바로 그것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계하며 조심해야 할 사람입니다. 대체로 배움이 부족한 동네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일은 정통한 소식일지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은 경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혀에 재갈 먹이라고 말씀합니다. 말의 입에 쇠사슬로 된 재갈을 먹이듯이 우리 입에도 재갈을 먹여야 합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줄여야합니다. 평소에 말이 없다가도 한 번 입이 터지면 그칠 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 일주일 정도 정해서 침묵훈련을 하세요. 하고 싶은 말은 글로 써서 합니다. 사람 있는 곳에 가려면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세요. 그러면 그 한 주간이 일생을 좌우할 귀한 성향을 심어주게 될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내 주장만 하지 말고 대화조의 말을 해야 합니다. 남의 말도 존중해야지 내 주장만하고 딱 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항상 절제 되고 다듬어진 아름다운 언어의 훈련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2. 감정조절의 훈련입니다.
19절 후반-20절에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지정의 중에서 가장 다르기 힘든 것이 감정입니다. 다른 것보다 시간적으로 빠르고 깊은 상처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성내는 것을 더디해야 하는 이유는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며, 나에게 손해가 되고,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성낼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장 유익 되도록 결정한 일인데 오해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모든 일을 조금만 더디 해보세요. 성낼 일이 있어도 1분만 기다려 보세요. 1분이 너무 길면 30초만 기다려 보세요. 30초도 길면 10초만 기다려 보세요. 10초가 길면 5초라도 기다리면서 생각해 보세요. 과연 성낼 일인가?
우리 집 큰 애가 중학교 다닐 때 전라남도 과학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심사위원이 오더니 다른 애들과는 달리 물어보지도 않고 잘못된 것만 비웃듯 몇 가지 꼬집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너무 무관심해서 울었답니다. 저도 그 말을 들으니 서운했지만 참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발표를 하는데 에너지 부분에 최우수상이라는 것입니다. 돌아볼 때는 이미 평가는 끝났던 것입니다. 자랑 같지만 만약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항의를 했더라면 얼마나 어리석은 자가 되었을까요?
사람이 감정을 갖게 되면 혈압부터 오르고 성인병에 치명적입니다.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몇 달간만 속을 끓으면 암세포가 몸을 다 장악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서라도 기다리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5초가 길면 3초라도 생각해 보는 마음만 가지면 충분히 자기감정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3초 만에 행복한 세상 만들기”라는 글이 있더군요. 3초만 기다려 주고, 3초만 참아주고, 3초만 있어주고, 3초만 생각해 주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 것이지요. 혹시 누가 악담을 하면 혹시 그 분의 건강이 좋지않아서 그런가? 왜냐하면 병으로 몸에 독이 있으면 마음도 짜증나고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혹은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일까?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저도 하나님 앞에서 감정조절훈련 많이 받았습니다. 아직도 불완전하지만 내가 죽는 훈련입니다. 욕을 당해도 죽어야 합니다. 세상이 유혹해도 죽어야 합니다. 억울해도 죽어야 합니다. 어떤 일에도 상처 받지 않아야 합니다. 염려도 맡겨야 합니다. 마음에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 받지 않아야 합니다. 대신에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과 의에 대해서는 산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정조절훈련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감정도 조절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 갇혀서 복음을 전할 때도 구설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꼭 그런 식으로 전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빌립보 교회를 빼고는 모두 돌아서고 말았습니다(빌4:15). 그러나 바울은 빌1:12-14에서 이것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옥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으며 기뻐하라고 권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선교사들이 인질로 잡혀 있는데 안타깝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계신지 항상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꼭 그런 곳에 가서 전해야 하느냐? 혹은 이것은 한국선교의 실패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전쟁터에 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지금 그들이 아무 성과 없이 잡혀 있는 것만 같이 보이지만, 육의 생각으로는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활동할 때보다 100배 1,000배 더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학자인 아크바드 마흐메르가 쓴 ‘포위당한 이슬람’이라는 책에도 빈라덴의 행동으로 이슬람교가 다른 세계 종교들과 대립하게 되어 그 결과 이슬람교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제는 이런 테러와 폭력이 이슬람교 교리인 지하드(聖戰)와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에는 없는 악한 교리입니다. 그들도 사랑의 종교라고 하지만 우리와 같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종교는 아닌 것입니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슬람교가 무엇인지 전 세계에 알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슬람교에서 돌아서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슬람교의 이런 테러가 없다면 세계는 이미 이슬람화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들 교리가 무엇인지 볼 수 있음은 다행한 일입니다. 즉 그들은 스스로 죽는 자충수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회교선교사는 200만이고 우리 기독교 선교사는 20만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선교에는 그들과 게임이 안 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많을수록 이슬람교의 기반은 좁아질 것이고 우리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확장 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석방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더욱더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흘린 피와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매사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조금만 더 생각해 보는 지혜를 가진다면 판단은 물론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훈련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말씀의 훈련입니다.
