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선 한 척
황세아
하굣길에 종종 마주치던
우석삼촌은
기우뚱 기우뚱
몸을 흔들면서 걸었다
매번 삼촌 지나갈 적마다
홍해 갈라지듯
확 트인 골목 양 쪽에서
속삭이듯 들려오던 얘기들
ㅡ교통사고였댔지?
ㅡ응, 몇 년 안 됐어
ㅡ가족들도 다 떠났대
ㅡ요샌 폐지도 모으나봐
ㅡ어제 리어카 끄는 거 봤어
ㅡ젊은 사람이 에휴 쯧쯧쯧
수군수군 출렁이는
홍해의 물살 위로
돛처럼 곧추세운 옷깃
힘차게 펄럭이며
장애인 구직신청서
양 손에 꽉 쥔 채
주민센터로 나아가는
호호탕탕
저
범선 한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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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글 (박예분)
2025부산일보 신춘문예동시 당선작이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장애를 가진 청년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기우뚱 기우뚱 몸을 흔들며' 걷는 모습을 보는
아이의 시선이 바다처럼 깊고 광야처럼 넓고 큰 산처럼 높다.
절룩거리는 삼촌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장애 인식과 암울한 모습을
홍해를 가르며 걸어가는 힘찬 발걸음으로,
곧추 세운 옷깃을 힘차게 펄럭이는 깃발처럼 비유한다.
장애인 구직신청서를 양 손에 꽉 쥐고 주민센터로 나아가는
삼촌의 모습을 마치 망망대해 파고를 헤치며 가는 범선으로 묘사했다.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를 갖게 된 삼촌의 삶을
희망차게 노래하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삼촌의 밝은 미래를 펼쳐보인다.
동시에서 만난 삼촌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