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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감사하라(시 136:10-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인정이 많고, 사랑이 많은 세상이라고 하기보다는 물질적이고, 계산적인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물질적이고, 계산적인 세상을 살다 보니, 감사한 마음, 고마운 마음은 점점 사라져가는 듯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 자신의 실력으로 성취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누군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설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없이는 이 험난한 세상을 이겨나갈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 로마의 “시세로”는 “감사한 마음은 최고의 덕일 뿐만 아니라, 모든 덕의 어머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등불을 주시고, 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별빛을 주시고, 별빛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며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보다도 더 밝은 천국을 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작은 일에도, 매번 반복되어지는 아주 작은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천국을 소유한 아름다운 마음일 것입니다.
여러분!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감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항상 기쁘게 사는 것, 쉬지 않고 기도하며 사는 것,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기를 시기 · 질투하는 자들의 모함으로, 사자굴에 들어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피하지 않고,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단 6:10)
다윗은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시 9:1)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험난한 삶을 살았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1,4)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늘 풍족하고, 늘 만족하고, 잔이 넘치는 풍성한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사실로 인하여,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출애굽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다. 홍해를 건넜고, 광야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여 주셨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라는 이야기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과 고통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종살이를 벗어나,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왔을 때, 그들의 삶이 애굽보다, 더 편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먹을 것조차 없는 광야에서의 삶은 어찌보면, 보통 힘든 날들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왔다고 해서, 모든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여리고 성이 버티고 있었고, 가나안 일곱 족속이 그들의 가는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매일 전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보다, 더 큰 슬픔과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모세와 하나님께, 불만과 불평을 가감없이, 털어 놓았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느니, 고기가 먹고 싶어 죽겠다느니, 양식이 없다느니, 춥다, 덥다 등, 어느 것 하나, 불만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사건을 회상시켜 주셨습니다.
과거의 일을 이야기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며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일들을 하나하나 되새겨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시편 136편은 처음부터 감사로 시작하여, 감사로 끝마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반복하여, 감사하고, 감사해도 부족하고, 아무리 계속해도, 주님을 찬양하고픈 마음에, 매 구절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범사에,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고통이나 환난이 없고, 근심이 없는 평안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일을 만날 때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행복할까요? 아니면,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행복할까요?
이 세상에서의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감사가 많은가? 아니면, 불평이 많은가?”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는 행복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감사를 잊고 살아갑니다. 무슨 일을 만날 때마다,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습관적으로, 먼저 튀어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누군가에 대한, 더 나아가,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감사가 없게 되면, 기쁨도 행복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26절까지, 매 구절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인자”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주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8-10)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들, 지금의 나도 사랑하십니다. 오직 이 세상에 나 혼자만를 극진히 사랑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살리시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려고, 천국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여러분! 시편 기자는 지나온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하나 되돌아보면서,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매순간마다, 역사의 한 고비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그 사실을 깨달았기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애굽에서 이끌어내셨습니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그들을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그 바다 가운데를 걸어서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죽이려고 좇아오는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셨습니다. 수장시키셨습니다. 광야 40년 생활 동안, 하나님은 항상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고 한다면, 불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변함없는 사랑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이방 민족인 니느웨 백성들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0-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금도 그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속상한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심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한다면, 그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심판이 아니라, 구원하시려고, 우리를 살리시려고 오셨다고 하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류는 에덴 동산에서부터, 사단의 미혹에 빠져, 죄를 짓고, 하나님을 거역하여,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부패하고 타락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허물과 죄가 가리어지게 되었습니다. 진홍같이 붉은 죄가 양털 같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당연히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 큰 구원을 계획하시고 이루신 하나님께 감사해야함이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가슴에 새긴다면, 눈만 떠도 거저 감사, 눈을 감아도 거저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인자하시고 선하셔도 그 인자와 선하심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랑하심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기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는 오늘 버스 안에서 금발 머리인 아름다운 소녀를 보았습니다. 그 소녀는 매우 명랑해 보였으며, 내가 만일 그 소녀처럼 예뻐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면서, 나는 그 소녀를 부러워 했습니다. 소녀가 버스에서 내리려고, 일어섰을 때, 나는 그녀가 다리를 심히 절면서, 통로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한 쪽 다리 밖에 없어서, 목발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웃음을 잃지 않고 걸어갔습니다.
“오, 주여! 부질없는 생각을 했던 나를 용서해 주옵소서. 나에게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사오니, 주여, 감사합니다.”
그 후, 나는 과자를 파는 소년을 보았습니다. 그 소년은 무척 귀여워 보였습니다. 나는 그 소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볼 수 있지요? 저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맹인입니다.”
“오, 주여! 부질없는 행동을 했던 나를 용서해 주옵소서. 나에게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사오니, 주여, 감사합니다.”
또, 나는 파란 눈동자의 어린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우두커니 혼자 서서, 다른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는 마치 운동할 줄 모르는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잠시 동안. 지켜보았던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 너는 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지 않니?”
그러나, 소년은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그냥 앞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그 애가 전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 주여! 부질없이 행동했던 나를 용서해 주옵소서. 나에게는 들을 수 있는 두 귀가 있사오니, 주여, 감사합니다. 오, 주여! 이 몸은 복 받은 자이오니, 주여, 감사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지지 않는 것을 바라보면, 우리는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가 가지지 않는 것을 보거나, 자꾸만 다른 사람이 가진 것만을 바라보기에, 감사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감사 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매번, 반복되어지는 사소한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어떤 큰 일 속에서만,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찮은 작은 일들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의 생애 순간순간이 모두 감사한 것뿐입니다.
여러분! 설 명절입니다. 예전과 같은 그런 들뜬 설 명절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설 명절 기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일이나, 아니면, 특별한 일이나,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은총인 것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회계사가 비록 가난하지만, 아주 진실한 성도의 세금 보고서를 대신 작성해 주려고 찾아갔습니다. 그 회계사는 “소유하고 계신 재산을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또박 또박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나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둘째, 크고 아름다운 집이 천국에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들이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평화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넷째, 말로 할 수 없는 즐거움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섯째, 현숙하고 신실한 아내가 있습니다. 일곱째, 캄캄한 밤중에는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여덟째,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아홉째,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갑니다.”
이 말을 다 듣고 난 회계사가 장부를 조용히 덮으면서,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당신의 재산에 세금을 부과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재산 목록보다, 귀중한 하늘나라 재산 목록이 더 풍성한 사람들이므로,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드려도, 부족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감사의 노래가 있습니까? 무엇으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입니까?
나를 택하사, 구원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삽시다.
모든 시험과 역경에서 이끌어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삽시다.
질병과 낙심과 좌절 가운데서 구원하셨던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삽시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가정과 자녀를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삽시다.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직장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삽시다.
믿음의 터인 우리들의 교회와 성도들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삽시다.
비록 지금 세상적으로 감사하기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삽시다.
여러분!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감으로, 광야와 같은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에서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고, 범사에 감사만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