21절 중반부터 25절까지 말씀입니다.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진정한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말씀 존중이 하나님 존중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복있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눅11:27-28에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먼저는 말씀 듣는 훈련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거나 설교를 듣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함과 사모함과 온유함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옥토 밭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알되 넓게도 알아야 하고 깊이도 알아야 하고 기억도 잘해야 합니다. 이것이 모두 엄청난 도움과 무기가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 말씀을 행하는 훈련입니다. 22절에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고 사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내가 은혜 받았다.” 하면서 말씀을 듣고 만족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다하는 줄로 압니다. 물론 은혜가 잇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안내이지 본론은 아닌 것입니다. 식품 강사가 아무리 식품을 소개해도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이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았어도 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진리를 야고보는 거울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울을 통해 자기 얼굴을 보고는 곧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거울 봐서 때가 묻었으면 씻어야지 더러운 것을 보고도 돌아서서 잊어버린다면 거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행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함으로 듣는 훈련과 잊지 않고 그 말씀을 행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거룩한 사람, 사랑의 사람, 전도의 사람, 용서의 사람, 충성의 사람, 겸손의 사람, 소망의 사람, 찬송의 사람, 기쁨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4. 사랑의 훈련입니다.
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와 관계 있는 사람에게만 잘합니까? 돈 많고 명예로운 사람에게만 잘합니까? 그렇게는 불신자들도 합니다. 그것은 경건이 아닙니다. 정말 아무도 돌보지 않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경건입니다.
5. 악을 멀리하는 훈련입니다.
21절에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그리고 27절에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이것도 왜 훈련일까요? 자꾸만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늘 구원의 복음에 서야 하며 늘 성령의 은혜 받으며 늘 말씀으로 마음을 다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넘어져도 칠전팔기하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여 죄를 두려워하며 노아와 같이 세속에 물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경건의 훈련을 시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해하고 불평하고 낙심하지 말고 우리의 모든 삶에서 열심히 훈련하십시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일이 있고 우리가 그 은혜를 의지하여 훈련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힘써 절제된 언어훈련과 감정조절, 말씀훈련, 사랑의 훈련, 그리고 죄를 멀리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경건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고넬료에게 배우는 경건 (행 10:1-8)
이 시간에 “고넬로에게 배우는 경건”이라는 제목입니다. 밀레가 그린 유명한 그림 만종을 보셨을 것입니다. 해 저무는 시간 이삭을 줍다 교회에서 들리는 은은한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농부 부부를 그린 그림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 그름을 보면 어떤 단어가 떠오릅니까? 경건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8) 경건은 이 세상에서도 영원한 나라에서도 잘 되는 가장 귀한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경건을 사모해야하겠습니다.
이 귀한 경건을 백부장 고넬료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은 고넬료가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가르쳐 줍니다. 본문 10장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랬습니다.
여기에 경건의 중요한 요소가 나타납니다.
1.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경외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죄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거역함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높이고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그로서는 사실 대단한 일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로마인이었습니다. 로마는 다신교 국가로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듯 그들의 신개념은 우리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거기다 그는 로마의 군인이었습니다. 당시 세상은 로마의 권력이 지배하는 때입니다. 그는 하인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것을 보아 경제적 능력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권력도 있고 돈도 있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그가 25절을 보면 그는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그렇게 했던 것은 하나님을 진실로 공경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의 진정한 경건의 모습을 봅니다. 사람에게 어떻게 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경건을 알 수 있어요. 하나님 두려워 할 줄 알면 그 신앙은 된 신앙입니다.
지난 번 이웃 교회에서 찬양과 간증으로 집회해 주신 구집사님, 무늬만 신자인 구집사는 바쁜 사업 핑계로 주일예배를 빼먹는 날이 많았습니다. 어느 때는 새벽예배로 주일예배를 대치하고 돈 벌기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신년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스키장으로 가다가 대형 사고가 나서 남편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던 그가 그 일을 당하고 울부짖다가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여 지금은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해 전도하러 다니는데 그 집사님 말씀이 하나님 두려운 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면 그 신앙은 된 신앙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면 하나님을 멀리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면 범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뜻대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면 그것은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2. 경건은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하여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경건하게 사는데 기도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입니다. 기도 없이는 경건한 사람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32:6에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기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을 찾으려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압니다. 경건한 사람은 식사하기 전에 기도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차를 운전하기 전에도 기도하고 출발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직장에 출근하면서도 퇴근하면서도, 잠자기 전에도 일어나서도 기도합니다. 가장 경건한 사람은 새벽에 교회 나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몸도 피곤하고 잠도 오실 텐데 일 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기도하는 성도들을 목사인 저도 감탄합니다. 그 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평안과 형통이 넘치시기를 이 시간을 빌어 축복합니다.
이처럼 고넬료는 항상 기도했을 뿐 아니라, 3절을 보면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도 기도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씩 기도했는데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그 좋은 점을 그대로 본받았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이 전통을 그대로 본 받았어요. 그 결과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 좋은 전통을 유대인들과 이슬람교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유대인들처럼 그들의 장점을 이어받아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성도에게 주신 권세가 심히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기도는 진실했기에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베드로를 만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구원 받고 성령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경건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인격이 변화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인생이 변화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막힌 담이 무너집니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그래서 철학자 「세네카」는 ‘그림의 떡은 떡이 아니요, 붙지 않은 불은 불이 아니며, 간절하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만남의 횟수가 많아지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됩니다. 기도하면 경건한 사람이 되지 말라 해도 경건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경건한 사람이 되고 싶어도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3. 경건은 이웃을 사랑으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본문의 고넬료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2절에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약1:27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했습니다. 혼자서 거룩 거룩하다고 경건한 것 아닙니다. 이웃과 함께 하지 않는 경건은 경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사람과 하나님이 인정해 줄 정도로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습니다. 자기 백성도 아닌 다른 나라 백성, 사람취급도 하지 않던 식민지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그는 그 일에 힘썼습니다. 우리도 핑계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도 3년 생애 동안 노숙자로 사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먼저 내 것을 비울 때 하나님께서 채우신다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42),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눅12:33). 바울은 디모데에게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8-19)라고 가르치라 했습니다. 성경은 구제하는 자가 받는 복을 받는다 했습니다. 궁핍하지 않고 오히려 부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제할 때 하늘의 보화를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사람과 함께 우는 것이 경건입니다.
4. 경건한 고넬료에게 어떤 결과를 주셨습니까?
베드로를 만나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온 집안 식구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일가친척까지 성령 충만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고넬료를 통해서 이방에 선교의 문을 열리고 로마까지도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나 한 사람의 진정한 경건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백부장 고넬료에게서 배우십시다.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경건하십시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며 이웃과 함께 하며 사랑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 만나 내가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놀라운 축복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경건을 연습하라 (딤전4:6-13)
성경에 보면 에녹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다니엘 욥 이사야 혹은 베드로 요한 바울 등 위대한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역사 속에도 참으로 위대한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과연 그들은 우리와 똑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왜 그렇게 위대한 신앙을 가졌고 그렇게 귀한 일을 할 수가 있었을까요? 더구나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출신도 학력도 모든 면에서 부족한 사람들이 그렇게 훌륭한 신앙인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는 피나는 경건의 훈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일도 천재가 따로 있거나 전문가가 따로 있지 않고 훈련하면 사람들이 그 사람을 천재라고 말하고 전문가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유명한 피아니스트에게 “선생님은 정말 천재세요.” 그러자 그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천재이기 전에 저는 지루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일생은 어릴 때부터 지루할 만큼 연습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박세리 선수도 초등학교 6학년밖에 안될 때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15층 아파트 계단을 다섯 번씩 오르내리고 매일 6㎞씩 달리기를 하고 매일 6백 번의 퍼팅연습을 하더니 8년 후 이 소녀는 골프계의 신데렐라로 불리며 세인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연습이 인재를 만들어 냅니다. 마찬가지로 위대한 신앙인도 연습으로 만들어집니다.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젊은 교회 지도자 디모데에게 몇 가지 중요한 말씀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선한 일군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경건한 생활을 연습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구체적인 경건을 위해서는 먼저 경건의 개념부터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럼, 경건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경건이란 헬라어로 "유세보마이"인데 이 말은 “잘 한다”는 "유"라는 말과 “존경, 경배, 신앙심”이라는 의미의 "보세이"라는 말이 합쳐진 복합어입니다. 그러니가 경건이란 하나님을 향한 바른 생활 혹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바른 생활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흔히 경건이란 용어가 믿음이라는 용어로 사용되어 바른 믿음 생활이 바로 경건 생활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연습이라는 동사는 원래 "벗는다"는 말에서 나왔는데 옛날 희랍 사람들은 옷을 벗고 경기를 한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 시대에는 올림픽이나 이스무스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서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했고 때로는 가혹한 훈련으로 죽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강한 신앙훈련이 필요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믿음 생활입니다.
2. 경건의 연습은 무엇에 유익합니까?
본문 8절에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육체의 연습도 유익이 있지만 경건이 더욱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경건의 연습은 금생과 내생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경건하면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천국에 가서도 큰 유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태복음 6장33절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마가복음 10장29절에서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즉 세상이 귀중히 여기는 것을 뒤로 하고 복음적인 경건 생활에 힘쓰면)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명한 칼빈 선생은 신앙인의 생활 덕목을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경건이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이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경건한 생활입니다. 창세기 14장을 보면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기르고 연습한 자 삼백 십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14절) 다 구해 옵니다. 이처럼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욥과 같이 경건한 사람은 이길 수 있습니다. 잘 훈련 받지 않고서는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3. 어떤 부분에서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합니까?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만 경건에 대한 교훈을 열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딤전2:1에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입니다. 즉 기도에 길들여진 성도가 되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기도가 습관이 될 만큼 기도하셨습니다. 때마다 일마다 기도하신 후에 일을 행하시고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밤이 늦도록 기도하시고(눅6:12) 새벽에 기도하시고(막1:35) 공생애를 시작할 때와 세상을 떠나실 때도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큰일을 이루고 모두가 평안함 가운데서 신앙 생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생활을 하되 정해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다음에, 딤전6:3절에 나와 있는 대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말씀에 길들여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충만하셨기 때문에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시고 말씀 붙들고 그 말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구원의 사역을 이루셨습니다(빌 2:7∼8).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깊이 많이 잘 배워야 합니다. 이단들을 분석하고 이길 능력도 갖추어야 합니다.
다음에, 딤전6:6에 "지족하는 마음"이 나옵니다. 지족은 스스로 만족함을 뜻합니다. 이 지족이 경건에 큰 유익이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탐욕의 죄에 빠짐을 방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라 하면서 지나치게 사치하지 말고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것이 있은즉 만족하다는 생각으로 서민들과 비슷하게 살면 가장 좋습니다. 그 대신 모든 여력을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딤전3:15절에 "하나님의 집에 충성을 다하는 생활"이 나옵니다. 즉 십자가를 지는 일에 길들여져야 하겠습니다. 소가 길들여지지 않을 때는 멍에를 얹으면 놀라서 그 멍에를 떨쳐버리려고 뜁니다. 그러나 길이 들여지면 논길이면 논갈이 밭갈이면 밭갈이 큰일을 해 냅니다. 우리도 주의 일에 희생하여 작은 일에 충성하면 더 큰 것을 맡겨 주십니다. 우리 마음에 주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제가 전에도 간증했지만 낙후한 예수병원을 위해 여러 해 동안 안타까워 괴로워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야 네가 그 마음으로 이 병원을 위해서 축복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병원 현관 벽에 서서 하나님께 이 병원에 수백 억 최신장비를 갖춘 호남 최고의 병원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병원에 우리나라에서도 몇 대밖에 없는 최신장비들이 속속히 들어오고 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내 공로로 돌리겠다는 말은 아니고 그 애타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충성할 수 있도록 충성하는 마음의 훈련도 받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천국 가는 훈련”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농번기로 바빠도 주일은 일하는 날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일날은 모든 애경사에 있어서도 제외시키시기 바랍니다. 십일조 생활도 철저히 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다윗과 같이 생활 속에서 악기도 다루며 찬양훈련을 하십시다. 바울과 같이 아라비아 삼년처럼 기도 훈련하십시다. 그리고 세례 요한과 같은 절제훈련을 하십시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 살면서 검소하게 사는 절제훈련을 했습니다(마3:1,4절). 우리에게도 절제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반복하는 연습입니다. 잘 안 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열심히 하면 안 되던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됩니다. 우리 모두 경건 생활에 힘쓰고 경건의 연습을 거듭하므로 금생과 내생에 축복 받은 우리 교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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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자료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자료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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